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맨

브런치북 공모전 2편

by 김민관

셔츠맨


‘오빠는 어쩜 그렇게 찌질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아니면 나가서 일좀 해’

‘일이 없는걸 어떻게 하라고’

‘오빠 나 사랑해?’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랑해 안해’

‘당연히 사랑하지’

‘거짓말 마 이제 오빠 말 못 믿겠어’

‘뭐?’

‘우리 헤어지자’

‘헤어지자니 도대체 무슨 말이야’

‘됐어 이미 수십번도 더 얘기했잖아’

‘말을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니까’

‘필요없어 이제 연락하지 마 나 갈게’

‘잠깐만’

‘그래 잠깐 기다려야겠다 우선 그 가방부터 내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사준 거잖아 지금 오빠 집에 있는것 중에서

오빠가 직접 산 게 뭐가 있어‘

‘나 참’

‘다 가져갈거야 이제 희망이 없는 오빠에게는 아무것도 주고싶지 않아’

‘보자보자 하니까 너 말 다했어?’

‘말 다했어, 그 가방이랑 잠바 그리고 저 책, 또 이 바지

정말 셀수가 없네 비켜봐‘

‘그거 안 놔둬’

여자친구는 양 팔을 들어 방어하는 나를 밀치고

집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집어들었다.

하지만 난 아침밥을 먹지 못해서인지 막아설 기운도 없다.

그녀가 문을 나선다.

‘그리고 목걸이도’

여자친구는 닫았던 문을 다시열고 들어와

내 목에 있던 금 목걸이를 낚아챘다.

정말이지 저 여자애는 버릇이 너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나이로는 내가 오빠인데 말이다.

그러나 난 다음순간 문을 다시 열어 그녀에게 소리를 쳐야만 했다.

‘야 속옷은 두고가’

나는 잘 때 속옷까지 벗고 잔다.

그런데 그녀가 집안의 옷들을 뭉텅이로 집어가는 바람에

속옷까지 딸려가 버린 것이다.

남은 것은 빨랫대에 걸려있는 셔츠 한벌.

이 셔츠는 할머니가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사준 소중한 티셔츠다.

다행히 셔츠는 건들지 않았구나.

난 이불속에서 알몸으로 기어내려와 빨랫대에서 셔츠를 빼내었다.

참 궁상이다.

아랫도리는 달랑달랑 거리고 이제 집에는 남은 물품이 하나도 없다.

잠깐이겠지.

그냥 쟤가 조금 화가 나서 그랬을 것이다.

체념을 하고 출출한 배를 움켜쥔채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이 있다.

몇 가지 음식들을 꺼내 밥을 집어먹는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친구가 말한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뭐 희망이 없어? 나 참’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꺼내들었다.

‘뭘 더 바라는거야. 내가 원래 이런놈인줄 알고 만났던거 아냐’

술을 한잔 들이켰다.

‘참 여자란 것들은 다 똑같에 화가나면 절대로 반격할 틈을 안준다니까

나만 잘못했어? 앙 나만 잘못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또 술을 한잔 들이켰다.

결국 술은 술을 부르고

냉장고에 있던 술이란 술은 다 탁자위에 올려놓아졌다.

아무리 연락을 걸어도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술에 취한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어떤 하얀 천사가 나를 맞았다.


셔츠맨 2


‘아저씨’

‘여긴 어디인가요’

‘일어나세요’

‘제가 죽은건가요’

눈 앞에 불이 튄다.

그러자 흐리멍텅한 눈이 또렷해진다.

‘아저씨 집이 어디에요’

경찰이 묻는다.

하얀 제복의 경찰 아저씨

오늘따라 경찰복을 세탁한건지

하얀 옷이 번쩍번쩍 거린다.

‘집으로 갑시다. 아저씨 진짜 셔츠 때문에 살았어요.

이것마저 벗고 다녔으면 풍기문란죄로 콩밥 먹어야 돼요‘

급하게 아랫도리를 보았다.

달랑거리는 하반신.

너무 부끄러워 다리를 꼬아 중요부위를 가렸다.

‘이제 가려서 뭐해요 밤새 다 보여주고 다녔으면서 원’

‘저 집에 가도 되나요’

‘안돼요. 이름 적고 가야죠 나중에 벌금 통지서 나갈거에요’

‘벌금이요? 저 돈 없는데’

‘알아요 나도 돈 없어요. 이름이 뭐에요’

‘이름이요?’

난 지금 이름을 말하면

그나마 있는 자취방의 월세마저

못 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요 이름이요’

‘이름...’

‘빨리 말해요’

몸을 쳐다본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흰 셔츠.

지금은 이게 나를 증명해주는 유일무이한 물건이다.

‘이름 뭐냐고요’

‘제 이름은 셔츠에요’

‘뭐라고요?’

외자는 안되나

아 내가 지금 셔츠라고 했지.

정신이 왜 이러지.

‘빨리 말해요’

‘제 이름은 셔츠맨입니다’

순간 경찰서 안이 조용해졌다.

맙소사 셔츠맨이라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한거야.

나는 당황해서 내 뺨을 내리쳤다.

아직도 술에 취한건가.

그런데 그 경찰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

‘뭐라고요 셔츠맨? 이럴수가 실례했습니다’

갑자기 경찰의 태도가 바뀐다.

그리고 허리를 깍듯이 굽혀 인사를 하더니 내게 악수를 청했다.

어느새 뒤에 있던 파출소 순경들은

손을 머리위로 올려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일이지.

‘셔츠맨 저희 파출소에 몸소 방문해 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네?’

‘하지만 인사를 나누기 전 먼저 현장에 출동을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현재 배치된 인력으로는 상황 통제가 어려워서요‘

‘현장이라뇨’

‘지금 시민들이 은행을 점거하고 농성중입니다’

‘은행을요?’

‘네 시민들이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빈부격차를 견디지 못하고

드디어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은행문이 뚫리기 직전이에요.

셔츠맨이 나셔주셔야 합니다‘

다음 순간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파출소 순경 두 명이 다가와 양팔을 잡았다.

그리고 이미 서 앞에 세워져 있던 경찰차에 태우더니

어딘가를 향해 급하게 달린다.

은행이 보인다.

그러니 그 앞에 헤아릴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는 것이 보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람들이 목을 놓아 외친다.

은행 안에서는 양복을 입은 무리들이 뒷짐을 지고 그들을 쳐다보고 있다.

‘셔츠맨 당신은 시민들을 설득할수 있을거에요

제발 사람들이 돌아갈수 있게 잘 이야기해주세요‘

‘무슨 말씀인지’

경찰들이 나를 끌고 은행 계단을 올라섰다.

그리고 순경이 확성기를 들었다.

‘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여기 셔츠맨이 왔습니다’

그러자 정신없는 고함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한다.

‘뭐 셔츠맨이라고?’

‘어디야 어디’

사람들은 앞 사람의 머리를 밀어내며

은행앞을 보기위해 고개를 내밀었다.

경찰이 내게 확성기를 내민다.

‘말씀하세요’

나는 확성기를 받았다.

앞에는 무수하게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꿈인가.

그런데 무슨 말을 하라는거지.

나는 확성기를 들고 우선 생각나는 대로 말을 했다.

‘멈추십시오’

그러자 피켓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오 먹히는데.

그러나 이윽고 사방팔방에서 물건들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우리가 왜 멈춰야 하냐’

‘당신이 셔츠맨이면 다야’

시민들은 성이나서 나에게 과일을 던져냈다.

결국 흰 셔츠에 빨간 과일즙이 묻는다.

이럴수가.

이건 할머니가 사준 소중한 옷인데

하나밖에 없어서 더럽혀지면 곤란하다.

순간 나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걸 까맣게 잊고

하나 남은 티셔츠를 벗어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과일세례를 멈춘다.

그리고 일순간 정적이 흐른후 다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셔츠맨이야’

‘그래 하나남은 셔츠마저 던져버리다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사람들은 과일 던지던 손을 멈추고

은행 뒤쪽에 있던 신사들을 째려보더니

천천히 광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양복입은 사람들을 향해 가지고 있던 피켓을 집어던졌다.

유리창이 깨진다.

경찰들이 나에게 달려온다.

그리고 역시 셔츠맨은 대단하다는 말을 하며

앞으로도 자신들의 파출소에서 함께 일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난 코를 킁킁대어 내 입냄새를 맡았다.

혹시 아직 술이 덜 깬건가 싶어 확인을 해본 것이다.

그러나 별 냄새가 나진 않는다.

더군다나 여기는 내가 여자친구와 자주 찾아오던 도시속의 광장이고 말이다.

당최 이제는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간다.


셔츠맨 3


나는 짝지를 끼고 돌 바닥에 드러누웠다.

순경들은 아무도 주의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곁을 지나던 순경에게 눈짓을 하자

그가 급하게 고개를 수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확실하게 대우를 해주는구나.

셔츠를 쳐다본다.

사실 이 셔츠는 별다른 문양도 없는 평범한 하얀 셔츠다.

다만 여기 있는 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나에게는 오직 셔츠뿐이라는 것이다.

혹시 이 상황은 물질만능 시대에 대해

평소 탐탁치 않은 생각을 갖고 있던 내가

여자친구와의 다툼까지 겹쳐

무의식중에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것일까.

마침 경보가 울린다.

순경이 사태를 파악하니

한 시민 무리가 파출소의 문을 깨부수고 있다고 알려왔다.

경찰들은 모두 문 쪽으로 달려들었고

경찰봉과 스턴건을 사용해 밖에있던 시민들을 간신히 제압했다.

내가 순경중에 한 사람을 붙잡고

무엇 때문에 시민들이 저러냐고 묻자

현재는 한 대기업이 영세 상인들의 상점을 모두 인수해버려

원래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라도 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서 건녀편을 쳐다보니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빌딩이 보인다.

순경은 저곳이 바로 그 기업이라며

현재는 청와대의 경비원보다 저 빌딩의 경비가 많다고 했다.

결국 시민들은 차마 대기업에 직접 대항하지를 못하고

그나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찰들에게 시위를 하는 것이란다.

초 거대 기업.

언젠가 책 속에서 봤던 이야기가 정말 실현되었구나.

대기업이 모든 영세 상점들을 흡수해버리는 시대.

나는 빌딩을 유심히 쳐다보다

점심을 먹기위해 근처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모든 가게들이 내가 방금 보았던 거대 기업의 상표를 달고 있다.

왠지 께름직해 한참을 돌아다니다보니

유달리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개인상점이 보였다.

상점에 들어섰다.

하지만 손님은 보이지 않고

다만 양복입은 사내가 구석에 앉아 점잖게 떡볶이를 먹고 있다.

나는 그 곁에 앉아서 떡볶이를 시켰다.

그가 나를 본다.

그리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

‘네?’

‘혹시 셔츠맨 아니오’

‘맞습니다’

‘맙소사 이런곳에서 셔츠맨을 만나게 되다니’

그는 화색을 하며 나에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더니

자신은 바로 옆 초 거대기업의 회장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설마요’

‘진짜입니다’

‘하지만 왜 초거대 기업의 회장님이

이런 구닥다리 떡볶이집에서 음식을 드십니까’

‘모든 일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있는 법이지요.

우리 회사는 언젠가부터 작은 개인상점들을 인수해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이 가게 말고는 한국 어디에서도

개인의 상점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따뜻한 정을 나눌 서로 다른 이웃들이 사라져 버린것이지요‘

‘그래서 이곳을 찾아오신건가요’

‘그렇습니다’

난 회장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곧 자리를 일어서려 하는데 회장이 내 옷깃을 잡았다.

‘셔츠맨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줄수 있겠소’

‘부탁이요?’

‘이런말 하긴 뭐하지만

내 부하들은 나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돈이 많은 대기업의 회장으로 생각할 뿐이지‘

‘그래서요’

‘옷을 하루만 바꿔입읍시다’

‘옷을요?’

‘그렇소 이 양복은 사실 세계에서 단 한 벌뿐인

초 거대기업 회장만 입을수 있는 특별한 양복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입으면 누구나 당신을

우리 회사의 회장으로 알게 될 것이오

나도 죽기전에 단 한번쯤은 진짜 사람다운 대우를 받아보고 싶소‘

나는 회장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문득 경찰서의 문을 부수던 영세 상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난 잠시후 회장과 옷을 바꿔입었다.

그리고 떡볶이 가게를 빠져나오니

셔츠를 입은 회장을 환대하는 시민들과 달리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매우 따갑다.

나는 대기업 회사를 찾아갔다.

그러니 한 눈에 봐도 위용이 대단하다.

하늘을 찌를만큼 높이솟은 이 건물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마저 그런 모습으로 바꾸어놓았다.

직원들의 고개가 모두 빳빳하다.

자칫하면 모두 천장을 뚫을 기세다.

하지만 내가 건물안으로 들어오는것을 보자

그들이 급히 고개를 수그린다.

난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회장실에 들어섰다.

난 비서들에게 몇 가지 심부름을 시키다가

얼마후 원래 신분을 밝혔다.

‘저는 사실 셔츠맨입니다’

비서들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보다가

얼굴을 확인하고는 정말 회장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급하게 회장실을 뛰쳐나가 전 직원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직원들이 로비로 뛰어나온다.

다들 경악스러운 표정이다.

마치 지금까지 자신들이 속아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곧 반반으로 나뉘었다.

고개를 돌리고 나를 헐뜯는 사람들과

자신의 양복 단추를 급하게 풀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던 것이다.

‘회장님이 셔츠맨이라면 우리도 셔츠맨이 되자’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지쳤어 더 이상 물질만능주의로 치닫는 이런 회사는 꼴뵈기가 싫다고’

‘뭐야 그건 회사를 배신하는거야’

로비는 얼마후 셔츠맨 옹호파와 셔츠맨 반대파로 나뉘어

격렬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나는 그런 모습에 개의치 않고 양복을 천천히 벗었다.

그러니 이 양복안의 셔츠가 할머니가 사주신 것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꽤 고급 셔츠라는걸 알았다.

거추장스러운 수트를 벗어던지고

회장과 바꾼 셔츠를 입은채 건물을 나섰다.

그러자 오십대 오십으로 나뉘었던 직원들의 기세가 한쪽으로 몰아진다.

양복을 거리낌없이 벗어던지는 내 모습에

갈등을 하던 반대파 직원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직원들이

셔츠만 입고 나를 따라오는 모양새가 되었다.

몇몇은 분한 모습으로 회사에 남아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대다수의 직원들은 나를 따라 회사를 기분좋게 걸어나온다.

바깥에는 수많은 상인들이 진을치고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오직 셔츠만을 입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비난하려던 얼굴을 풀고 그들을 반겨 맞아들이기 시작했다.


셔츠맨 4


세계 굴지의 초거대 기업이

단 한명인 셔츠맨에게 무릎을 꿇었단 사실이 알려지자

전 세계는 셔츠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물질 만능주의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가장 자연과 가까운 형태인

셔츠 패션으로 거리를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셔츠는 패션이 되고 생활이 되었으며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나누지 않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나는 놀랍도록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런데 바라보고 있던 티비 한쪽에 뉴스 속보가 뜬다.

그건 바로 어느 지역의 셔츠를 입던 사람들이

한 무리의 일당들에게 붙잡혀

셔츠를 찢기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뉴스였다.

서둘러 그 지역을 확인하고 경찰서로 달려갔다.

그리고 순경에게 오토바이를 빌려타 그 지역에 도착하니

셔츠를 찢긴 사람들이 오열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밖에 없는 자신들의 셔츠가 찢어졌다며

신음소리를 내고 비통함에 잠겨있었고

옆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발가벗은 몸으로 희희낙락거리는 사람들.

살펴보니 모두 팬티만 입고 있다.

그것은 바로 셔츠맨에 대항한다는 의미를 가진

팬티맨을 상징하는 것이였다.

잠시후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활동적인지 보라며

셔츠를 입고는 할수없는

근육질의 몸을 보이기도 하고

이리저리 원숭이처럼 뛰어다니기도 하면서

상대에게 자랑을 했다.

그때 사람들이 나를 알아봤다.

그리고 진짜 셔츠맨이 나타났다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도와줘요 셔츠맨’

‘팬티맨이라니 당치도 않잖아요’

난처하다.

도와달라니 무슨수로.

하지만 울고있는 사람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이깟 셔츠 사실 별것도 아니잖아.

좀 찢겨졌다고 해서 울 필요까지 있나.

팬티만 입으면 어때

난 그 팬티도 뺏겨버려 이제는 없는걸.

그렇게 생각한 나는 힘을 주어 셔츠를 양쪽으로 찢었다.

‘셔츠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합니다’

그러자 팬티를 입고 있던 악당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각이 짧았다며 차례로 다가와 무릎을 꿇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만세를 외치고

방송국에서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난 생각나는 대로 그들이 내민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셔츠든 팬티든 사실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욕심을 부리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말을 내가 어디서 봤더라 불경인가

난 귀가 얼얼해질만큼 환호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시 파출소로 돌아왔다.


셔츠맨 5


‘순경 아저씨’

‘네 셔츠맨’

‘혹시 여기 꿈속인가요’

‘네?’

‘도대체 이 꿈은 깨지도 않네요 혹 꿈이라면 저한테만 살짝 말해주세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에이 알아들었으면서 빨리요’

순간 순경이 피고있던 담뱃불이 떨어져 내 옷에 닿는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셔츠맨’

‘괜찮아요’

그때 또 다른 순경이 급하게 다가왔다.

‘화재입니다. 출동하셔야돼요’

‘화재요? 그런데 화재현장에 경찰도 출동하나요’

‘네 방화 현장이거든요. 출동하셔야 됩니다 빨리요’

‘하지만 셔츠맨은 시대의 현자라면서요. 현자가 이런데도 출동해야 되는거에요?’

그러나 두 순경은 내 말을 무시하고 또 양 팔을 붙잡았다.

생각해보니 이 두 사람 처음부터 나를 잘도 끌고 다닌다.

화재현장에 곧 도착하니

건물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활활 불타고 있다.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고

창문 안에 작은 그림자가 비친다.

‘저기 누가 있어요’

‘그렇네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꼬마야’

그러자 창문 안에서 작은 꼬마가 고개를 내밀었다.

시간이 별로 없다.

나는 아이에게 집 안에 있는 옷들을 모두 모아

그것을 잘 묶으라고 했다.

아이는 말을 잘 알아들었다.

그리고 잠시후 여러개의 셔츠가 높은 건물 밖으로 늘어뜨려졌다.

‘금방 갈게’

셔츠를 양 손으로 붙잡고 천천히 건물을 올라섰다.

아 뜨거.

정말 이럴땐 양말이라도 있어야 하는건데.

하여간 꿈에서도 여자친구가 말썽이다.

사막위를 걷듯 뜨거운 건물을 올라서니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괜찮니’

‘네’

아이는 아직 멀쩡해보였다.

하지만 불꽃은 이미 방 안에까지 들어차고 있다.

‘아저씨 그런데 혹시 셔츠맨이에요?’

‘어 나 셔츠맨이야’

‘맙소사 그럼 살 수 있겠네요’

‘셔츠맨을 그렇게 믿니?’

‘그럼요 셔츠맨은 이 세계의 영웅인걸요’

난 웃고있는 아이를 들쳐업고 급하게 다른 방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불꽃은 이리저리 혓바닥을 길게 내밀며

나와 아이를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든다.

생각을 했다.

이곳에는 물도 없고

몸을 덮을만한 담요도 없다.

분명 죽을 것이다.

그런 확신은 드는데

그래도 아이 한명의 목숨은 잘하면 살릴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해보자.

나는 입고있던 셔츠를 벗어

아이의 몸을 휘감고 정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을 잡아 힘껏 바깥으로 나오니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나와 아이가 거리로 나동그라진다.

사람들이 달려온다.

너무 아프다.

하지만 품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아이가 살아있는 것 같다.


셔츠맨 6


온몸이 불덩이다.

삭신이 이곳저곳 쑤신다.

눈을 뜨니 또 천사가 보였지만

아까처럼 모자를 쓰고 있진 않다.

‘눈을 뜨셨네요. 다행입니다’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살아있었구나’

여자친구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셔츠만 입고 돌아다니면 어떡해’

잠시후 하얀 옷을 입은 의사가 상황을 설명했다.

밤 중에 술이 만취된 내가 차가운 길가에서 잠이 들었다.

그래서 현재 온몸이 마비된 상태다.

지금은 마비증상이 어느정도 풀렸지만

감기가 심하게 걸렸으니 당분간은 입원을 하고 있는게 좋다고 말한다.

저체온증으로 죽을뻔했지만 옷을 하나라도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천만다행이다.

즉 셔츠가 내 목숨을 살렸다.

이불을 들어본다.

중요부위가 달랑거린다.

‘오빠 이제 다시는 안 그럴게 우선 옷부터 입어’

나는 울먹이는 여자친구를 보며 뜻 모를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내가 셔츠만 입고 다녀온 그곳을 알까.

셔츠만 입은 사람이 현자로 대접받는 곳.

물질만능 주의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수 있는 꿈속의 장소.

그곳은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낙원이다.

그래 옷 같은 것은 필요없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밖을 당당히 걸어나왔다.

내 목숨을 구해줬다는 셔츠도 벗어던진다.

아랫도리가 시원하다.

그러자 병실안에 있던 간호사들과 일동이 외친다.

‘안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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