브런치 북 공모전 12편

by 김민관

-重-


옛날 옛적 어느 현명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백성과 신하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면서도

또한 나라의 앞날을 멀리 내다보고 고민하는 속 깊은 왕이였습니다.

국가는 언제나 태평성대를 이루었지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왕이 건강할수만은 없었기에

하루는 자신의 딸을 불렀습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지금 너에게 건네는 상자 안에 글귀 하나를 적어놓았으니

언젠가 내가 죽게되면 그 종이를 펼쳐보아라.

딸은 갑자기 무슨 말인가 의아해했지만

얼마후 왕은 심각한 병을 얻어 죽게되었습니다.

나라는 유례없이 현명했던 왕의 죽음을 기리기위해

3년동안 국상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 국상이 끝나자마자

현명한 왕으로 인해 그동안 나라를 쉽게 넘보지 못했던

수많은 외적들의 침입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라 안 팎이 혼란스러워지고

딸은 마침내 왕이 내어주었던 종이를 펴보았습니다.

분명 이 종이에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이끌고 지켜나갈

훌륭한 방법이 적혀 있을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상자 속 종이에는 오직

무거울 중 이라고 적힌 한자 한개만 달랑 놓여 있었으니까요.

대체 무슨 일일까 생각하면서도 여러번 서랍속을 뒤져보았지만

한자가 적힌 종이 이외에는 아무것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시일이 흘러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마땅치 않게 되자

나라의 대소 신료들은

모두 입을모아 왕의 딸을 왕비로 추대했습니다.

딸 또한 자신 이외에 특별히 나라를 이끌 사람이 없다고

판단해 하는수없이 왕위를 물려받았지요.

그러나 현명한 왕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습니다.

왕비가 자리에 앉자마자

곪았던 상처의 고름이 터지듯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도저히 왕비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였습니다.

왕비는 낙담했습니다.

자신의 좁은 역량으로는 이 크고 거대한 땅을 다스리기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 신하가 조언을 했습니다.

왕비님이 정히 곤란하다면

방을 붙여 나라를 이끌 현명한 재상을 구하시지요.

왕비는 그게 좋겠다 생각하고

신하의 말에 따라 재상을 구한다는 방을

전국 각지에 붙였습니다.

단 거기에는 한가지 조건이 붙었습니다.

재상이 되기 위해서는

왕이 죽기전 적어놓았던 단 하나의 글자

바로 무거울 중의 의미를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찾을 경우에는 직분에 관계없이

엄청난 녹봉을 받는 나라의 재상이 될수 있지만

한편 틀린 답이라고 여겨질 경우에는

끔찍한 참형에 처할것이라는 경고도 함께했습니다.

돌담에 방이 붙자 수많은 백성들이 그 방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했을 경우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는지

좀처럼 아무도 궁전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왕비는 재차 깊은 고민후

방을 수정했습니다.

만약 무거울 중의 의미를 찾는 사람에게는

이 나라를 다스릴 재상이 아니라

아예 왕의 자리를 내어주겠다고 말입니다.

심지어 답을 맞춘자가 원한다면

자신을 아내로 맞을 기회도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온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단지 무거울 중이라는

한 가지 글자의 보상이라기엔

너무도 큰 조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하들은 한사코 반대를 했지만

지금 무거울 중자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결국 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왕비의 결정에

어쩔수없이 따라야만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벌써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봇짐 장수였는데

붙어있던 방에 적혀있던 한자를 모두에게 펼쳐보이면서

무거울 중의 의미는

바로 보이는 그대로의 뜻일 거라고 말했습니다.

즉 이 글자의 의미는

무거운 것.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나타낸 것이라는 거지요.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보여주겠다며

산더미 만한 봇짐을 가져와 그 작은 몸에 번쩍 들어매었습니다.

신하들이 경탄했습니다.

그리고 분명 왕이 말한 무거울 중자의 의미는

저런 건강한 노역꾼들을 대거 고용하여

나라의 국고를 튼튼히 하라는 것이 아니겠냐고 왕비에게 아뢰었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병사에게 기중기를 가져오라 명령했습니다.

얼마후 병사 수명이 기중기를 가지고 도착했고

왕비의 명령에 따라

봇짐장수가 업고있던 짐을 기중기에 옮겼습니다.

더불어 다른 쪽 끈에는 봇짐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건을

간단히 들어내 보였습니다.

왕비가 말했습니다.

‘인간이 무거운 물건을 든다 한들 이 거중기만 하리오’

그리고 봇짐장수를 참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신하들은 아까운 기인을 잃는다며 안타까워했지만

왕비는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단지 글자 하나의 의미를 찾지 못한것에 비해

너무 극심한 처결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

결국 봇짐장수는 왕비가 내걸었던 조건에

응하여 목숨을 잃게 된 것이기에

누구도 반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후 새로운 사람이 궁궐에 도착했습니다.

문 앞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물구나무를 선채로 궁궐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왕비가 나서서 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지 이유를 말하라고 하자

그 남자는 자신이 모험가라고 설명하며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왕비님 저는 우리나라 산, 바다, 땅

어느곳 하나 안 가본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세상을 제 아무리 돌아다녀도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 전체를 다 둘러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하니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로 이 땅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직접 물구나무를 서서

이 땅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무거울 중의 의미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나타낸 것이라면

바로 이 땅이 그 정답이 아니겠습니까.

곁에 있던 신하들은 대답을 듣고 기가막혀 했지만

왕비는 반대로 참 현명한 대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신하들 중 외교를 담당하는 무역관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그리곤 저 모험가의 말마따나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

우리가 사는 바로 이 땅이냐고 물었습니다.

무역관이 말했습니다.

‘아니옵니다 폐하.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하늘에 떠 있는 저 해인줄 아옵니다’

왕비가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자

무역관이 대답했습니다.

‘한 서양의 모험가에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건너고 건너

다시 광활할 대지를 지나고 지나

또한 울창한 수풀을 거치고 거치니

마침내는 이 땅을 한바퀴 돌아

다시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즉 그의 말인즉슨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놀랐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오직 네모진 것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방향으로든지 바다끝까지 나가게 되면

그 아래에는 괴물들이 입을 쩍 벌리고 있고

또는 끝도없는 바닥으로 영원히 떨어지게 되어

자신이 있던 곳으로 영영 돌아올수 없게된다는

그런 무시무시한 전설이 존재하던 때였습니다.

무역관은 잠시후 서양 사람이 건네주었다는 지도를 가지고 왔습니다.

결국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게된 왕비는

모험가를 참형에 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시일이 경과했습니다.

왕비의 고민은 나날이 깊어갔지만

바깥에서는 이제 그만 왕비의 광기를 그치라는

원성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무거울 중자의 의미를

전혀 알아낼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현명했던 아버지가 내어준 글자라면

분명 크고도 원대한 뜻이 담겨있을 것인데

궁궐을 찾은 사람들이 가지고 온 해답은

오히려 왕비의 머리를 어지럽게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철학자가 찾아왔습니다.

외국에서 견문을 넓히기 위해 이 나라에 찾아왔다는 그 서양인은

고깔모자와 함께 매우 고풍스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따라온 한 통역가에게 일러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역가가 말합니다.

‘저도 앞선 사람들처럼 무거울 중자의 의미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을 찾는것이라 가정해보았습니다.

하여 그것을 되뇌이고 또 되뇌여본 결과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생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신하들이 웅성거립니다.

왕비가 무슨말이냐 묻자

서양인이 대답합니다.

‘생각은 무수한 것을 담을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 나쁜 생각,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

또한 봇짐장수의 어마어마한 짐과

물구나무 모험가가 말한 이 거대한 땅조차 담을수 있습니다.

즉 앞서 말한 모든 것을 담을수 있는것이 바로 이 생각입니다.

그러나 고민이 너무 많을 때는 단 한걸음도 움직일수가 없지요.

그건 그만큼 생각의 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증거입니다‘

통역가가 말을 전달하자

신하들이 모두 무릎을 쳤습니다.

과연 명언이다.

몇몇 신하가 왕비에게 달려가 의견을 아뢰었습니다.

왕비님 이제 저 서양의 철학가를

나라의 왕으로 맞아들여야 합니다.

서양 사람을 왕으로 맞는것은 이제까지 전례가 없지만

그렇게 한다면 필시 이 나라를 전대의 대왕님처럼

현명하게 다스릴수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왕비는 신하들을 물리치고 그 철학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생각의 무게를 잴수가 있다고 말했느냐’

잠시후 철학자가 대답했습니다.

‘생각의 무게를 저울에 달수는 없지만

사람에게 고민이 많을때는

단 한걸음도 발을 뗄수없는것이 그 증거입니다‘

왕비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습니다.

‘그럼 아이는 어떻느냐 그리고 바보와 천치들은

그들에게는 고민이 없는데

하면 그들에게는 생각의 무게가 없는것인가‘

철학자는 당황하여 아무런 대답을 못했습니다.

신하들이 웅성거립니다.

왕비가 여지없이 명령을 내립니다.

‘참수하라’

잠시후 철학자가 정신없이 바둥거리며

덩치큰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밖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렸습니다.

‘멈추시오’

그는 색동옷을 입고있는 작은 동자였는데

달려오는 병사들의 손을 피해

무방비였던 왕비의 단상위로 잽싸게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앉아있던 왕비를 품에 안아 번쩍 들어올립니다.

병사들이 달려옵니다.

동자는 서둘러 왕비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나 넙죽 엎드렸습니다.

왕비가 동자를 포박하려는 병사들을 손으로 제지했습니다.

‘넌 누구냐’

‘아뢰옵니다 소인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이름 없는 동자이옵니다.

소인 이제 나라의 왕비님을 안았다는 대역죄를 지었지만

다만 왕비님께 무거울 중자의 의미를 알려드리고싶어 이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그녀가 동자를 바라보았습니다.

한 눈에 봐도 열 살이 채 안 되는 앳된 아이입니다.

왕비는 이런 어린아이에게까지

참수의 죄를 묻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제까지의 규칙들을 되돌릴수도 없는 노릇이였습니다.

‘무척 어려보이는구나 하지만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해도

국법은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는다.

허니 너 또한 틀린답을 이야기했을 때에는

다른 이와 같이 즉시 참형에 처해질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느냐‘

‘저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소인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동자는 왕비의 거듭된 회유에도

계속 같은 말만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동자의 말을 들어보기로 한 왕비는

신하들을 불러모으고

다시 자리에 앉아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말해보거라’

‘무거울 중의 의미는 바로 왕비님입니다’

‘뭐라’

곁에있던 신하들이 펄쩍 뛰었습니다.

하지만 동자는 계속해 이야기합니다.

‘아뢰옵니다.

처음 어질고 현명했던 전대의 대왕님께서

왕비님에게 내려준 글자는 무거울 중 바로 이 한가지의 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물건을 찾는 것으로

그 의미가 새로워졌습니다.

하여 이 새로운 의미로 다시한번 아뢰옵기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물건은 바로 왕비님입니다‘

왕비는 동자의 이야기를 듣고

무슨말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도저히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동자에게 물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구나. 세상에서 내가 가장 무겁다니.

열 살도 못된 너조차 나를 가볍게 들어올릴수가 있다.

한데 무슨 이유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것이냐

여봐라 이 동자를 참형에 처하라‘

하지만 동자는 달려오는 병사들을 신경쓰지 않고 다시 말했습니다.

‘아뢰옵니다

왕비님을 허락도 없이 들어올리는 행동은

불시에 참수되는 대역죄이옵니다.

하여 감히 여쭙기를

산 목숨으로 왕비님을 들수 있는것이 있사옵니까‘

왕비는 서둘러 주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니 모든 신하의 두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는것이 보였습니다.

또한 동자를 끌고가기 위해 달려온 병사들마저

얼굴이 잔뜩 굳은채 긴장되 있었습니다.

‘왕비님, 왕비님은 무거울 중의 의미를 찾겠다는 미명하에

벌써 안타까운 수명의 목숨을 앗아가시고도

이제 또 한명의 목숨을 버리려고 하고 계십니다.

허니 아무리 어진 신하들이 왕비님께 황금과 같은 조언을 드려도

왕비님은 이미 마음을 굳고 무겁게 닫고 있어서

제 아무리 용감무쌍하고 현명한 자라도

그것을 들어올릴 수는 없을 노릇입니다.

즉 무거울 중이라는 글자는 왕비님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왕비는 그제서야 이제까지 자신의 행동을 떠올렸습니다.

현명하고도 사려깊은 왕이 통치하던 거대한 땅을

자신이 물려받게 되었다는 중압감.

때문에 어느샌가 마음을 굳게 걷어달고

무섭고 포악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시 아뢰옵니다.

왕이 내려주신 무거울 중의 의미는

나라의 근간에 서야하는 것이며

사람의 가슴에 위치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허니 이제 부디 마음을 여시어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선정을 베푸시옵소서

그리하면 자연히 나라가 굳건하고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동자는 눈을 감았습니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왕비는 이미 동자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내려와 동자를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이제까지 숨소리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던

신하들이 고개를 듭니다.

어느새 무거울 중이라는 거대한 글자가

아무도 모르게 그들의 머리를 찍어누르고 있었던 탓입니다.

얼마후 나라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고

나라의 재상이 된 작은 동자를

모두 한 마음으로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동자가 성인이 되었을때

왕비는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그의 아내가 되어

오래도록 행복한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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