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북 공모전 15번째
ALADIN 1
‘왜 이렇게 많이 나와요?’
‘고객님 내역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됐어요 진짜’
직원과 말씨름이 벌어진다.
핸드폰 요금이 예상보다 많게 나올때는 정말 열이 받는다.
난 대리점 의자에 주저앉았다.
‘화 푸시고요’
‘아니 화 풀게 생겼어요? 매번 요금이 이렇게 나오잖아요’
직원의 표정이 굳는다.
하지만 나도 참을만큼 참았다.
매번 그럴듯하게 요금에 대해 요목조목 설명하는
그들의 얼굴이 참 뻔뻔스럽다.
그런데 참고 있던게 하나 더 있다.
‘잠깐 기다려요 이번엔 나도 그냥 안 가’
크게 언질을 주고 급히 대리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옆 건물로 들어선다.
이곳은 변호사 빌딩이다.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
양 옆으로 줄줄이 늘어선 변호사 간판이 보인다.
이 변호사
박 변호사
김 변호사
대체 무엇을 변호하겠다고 이렇게들 모여있는 것인지
차라리 과도한 핸드폰 요금을 매번 내는
나 같은 사람이나 변호해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변기 뒤편에 이상한 글자가 적혀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본 외국어로 쓰여있어 읽을수가 없다.
그 아래에 한글이 보인다.
‘절대 오래 누르지 마세요’
그러나 심통이 나 있던 나는 볼일을 보고
그 버튼을 있는힘껏 눌렀다.
뭐 버튼 좀 더 눌렀다고 해서
물값을 내라고 하진 않겠지?
지금만큼은 신나게 누르자.
나는 핸드폰 요금 때문에 잔뜩 화가 난 심정을
이 변기에다가 풀기로 했다.
마침내 물살이 그친다.
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별 문장도 아니였던 모양이다.
이윽고 문을 열고 나가려 하는데
갑자기 바닥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 벽에 귀를 대자
밖에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전해 들려왔다.
ALADIN 2
'난 알라딘‘
‘그럼 난?’
‘넌 자파지’
‘뭐야 걘 악당이잖아’
‘둘밖에 없으니 한명은 자파를 해야지’
‘치이’
나와 친구는 소꿉친구였다.
오래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어느날부터 대규모 법원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그 전까지 이곳은 공터였다.
대개 공터에는 돌산들이 많았다.
손질되지 않은 거대한 바위들의 공간.
친구는 그 돌산의 대장이였다.
‘여기야’
‘천천히 가자’
친구는 학교에서는 평소 말이 없었지만
돌산에만 도착하면 신나게 뛰어다녔다.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하기도 하고, 잠도 자고
함께 숙제도 푼다.
그곳은 나와 친구의 두 번째 집과 같은 곳이였다.
‘여기로 와봐’
‘너무 깜깜해’
‘걱정마’
친구가 바위 속의 어둠을 헤쳐 들어간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
‘어딘데’
‘알라딘의 열려라 참깨 동굴‘
‘진짜?’
‘응 내가 동굴 여는거 보여줄게’
친구는 잠시후 바위 앞에서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큰 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봤어? 움직이는거’
‘아니’
‘움직였잖아’
‘...글쎄’
‘움직였다니깐’
‘그런것 같기도 하고’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분명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어린눈으로는
친구의 재촉에 뭔가가 움직였다고 느꼈다.
후에 알라딘이라는 만화를 제대로 접하고
그의 출생이 사실 인도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난 친구가 허풍쟁이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친구일지라도
내 어릴적 추억은 대부분 그와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는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친구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 갔을까.
내 어릴적 영웅이자 파트너였던 그 친구는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다.
ALADIN 3
‘난 알라딘’
누군가 손을 내민다.
머리위에는 커다란 태양이 떠 있다.
여기까지는 평소 더운 여름
낮잠을 깰 때와 다를바가 없지만
바닥이 온통 모래투성이라는 것이 내가 살던곳과 분명 다르다.
‘넌 누구냐’
거친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누구냐고 물어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 눈이 부시지.
옆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한동안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으니
까칠한 손이 불쑥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뭔가 푹신한 물체위에 내 몸을 얹는다.
서서히 시야가 트인다.
나는 공중에 떠 있다.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은 거대한 회색의 물체.
바로 코끼리다.
‘엄마’
밑에서 한바탕 웃음소리가 인다.
‘우하하 형님 저 사람이 엄마를 찾는데요’
잠시후 커다란 손이 내 목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나를 모래 바닥에 내려놓는다.
여전히 눈이 부시지만 이젠 그런대로 앞이 보인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얼굴이 어딘가 익숙했다.
‘너’
‘잉?’
‘너가 어떻게’
‘그건 내가 할 말이군’
그다.
어릴적 내 소꿉친구였던 아이.
친구는 알라딘을 좋아하고 동경했었지만
이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던건가.
친구는 머리에 천 모자를 쓰고
온 몸에 이상한 장신구를 하고 있다.
코스프레...같은건가.
‘형님 이 놈은 뭡니까’
손이 큰 대머리 남자가 말했다.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얼핏 쳐다보고 있어도 머리가 삐쭉 선다.
‘내 친구야’
그러자 남자가 휘파람을 분다.
잠시후 뒤쪽에서 말 한 마리가 뛰어온다.
그는 커다란 손을 내밀어 나를 그 말에 태웠다.
‘형님 출발하시죠’
‘그래 가자’
그런데 출발을 시작하자
날 태운 말이 누군가 부른것처럼 친구 곁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뒤를 쳐다보니 굉장히 긴 대열이 보인다.
족히 오십명의 사람들이 사막을 걷고 있다.
그들은 모두 터번을 쓰고 낙타를 끌고 있었는데
뒤로는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사막이 펼쳐져 있다.
‘어떻게 왔어’
‘이게 무슨 일이지’
‘반갑다 정말’
‘난 화장실에 있었는데’
‘맞다 거기가 화장실이였지
미안해 부하들이 적 진지인줄 착각하고 거길 부숴버렸네’
‘그게 아니고’
‘너무 반갑다 그간 어떻게 지냈어’
‘잠깐 내 말좀 들어봐’
그 순간 내가 탔고 있던 말이 기다란 포효를 지르며 앞 발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바닥에 털썩 쓰러진다.
‘기습이다’
터번쓴 사람 중 한명이 외쳤다.
나는 모래 바닥에 쓰러져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니 머리 위에 길다란 나뭇가지들이 날아다니고
무시무시한 칼 부림이 벌어지는 것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부하들에게 알라딘이라 불리던 내 친구는
내 곁에서 단 한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다가오는 노란 복면의 사내들을 거침없이 베어가고 있다.
ALADIN 4
다시 눈을 뜬 곳은
거대한 건물 안이다.
나는 변호사 빌딩으로 돌아온줄 알고 안심했지만
다시보니 그것은 내가 아는 건물이 아니였다.
이곳은 거대한 석조 건물이다.
‘알라딘 더 할말이 있는가’
‘판사님 부디 판결을 재고해주십시오’
‘자네는 분명 범죄의 증거를 가져오겠다 했지
하지만 증거가 없군‘
‘기습을 당했습니다 분명 하심의 짓입니다’
‘허나 우리는 그의 흔적을 발견못했네’
‘그는 마술을 부립니다. 분명히 흔적을 지웠을 것입니다’
‘알라딘 자네는 항상 마법에 대해 이야기하지.
그러나 나는 법을 집행하는 판사야 난 마법을 믿지 않네’
‘부하들을 불러주십시오,
그들은 증언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증언했네. 하지만 자네의 말과 달랐어’
‘그럴리가 그렇다면 하심이 미리 수를 쓴 것입니다’
‘그만두게! 대체 하심이 누군가
아무리 평소 아끼던 자네라 하더라도
더 이상 허튼 소리를 하면 용납할수가 없네‘
‘판사님’
잠시후 판사가 어떤 지시를 했다
그러자 알라딘이 무기를 든 사람들의 손에 잡혀 어디론가 끌려갔다.
나도 알라딘을 따랐다.
한데 그곳은 거대한 철창이다.
그들은 알라딘을 조심히 감옥속에 밀어넣더니
나는 그 옆 칸 속으로 사정없이 던져넣었다.
‘으악’
‘괜찮아?’
‘살살 하지’
‘간수들이 원래 그래’
‘너한테는 안 그러잖아’
‘나야 아는 사람들이거든’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하심이 기습을 했어.
우리는 아까 하심을 체포해 이 법정으로 오는 길이였거든
낙타가 끌던 마차 속에는 하심과 그의 요술항아리가 있었지‘
‘하심이 누군데’
‘영혼을 훔치는 마술사’
‘영혼을 훔친다고?’
‘응 그는 죽은 시체에 영혼을 넣어.
지금 불사의 군대를 만들려고 하고 있거든‘
‘불사라면 죽지 않는 군대를 말하는 거야?’
‘응 하심의 최후 목적은 이 나라를 통치하는 거야.
그러려면 자신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병사들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가장 그럴듯한 방법이지,
하지만 그는 성공할수 없어 내가 막을거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난 하심이 있는곳을 알고 있어.
기억나? 열려라 참깨 동굴!’
‘아! 그 바위산? 하지만 이제 그런곳은 없어’
‘없다니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는걸’
‘아니야 이 지역은
십년 전 법원 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돌산들이 다 사라졌잖아‘
‘그럴 리가.
이 곳은 하심의 본거지인데 그랬다면 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참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내 오랜 친구, 한가지 부탁할게 있는데 혹시 들어줄수 있어?‘
‘부탁? 하지만 근데 있잖아.
내가 왜 아까부터 이런 본적도 없는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건지
먼저 설명좀 해주지 않을래?’
ALADIN 5
친구가 말을 마쳤다.
이야기의 주된 골자는 하심의 본거지를 다시 찾아가
굳게닫힌 동굴문을 열고 그의 요술 항아리를 가져오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주문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친구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열려라 참깨잖아’
‘뭐?’
‘열려라 참깨’
‘잘 못 들었어’
‘열려라 참깨!’
‘뭐라고?’
내가 그에게 귀를 후벼보라고 말하자
그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맞다 사실 동굴을 여는 주문은 귀로 들을수가 없어.
그 주문은 오로지 종이에 적어야만 읽을수 있는 특별한 주문이거든.
그래서 네가 설사 주문을 알고 있다고 해도 나에게는 들리지 않는걸거야
하지만 지금 내겐 양피지가 없으니
종이를 구하려면 공주를 찾아가야 하는데
공주가 있는 궁전은 감옥에서 서쪽으로 삼십리에 위치해 있어‘
그리고 친구는 내가 대답할 새도 없이
감옥에 있는 간수들에게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간수들이 서둘러 주위를 살피더니
나를 급하게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부탁해 난 갈 수 없어.
내가 지금 사라지면 소중한 부하들이 목숨을 잃게 될거야.
지금은 너가 유일한 희망이야 꼭 증거를 가져와야돼‘
나는 하는수없이 간수들의 뒤를 따라
감옥 구석에 있던 한 하수구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어두운 곳을 양 손으로 짚어 나가니
잠시후 매우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아까 처음 화장실이 무너졌던 바로 그 장소다.
내가 나온 곳은 바로 그 변기통 안이였다.
‘아이씨 드럽게’
나는 쓰러져있던 사람들의 터번을 둘러쓰고 사막을 걸었다.
알라딘이 말해준 대로라면
분명 서쪽으로 삼십리 방향에 궁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난 오랫동안 걸음을 걸었고
곧 아주 멀리에서
하야디 하얀 구름이 내려앉은 아름다운 궁전을 보았다.
ALADIN 6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궁전안은 언젠가 영화에서 봤음직한
수없는 중세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건물은 쏟아지는 태양의 빛을받아 노란빛을 내고 있었는데
내가 입은 복장은 그 색깔들에 비해 너무 눈에 띄였다.
‘이봐요 아저씨’
‘네?’
‘어디서 오셨나’
‘멀리서 왔어요’
‘재밌군 잠깐만 이리 와봐요’
내가 다가가자 그가 말했다.
‘보아하니 외국 사람인 것 같은데
엄한곳 돌아다니지 말고
나한테 말해봐요 뭘 구하고 있는거요‘
‘무슨 말이에요’
‘구하는 물건이 뭐냐고요’
‘없는데요’
‘시치미 떼기는 나에게 엄청난 물건이 있어요‘
‘물건 사러온거 아니라니까요’
‘자 보세요’
잠시후 그가 내 말을 무시하고 내놓은 것은
자그마한 주전자다.
언젠가 알라딘 만화에서 보았던 요술램프.
‘이게 뭔지 알겠어요?’
나는 짐짓 모른다고 말했다.
‘요술램프에요 이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 몰래
문지르면 그 안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나타나지
어때요 정말 탐나지 않소‘
‘흠’
‘특별히 외국사람이라고 하니까 말해주는 거에요
요새 요술램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내국인에게는 못 팔거든‘
‘안 사도 되요’
‘에이 이 사람아 그러지말고 싸게해줄게요’
‘물건 사러온거 아니라니까’
그가 고개짓을 한다.
‘네?’
‘당신 옷’
‘옷이요?’
‘그거랑 바꾸지’
‘이 옷이랑요? 이거 그냥 보세인데’
‘보세? 그게 뭐지 이름만 들어도 탐나는군
좋아요 특별히 램프 두 개 줄게요 교환합시다’
‘음’
‘진짜 요술램프라니까’
‘뭐 좋아요 바꾸죠 하지만 옷을주면 내가 입을 옷이 없잖아요’
‘그거라면 얼마든지 있소 옷도 얹어주지
사실 이건 예전에 알라딘이 입었던 옷이랍니다‘
‘알라딘이요?’
‘그래요 이젠 죽었지만 한때 우리나라의 영웅이지 않았습니까’
‘죽었다뇨?’
‘역시 외국인이라 모르는군 내가 이 귀로 똑똑히 들었는걸.
사막에서 얼마전 하심의 공격을 받아 죽었어요 그 알라딘이!‘
‘하심을 아세요?’
‘쉿 하심의 이름을 크게 말하면 안되요
곳곳에 그의 부하들이 있소‘
잠시후 그가 램프 두 개와 옷을 내어주었다.
나는 곧 멋스러 보이는 알라딘의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왔다.
이제야 내 모습이 이 궁전의 모습과 어울린다.
그런데 계속 나아가니
어디선가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ALADIN 7
고개를 들어보니 한 건물 위에 여인이 서 있다.
그녀의 자태는 보는 사람을 긴장케 해 침이 넘어갈듯 했지만
건물의 경계는 매우 삼엄했다.
그녀를 불렀다.
‘여보세요’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말도 없이
가만히 밑을 내려보기만 하더니
곧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아쉽다.
그냥 바라보기만 할걸 그랬나.
방금 그 여인의 아름다움은
마치 이 도시의 날카로운 태양빛마저 단숨에 걷어내는것 같다.
그때 누군가 나를 친다.
‘이봐요’
‘누구세요’
‘공주님께서 부르세요’
‘공주라니’
‘우리 공주님을 부르셨다면서요
그런데 그 옷 어디서 났죠‘
‘샀습니다’
‘흠 이상한데 아무튼 따라오세요’
그녀를 따라가자 경비로 보이는 병사들이 길을 내주었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서니
분홍색 커튼 뒤로 방금전 그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걸어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다란 천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
모습을 제대로 볼수가 없다.
그녀가 말했다.
‘가까이 오세요’
내가 다가가자 여인이 천을 걷는다.
그러자 눈부신 얼굴이 다시 보였다.
‘어머 당신은 누구죠’
그녀가 놀란 듯 묻는다.
‘전’
그녀가 소리를 치려 한다.
내가 손사레를 쳤다.
‘왜 그러세요’
‘당신 알라딘이 아니잖아요’
‘알라딘이요? 그는 내 친구입니다’
‘친구? 그에게는 친구가 없는데’
‘아니요 있어요. 제가 그의 친구인걸요’
‘어떻게 온거죠’
‘그가 보냈어요 궁전에 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했습니다’
‘그가 보냈다뇨 알라딘은 죽었는데’
그녀가 다시 소리를 지르려고 한다.
내가 또 손사레를 쳤다.
‘왜 그래요 말 좀 끝까지 들어요’
‘알라딘은 죽었어요’
‘죽었는데 왜 나를 알라딘이라 착각하죠?’
‘혹시나 했어요 그는 날 언제나 놀래켰으니까’
‘이번에도 놀래키겠네요 그는 살아있어요
지금 동쪽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나를 끌고 옆 방으로 들어갔다.
‘자세히 말해봐요’
내가 긴 이야기를 마치자 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쉰다.
‘그랬군요 살아있었다니’
공주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잠시후 활짝 웃었다.
그러니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제대로 쳐다볼수가 없을 지경이다.
농담을 던졌다.
‘공주님 그렇게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납니다’
‘무슨 말이죠’
‘아닙니다’
‘아무튼 알았어요. 그런 상황이군요.
그럼 제가 양피지를 내어줄게요.
하지만 저도 암호를 몰라요‘
‘제가 알고 있어요’
‘그럴 리가 일단 종이를 갖다줄게요’
공주가 방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후 기다란 양피지 한다발을 가지고 왔다.
‘적어요’
‘좋아요 적습니다 열...’
‘뭐해요?’
‘갑자기 기억이 안나네요’
‘그럴줄 알았어. 주문을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인걸요’
‘그게 누구죠’
‘하심’
‘하지만 저도 분명 알고 있었는데 왜 기억이 안날까요’
‘그 주문에는 마술이 걸려있어요.
그래서 외우려고 해도 외울수가 없죠.
설사 알고있다고 하더라도 금방 잊어먹어요.
단지 최초에 그것을 만든 사람과
하심이 적은 양피지를 들고 있는 사람만이 주문을 외울수가 있어요‘
‘황당하군’
‘곤란하네요. 그 양피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알라딘 뿐이였는데’
잠시후 시녀가 문을 두드렸다.
‘공주님 자파님이 오셨습니다’
‘자파님이?’
공주가 깜짝놀라 방을 나섰다.
나는 열린 문을 통해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자파? 하긴 그렇지 알라딘이 있는 시대라면 자파도 있을테니까‘
안에서 밖을 엿보고 있으니 얼마후 기다란 수염을
지닌 사내가 궁전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놀라서 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공주님 혹시 안에 다른 누가 있습니까’
‘아니요’
‘그렇군요’
안에서 숨을 골랐다.
자파는 분명 나쁜놈이다.
게임을 해도 소설을 봐도
분명 자파는 나쁜놈이였어.
혹시 하심과 같은 편인가.
그러니까 자파는 사실 하심의 부하인 거지.
아냐 섣부른 짐작은 그만두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툭 튀어나온 내 주머니가 보였다.
아직 바꿔입지 못한 청바지.
그런데 청바지 안에 뭔가가 들어있다.
주머니를 뒤집어 확인해보니
처음 변호사 빌딩에서 볼일을 볼때 사용했던 변기의 물 내리는 고리가 보인다.
아까 전 물을 내린후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것을 손에 꼭 붙잡고 있던 것이다.
‘별걸 다 갖고 있네’
나는 다시 방 안에 서서 곳곳을 둘러보았다.
방 벽면에 알라딘의 사진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품에 공주가 안겨있다.
‘둘이 결혼을 했나’
난 괜히 질투가 났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공주라면
역시 용감무쌍한 알라딘이 그녀의 배필인 게 좋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공주님 죄송하지만 제 느낌에 분명 누군가 숨어있는 것 같군요’
‘아니에요. 자파 아무도 없다니까요’
‘확인해보죠’
자파가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침실 안에는 아무도 없다.
ALADIN 8
'아이쿠‘
엉덩이에 누군가 깔렸다.
그는 방금 내게 램프를 팔았던 상인이다.
그런데 상인은 자신을 깔고앉은 나를 올려다보더니
깜짝 놀라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잽싸게 그를 잡았다.
그가 울상을 짓는다.
‘미안해요 속일려는 의도는 아니였어요
근데 왜 창문에서 떨어지고 그래요’
‘속이다뇨’
‘...그 비싼 옷과 싸구려 램프를 바꾼거요’
‘싸구려? 이거 말이에요?’
내가 램프를 들이밀자 그가 당황해한다.
‘하, 하지만 그것도 고철장수한테 팔면
밀가루 정도의 값은 쳐 줄겁니다‘
‘참나’
그런데 그가 다시 나를 올려본다.
‘그 바지는’
‘네?’
‘그 바지는 어디서 난겁니까’
‘이 아저씨가 또 사기칠려고, 됐어요 이제 절대 안줘요’
그가 굽신거렸다.
‘아니에요 이번에는 사기 치지 않을게요. 정말 쓸만한 물건으로다가’
상인이 보따리를 뒤진다.
사방팔방으로 잡다한 장신구들이 날라다녔다.
그리고 보따리 안에서 조그만 물건이 튀어나왔다.
‘이게 대단한 물건입니다. 황금 변기라고 아시죠 그것의 손고리’
‘황금변기?’
나는 문득 내가 가지고 있던 변기고리가 떠올라 그것을 내밀었다.
그가 크게 놀란다.
‘이럴수가’
상인이 고리를 만지작거렸다.
‘이건 진짜잖아’
그가 손에 힘을주어 고리를 뺏으려 할 때
내가 그를 밀쳤다.
‘이 아저씨가! 진짜 나쁜 사람이네요 다신 내 눈에 띄지 마요’
그가 서둘러 바지가랑이를 잡는다.
‘죄송합니다
단지 그 바지가 너무 갖고 싶었어요
희귀한 물품을 모으는게 제 낙이라‘
내가 바지춤을 당긴다.
‘됐다니까요’
‘제발 제발’
‘참 이깟 바지가 뭐라고.
알았어요 그럼 이거 줄테니까
바꿔입을 바지나 줘봐요‘
그러자 상인이 까무잡잡한 손을 내 얼굴에 갖다댔다.
‘감사합니다 이런 인정을 베풀어주시다니
알라딘 이후로 이런 친절을 내어준 사람은 처음이에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주섬주섬 내 바지를 만졌다.
‘이거 물건이네요. 어디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친절을 베풀어주신 대신 저만 알고 있는 특급 비밀을 얘기해드릴게요.
사실 말이지요 이 나라에서 전해지는 황금변기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도대체 그 황금변기가 뭔데요’
‘맞아 외국분이셨지.
황금변기는 공주님의 궁전에 있는 변기랍니다.
하지만 그건 변을 보는 용도가 아니라 장식용이에요‘
‘그런데요?’
‘그런데 그 변기에 고리를 걸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의 입을 따라 전해진 미신같은거지만
믿을만한 사람이 얘기해줬어요 그게 진짜라고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미래의 어느 장소에 가봤다고 말했지요
그곳에서 김창선이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나는 순간 어릴적 읽던 알라딘 동화책이 기억났다.
그곳에는 분명 동굴문을 여는 주문이 적혀있었는데.
그렇다면.
‘알았어요 미래에 갈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 고리는 어디서 찾죠?’
‘당신이 가지고 있는게 진짜에요’
‘어떻게 알아요?’
‘저 같은 상인들은 귀중품들에 대해서는 빠삭하지요.
그건 진짭니다 돈주고도 못사는 희귀물품이에요‘
‘흠 알겠어요 이제 바지는 그만 만지고 빨리 가져가요’
나는 그에게 바지를 벗어주고
그의 보따리 짐에 쌓여있던 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궁전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호위병들이 길을 막아섰다.
‘공주님’
‘왠 놈이냐’
‘나는 알라딘의 친구요’
호위병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나를 대뜸 넘어뜨렸다.
뒤로 시녀가 다가와 병사들에게 외쳤다.
‘뭐하는 짓이에요’
시녀를 따라 궁전에 들어선다.
그녀가 말했다.
‘지금 공주님은 자파님과 함께 있어요.
하지만 자파님은 방해받는걸 싫어하기 때문에
얌전히 있는게 좋아요.
우선 저 방에 들어가 있어요‘
나는 그녀를 따라 방에 들어서다가
뭔가가 반짝거리는 것을 봤다.
황금변기?!
그 안으로 들어섰다.
‘거기가 아니에요’
시녀가 따라온다.
황급히 문을 잡았다.
그리고 비어있는 황금변기의 손고리를 확인했다.
한 손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고리를 걸자
굳게 닫혀있는 변기뚜껑이 스르르 열린다.
나는 거기에 황급히 앉아 변기의 고리를 있는 힘껏 눌렀다.
ALADIN 9
‘김창선...?’
누군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본다.
‘무슨 일이십니까’
변기에 앉아있던 내 앞에는
김창선 변호사란 명함을 달고 있는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는 마침 바지를 추스르는 찰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에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건물을 나섰다.
그리고 곧 집으로 들어서 창고를 뒤지고 있으니
막 집에 도착한 엄마가 나를 불렀다.
‘엄마 나 지금 바빠요’
‘오늘도 심부름 안하면 이번주 용돈없다’
‘제발 엄마’
나는 금새 동화책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동굴의 문을 여는 장면에서
주문이 적혀있는 페이지만 어째서인지 찢겨있다.
다만 아슬아슬하게 ‘열려라’ 라는 글자부분이 보인다.
‘돈 식탁에 놨어 반찬사와’
‘엄마 바쁘다니까요’
문이 닫힌다.
식탁에 돌아와보니
엄마가 써놓은 쪽지가 보인다.
오늘 시장에서 장을 보아야할 물건들이다.
그런데 낯익은 글자가 보인다.
‘마가린, 참기름, 맞다 주문에 참자가 들어갔었는데
다음 글자가 뭐였지‘
나는 선반을 열어 반찬을 뒤졌다.
참깨가 보인다.
‘참깨 그래 참깨지’
난 서둘러 심부름 쪽지뒤에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을 적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빌딩을 찾아가
비어있는 구멍에 손 고리를 끼워넣고
손잡이를 힘차게 눌렀다.
ALADIN 10
문을 열자 공주와 또 한사람이 보인다.
‘이 사람은 누구지요 공주님’
긴 수염의 남자.
자파다.
‘공주님 이 사람은 불청객이군요’
‘아니에요 자파 이 사람은’
‘나는 알라딘의 친구입니다’
내가 말했다.
‘알라딘?’
자파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알라딘의 친구라니 재밌군 공주님 설명을 해주시지요
대체 왜 이런 불청객이 공주님의 궁 안에 숨어있는 것인가요’
‘자파 알라딘에게 살아있을적 친구가 있었데요’
‘그에게 친구가 있었다니 놀랍군요’
‘네 저도 놀랐어요’
‘하지만 알라딘의 친구가 여기는 왠일입니까’
나는 서둘러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그러나 도무지 생각이 안난다.
‘솔직히 얘기하죠 하심을 처단하러 왔어요’
‘하심?’
자파의 눈썹이 또 한번 꿈틀거렸다.
‘공주님 정말 재밌는 사람이군요.
궁전에 혼자 있기가 따분해서 이런 이야기꾼을 부르신건가요‘
‘네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공주님의 기분을 더 헤아려드렸어야 했는데.
그럼 친구분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지요’
내가 말했다.
‘난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에요.
저는 하심의 마법항아리를 가져오라는 알라딘의 부탁을 받고 왔어요.
이제 주문도 알았으니 가서 항아리만 찾으면 돼죠‘
자파의 입에서 피가 새어나온다.
입술을 깨문 모양이다.
그러나 곧 껄껄 웃는다.
‘좋군요 좋아 공주님을 웃길만한 재주가 있어요.
저도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다음은 뭔가요‘
‘다음이라뇨 전 이제부터 그곳에 갈겁니다’
그러자 자파가 웃음을 멈추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공주에게 말한다.
‘공주님 우리의 이야기꾼이 저런 말을 하는데
그렇다면 더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제가 조금 도와주어야 되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자파 이 사람이 지금 헛소리를 하는거에요’
‘헛소리라뇨 공주님 이렇게 멀쩡해보이는 사람한테’
그리고 자파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대었다.
잠시후 자파가 무슨말을 중얼거리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ALADIN 11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사막에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아까와는 풍경이 다르다.
눈 앞에 거대한 돌산들이 있다.
마치 어릴 적 친구와 뛰어놀던 그 바위산들의 공간처럼.
‘여기가 하심이 있는 곳인가’
나는 돌산이 있는곳을 향해 하염없이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막 가운데 바람이 크게 불더니
모래가 솟아올라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바로 자파의 모습이다.
‘어떤가 이곳에 오니 자네가 원하는대로 됐지’
모래로 된 자파가 말했다.
‘어떻게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지만
알라딘의 뜻대로 하게 둘수는 없지‘
그리고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모래가 사라졌다.
나는 겁이 나 이제라도 돌아갈까 싶었지만
이미 사방이 모래천지다.
궁전은 보이지도 않고 알라딘이 있던 감옥도 마찬가지다.
결국 천천히 돌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서니 두 개의 돌문이 보인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종이 쪽지를 꺼냈다.
‘열려라 참깨’
육중한 돌소리와 함께 스르르 문이 열린다.
난 재빨리 들어서서 몸을 숙였다.
안에서 소리가 난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되냐’
‘글쎄 그래도 이젠 알라딘이 없으니 걱정할거 없잖아‘
‘그게 아니라 언제까지 하심 뒷치닥꺼리를 해야되냐고
항아리만 없으면 별것도 아닌게’
두 사람이 다가온다.
허리춤에는 기다란 칼이 보인다.
나는 어딘가로 숨어보려 했지만
일자로 된 통로라 도무지 숨을 장소가 없다.
그들이 날 발견했다.
‘누구냐!’
몸이 굳었다.
‘어떻게 들어왔지 이름이 뭐야!’
어두워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다.
계속 고함소리가 들린다.
난 순간 떠오르는 이름을 댔다.
종이 쪽지에 있던 또 다른 한 가지 글자.
‘마가린이요’
정적이 흘렀다.
잠시후 그들이 한숨을 쉰다.
‘이런 마가린이군. 근데 왜 그렇게 뜸을 들인거야 놀랐잖아‘
그리고 다시 뒤로 돌아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난 천천히 걸어갔다.
다행히 일행중 마가린이란 동료가 있는 모양이다.
동굴 끝이 점점 가까워지자
멀리에 커다란 제단이 보이고
그 가운데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자네의 영혼은 큰 쓰임이 될것이네’
제단 앞에 있던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밧줄에 묶여있던 사람에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 사람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남자가 모여있는 무리에게 연설을 시작했다.
‘이제 때가 얼마남지 않았다.
우리는 곧 자파님의 지휘에 따라 이 나라를 점령할 것이다‘
자파라고?
아 자파가 하심을 조종하고 있었군.
하지만 역시 알라딘 말대로였다.
하심은 사람들의 영혼을 뽑아 그것으로 군대를 만들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라딘도 하심의 위에
자파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나는 부하들 속에 섞여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하심의 등에 꽂혀있는 두개의 두루마기를 보았다.
하나는 동굴의 문을 여는 주문이 적힌 양피지.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알라딘이 찾아오라고 부탁한
사람의 영혼을 빼앗는 그 증거물일 것이다.
ALADIN 12
저녁이 됐다.
나는 숨을 죽이고 제단에 다가갔는데
하심의 두 두루마기가 그의 배 밑에 깔려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동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응? 마가린이라고? 마가린은 아까 들어왔는데’
잠시후 밖에서 소란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눈치를 채고 재빨리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가 발목을 잡는다.
모래다.
자파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 모래는
어느새 내 몸을 거꾸로 휘어잡더니
나를 하심의 앞에 데리고 갔다.
‘하심’
‘앗 자파님!’
‘부하 한명 제대로 간수를 못하다니’
하심이 어쩔줄 몰라한다.
자파는 나를 죽이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하심이 손을 들어 두루마기에 적힌 주문을 외우려고 했고
나는 순간 품에 가지고 있던 램프를 떠올렸다.
그 상인은 정말 사기꾼 이였을까.
이 순간 너무도 간절히 램프의 요정이 필요하다.
언젠가 동화책에서 보던
램프의 요정은 실존하는 것일까.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그리고 손으로 램프를 문지르려 하는데
아침 나절 휴대폰 요금 사건이 생각났다.
‘아냐 믿을놈 하나 없다 역시 그놈도 사기꾼이였을거야’
램프를 손으로 문지르려던 나는 이내 그것을 빼들어
하심의 머리에 있는 힘껏 던졌다.
결국 하심은 램프에 맞아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난 발목을 향해 달려드는 모래바람을 피해
입구를 향해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면서 생각한다.
세상에 사기꾼은 많다.
휴대폰 판매자도 사기를 치고
인도의 어느 장사꾼마저 사기를 친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믿을수 있는 단 하나의 것이 있다면
그건 물리력이다.
물리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단 말씀.
ALADIN 13
달려드는 진짜 마가린에게 나머지 램프를 던지고 나니
드디어 앞이 트였다.
나는 겨우 동굴을 도망쳤다.
그리고 들어왔던 장소를 따라 모래사막을 정신없이 달렸다.
멀리서 말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앞에는 모래바람이 일었다.
자파다.
이젠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가지고 있던 두루마기가 기억났다.
난 그것을 꺼내
써 있는 글씨를 되는데로 읽었다.
그러자 날 따라오던 적들이
정신을 잃고 바닥에 풀썩풀썩 쓰러진다.
자파는 어느새 사라져있었고
그때부터는 달이 보이는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달렸다.
멀리 무너진 건물이 보인다.
내가 처음 도착한 화장실이다.
뻥 뚫린 변기속으로 들어가 칠흙같은 어둠을 쫓으니
다시 감옥이 나온다.
간수는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나를 데리고 알라딘에게 데려갔다.
‘맙소사 너 괜찮아?’
알라딘이 내 몰골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괜찮기는 개뿔’
나는 그에게 중얼거리고 바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뜨니 알라딘의 부하들이 보인다.
‘여기가 어디야?’
‘일어났구나 여긴 사막이야 하심이 마지막 수를 썼어.
그가 어젯밤 감옥을 공격했거든‘
알라딘이 자신의 말을 돌려 우리가 있었던 건물을 보여준다.
커다란 불기둥이 사막 한가운데서 마구 하늘로 치솟는다.
‘지금 어디로 가는데?’
‘궁전으로 갈거야 지금쯤 하심이 궁전도 점령했겠지’
‘하심이 자파 부하인거 알고 있어?’
‘어 알고 있어
하지만 자파는 이 나라에서 지위가 매우 높아서
알고는 있지만 입밖에 낼수가 없었어‘
‘자파는 요술을 쓰던데’
‘걱정마 내가 누구야’
알라딘은 내게 웃어보이고
잠시후 짐 속에서 양탄자를 꺼냈다.
‘양탄자! 하늘을 나는 양탄자구나’
‘하늘을 나는 양탄자라 재밌는 생각이네’
알라딘과 부하들이 한바탕 웃는다.
그는 또 다른 보따리에 있던 물통을 꺼내
그 안에 있던 기름을 양탄자 바닥에 치덕치덕 발랐다.
그리고 양탄자의 두 모서리를 긴 줄에 달고 다른쪽은 낙타의 혹에 걸었다.
나머지 부하들도 알라딘을 따라한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라기 보다는 미끄러지는 양탄자지’
곧 알라딘이 큰 소리로 신호하자 이제까지 느릿 느릿 걷던
낙타들이 엄청난 속도로 발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양탄자가 사막위를 날아갔다.
아니 모래사막위를 바람처럼 미끄러졌다.
ALADIN 14
과거 인도 사람들이 터번을 쓰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속도로 양탄자를 타고 다녔었다면
숱 많은 머리카락도 멀쩡히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궁전에 도착하니 이미 사방이 칼을 든 적들로 쌓여있다.
‘어떡하지’
‘어떡하긴 이제부터 정공법이지’
알라딘은 그렇게 말하고 부하들과 함께
성으로 재빠르게 달려갔다.
나는 보따리 안에서 조심조심 칼과 방패를 챙겼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하늘을 날아다니던 나뭇가지는 바로 활이였다.
적들은 그의 일행들에게 있는대로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알라딘과 일행이였다.
알라딘과 그의 부하들은 화살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간단히 그것을 피해가더니
높은곳에 위치한 적들을 단순간에 제압했다.
적은 숫자로 이루어진 그의 부하들은
사실 알라딘의 정예병들이였던 것이다.
내가 죽은 적들의 몸을 밟고 성에 들어서자
멀리 하심의 모습이 보인다.
공주는 자파의 손에 잡혀 있다.
‘공주’
‘알라딘’
알라딘이 외치자 공주가 그를 바라본다.
그녀가 감격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수 없는 것 같다.
자파가 말한다.
‘알라딘 용케 여기까지 왔군요’
‘자파 나를 가둬둘수 없다는걸 알잖나’
‘그렇지요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영웅이라도
한 가지씩의 약점은 있는법.
저는 그것이 바로 공주님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잠시후 자파가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하심이 영혼의 항아리를 꺼낸다.
‘두루마기는 이제 없을텐데’
알라딘이 손을 뻗어 뒷춤을 확인했다.
그러나 두루마기가 바스락거리며 공중으로 사라져버린다.
‘당신의 친구가 동굴에 찾아왔을땐 제가 이미 손을 써 두었지요’
알라딘이 당황한다.
‘자 이제 칼을 내려놓으시죠’
알라딘이 칼을 놓았다.
‘공주는 놔줘’
‘생각보다 순진하군요 알라딘
아직도 제가 누군지 모르십니까‘
자파가 재차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하심이 두루마기를 펼친다.
알라딘의 부하들이 달려들려 한다.
하지만 알라딘이 제지했고
하심이 두루마기를 읽기 시작했다.
심장이 조여온다.
공주는 이대로 죽는건가.
그때 바닥에 있는 알라딘의 칼이 보였다.
그런데 그 칼 속에서 알라딘의 눈빛이 번뜩인다.
그가 나를 보고 있다.
ALADIN 15
'으악!‘
‘하하’
친구가 웃는다.
나뭇가지 칼싸움.
칼에 배를 찔렸다.
친구는 언제나 나보다 한수 위다.
나는 정신없이 솟아있는 돌산이 무서워
제대로 걸음을 옮기지 못하지만
친구는 도대체가 무서운 것이 없다.
‘넌 어떻게 그렇게 겁이 없냐’
‘겁이 없는게 아니라 믿는거야’
‘믿는다고?’
‘나는 돌산의 주인이잖아 이 바위들은 나를 절대 해치지 않지’
‘말도안돼’
‘아니야 진짜라니까’
‘그러다 다치면 어떡하려고’
‘다치지 않아’
‘거짓말’
‘영웅은 용기를 내야해
죽을 생각을 가지고 도전하면 오히려 총알이 비켜간다는 속담도 있어‘
‘그래?’
‘응’
‘알았어’
‘좋아 새로운걸 배웠네
하지만 오늘은 알아야 할 것이 한가지 더 있어
나랑 한가지 약속을 하자‘
오래전 바위산 위에서 함께 뛰어놀던 친구는
내게 한바탕 훈계를 늘어놓고 또 이런 말을 했다.
약속을 하자.
그는 이 약속이 우리가 서 있는 돌산처럼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영원한 약속이라 했지만
10 년후 그 돌산은 각종 포크레인들에 의해 어김없이 무너져 내렸다.
‘난 이 칼을 절대 놓지 않는다는 약속이야’
‘칼? 요 막대기 말하는거야?’
‘응 막대기
적과 싸울 때 내가 이 막대기를 놓는 순간은
오직 내가 죽었을때만이야‘
‘그게 무슨 약속이야’
‘이 약속이 필요할때가 있을거야’
알라딘의 눈이 보인다.
그가 한쪽 눈을 살짝 찡그렸다.
맞다.
친구는 절대 칼을 놓지 않는다고 했다.
칼을 놓는 때라면
오직 그가 죽었을때만이라고 했으니까.
알라딘은 아직 살아있다.
나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알라딘이 소리를 친다.
‘공격’
내가 서투른 동작으로 하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자파가 모래바람으로 나를 막아선다.
하지만 곧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알라딘이 하심의 항아리를 향해 자신의 칼을 집어던진 것이다.
곧이어 괴이한 소리가 궁전안에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고
얼마후 성 안에 쓰러져있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정신을 차렸다.
‘공주를 놔줘’
자파가 공주를 놓는다.
그러자 그녀가 있는힘껏 달려가 알라딘의 품에 안겼다.
알라딘과 부하들은 기뻐했고
나도 그들과 함께 웃음을 지었다.
잠시후 어지러진 궁전을 수습하고 자파를 포박해 돌아가려는데
깨진 항아리 속에 아직 남아있는 물체가 보였다.
그것은 연기같은 형상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보니
그 연기는 바로 내 어릴적 친구의 얼굴이였다.
ALADIN 16
십년전 이 지역의 돌산들이 밀려버릴 때
나는 한 아이가 돌산에서 떨어졌다는 뉴스를 봤다.
난 그것이 친구라고 확신했다.
순수한 영혼.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친구는 너무나 서툴렀다.
그 아이는 세월이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항상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길 원했고
친구들이 차츰 현실에 대해 깨달아갈때도
언제나 돌산을 찾아가 놀며 자신은 영웅이라고 외쳐댔다.
그리고 결국 돌산이 무너지는 날 그도 함께 떨어졌다.
친구의 병문안을 갔을 때
친구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
그리고 눈의 초점도 맞지 않았다.
친구의 부모님은 그가 뇌를 크게 다쳤다고 말했다.
난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되는건
그가 여전히 막대기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동네를 산책하려 나가면
나는 그 친구를 종종 본다.
친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신이상자이다.
언제나 막대기를 들고다니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또 공터에서 뭔가를 찌르는 시늉을 하며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친구는 아직도 자신을 알라딘이라고 생각하는걸까.
그의 정신은 아직도 돌산에서 함께 놀던
어린시절에 머물러 있는것 같다.
나는 때때로 그 친구를 만나면 인사를 건네지만
친구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변호사 빌딩을 나선다.
그리고 핸드폰 대리점에 들어가 못다한 요금을 정산했다.
돌산을 믿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이 들리는 것 같다.
이런 사기꾼들이 가득한 세상에
난 내가 아닌 무언가를 어떻게 믿을수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친구가 말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믿고 싶다.
‘나는 이 돌산의 주인이잖아 바위는 나를 절대로 해치지 않아’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다 그러니 세상은 나를 절대 해치지 못한다’
이렇게 생각해볼수 있을까.
난 핸드폰 직원에게 아까 화를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대리점을 나섰다.
그리고 오랜만에 공터를 찾아왔다.
그런데 친구가 공터에 나와있다.
여전히 손에 막대기를 든채 말이다.
하지만 친구는 눈의 초점이 항상 잘 맞지 않았는데
오늘만큼은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것 같다.
게다가 그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