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북 공모전 3편
쉼표
이거.
휴,
아니 이거! 음... 하아?
그다지 소리를 낼 필요가 없을때도 나는 굳이 말을 한다.
이건 바로 글자의 간격들을 확인할 때 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난 교정 작업자다.
교정 일이라는 게 쉽다고 생각하면 쉽지만
무조건 간단하지만은 않다.
예술가들에게 남다른 감수성이 필요하듯
교정 작업자들에게는 유별난 편집력이 요구된다.
편집력은 어쩔때는 편집증의 다른말같기도 하다.
그만큼 집요해야 된다는 뜻이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리고 다시 한번 확인하고
그래서 책이라는 거대한 산이
작은 오타에 타버리지 않게끔 노력해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신조이다.
모든 교정자들이 꼭 나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대충 대충 교정을 한다.
난 그런 사람들이 여간 못마땅했다.
무릇 편집자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
마땅히 편집에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이봐’
‘네’
‘쉬엄쉬엄해’
사장님이다.
그는 일을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만 마치면 됩니다 이번달에는 책이 나와야죠’
‘자네가 그렇게 안해도 이번달에 책이 나올거야 왜 그렇게 집착을 하나’
‘집착이라뇨 사장님 별말씀을’
사장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문을 나섰다.
오늘도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은 나 혼자다.
노을이 진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멀리에 한 포장마차가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떡볶이 집인데
문이 굳게 닫혀있다.
‘사정에 의해 문을 닫습니다, ’
그리고 쉼표 뒤에 무슨 말이 더 쓰여있다.
하지만 그 이상 읽지는 못하고
다만 쉼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내 머리를 탁탁 치고 고개를 다시 든다.
이놈의 편집증이 또 시작이다.
글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교정을 하고 있을라면
온점이나 쉼표 그리고 느낌표 같은 사소한 기호들에 자꾸 집착을 하게 된다.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문양들을 멍하니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이후로도
가게 앞에서 1시간동안 움직이지 못한다는걸 깨달았을때
난 드디어 큰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한 중증 강박증이라는 병명을 내렸다.
그리고 현재 꽤 심각한 상태니
당분간은 일을 내려놓고 완전히 휴식을 취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휴식이라고?
그러나 그건 곤란하다.
이번달에는 반드시 책이 나와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 쉰다는 건 있을수 없는 일이다.
결국 의사의 처방을 한 귀로 흘리고 또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여느날처럼 사장님의 잔소리를 듣고난 후
퇴근을 하고 있는데
어느 공원쯤에서 갑자기 발걸음이 굳어지곤
한 걸음도 나아갈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혼자말을 시작했다.
‘사정에 의해 문을 닫습니다 쉼표’
‘사정에 의해 문을 닫습니다 그 다음에 쉼표...’
‘사정에 의해 문을 닫습니다 쉼표오’
나는 혼잣말을 했다.
왜 그런지는 알수가 없다.
다만 이렇게라도 읊조리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몇 사람이 수군거리며 지나갔다.
그리고 얼마후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경찰이다.
그들은 내게 수상한 사람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으니
경찰서에 함께 가야한다고 말 했다.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결국 무작정 경찰들을 따라가 취조를 받았다.
그들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타다다다다다다닥.
음 지금쯤 온점을 썼을까?
아니지 문장이 다 끝나지 전에는 온점을 쓸 수 없어.
그런데 경찰들은 글을 쓸 때 느낌표를 많이 사용할까 혹 물음표?
객관적인 관점을 요구하는 그들의 직업 성격상
역시 온점을 사용할라나.
난 의자에 앉아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에는 한 경찰이 엉덩빵아를 찧고 앉아
누군가를 손가락을 들어 힘껏 가리키고 있다.
돌아보니 그건 쉼표였다.
난 뭘 잘못보았나 하고 눈을 비벼보았지만
분명 그것은 쉼표였다.
마치 인어공주가 반은 물고기 반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있듯
그것은 얼굴은 쉼표 팔 다리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경찰이 경계하며 쉼표인간의 몸을 잡아 뒤로 돌리니
지퍼가 없어 사람이 변장을 한 것이 아니란걸 알 수 있었다.
손을 들어 온몸을 당겨보아도 떨어지는건 검은 먹물뿐이다.
갑자기 쉼표 인간이 경찰에게 자신의 머리끝을 갖다대었다.
그러자 쉼표인간에게 닿은 경찰이 그 자리에 다소곳이 누워버린다.
당황하는 경찰들을 뒤로하고
쉼표 인간들이 더 들어왔다.
그리고 족히 스무 명은 되어보이는 쉼표 인간들이
자신들의 머리를 차례로 경찰들에게 갖다댄다.
그러자 경찰들의 행동들이 변한다.
‘낚시나 하러 갑시다’
‘경감님 혹시 이거 할줄 아세요? 우리 딸이 하는건데 실뜨기라고’
‘퇴근합시다’
경찰들이 옷을 챙겨입고 서둘러 귀가를 하기 시작했다.
난 뜨악한 표정으로 거리로 나왔다.
길가에는 쉼표 인간들이 우글거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당최 쉼표의 저주라도 시작된걸까.
그때 마침 한 쉼표 인간이 다가왔다.
난 다른 사람들처럼 멍해지고 싶지는 않아 서둘러 도망을 쳤다.
쉼표가 따라온다.
도시를 구석구석 숨어가며 그것을 따돌렸다.
그리고 한 가지 장소를 떠올렸다.
‘그래 떡볶이 가게! 내가 그 가게를 보고난 이후부터 이랬지’
나는 혹시 그 떡볶이 가게에 가면
뭔가를 알아낼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쉼표 인간들을 요리조리 피해 몰래 가게를 찾으니
가게는 여전히 문이 닫혀 있었지만
희미한 빛이 새어나왔다.
천막을 거쳤다.
그러자 거기에 한 여성이 앉아있다.
하지만 그녀도 움직임이 없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내 말 들리세요’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잠시후 그녀가 말했다.
‘난... 쉼표 인간의 저주에 걸렸어요.
‘저주라뇨’
‘쉼표 인간들은 모든 인간을 쉬게 만든답니다‘
그래서 나도 얼마전 가게문을 닫게 되었죠.
지금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수가 없네요‘
그녀가 내게 손짓을 했다.
얼굴을 가까이 갖다댄다.
‘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어요.
이 저주를 풀 방법을 가르쳐 줄게요.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세 가지 장소를 찾으면
쉼표인간들의 저주를 풀어낼수 있답니다‘
그녀에게 저주를 풀 수 있는 힌트를 들었다.
‘침묵의 샘과 감탄의 방 그리고 간결의 집을 찾아가요’
그녀가 입을 다문다.
나는 궁금한 것을 더 물어 보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러니 쉼표인간들이
모두 세 갈래로 모여
어딘가로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난 저들을 각각 따라가면
그녀가 말했던 곳을 찾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쉼표 인간들을 쫓았다.
그러니 숲이 나온다.
높이 솟은 나무들 사이로 어느 암자가 있다.
쉼표 인간들은 그곳을 거침없이 올라가서
닥치는 대로 스님들을 하산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한 방에서만 목탁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그 방을 찾았다.
거기에는 두 명의 스님이 있었다.
그리고 스님들의 머리위로
... 이란 작은 기호가 보였다.
말 없음 표시다.
이 표시는 뭔가 할 말이 있을 때
그러나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기호다.
나는 스님들이 지금 묵언수행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 이란 기호를 손으로 잡아보려했다.
그 순간 오른쪽 스님이 옆 스님에게 말을 건다.
... 표시가 사라진다.
계속해서 기다려보았지만
말 없음 표시가 나타날때마다
오른쪽 스님이 옆 스님의 묵언수행을 방해했다.
바깥에서 쉼표 인간들이 잠긴 문을 흔들어 댄다.
조바심이 나 절 구석으로 숨으려고 하는데
앞 쪽에 커다란 죽비가 보였다.
난 그것을 보고 묘안을 떠올렸다.
그들의 뒤에 다가선다.
‘홀홀 수행은 잘들 되어가시는가’
‘네 주지스님 그런데 바깥에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너무 소란스럽네요’
‘홀홀 묵언수행에 말이 필요한가’
‘앗 아닙니다 스님’
‘그것도 한마디네’
‘죄송합니다’
‘그것도’
‘죄송...’
‘음 그건 두 음절이군’
나는 숨을 들이쉰 후 다시 이야기했다.
‘자 이제부터 내가 자네들의 잡념을 죽비로 다스려줄테니
이후부터는 말을 삼가도록 하시게’
‘알겠습니다’
‘어허’
난 계속해서 말을 참지 못하던 스님의 어깨를 죽비로 두드렸다.
그러자 얼마후 두 스님의 머리위로 ... 이란 기호가 나타났다.
나는 그것을 냉큼 잡았다.
그러니 두 손에 세 개의 바퀴가 쥐어진다.
그것은 마치 스케이트보드 같았는데
바닥에 내려놓고 정면으로 밀자
그 방향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말하자면 이것은 보행수단이 딱히 없던 나에게
새로운 발이 되어줄 무기인 것 같다.
난 그것에 올라타고 다시 쉼표 인간들을 쫓았다.
그런데 이 보드를 타고 있으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평소 나는 교정을 하다
불안할때면 습관적으로 중얼거리던 버릇이 있었는데
이 위에 올라서있으니 어느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없음 표시의 효과인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쉼표인간들을 쫓으니
어느덧 도착한 곳은 놀이공원이였다.
쉼표들은 회전목마에도 올라타있었고
또 온갖 놀이기구에 함께 탑승하여 사람들에게 머리를 갖다대었다.
하지만 놀이공원에 있는 사람들은 그곳을 좀체 떠나지 않았다.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니
놀이공원은 사실 사람들이 쉬기위해서 찾아오는 곳인데
그들이 장소를 잘못 찾은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쉼표인간들도 그걸 느꼈는지 다시 몸을 돌려
놀이공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쉼표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뭔가가 쌩하고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청룡열차다.
탑승한 사람들의 머리위에는 느낌표가 솟아나있다.
그렇구나.
이곳에서 찾을 무기는 ! 다.
감탄.
놀라움.
무서움.
신기함.
바로 이런것들을 나타내는 기호가 느낌표다.
그런데 현재는 청룡열차에 탑승할 수가 없어
나는 무서움을 느낄수 있는 유령의 집으로 걸어들어갔다.
하지만 그 장소에 들어서니
사람들은 묵묵히 서서 걷기만 할 뿐 도무지 겁을 먹지 않는다.
또 머리위에 느낌표가 보이지 않는다.
알고보니 현재 일하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을 하여
유령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난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곧 이곳의 직원 행세를 해보기로 했다.
관계자외 출입금지라 적힌 장소에 들어섰다.
거기에는 유령 가면이 잔뜩 놓여있다.
나는 그것을 쓰고
무덤덤히 걷고있는 사람들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그들이 기겁을 하며 달려간다.
순간 머리위에 ! 가 나타났다.
재빠르게 그것을 낚아챘다.
그러니 손에 검이 쥐어진다.
이번 무기는 검이구나.
아마도 이것을 가지고 쉼표 인간들을 물리치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머지 무기는 뭐지.
말과 검을 얻었으니
다음은 방패일까.
난 마침 놀이공원 직원 한 사람을 데리고 나가던
쉼표 인간의 뒤를 천천히 쫓았다.
그를 한참 쫓고 있으니 어느 하얀 건물이 보였다.
간판을 보니 이곳은 과학 연구소다.
그러나 너무 늦었는지
사무실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연구실도 텅텅 비었다.
실망스런 마음으로 연구소를 나오는데
지하실 계단 밑에서 희미하게 불이 새어나온다.
나는 그곳을 찾았다.
그러니 한 연구자가
책상에 작은 촛불을 켜놓고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중이다.
가까이 가보니 정신없이 휘갈겨쓴 종이들이 보인다.
그는 내가 가까이 있는것도 모르는지 계속해 책만 봤다.
그의 주변을 본다.
그러니 모두 온점 투성이다.
. . . .
헤아릴수 없을만큼 많은 온점들이 연구실안에 즐비하다.
내가 그것을 집으니 곧 커다란 방패가 땅에 떨어진다.
난 이 연구자가 굉장한 집중력으로 연구를 하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간결함 그 자체다.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한 곳에만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어 일을한다.
그제야 간결의 집이라는
아주머니의 힌트가 이해가 된다.
그런데 감동을 받은 내 머리에서 뭔가가 솟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감탄검.
내 머리위에 감탄검이 솟아나왔다.
난 그 감탄검을 뽑아
이미 등에 있던 검과 겹쳐서 꼽았다.
자 이제 모두 구했다.
이제 쉼표인간의 저주를 물리치러 가야한다.
침묵의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다시 공원으로 돌아오니
모든 사람들이 거리에 뻗어 누워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고개를 뻗뻗히 들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떡볶이 아주머니다.
그녀는 근처의 쉼표 인간들과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왔군’
‘아니 아주머니가 왜 여기있죠’
‘너를 기다리고 있었지 무기들은 찾았니’
나는 내 무기들을 그녀에게 보였다.
그러자 그녀가 깔깔 웃는다.
‘대단하군 대단해 역시 편집증에 걸린 사람다워.
그대의 집요함은 나마저도 감탄하게 만드는군‘
그녀 머리위로 감탄검이 솟아오른다.
하지만 그녀는 귀찮은 듯이 손을 들어 그것을 튕겨버렸다.
‘난 쉼표인간들의 여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감탄을 하고 집중하고 또 노력하는 걸 너무나 혐오하지
인간이 쉬지않고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들에 치가 떨린단다.
결국 내가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쉬게 만들어야겠다고 작정했을때
너를 발견하게 됐다.
쓸데없는 기호들에 집착하는 그대.
사소한 것도 절대로 지나치지 않는 그대.
그러니 그대를 없애고 나서야
나머지 인간들을 손쉽게 저주에 걸 수 있다 생각했지.
하지만 난 저주를 걸기전 너와 한번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뭐라고요? 그럼 이 모든 것을 벌인게 아주머니 짓이라는 겁니까’
내가 소리치자 그녀가 웃는다.
‘그래 그런데 나는 아줌마가 아니라 쉼표들의 여왕이라니깐
믿지 못하나 본데 할수없군 자 귀여운 쉼표인간들아 내 친구와 놀아주렴‘
그러자 곁에 있던 쉼표 인간들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나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놀랍다.
그녀가 손을 들어 쉼표인간들은 보내는 속도는
어느 무능한 작가가
쓸데없는 쉼표들을 무차별로 찍어대는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하지만 침묵의 보드가 있다.
난 나를 잡으려는 쉼표들을 잽싸게 피했다.
더군다나 교정 작업자인 나에게
이런 쉼표들을 없애는 일은 매우 기꺼운 일이다.
‘받아라 감탄의 검’
쉼표 인간들이 거침없이 나가떨어진다.
그러자 길가에 검은 잉크들이 흩뿌려졌다.
‘제법이군 역시 내가 지목한 사람다워’
그녀는 어느새 자신 곁에 다가온 내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입김을 분다.
그러자 기분이 이상해진다.
쉬고 싶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거지.
왜 이렇게 싸우고 있는거지.
내 인생의 목적은 쉬는 것이다.
이렇게 뭔가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쉬자.
쉬어야 한다.
망고나 먹으면서 하와이에 갈까.
아니 하와이에 가서 망고를 먹어야지.
아무튼 쉬어야돼. 오로지 쉬자.
그 순간 내 손에 들려있던 방패가 보였다.
난 그것을 가까스로 들어 그녀의 숨결을 막았다.
그러자 생각이 명확해진다.
난 쉬기 위해 태어난게 아니다.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그녀를 무찌르기 위해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걸려있는 쉼표의 저주를 풀어낼 것이다.
나는 곧 몸을 던져 그녀에게 감탄검을 찔렀다.
하지만 그녀는 망토 밑에 숨겨져 있던
쌍 쉼표를 꺼내들어 내 검을 가로챘다.
그리고 그 검을 멀리 던져버렸다.
흥 그 정도는 예상했다.
난 뒤이어 검 하나를 더 뽑아 그녀를 찔렀다.
그러나 찔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찟겨진 옷 사이를 보니 헤아릴수 없이 많은 쉼표들이
그녀의 몸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난 쉼표의 여왕이야 날 너무 우습게 봤군‘
그녀가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바람을 분다.
그런데 이번것은 좀전과는 다르다.
입김을 받자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주마등은 죽을때 찾아오는 것이라던데
혹 이 숨결은 내 영원한 안식을 뜻하는 것일까.
즉 죽음 말이다.
나는 그것을 깨달았지만
곧 여왕의 품에서 서서히 잠들어갔다.
그런데 기억의 끝자락에서
내가 교정 작업자로 직책을 받아
처음으로 열심히 책을 편집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랬지 아름다운 모습이다’
순간 내 품 속에 작은 검 하나가 생겨나는 것이 느껴졌다.
감탄검?
좋아.
이걸로 여왕을 찔러야겠다.
하지만 여왕에게는 약점이 전혀 없는데.
그녀는 무수히 많은 쉼표들로 자신을 에워싸고 있잖아.
문득 교정 작업이 떠올랐다.
쉼표는 편집자가 일을 할 때 자주 보는 기호다.
평소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나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 쉽게 눈에 띄였고
언젠가부터 그것에 집착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성격은 교정 작업자로서 득이면 득이 됐지
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교정 작업자로서 절대 갖지 말아야 할 자세가 바로
대충하는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대충?
그래 사실 대충 일하면 쉼표 따위는 전혀 겁내지 않아도 될텐데.
내가 그동안 쉼표를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어느새 쉼표에게 겁을 먹고 있었나.
목적전도.
그랬군.
그렇다면 쉼표에게 내 정신을 다 먹혀버리느니 이번 한번쯤은 대충해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감탄검을 꺼내 여왕에게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그러자 여왕의 몸에 있던 쉼표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길을 내준다.
그리고 그녀의 몸 안에서 검은 먹물이 뿜어져나온다.
‘알아냈구나 편집자여’
여왕은 바닥에 쓰러져서 끝없이 쉼표들을 토해냈다.
얼마후 노을이 졌다.
그러자 광장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난다.
그리고 나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얼마후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선생님은 나에게 강박 증세가 모두 사라졌다며 기뻐했다.
나도 기뻤지만
정말 좋은 것은 교정 작업을 다시 시작할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동료들은 내 변화를 반가워했고
내 일의 능률은 매우 높아졌다.
그날은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일찍 퇴근을 하려는데
또 떡볶이 가게가 보였다.
오늘도 문은 닫혀있다.
팻말을 보니 그녀의 글이 보인다.
‘사정에 의해 문을 닫습니다,’
쉼표 뒤로 이어진 문장이 더 있다.
‘하지만 곧 돌아올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웃이니까요’
등골이 섬찟하다.
그것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쉼표의 여왕이 언젠가 다시 돌아와
저주를 퍼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젠 괜찮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겐 대충 권법이 생겼으니까.
난 회사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기 전 양 손을 꼭 쥐어
허공을 향해 아무렇게나 흔들었다.
어깨죽지가 다 시원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