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북 공모전 1편
벽돌
나는 살인자다.
하지만 그저 그런 살인자와는 달리 한 가지 특이한 취향이 있다.
일명 뻑치기.
뻑치기는 피해자의 돈을 들고 도망을 가기 위해 머리를 돌로 가격한다.
그럼 피해자는 즉시 사망한다.
그러나 나는 돈을 벌기위해 뻑치기를 하지 않는다.
특별한 원한관계도 없던 나는
별다른 동기없이 뻑치기를 시작했다.
난 그저 대화가 하고 싶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대화가 없다.
왜 대화가 필요해라는 노래도 있고
또 대화가 필요하다는 코미디 프로그램도 있지 않은가.
나는 이런 소통없는 시대,
바로 대화의 부재들을 타파하고 싶었다.
그렇다 타파다.
개혁하자.
이를테면 나는 개혁가다.
그날도 난 누군가의 머리를 벽돌로 가격했다.
하지만 또 다른 어느 곳에선가 나를 주시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고
상대방이 쓰러지는 동시에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경찰들은 인정사정없이 나를 파출소로 끌고갔다.
그리고 차가운 수갑으로 손목을 채운채
날 어느 감방에 던져넣었다.
춥다.
이곳은 감방이다.
아니 감방이 아닐지도 모른다.
얼굴은 하얀 포대기같은 것으로 덮혀있다.
새삼 살인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그렇다 중범죄지.
어찌보면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닥에 누워 오랜 시간이 흐르고
계속 여러 장소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컴컴한 곳에 다다랐다.
불이 켜진다.
눈이 부시다.
포대기를 뚫고 강한 불빛이 들어왔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
잠시후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리고
얼굴의 포대기가 벗겨졌다.
강한 불빛에 눈을 못뜨겠다.
몇분쯤 지나니 시야가 트인다.
앞에는 한 여성이 앉아있다.
한데 그녀는 우락부락한 형사가 아닌 그저 고운 여성이다.
이상하다.
난 이렇게 다룰 죄인이 아닐텐데.
그녀가 묻는다.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나는 말했다.
‘벽돌’
난 그녀의 이어지는 질문에
계속 벽돌이라고만 대답을 했다.
그녀는 탁자에 엎어져 있던 작은 종이를 넘겼다.
거기에는 피가 묻어있는 빨간 벽돌이 찍혀있다.
저건 내가 사람들의 머리를 친 붉은 벽돌들이다.
난 대뜸 그 사진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내리쳤다.
순식간의 일이다.
밖에서는 쿠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형사들이 내 머리를 책상에 마구 내리쳤다.
아프다.
하지만 앙칼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놔주라는 소리다.
그러나 형사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하긴 그렇지.
내가 사람들을 그동안 몇 명이나 죽여왔는데
형사들은 날 더욱 거칠게 다루어야 한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형사들이 머리를 놓았다.
여성은 이쯤하면 됐으니 그들에게 그만 물러가라고 했다.
양 손을 뒤로 묶인 상황.
이제는 무엇을 보아도 꼼짝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모를 것이다.
벽돌이 없으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이후로도 그녀는 수없이 질문을 했지만
나는 그저 벽돌이란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녀가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인다.
머리에 무언가 묻었나.
곧 책상 위에 빨간 피가 떨어졌다.
아마도 형사들이 머리를 내리쳤을 때 이마가 깨진 것 같다.
여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사람을 호출했고
나는 머리를 붕대로 둘둘 감겼다.
한참동안 그녀가 아무말이 없다.
그리고 무언가가 생각난 듯 의자를 바싹 당겨 앉았다.
여성이 이런 말을 한다.
‘아기돼지 삼형제에도 벽돌이 나오잖아요’
아기돼지 삼형제는 동화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걸까.
그녀가 계속해서 동화 이야기를 했다.
첫째가 지푸라기 집을 만들고
둘째가 나무집을 만들고
막내가 벽돌집을 만들었다는 동화속의 이야기.
그러나 늑대는 앞선 두 개의 집을 연거푸 부수고
막내의 벽돌집 앞에서는 항복을 하게된다.
순간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내가 말했다.
그녀는 내게서 나온 벽돌과 다른 한 마디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그렇지 않다고요?’
‘이 세상에 부술수 없는건 없어’
그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다‘
난 그녀가 한 동화 이야기를 재차 읊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늑대가 막내의 벽돌집을
부순다는 내용으로 바꾸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기록한다.
도대체 무엇을 쓰고 있는거지.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맞는 얘기다.
세상에 부술 수 없는 것은 없다.
마지막엔 늑대가 분명 벽돌집을 부수게 된다.
나는 잠시 어릴적 읽었던 동화 속 이야기를 가만히 떠올려보았다.
그러자 내 머릿속의 늑대의 모습이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긴 머리털은 줄어들어 돼지의 살갗이 되고
쩍 벌어진 입도 줄어들어 앙증맞은 입술이 된다.
늑대는 사실 돼지였다.
난 아무런 말도없이
자신의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하는 그녀를 보며
계속해서 상상을 나래를 폈다.
돼지는 사실 왕따였다.
혼자서 밖에는 살아갈수 없는 왕따.
하지만 천성이 착했던 돼지는
계속해서 친구 돼지들과의 교류를 이어보려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돼지들이 그를 싫어하는 이유였다.
착한척한다.
친구들은 그런 돼지가 얄미웠다.
계속되는 따돌림에 돼지는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끝없는 괴롭힘에 정신이 없어 씻지도 못했다.
결국 돼지는 얼굴이 까매져갔다.
더군다나 머리도 헝클어져
그 모습은 흡사 늑대같았다.
그리고 어느날 친구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돼지들이 외쳤다.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다’
친구들은 왕따 돼지가 늑대라고 생각했다.
헝클어진 머리와 까만 몸.
그건 분명히 모든 돼지들이 두려워하는 사나운 늑대의 모습이였다.
그들은 도망가기 시작했다.
‘늑대가 나타났어’
‘어디로 숨어야 하지’
돼지들은 숨을 곳을 찾았다.
그런데 마침 세 개의 집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왕따 돼지가
친구들과의 친목을 위해 그들에게 오래전 선물한
지푸라기집, 나무집, 벽돌집이다.
친구들은 그 집으로 숨어들었다.
한편 도망친 친구들을 찾아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던
왕따돼지는 마침내 친구들을 찾았다.
그리고 친구들을 불렀다.
하지만 친구들은 돼지가 오로지 늑대로만 보여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자 왕따 돼지는
그 동안의 분노가 거세게 폭발했다.
해서 친구들이 들어있는 집을 흔들기 시작했고
첫 번째 지푸라기 집과 두 번째의 나무집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벽돌집 앞에서서
나머지 친구들을 목놓아 불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오직 늑대의 울음소리밖에는 들리지가 않는다.
왕따 돼지가 벽돌을 흔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나 있다고는 해도
돼지의 힘으로 벽돌집을 부술수는 없다.
그런데 벽돌집 옆에 헐거워 떨어진 벽돌이 하나 있다.
돼지는 그 벽돌을 집어 집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벽돌집 기둥이 무너지자
안에 있던 돼지들이 모두 깔려죽는다.
톡톡.
누군가 나를 친다.
그녀다.
하얀 옷의 그녀.
그녀는 꽤 상냥한 사람인것 같다.
내가 사람을 무수히 죽여온 살인자임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내 인생이 담긴 기록지를 내밀었다.
거기에 적힌 내 삶을 보았다.
단촐하긴 하지만 몇 년 전까지
내가 살았던 장소와 나의 이름이다.
언젠가부터 잊고 살았다.
하지만 그게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저게 내 이름이구나.
그때 머리에서 뭔가가 번쩍인다.
그리고 깨지고 깨져 흔적조차 찾을수 없는
내 기억의 조각들이 교묘히 겹쳐지며
지나간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럴수가.
그랬다.
난 어느 순간부터 미쳤다.
주변 사람들의 따돌림 속에서
그리고 그 괴로움을 이겨내는 와중에서
뇌세포 하나가 어디론가 퉁겨져 떨어져버렸다.
결국 정신을 잃고 살아가는 와중에
벽돌을 맞고 사망한 어느 인부의 기사를 보게된다.
죽는다.
벽돌에 맞아 죽는다.
불쌍하긴 하지만 그 죽은 인부는 적어도
무척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끝없이 말을 붙이고 있다.
죽으면.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건가.
난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벽돌로 사람을 부수면
상대방과의 대화를 잘 해나갈수 있을거라고.
미쳤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너무 놀라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최근까지 내가 했던 행동들에 몸서리를 쳤다.
입에 거품이 물린다.
여자가 사람을 부른다.
나는 급히 들것에 옮겨져 앰뷸런스 차에 태워졌다.
다시 하얀 불빛이 비친다.
하지만 이번엔 포대기가 씌워져 있지 않다.
팔도 느슨하다.
그녀는 여전히 곁에 있었고
이번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다.
그녀의 직업은 의사인 모양이다.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서서히 기억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죽인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제발.
이것이 사실이 아니길.
안돼.
난 계속 두 손을 마주잡으며 온몸을 벌벌 떨었고
극심한 고통을 겪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사실을 깨닫고 나니 도저히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정신분열증’
나에게 내려진 병명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이 분열된 사람에게까지
살인죄를 씌우는데 신중했다.
정신병동에 갇혔다.
하지만 그녀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언젠가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혹시 저 사람은 천사일까.
만약 내가 정신분열증이 확실하다면
어쩌면 지금 보는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 저 사람은 천사다.
그렇게 생각하자.
미쳐간다.
미쳤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미쳐간다.
병동에 갇혀 수일을 보냈다.
하지만 잠에 들때마다
내가 죽인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라
잠을 이룰수가 없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일주일이 지나려 할 때
나는 병동을 탈출했다.
간수가 잠시 딴짓을 하는사이
문을 나서 난간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하얀 불빛.
하늘이 보인다.
그래 나방이 불빛을 따라가듯 올라가자.
감옥에도 옥상이 있겠지.
누군가 쫓아온다.
정신없이 도망쳤다.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팔에 잡히는 난간을 있는 힘을 다해 끌어당기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뒤에서는 간수 두 명이 전기충격기를 들고 도착했다.
뒷걸음질을 쳤다.
바닥에 벽돌 하나가 보인다.
대뜸 벽돌을 집었다.
그러자 내가 병동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알고있던 간수들이
놀라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들을 죽이려 벽돌을 든것이 아니다.
난 내 손을 내리쳤다.
모든일의 원흉이다.
이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러니 이 손을 없애버려야 한다.
이럴때는 차라리 정신분열이 되어 다행일까.
그다지 손이 아픈것 같지도 않다.
다시 뒷걸음질을 쳐 허공에 발을 내딛었다.
떨어진다.
그러나 그 순간.
누군가 손을 잡았다.
짓이겨진 내 손을 누군가가 꽉 붙잡는다.
그녀다.
정신없이 달려온건지 얼굴이 땀 범벅이다.
아래를 쳐다봤다.
현기증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운 높이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나를 꼭 붙잡고 있는다.
잠시후 간수 두명이 더 달라붙어 그녀와 나를 끌어올렸다.
다시 눈을 뜬 곳은 병실이였다.
몸은 다시 묶였다.
그녀는 옆에서 나를 간호하고 있다.
이후 밤이 찾아오자 다시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얼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
여느날처럼 괴로움에 시달리며 암흑속에 떨어지려 할 때
어디선가 하얀빛이 반짝이며 그 속에서 손 하나가 나타난다.
그 손은 나를 잡아주는 손이다.
하지만 이윽고 벽돌이 나타난다.
그리고 움켜잡고 있는 손과 손 사이를 부수듯이 내리쳤다.
난 그렇게 악몽과 현실 사이를 떠돌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충혈된 눈으로 병실 티비를 본다.
옆에는 그녀가 앉아서 가만히 무언가를 기록한다.
난 내가 미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날 나는 오늘처럼 티비를 보고 있었다.
한 인부가 벽돌에 맞아 죽는 모습.
뉴스에서는 그 사건을 급하게 생중계로 방영했다.
인부는 피를 흘리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호소하며 서서히 죽어갔다.
하지만 이상스레 표정이 편해보인다.
왜 저렇게 편해보이지.
내 벽돌 살인은 분명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벽돌...벽돌...
병실에 앉아 벽돌이라는 단어를 되뇌인다.
그러자 옆에서 그녀가 손을 잡는다.
하얀 손.
그러니 다시 뭔가가 떠오른다.
정신이 나가기 전 그러니까
벽돌에 인부가 맞아죽기 전
사실 그 방송은 그런 내용이 아니였다.
그것은 인부들이 열심히 건물을 짓고 있는 모습.
말하자면 삶의 현장들을 찾아다니며
그 일터 사람들의 솔직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는
그야말로 공익 프로그램이였다.
한 인부가 벽돌을 내민다.
그럼 안쪽에서 또 다른 인부가 벽돌을 받는다, 그리고 쌓는다.
그렇게 차례차례 벽돌이 모여 어느새 예쁜 집이 만들어진다.
난 그 모습이 퍽 감동적이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한 인부가 떨어지는 벽돌에 맞았다.
그러자 여러대의 카메라들이
동시에 그 인부의 모습을 잡았다.
나는 그제야 머릿속에서
어떤 중요한 부분이 사라져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벽돌은 원래 쌓는 물건이라는 것.
그건 부수는 물체가 아니다.
벽돌은 쌓음으로 존재하고
사람과의 관계 또한 그렇게 쌓여나감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
줄곧 생각했다.
이 여성은 누굴까.
의사일까 아니면 천사일까.
너무 헌신적이다.
혹시 전에 알던 사람일까.
하지만 언젠가 물었던 질문에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남은것은 한가지다.
이 사람은 어쩌면 내가 지금 깨달은
벽돌의 의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가진 과거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관계를 쌓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긴 시간동안 신뢰를 쌓는 것이라는 것.
단지 그 비결을 알고 있는 실력있는 의사일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날 악몽을 꾸지 않았다.
대신 잘 만들어진 벽돌집 옆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한 무리의 정다운 돼지들의 꿈을 꾸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