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브런치북 공모전 14번째

by 김민관

플라이 1


수학 공식에는 답이 있다.

그러니 일부 사람들이 수학을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은 매우 쉬운 학문이다.

바닥에 누워 별들을 세어본다.

그러나 이내 눈이 감긴다.

하늘을 보는 일은 도무지 내 취향이 아니다.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문제들을 기록한다.

고객 1의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서 사례 3을 이용하면 된다.

고객 2의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서는? 사례 12를 이용하면 된다.

그래. 이 방법을 쓰자.

역시 난 논리적인 사람이다.

기록을 하는 것은 매우 논리적인 일이다.

난 잘 나가는 회계사다.

회사 동료들은 일처리가 유능한 나를 좋아하는 편인데

사실 이런 능력있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모든 사실을 수치로 처리하는 사고능력의 개발과

또한 어느 문제에나 분명히 답이 있다는 확신.

이런 철저한 자기관리와

냉철한 생각들을 항시 유지하고 있어야

남들보다 뛰어날 수가 있다.

하지만 긴장된 생활들이 너무 반복되서 그런것인지

어느날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다.

그리고 병원에서 편두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난 어느 한적한 산을 올라가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곳을 찾았다.

그리고 바닥에 드러눕는다.

시원한 바람을 쐬며 스트레스를 날려볼 요량인 것이다.

하지만 하늘을 보니 또 머리가 아득해진다.

하늘에는 도무지 답이 없다.

끝도 없는 저 하늘에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대체 무엇이 존재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은 도저히 답을낼수 없다.

즉 계산 밖이다.

그래서 난 하늘을 볼 때마다 무기력한 기분이 든다.

바로 그때 제비 한 마리가 날개를 뻗친다.

그리고 굵은 나뭇가지를 발판삼아 힘차게 하늘로 도약했다.


플라이 2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 숨을 꾹 참으면 하늘을 날 수 있다.

언젠가 어릴적 만화영화에서 본 이야기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길게 참아 보았다.

하지만 몸이 뜨지 않는다.

역시 제비는 제비인 것이고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인 것이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산을 걷는다.

햇빛 한줄기 비치지 않는 나무 사이를 걷다보니

어느덧 나무가 사라지면서 절벽이 나왔다.

그리고 아주 강렬한 햇빛이 절벽을 비추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달려’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대여섯명의 사람이 모여있다.

‘겁을 먹으면 어떡해 그럼 날 수가 없잖아’

‘하지만 겁이 나는걸 어떡해요’

무슨 말일까.

그들에게 다가갔다.

옆에는 사륜구동 오토바이가 보인다.

뒤에 커다란 솜사탕 기계가 실려있다.

‘아저씨는 구름이지만 저는 그냥 뛰어내려야 되잖아요’

‘하긴 내가 좀 심하게 얘기했군’

나는 그들에게 내 모습을 알리기 위해 그 곳을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내 모습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야 아저씨 말이 맞지 너만 뛰어내려야 하는건 아니잖아’

옆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내가 외쳤다.

그러자 짜증난 표정의 사람이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알았어요 아무튼 이건 제 목숨이니 내가 알아서 할게요’

잠시후 대화를 끝낸 그들이 뒤에 있던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이어 허겁지겁 나타난 여자아이에게 모두 눈이 쏠린다.

‘죄송해요 늦었죠’

‘아니야’

‘빗자루가 부서져 버렸거든요 대신 보세요 새로 사왔어요, 짜잔 파이어볼트’

뿔테안경을 낀 여자아이가 커다란 빗자루를 내밀었다.

‘좋아보이는데’

‘그렇죠 최고성능이에요’

여자아이가 웃는다.

난 그들의 대화에 도저히 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혼자 있는 또 다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까부터 절벽에 가만히 걸터앉아있다.

절벽은 가까이 가기가 무서울 만큼 꽤 높은 곳이였는데

그는 무섭지도 않은듯 몸을 좌우로 흔들거렸다.

내가 다가갔다.

‘누구요’

‘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가 묻자 한 무리로 모여있던 사람들이 드디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저씨가 내게 걸어왔다.

‘누구십니까’

‘그냥 직장인입니다’

‘여긴 찾기가 쉽지 않은곳일텐데’

‘저도 알고 온 게 아니라’

잠시후 나는 아저씨에게 그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한 동아리의 모임 때문에 있는것인데 정식 명칭은 ‘플라이’ 란다

목적은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서로가 가진 지식과 생각을 공유하는 단체다.

난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중얼거렸다.

‘꽤 돈 되는 사업이네’

그러자 그들이 나를 쳐다본다.

알 수 없는 정적이 흘렀다.

나는 뻘쭘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다

잠시후 절벽에 앉아있던 남자가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플라이 3


다행히 그는 낮은 곳으로 떨어졌다.

아래에는 강물이 있었고

그는 물에 빠진 생쥐꼴로 절벽을 다시 기어 올라왔다.

아저씨가 외친다.

‘이 양반아 말이라도 하고 뛸 것이지’

그러자 남자가 아저씨를 향해 웃어보인다.

그런데 나무 사이로 또 누군가 걸어왔다.

한쪽 팔에는 커다란 짐이 들려있다.

‘언니’

여자 아이가 외친다.

짐을 들고 있던 여자는 절벽에 올라서자마자

그것을 땅바닥에 던지놓고 여자아이에게 인사했다.

‘안녕. 일이 늦게 끝나서요 아직 시작 안했죠’

‘저 양반이 지금 시작했어’

여자는 그 남자에게도 가볍게 인사를 했다.

나는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가만히 그들을 지켜봤다.

그런데 나이가 가장 많은 아저씨가 갑자기 뜻밖에 말을 외친다.

‘근두우우우운’

절벽 아래로 고함소리가 퍼진다.

그리고 곧 근두운이라는 메아리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아저씨는 손을 깔때기 모양으로 모아쥔채

계속 근두운이라는 말을 외쳐댔고

곁에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뭔가를 부지런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뿔테쓴 여자아이가 빗자루에 올라탄다.

그리고 양손으로 빗자루 끝을 꽉 움켜잡더니 나무의 끝 부분을 노려본다.

방금 도착한 여성은 짐을 꿀러 그 안에서 양탄자를 꺼냈고

절벽에 앉아있던 남자는 또 다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던 남자를 봤다.

그는 아까부터 아슬아슬하게 절벽끝을 오가며 뭔가를 고민하는 눈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저 사내.

바로 나무 밑둥에 앉아 절벽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때

나이 많은 아저씨와 언쟁을 하던 그 사람이다.

그는 팔 근처에 놓인 이상한 기구를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계속 뭔가를 확인했다.

그러자 잠시후 덜덜거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난다.

그리고 그의 등에 달린 기계가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잠시후 내가 우렁찬 소리에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섰을 때

그 남자도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절벽을 향해 있는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한다.

뭐야!

나는 쏜살같이 절벽끝을 향해 뛰었다.


플라이 4


개구리가 힘껏 점프한다.

늪에 거꾸로 처박힌 남자.

초록색 개구리는 남자의 엉덩이에서 잠깐 높은 곳을

구경하는듯 하더니 다시 흙탕물 속으로 점프해 들어갔다.

그를 힘껏 당겨올렸다.

등에 달고 있는 날개는 이미 부러진 채였고

얼굴에는 피가 묻어있다.

정말이지 이곳이 늪이 아니였으면

이 사람은 벌써 죽었을 것이다.

‘무슨짓입니까’

그를 향해 소리쳤지만

입에는 진흙이 잔뜩 박혀있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뒤따라 절벽위에 모여있던 그들이 내려왔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의 입에 들어간 진흙을 빼내고

몸을 일으켜세웠다.

‘다친데는 없나’

‘괜찮아요’

‘잘 달리던데’

아저씨가 말하자 그가 웃는다.

나는 너무 황당해 웃음도 나오지가 않았다.

이윽고 그는 고장난 팔다리를 맞추듯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부러진 곳이 있나 확인하더니

일행들과 함께 다시 산을 올랐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런데 마침 가장 나이 많은 아저씨가

걸음을 늦춰 나와 길을 함께했다.

난 그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았고

그는 자신들 일행이 영리를 목적으로 한 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했다.

‘플라이라는 건 난다라는 뜻인건 알지요?

우리는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어요’

‘그럼 약간 정신이 이상한 분들인가요’

내가 정색을 하고 묻자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혹시 플라이 동아리에 가입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 들어오라고 했다.

가입이라니.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그들은 금방 다시 절벽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다시 이상한 행동을 시작한다.

짐에서 양탄자를 모두 꺼낸 여성은

양탄자 위에 앉아 양 손을 마주댔다.

뭔가 비범한 자세다.

하지만 아무리 지켜보아도 그 모습에는 변화가 없다.

한참을 지켜보고 있으니 그녀가 눈을 살며시 뜨고 말했다.

‘당신은 우리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군요’

‘지금 뭐 하는 중인데요?’

‘보시다시피 양탄자 타고 있잖아요’

‘그래서요?’

‘양탄자가 뜨는걸 기다리는 중이죠. 보면서 뭘 물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참 답답한 분이네’

그녀는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눈을 감았다.

내가 이상한건가.

사람이 날 수 있는걸 믿지 않냐고?

지금 그렇게 물은건가.

나는 그들 사이에 있으니

내가 점점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런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어릴적 나는 그것을 믿었고

하늘을 나는 방법이 그렇게나 간단한 것이였다니 놀랍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숨을 들이쉬고 참아도

몸은 하늘로 떠오르지 않고

꽤 오랫동안의 시행착오 끝에

난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라이트 형제가 떠오른다.

그들은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단다.

그러나 그건 다른 문제다.

사실 라이트 형제는 자신들이 하늘을 난 것이 아니고

다만 하늘을 나는 비행물체를 개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말하자면 과학이다.

절벽 아래에서 노란 풍선 하나가 나타나 머리위로 올라간다.

아래를 보니 소풍을 나온것 같은 유치원생들이 보인다.

난 여전히 빗자루를 움켜잡고 있는 여자아이에게 찾아갔다.

‘넌 집에 안 들어가?’

‘어 아직도 있으셨네요

아저씨 저희 플라이 동아리에 한번 가입 해보세요 정말 재밌어요’

여자아이가 또 웃는다.

도대체 뭐가 재밌다는 걸까.

이 여자아이는 아까부터 두 손만 부들부들 떨고있는데.

‘걔 말이 맞아요 같이 해봅시다’

누군가 멀리서 외쳤다.

그는 아까부터 자전거를 타고

절벽끝을 왔다갔다 하던 남자이다.

‘혹시 영화 좋아하쇼 왜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이티 있죠.

거기서 이티가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게 알고보면 자전거가 하늘을 나는게 아니라

바로 이티가 초능력을 부리는겁니다 그러니까 나도 초능력을 부리면‘

난 정신없이 말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음순간 그가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건 또 뭐야!


플라이 5


야구공이 하늘높이 떠오른다.

모자를 쓴 야구팬 하나가 그 공을 잡았다.

‘여보 무슨 생각해요’

아내가 묻는다.

나는 그 플라이란 동아리를 생각하고 있다.

주말이면 나는 가족들과 함께 야구장을 찾는다.

그 이유는 일주일동안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홈런을 친 야구선수의 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그와같이 내 마음도 설레어지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난 야구를 좋아한다.

하지만 야구공은 어디까지나 야구공.

결국은 만든 인간의 손으로 되돌아오게 되어있다.

즉 땅에서 태어난 것은 결국 땅으로 되돌아오게되는 것이다.

마치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중력처럼 말이다.

‘무슨 생각하길래 그렇게 웃어요’

입가에 손을 갖다댔다.

그러니 내가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쁜 회사일로 인해 어느덧 사라진 웃음.

그런데 그 플라이란 동아리를 생각하다보니 웃음이 나온다.

정말 어이가 없는 사람들이다.

‘당신 요즘 통 웃지를 않았는데 다시 웃는걸 보니까 좋네요’

아내가 말한다.

나도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야구관람이 끝나고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했다.

‘플라이’

하지만 인터넷에는 그런 동아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가입을 하라는거지.

나는 날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쳤다.

그러자 연관 검색어가 뜬다.

‘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

글자 하나 차이지만 전혀 느낌이 다르다.

날 수 있다고? 이 사람들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건가.

카페의 이름은 영어로 적혀있다.

그래서 플라이란 단어로 검색이 되지 않았다.

카페에 접속하니 게시판에 회원들의 별명이 크게 적혀있고

공지에는 동아리 모임이 이루어지는 정기모임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접속하는 회원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몇몇 손님들이 적어놓은 메시지가 보인다.

‘절대 가입하지 마세요 정신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여기 경찰에 신고했음. 금방 잡혀들어갈거임ㅋㅋ’

난 그 글을 보자 가입 버튼을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그리곤 결국 플라이의 정기모임 날짜만 메모장에 적어놓고서

카페의 창을 닫았다.


플라이 6


난 연말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회사 부장으로 승진을 하게 됐다.

이것은 그 동안의 오랜 노력이 거둔 눈부신 성과이지만

왠지 눈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의 동기다.

그는 나만큼 실력이 좋아 언제나 같은 시기에 승진을 거듭했다.

하지만 함께 나아갈 동료가 있다는 것이 기뻤던 나와는 다르게

그는 여간해서 그것이 분했나보다.

어느날 사소한 일로

크게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사이가 멀어져

이제는 친구도 동료도 아닌

어색한 관계로서 회사 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그날은 승진이 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회사 건물을 리모델링할 것이라는 새로운 공지가 떨어졌다.

또한 나와 그에게는 회사의 중간 간부가 된 첫 업무로서

회사 리모델링에 대한 참신한 건의를 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것은 아마도 새로 승진을 한 직원들의 안목을

이참에 확인해보겠다는 간부들의 생각일 것이다.

난 공지와 함께 첨부된 리모델링 샘플들을 둘러보다가

그 중 디자인이 가장 예쁜 건물을 대충 골랐다.

그리고 곧 옷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머리가 아프다.

내가 이런 애매한 일까지 일일이 신경써야하나.

이미 회계일 자체로도 정신없이 바쁜 상황인데 말이다.

그때 플라이 동아리가 떠올랐다.

메모지를 보니 마침 정모날짜가 오늘이지만

카페에 남겨져있던 걱정스런 메시지들이 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들을 만나지 못하면

이 지끈거리는 머리가 언제 터져버릴지 모른단 생각이 든다.

난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플라이 7


‘정신이 나갔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요’

‘제가 이곳에 찾아오는 이유요’

아저씨가 웃는다.

‘당신은 우리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는거요’

‘당연하죠’

‘그런데 왜 찾아오는거요’

‘정신이 나갔으니까요’

산을 오르며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생고생을 하며 이곳을 찾아오는 걸까.

도대체 이들이 무엇이길래.

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회계사는 언제나 답을 찾아야한다.

원인과 결과.

문제와 답.

의뢰와 해결방안.

그렇게 고민을 한 결과 답은 한가지였다.

나는 아주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매우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렇다보니 시시때때로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는데

해서 그것을 식혀줄 냉각기 같은 것이 필요하다.

일의 성격상 회계사는 쉴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이들을 찾아온다.

정신이 나가고 싶어도 나갈수가 없는 나에게

이들은 일종의 탈출구였다.

그때 누군가 내 머리를 친다.

‘나 정신 안 나갔거든요?’

오늘도 늦게 도착한 그녀다.

그녀는 짐을 바닥에 던져놓고 기분 나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정신나간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큰 착각이에요‘

그리고 다시 양탄자 위에 올라서서 두 손을 모았다.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그녀에게 한 마디 하려다가

절벽 끝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아저씨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뭔가요’

‘소설가요. 흔히 골방 소설가라고 하지.

언젠가 어느 신춘문예에서 당선을 한 적이 있다던데

뭐 이력이야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쩌다가 말하는거 보면 예술이야 정말 소설가같아‘

‘그래요?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자꾸 절벽에서 떨어진데요?’

‘저 사람이 이상이란 작가를 좋아한다던데

그의 유명한 소설 날개란 작품에 그런 구절이 나온답니다.

떨어지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던가

말하자면 저 양반은 자기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등에서 날개가 돋아날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절벽 아래로 내 웃음소리가 퍼진다.

오랜만에 터진 시원한 웃음이다.

‘그렇게 웃깁니까’

‘네 너무 재밌네요. 그런데 비웃는건 아니였어요

너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저씨가 말했다.

‘독특하지요. 하늘을 난다는건 독특하게 생각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정말 나는건 가능한 일이에요.

우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을 하려는게 아니라

분명 날 수 있다는걸 믿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거지요‘

나는 아저씨의 진지한 눈빛에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지만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이 사람들 정말 정신 이상자들 아닐까.

날 수 있다고?

하늘을?

갑자기 머릿속이 뒤엉키기 시작한다.

땅. 바닥. 하늘

각종 서류들.

눈에 걸리는 회사 동료.

빗자루, 근두운, 양탄자

숨을 들이쉬면 날 수 있다는 마술같은 이야기.

리모델링.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린다.

난 이마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옆에있던 아저씨가 내 몸을 부축했고

나는 점점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플라이 8


정신을 차렸을땐 가까운 병원 안이였다.

아저씨는 자신이 타고다니던

솜사탕 오토바이에 태워 나를 근처 병원에 입원시켰다.

다행히 편두통의 일시적 증상이라 금방 퇴원을 했지만

급박한 상황에 날 도와준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돌아가며 오토바이에 앉아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 정말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믿으세요’

‘그렇다니까요’

난 우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이 플라이 동아리 사람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설프긴 하지만

꾸준히 동아리 정기모임에 참석을 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또 왔네요’

‘네’

‘그런데 회계사 아저씨 매번 그냥 오지 말고 뭐라도 한가지 개발해봐요’

‘개발이라뇨’

‘그래도 명색이 플라이 동아린데 뭔가 얻어가는게 있어야 될거 아뇨’

‘전 그냥 구경하러 온 건데요’

스필버그 예찬자가 또 잔소리를 시작한다.

‘구경하러 왔다는건 나도 아는데 뭐 없어요? 날았던 기억이라던가’

날았던 기억이라니.

아무튼 저 사람은 밑도끝도 없는 말을 잘한다.

꿈에서나 있었을까.

그것도 아주 어렸을때.

하지만 한가지 있기는 있다.

숨을 들이쉬는 방법.

‘한 가지 기억나는게 있네요’

그러자 그가 브레이크를 급히 밟았다.

옆에서 동아리 회원들이 모여든다.

‘그게 뭔데요’

‘참 나는 방법이 있었으면 우리한테도 빨리 공유했어야죠’

동아리 회원들이 서로 밀치며 나에게 소리를 친다.

‘잠깐만요. 조용히 해봐요. 생각하잖아요’

앞에서 빗자루 소녀가 나를 올려보고 있다.

‘숨을 들이쉬는 방법이에요’

‘숨?’

‘네 숨을 들이쉬고 그 숨을 참으면

몸 안에 공기가 가득차서 사람이 하늘을 날 수가 있게된데요’

참 내가 말하고도 진짜 어이가 없다.

도대체 이런 생각을 한 그 만화의 원작자가 누구일까.

한바탕 너털웃음을 터뜨리려 하는데

내 말을 들은 회원들의 반응 때문에 미처 그러지를 못했다.

‘그런 방법이’

골방 소설가는 뭔가를 깨달은 듯

자신의 손바닥을 팍 치고 다시 절벽위에 섰다.

또 스필버그 예찬자는 뭔가에 홀린듯이 나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고

솜사탕 아저씨는 굉장한 방법이라며 내 등을 쳤다.

‘자네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나’

양탄자 위에 앉아있던 그녀가 내게 살짝 윙크를 한다.

이게 무슨 반응이지.

나는 곧 답답한 마음에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뭐야 벌써 시작하는거야?’

날개가 부러진 후로 어쩐지 침체된 표정이였던 날개 청년이 말했다.

‘아니요 이건 그냥 숨쉰건데’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따라서 숨을 들이쉬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 숨을 참는다.

점점 빨개지는 그들의 얼굴.

저러다 숨이라도 넘어가는게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날개청년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나는 급히 달려가

언젠가 배운 심폐소생술을 하려고 그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면서 장난이라고 크게 외친다.

그들과 같이 빨개진 나의 얼굴.

동아리 회원들은 내가 속은것이 재미있다며

깔깔대며 웃었고

나는 얼이 빠져 그들을 바라봤다.

그렇게 재밌나.

하지만 나도 곧 그들을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플라이 9


나는 그들과 점점 가까워졌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난 숨을 들이쉬는 날기법을 연습했는데

그럴때면 솜사탕 아저씨가 다가와 여러 가지 충고를 해준다.

‘젊은이 사실 나는 것은 이 마음에 달려있는 거야

믿는 마음을 가지면 분명히 실현된다네‘

‘알겠습니다’

나는 이제 아저씨의 말을 간단히 흘려보낼줄 알게됐다.

어차피 받아들일수 없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냥 듣고 잊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나를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멀리서 날개 청년의 기계소리가 들린다.

현재 자동차 정비공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자신이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 모터를 개조해

등에 달린 날개와 연결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동을 걸면 날개가 초당 20회정도로 움직인다.

‘20회 정도로는 무리가 있지 않나요’

‘그래요?’

‘그럼요 사람 몸무게를 감안하면 그 정도로는 택도 없죠’

나는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날개 청년이 가지고 있는 날기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속도로 날개가 움직여야

사람이 날수 있을지를 계산해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뒤쪽에서 우지끈 소리가 난다.

뒤를 돌아보니 근두운 아저씨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절벽 아래를 쳐다보았고

그곳에서 자신의 다리를 움켜잡고 있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날이 어느새 따뜻해졌다.

그래서인지 늪은 가물어 있었고

회원들도 물이 없는 곳에서는 절대로 뛰어내리지 않았는데

아저씨가 맨땅에 그대로 착지를 해버린 것이다.

회원들이 급히 아저씨를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물었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 절벽에서 뛰어내린 거냐고.

하지만 아저씨는 구름이 날아오고 있었기에 그대로 올라탔을 뿐

일부러 그런 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뭐라고.

도무지 참을수가 없다.

정신 나간 이야기를 듣는것도 한두번이지.

난 마구잡이로 아저씨에게 화를 내고 병실의 문을 쾅 닫고 나왔다.

집으로 터벅터벅 걷는다.

그런데 마침 먼 하늘에서 폭죽이 터졌다.

하지만 맹렬히 날아오르던 불꽃은 얼마후 땅으로 떨어진다.

그렇다 사람은 날 수 없다.

마치 저 폭죽처럼.

그것은 중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이자 진실이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떠한 인간도

그 법칙에선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플라이 10


얼마전 회사 리모델링에 대한

내 서류가 통과되지 못했다.

상사는 이번 리모델링이

회사에 매우 중요한 사안인걸 내가 모르는 것 같다며

좀 더 창의적인 방안을 내라고 말했다.

내가 사무실을 나오자

항상 나를 고깝게 보던 동료가 웃음을 흘린다.

그의 서류는 이미 통과가 됐고

이제는 최종 결정만이 남아있다.

나는 마음이 상해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전에 보았던

리모델링 건물들의 디자인들을 살펴보았다.

한데 여러장을 넘기니 마지막에 빈 종이가 하나 보였고

거기에는 자신이 직접

건물의 리모델링 디자인을 창작해 보라는

상사의 문구가 적혀있다는 것을 알았다.

난 그제야 왜 이것을 보지 못했는지 머리를 긁적였고

곧 인터넷을 검색해 세계 굴지의 유명 회계기업 사진을 탐색했다.

리모델링의 요지는 이랬다.

우리의 회사가 세계 최고의 회계 기업이라는 것을

디자인으로써 나타내볼 것.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특별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난 사실 아이디어는 맹탕이다.

학교를 다닐때도 주관식은 어려운 문제중 하나였다.

그러나 주관식도 답은 정해져 있어서

그것을 모두 외워버리면 끝이지만

이것은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를 눈엣가시로 알고 있던 그 동료는 이 문제를 어떻게 푼 거지.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외워놓았던 수많은 공식들이 존재할뿐

새롭고 창의적인 이미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플라이가 떠올랐다.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 동아리의 회원들.

그들이라면 이 문제를 제법 잘 풀어내지 않았을까.

하늘에 있는 별만큼이나 다양한 하늘을 나는 방법들.

거기에는 분명 답이 없고

어떠한 것도 답이 될수 있다.

그들을 독특하다고 말했던 나의 말이 기억난다.

지금은 그 독특함이 절실히 필요하다.

난 아예 하늘을 나는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유리창으로 하늘을 본다.

무척이나 파랗다.

다시 발을 보았다.

하지만 내 발 밑은 땅이고

내게 초능력이 없다면 난 단 일센치도 떠오를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하늘을 날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답은 무엇일까.

날 수 없지만, 날 수 있는.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유리창이 보였다.

만약 이 바닥을 유리창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럼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늘을 날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수가 있지 않을까.


플라이 11


난 회사에 고강도 유리를 사용해

건물의 사방을 유리로 건축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것은 현재 세계적인 건설 추세이기도 하고

회계 기업의 이미지로서도

투명하다는 느낌을 고객에게 심어줄수 있다.

내 제안은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었다.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생각이라는 간부들의 칭찬과 함께 말이다.

회사에서는 내 제안을 토대로

리모델링 건축을 시행하기로 했다.

다만 모든 부분을 유리로 만들기는 어렵고

주요한 장소들만을 유리를 사용해 다시 제작하기로 했다.

결국 나는 중간 간부로서의 큰 시험대 하나를 통과하게 됐다.

그러니 마음을 붙잡고 있던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떨어진 듯 하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바로 나를 미워하는 한 사람.

라이벌이자 나의 동료다.

모처럼 내 콧대를 꺾을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으니.

이번일로 앙심을 단단히 품지는 않았을까.

혹시 언젠가 내 뒤를 밟아 위험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

난 정말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접어두고

나는 모처럼 동아리 회원들을 보고 싶었다.

불과 한달전 솜사탕 아저씨에게 그 난리를 치고 돌아온 후였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화해를 청하고 싶다.

난 그들에게 연락을 취해

이번 회사의 리모델링 건축 개공식에

그들이 참가해주면 좋겠다는 요청을 했고

다시 평소와 다름없는 회계사 일을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몇 달후 리모델링 건축의 샘플 이미지로서

유리로 만든 모델하우스가 건설됐다.

정말 아름답다.

건물은 태양빛에 따라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난 그에 따라 차례차례 도착하는 동아리 회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솜사탕 아저씨는 여전히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리고 곧 양잠점 아가씨와 빗자루 소녀가 도착했고

날개 청년과 골방소설가는 어쩐지 양쪽 다리를 모두 절뚝거린다.

자전거를 탄 스필버그 예찬론자는 마지막에 달려왔다.

그들은 유리로 만든 모델하우스를 신기해하며 바라봤고

이 건물에 들어오니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나는 바로 그것을 의도했다며

리모델링 건축에 대한 숨은 비화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대화가 한참 무르익었을 때쯤

모델하우스 바깥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입구를 지키던 직원은 급하게 뛰쳐들어와

모델하우스 다리에 균열이 생겼다고 외쳤다.

그리고 다음순간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플라이 12


기억에 10년전쯤 자동차 추돌 사고 이후.

가장 큰 사고일 것이다.

건물이 무너져내리다니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눈 앞이 혼미하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나니

건물 곳곳에 불이 번지고 있다.

회원들은 살아있다.

목소리를 들으니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꽤 위험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건축물은 두 개의 커다란 유리기둥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아래 받침대가 무너지는 바람에

그 유리기둥 사이로 여섯 사람의 몸이 동시에 끼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바닥으로 아예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제 건물을 탈출할 수가 없다.

두 유리기둥의 무게는 상당했다.

아마도 여섯사람의 몸이 동시에 끼어있던 것이 아니였으면

이미 누군가는 압사해 죽었을 것이다.

모두 배에 힘을 주어가며 버티고 있다.

그러나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저씨가 말했다.

‘젊은이’

‘죄송합니다 아저씨 뭐라고 할 말이 없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 뭐라고 했지’

‘뭐라뇨’

‘나는 방법 말일세’

나는 아직까지도 나는 방법 타령하는 아저씨를 황망히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구조대가 금방 올겁니다’

‘구조대? 여자애는 그렇게 오래 버틸수 없을거야’

아이를 쳐다봤다.

그러니 여자아이가 두 개의 기둥을 양 손으로 부여잡고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게 보였다.

‘어떡하죠’

‘그래서 물어봤잖나 나는 방법 말일세’

‘아니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야, 너 아저씨 말에 왜 매번 그렇게 딴지를 거냐? 묻는 말에만 대답해’

항상 나를 곱게만 보지 않았던 양잠점 그녀가 드디어 짜증을 냈다.

‘...숨을 들이쉬는 거죠 그리고 참는겁니다 간단해요’

‘맞어 그랬지’

기둥 사이에 끼어있던 사람들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좋아 플라이 동아리 여러분 드디어 우리가 시험대에 오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날면 살 수 있고 날지 못하면 죽습니다.

여러분은 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죠‘

‘네’

‘회계사 젊은이도 믿나’

‘글쎄요’

건물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린다.

그러자 두 개의 기둥에 더욱 힘이 강하게 실렸다.

여자아이가 소리를 지른다.

‘자네가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네’

미치겠다.

건물은 왜 갑자기 무너지고

아저씨는 뭣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난 태어나서 사람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본적이 없다.

아니 믿은적은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이 난다니 그건 정신나간 사람이나 하는 생각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안다.

분명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그건 믿을수 있다.

그러니 사람을 믿는다면 그 사람이 하는 말도

어느정도는 믿을수 있는건가.

‘믿나, 안 믿나’

‘아이씨 믿어요’

‘좋아 그럼 여러분,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숨을 크게 들이쉬는 거야 하나 둘, 셋‘

아저씨가 기합소리와 함께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자 회원들도 따라 숨을 들이쉰다.

그러니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강철처럼 굳게 버티고 있던

두 개의 기둥이 서서히 옆으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회원들이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됐다.

우리는 환호하며 몇 차례의 숨쉬기를 더해

한 사람씩 기둥 사이를 빠져나가게 했고

얼마후 건물을 모두 빠져나왔다.

구조대가 뒤늦게 도착한다.

며칠후 건물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 조사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모델하우스의 부실공사를 사주한 사람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을 뿐

아직 그게 누군인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난 그것이 내 동료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의심할 수 없다.

우리는 사고 이후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

그리고 그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난 그들이 분명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들은 의외로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는데

매우 진지한 사람들이였다.

솜사탕을 팔며 학교 앞 어린이들에게

꿈을 나누어주고 있는 근두운 아저씨,

낮에는 사이클 선수

또 저녁에는 공상과학 영화를 즐겨본다는 스티븐 스필버그 예찬론자.

그리고 올해 고1에 올라간 해리포터 광팬 뿔테 소녀와

올해로 양잠점에서 20년동안 일했다는

하지만 아직까지 결혼을 안 한 것은

알라딘과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라는 그녀,

한편 떨어지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는 골방소설가와

오늘도 열심히 날개의 디자인을 연구하는 기계 정비공 사내까지.

그들은 다만 남들보다 어느 하나를 믿는 집념이 대단했을뿐

현실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였다.

‘근데요 회계사 아저씨, 아저씨는 별명 뭘로 하실거에요’

깨진 안경 너머로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던 빗자루 소녀가 말했다.

‘음 계속 생각해봤는데 피터팬 어때’

자전거 청년이 말한다.

‘피터팬? 내가 왜 피터팬이지?’

그때 간호사가 들어온다.

그리고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며

내게 종이를 쥐어준다.

입원 서류.

나는 가방 주머니에서 서둘러 펜을 꺼냈다.

그런데 그곳에 PETER 라는 상표가 붙어있다.

내가 일하는 회사의 이름이 바로 PETER다.

난 그제야 회원들을 쳐다보며 방긋 웃음을 지었다.

‘맞네 피터 알겠습니다 여러분

그럼 이제부터 제 회원명은 피터팬으로 할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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