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공모전
신과의 통화
죽음을 골몰한다.
오랜 애인과의 헤어짐 때문에.
그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그토록 열렬한 사랑을 했는데
고작 주어지는게 이별이라니.
난 목숨을 끊는다는건 감정적인 사람이나 저지르는
철없는 행동이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내가 걸어 찾아온곳은 한강 다리다.
거세게 흐르는 물살과
단단하게 다져진 시멘트 중
어느곳에 닿아야 덜 고통스러울까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다리 한 가운데 앉아 궁상을 떨고 있는데
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본 구절이 떠올랐다.
‘죽고 싶을때 반드시 시도해볼 것’
내가 종종 보는 잡지책의 한 코너에
신과의 통화방법 이라는 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다.
‘우선 줄을 준비하세요.
하지만 이건 당신의 목을 묶을 줄이 아니라
종이컵과 종이컵을 이어줄 줄이에요.
컵 통화라고 어릴 때 다 한번쯤 해보셨죠.
이건 그것을 변형한 방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문방구에서는 연을 하나 사세요.
종류는 상관없고요.
다음 연 한쪽에 한쪽 컵 모서리를 풀로 붙인다음
바람이 아주 거세게 부는날 그 연을 날리세요.
그럼 신과 통화를 할 수 있답니다‘
오래전 그 잡지를 보고 한참 낄낄거린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남일 같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까운 문방구에 들려 재료를 샀다.
실뭉치와 종이컵 두 개 그리고 연.
컵 아래쪽에 실을 붙이고 다른쪽 컵에도 실을 붙이고나니
컵 전화기가 완성이 됐다.
한쪽컵에 입을 대고 또 다른 컵은 귀에 댄다.
아아 소리를 냈다.
소리가 아주 잘 들린다.
핸드폰이 요즘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예전에는
이렇게 친구들과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곧 한강둔치에 바람이 불었다.
난 컵이 붙은 연을 풀어 하늘로 날렸다.
그러자 연이 기세좋게 날아오른다.
그리고 얼마후 구름속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내 생에 가장 높이 날려본 연일 것이다.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쳤던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종이컵에 귀를 대보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내가 날려올렸던 연이 다시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아쉬워 하며 재차 줄을 감으려하는데
여전히 줄이 팽팽하다.
떨어지고 있는 연을보니 한쪽면에 붙어있던 컵이 사라졌다.
종이컵이 하늘에 떠 있는건가.
다시 컵에 귀를 대어본다.
그러니 무슨 소리가 들린다.
아주 거센 바람소리.
그러면 그렇지.
하지만 그 거센 바람소리 사이로 뭔가
귀에 익은 단어들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신과의 통화 2
‘아아’
‘에?’
컵 안에서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들리십니까’
줄이 여전히 구름속에 닿아있다.
살짝 소름이 돋는다.
‘여보세요’
‘네’
‘전화 거셨으면 말을 하셔야죠’
‘네?’
말문이 막혀 마냥 컵을 들고 있는다.
하지만 계속해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용건만 간단히 합시다. 구름을 계속 유지하기도 쉬운게 아니거든요’
하늘을 올려보니 좀전부터 형성된 구름이 조금도 움직이지를 않는다.
‘제가...’
‘누군지 압니다. 소개는 됐고 용건이 뭡니까’
‘글쎄요 이게 도대체’
‘저기요 요즘 이런식으로 전화 거는분들이 많아져서
일일이 상대해드리기 힘들거든요.
도대체 누가 이런 방법을 만들어냈는지...
하여간 용건만 말씀해 주십시오‘
‘자살을 고민중입니다’
‘자살이요’
‘네 그런데 누구신가요’
‘그것도 모르고 전화를 거셨습니까. 신 아닙니까. 그쪽 담당 신이잖아요’
‘신이라뇨’
‘자살을 하고 싶다더니 정신이 없는 모양이네, 됐고 뭐 때문입니까’
‘뭐 때문이냐고요? 음 여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니요’
‘알겠습니다 끝인가요’
‘네? 아뇨’
‘더 할말이 있습니까’
‘전화통화만 하는건가요’
‘그럼 뭘 더 합니까’
‘신이라는게. 하느님 같은건가요’
‘그런겁니다’
‘그럼 기분을 낫게 해주셔야 되는거 아닌가요’
‘내가 무슨 램프의 요정이랍니까 그냥 그쪽 담당 신이라니까요’
‘신이면 뭐든 할 수 있잖아요’
‘신은 뭐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누가 그럽니까’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요? 그럼 신이 뭘 합니까 상담이라던가’
‘에휴 알겠습니다. 진작 상담이라고 하시지’
‘아니 그런 눈치도 없으세요? 신이라면서요’
‘너무 멀어서 그쪽이 안보입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자살을 하고 싶은 이유가
여자친구와의 헤어짐 때문이라는 거죠’
‘어떻게 해야할까요’
‘글쎄요 우선 전적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군요’
‘전적이라니’
‘자살을 고민한 전적이 있는지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네?’
‘기다려보세요’
잠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잠시후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여기 있네요 19살에 심각하게 자살고민, 사유는 왜 사는지 모르겠어서 맞나요?’
‘그걸 어떻게?’
‘그쪽 담당 신이라니까요. 참 나 이 사람 답답하네’
‘하지만 그때 이야기를 왜 꺼내요’
‘지금은 살아있잖아요. 자살 고민 전적이 있음에도 살아있다는건
아무래도 극복할만한 이유를 찾았다는 것이잖아요‘
‘아하’
‘제가 그 시절의 본인과 연결을 시켜 드릴까요’
‘저를요?’
‘네 그 시절의 당신과 통화를 해보고
자신이 자살을 하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일단 당신이 죽으면 저도 골치아프거든요‘
‘괜찮긴 한데, 신이라면서 너무 무성의한 느낌이 들어요’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요즘 자살 의뢰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거든요.
무슨 이상한 잡지보고 그런다던데 대체 그 잡지 뭡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통화할게요’
‘직접 통화는 안되고요 저한테 전달하십시오 그럼 전달후에 답장을 보내드릴게요’
‘전달하라고요?’
‘자신과의 직접 통화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긴 말도 되나요’
‘네 길게 말씀하세요. 간만에 괜찮은 소리 하나 했네’
‘알았어요 시작할게요.
과거의 나야 잘 지내니? 듣고 있나요?‘
‘적고 있습니다 그냥 말씀하세요’
‘흠흠 난 10년후의 너란다.
내가 10년전 죽음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내가 또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단다
넌 최근 고민을 어떻게 극복 하고 있니 무척 궁금하구나’
‘됐습니까’
‘네 이대로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다시 전화소리가 끊긴다.
그리고 얼마후 신이 말한다.
‘답장이 왔습니다. 잘 들으세요.
미래의 나님 안녕하세요.
제가 요즘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걸 어떻게 아셨나요.
그런데 전 지금 극복할수 없습니다.
전 도대체 왜 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거든요.
공부도 안되고 그 흔하다는 여자친구도 없습니다.
몸이 건강하지도 않고 부모님과도 대화가 전혀 안 통합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한테 얻어터지기나 하고요.
이제 그만 살고 싶어요‘
‘...끝이에요?’
‘끝입니다’
‘이게 뭐에요. 극복할 방법을 알려준다면서요’
‘과거의 자신이 극복할 방법을 찾았던게 아니였나 보네요’
‘그럼요’
‘그냥 자살 고민을 했던거겠죠 그러다 어찌어찌 살아갔고
그러니 10년후에 또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만‘
‘나 원 다시 전달되나요’
‘네 하세요’
‘말할게요.
과거의 나야 들리니.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거니.
대체 그깟 일들로 자살하면 세상의 안 죽을 사람이 어딨겠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전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신이 다시 말한다.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네요.
미래의 나야 계속 반말하는게 기분나빠 나도 반말로 한다.
대체 이깟 일들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현재 부지기수란다.
넌 말을 해도 꼭 그따위로 밖에 못하니 정말 나 답다.
여기까지입니다’
‘뭐요?’
‘과거나 미래나 건방진 말투는 똑같네요’
‘어이가 없네. 다시 전달해주세요’
‘저기 이제 단 한 번만 전달할수 있습니다.
제가 다음 곳으로 이동해야 하거든요‘
‘알았어요. 이렇게 보내세요.
야 이놈의 자식.
너가 자살을 하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쩌라는거니.
공부가 안되면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될것이고
얻어터지면 얻어터지지 않게 방어를 하면 될 것이고
왜 사는지 이유를 모른다면
살 이유를 찾아라 이놈아 전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신이 다시 대답했다
‘이렇게 말하네요.
그럴수 있었으면 벌써 했다 이 놈아.
안 되니까 이러고 앉았지.
너랑 말하고 있으니 기분이 더 우울해진다.
나 이제 죽을란다, 라고 왔습니다‘
‘뭐요! 이런 당장 바꿔줘요’
‘안됩니다. 직접 통화는 불가능하다니까요’
‘제 담당 신이라고 하셨죠. 저 지금 뭐할려고 했는지 아세요?
‘음’
‘죽을려고 하던 참이에요. 저 죽으면 당신도 곤란하다면서요‘
‘매우 곤란하죠’
‘그럼 당장 바꿔요. 직접 통화해야겠어요’
‘안됩니다’
‘나 몰라 지금 죽을거에요’
잠시동안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나서 신이 말한다.
‘한번만 해드리죠.
대신 이 이야기 다른데 가서 하면 안됩니다.
그럼 다른 인간들도 해달라고 조르거든요.
그렇게 되면 진짜 골치 아파집니다.
이거 몰래 해드리는거에요‘
‘빨리요’
‘네 됐습니다. 말하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난 미래의 나다’
‘오 너구나 자꾸 말을 거는게’
‘너 지금 뭐하니’
‘산책하고 있지’
‘태평하구나’
‘폭풍속의 고요랄까’
‘너 요즘 무슨 생각하고 사니’
‘왜 사는지 모르겠다란 생각’
‘이유를 찾아 바보야’
‘바보라고? 그럼 너도 바보다 이 자식아’
‘자식이? 유치한놈 넌 미래에 여자친구도 있단 말이다’
‘여자친구? 못 믿겠다 나 같은 놈이’
‘아니야 정말 있어. 어때 살아야할 이유가 벌써 한가지 생기지 않았니’
‘흠’
‘그리고 또 있어. 너는 키도 더 클거다’
‘그래?’
‘이 정도는 그저 외부적인 변화지.
넌 분명 미래에 많은 변화를 겪게 될거다’
‘근데 미래에 나는 대학 가?’
‘아니 대학은 떨어졌다’
‘젠장. 뭐한거야’
‘공부를 열심히 안했지’
‘취직은’
‘난 백수야’
‘배운건 있고?’
‘아니 대신 난 생각이 무척 많은 편이다’
‘뭐? 그럼 뭐한거야 그동안 펑펑 놀기만 한거야?’
‘인생이 공부가 다가 아니다’
‘지금이랑 변한게 하나도 없네’
‘변한거는 여자친구가 생긴거랑 키가 큰거 정도다
나머지는 내면적인 변화들이지’
‘아우 답답해 정말 내가 너 때문에라도 살아야겠다.
계속 이러고 있으면 너같이 될까봐 겁난다 겁나‘
‘그래 그러니까 살아’
‘알았어. 내가 너 때문에라도 산다. 끊자 끊어!’
‘그래, 잘 지내라’
전화가 끊긴다.
그리고 이윽고 컵 속에서 바람 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난 신에게 재차 말을 걸었지만
더 이상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후 하늘에서 컵 하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한강변의 물 속으로 꼬르륵 가라앉아 버린다.
그러자 물 위에 작은 파문이 일고
곧이어 동심원이 하나둘씩 사라지며 강물이 고요해진다.
우울했던 마음은 점점 가라앉는 느낌이다.
어느새 죽음에 대한 갈등이 깨끗이 사라져 있는 것이다.
너 때문에라도 산다고 했던 과거의 목소리.
과거의 나는 그때 어떻게든 살겠다고 결심했었구나.
맞아 그랬었지.
하지만 좀 민망하다.
미래의 내가 너무 못나보여 살겠다고 결심을 하다니
어쩐지 씁쓸하다.
그래도 좋다.
이제부터라도 그럼 바꾸어볼까.
과거의 내가 동경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되고파 하는 모습으로.
궁상떨지 말고 일어서보자.
그래서 자신에게 큰소리 칠 수 있는 내가 되자
해서 언젠가 다시한번 과거의 나와 대화를 하게된다면
꼭 이렇게 말해주자.
얌마 죽긴 왜 죽어. 이렇게 멋진 미래가 있는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