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고래

by 김민관

향유고래


이 이야기는 바다 속 이야기입니다.

육지를 달리는 치타나 하늘을 나는 독수리보다도

훨씬 아래쪽에 존재하는 그런 바닷속 생물의 이야기죠.

아주 오래전일 수도 있고

혹은 아주 훗날일수도 있는 어느 때에

향유고래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향유고래는 고래중에서도

난폭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해

우리의 주인공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례로 이 고래의 첫 마디가 매우 황당했거든요.

‘여기가 어디지?’

향유고래는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인간으로 말하면 매우 난처한 상황에 처했지만

바다속 세상이란 곳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향유고래가 그 첫마디를 내뱉었을때

그 옆에 있던 불가사리가 한마디 했죠.

‘향유고래야 너가 길에 쓰러져있던것을 내가 데리고 왔어’

사실 불가사리는 향유고래를 데려왔다기 보다

향유고래가 쓰러져있던 곳을 그저 지나치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신경쓰지 마세요.

이 불가사리는 그저 입이 가벼운 생명체일 뿐이랍니다.

향유고래는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정작 아는 생명의 모습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향유고래의 눈 크기 정도 되는 새우가 귀에대고 이야기합니다.

‘기억상실증이로군. 자네 정도 크기라면 못해도 몇십년은 살아왔을 터인데

안타깝게 됐어 대체 어떻게 기억을 잃었을꼬‘

그러나 향유고래는 기억상실증이란 말 자체도 낯섭니다.

아주 기초적인 단어나 자신이 있는 이 장소가 바다라는 것을 빼면

향유고래의 기억에 남아있는것은 실로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해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인간에게 찾아오는 그 흔한 우울증도 없었지요.

그저 불행한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하는 전직 운동선수처럼.

향유고래는 마치 새로 태어난 아기가 된 듯 모든 것을 새롭게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향유고래가 있던 곳이 바다라는 것도 한몫 했죠.

사실 바다란 곳은 모든 것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장소이기에

멀쩡한 생명들도 숱하게 부모를 잃어버리는게 일상다반사인 장소입니다.

해서 바다속 생명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알고리즘을 만들었는데

그건 즉 바다 속 생명들은 모두 그들의 부모이고 또한 고향이다 라는 것이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향유고래는 이미 다 커버린 거대한 고래였지만

자신의 눈알 크기 밖에 안 되는 새우와 불가사리와 또 놀래미 한 마리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새우 어머니 불가사리 아빠

형 놀래미가 생겨버린 셈이죠.

그리고 어느날 향유고래가 새우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제 몸에는 왜 이렇게 상처가 많은 것이지요?’

새우는 향유고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모든 향유고래는 다 그렇단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향유고래들은 대개 심한 상처가 있으니

대수롭게 생각하지 마렴‘

향유고래는 새우 말대로 그 의문을 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배울것과 모르는 것이 한없이 쏟아지는 마당에

자신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 하는것은 시간낭비라고 여겼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날 향유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 심해를 벗어났다가

매우 재밌는 경험을 했습니다.

바로 숨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였는데

자연스럽게 숨을 쉬는 과정에서 그 물들이 매우 아름다운 모양으로

바다위를 수놓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함께 따라왔던 놀래미 형이 그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고래에게 물었지요.

‘향유고래야 넌 어떻게 그런 모양으로 물을 뿜어낼수 있니?’

향유고래는 놀래미의 질문을 받고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그런 물을 어떻게 뿜어낸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놀래미 형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저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형상들을 머리로 뿜어보았을 뿐이에요‘

그러자 놀래미 형이 입을 삐죽 내밀었습니다.

‘칫 알려주기 싫은가보구나 하긴 나 같은 놀래미가 거대한 향유고래의

재주를 따라하는것은 아마 불가능 하겠지 난 향유고래로 태어난 너가 부럽다‘

향유고래가 대답합니다.

‘놀래미 형님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이런 모양으로 물을 뿜어내는 것을 본 적도 없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뿜어보았을 뿐이에요. 전혀 부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 그것이 예술을 하는 물고기와 평범한 물고기들의 차이겠지.

알았다 타고난것이 그런것을 어쩌겠니.

난 그저 한입거리 놀래미고 너는 바다속의 제왕 향유고래니까 말이다

너 향유고래가 왜 향유고래인지 아니?

타고난 몸집으로 군림하며 험한 바다속을 거침없이 향유한다고 해서

향유고래야 정말 축복받은 생물이지 지금은 기억에 없다지만 과거

바다속을 향유하며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을 보았겠니 아마도 그것이

너의 무의식속에 남아있을거야‘

놀래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물 속으로 쪼르르 들어갔습니다.

향유고래는 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떤 말로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정말 이렇게 물을 뿜어내는 방법을 배운적도 없었을뿐더러

자신이 하는 행동을 예술이라 생각한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둘씩 향유고래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생겼습니다.

모든 기이한 행위와 굵직한 음성하며 종종 구역질을 할 때마다

고래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상상을 초월할 물건들.

그것은 역시나 향유고래를 바다의 예술가라 부르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해서 바닷속 생명들은 점점 이 예술을 하는 향유고래 주위로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향유고래는 인기가 생겼습니다.

처음 향유고래는 이런 것이 못내 기뻤습니다.

자신의 재능이 어디서 나온건지 알수없지만

그야 어찌됐든

이로써 자기를 사랑하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즐거웠거든요.

그리고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꺼내놓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향유고래는 흔히 예술을 할 때 꿈을 사용했습니다.

고래는 꿈을 자주 꿨는데

대개가 악몽이였고 개중 즐거운 꿈들도 섞여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들은 악몽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환상적인 것들 뿐이여서

물고기들은 모두 향유고래의 무서운 꿈 이야기를 듣기 원했습니다.

또한 향유고래는 이야기를 들려줄때 자신의 예민한 감성을 사용했습니다.

놀래미 형이 한 마디만 해도 급히 우울해지고 또 밝아지곤 하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바다속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숱한 아름다움을

다채롭게 표현해낸 것이지요.

향유고래가 물을 뿜는 날이면 모든 물고기가

시간에 맞춰 바다 표면으로 올라오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향유고래 가족들에게 위험이 닥쳤죠.

바로 상어떼의 습격입니다.

심해의 하이에나 상어떼들은 주기적으로 바다속 물고기들이 알을 낳는

시기에 맞춰 사냥을 다니는데

상어는 물고기들의 예상을 피해 좀 더 이른 날짜에 물고기들을 급습할때가 있었습니다.

결국 평소 향유고래가 사랑하던 생명체들이 죽어나가고

마침내 어머니 새우 아버지 불가사리 형 놀래미만이 남았지요.

하지만 이상한건 상어떼들이 그들 가족을 보고

계속 망설이는 모습을 취하는 것입니다.

향유고래는 심하게 떨었습니다.

사실 향유고래는 대왕오징어와 싸워도 이길수 있을만큼

엄청난 심해의 포식자지만

이 이야기의 향유고래는 덩치만 클 뿐 마음은 매우 심약한 고래였거든요.

오히려 놀래미 형이 상어떼들에 맞서 향유고래를 보호하고 나섰습니다.

‘올테면 얼마든지 와봐 내 동생은 절대 뺏기지 않아’

그러나 상어떼들은 놀래미의 말은 들은척 만척 계속 그들 가족을

배회했습니다.

몇몇 상어가 갑자기 속도를 내 공격을 하다가도

한 상어가 소리를 내자 다시 행동을 멈춥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래 가족을 빙 돌아 다른 사냥터를 찾아갔습니다.

모두 안도의 숨을 쉽니다.

불가사리가 말합니다.

‘향유고래 덕분이구나 제 아무리 날고기는 상어라해도 너가 덩치가 너무 크니

겁을 먹은 거겠지‘

그러자 새우가 말합니다.

‘하지만 20마리나 되는 상어떼들이 고래 한 마리를 보고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어요‘

놀래미가 말합니다.

‘엄마 아빠 저는 안중에도 없어요? 제 기백에 놀라서 도망친 거라고요’

서운해하는 놀래미를 향해 향유고래가 말했습니다.

‘맞아 형 이건 형 덕분이야. 어머니 아버지 이건 모두 형 덕분이에요

형을 칭찬해주세요’

하지만 새우와 불가사리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을 짓습니다.

놀래미는 화가 씩씩 났고,

향유고래는 그런 형을 달래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향유고래는 꿈을 꾸었습니다.

상어가 나타나 그들 가족을 위협하고

멀어지는 상어를 향해 자신이 그들을 쫓기 시작하는 꿈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꿈에서 깨자 자신이 실제로 상어 무리떼

속에 들어온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자는 사이에 육중한 몸을 끌고

상어의 냄새를 좆아 먼 바다를 헤엄쳐 온 것이지요.

어미 상어가 말합니다.

‘겁도 없군 고래주제에’

아빠 상어도 말합니다

‘아까는 놓아주었지만 이번엔 봐줄수가 없다’

그러자 촐싹거리며 새끼 상어가 말합니다.

‘엄마 아빠 배고파요’

그리고는 상어 세 마리가 고래를 향해 다가오는데

어디선가 커다란 울음소리가 납니다.

그 쪽을 쳐다보니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왠 늙은 상어가 나타납니다.

‘아버지’

‘네놈들 내가 그렇게 일렀거늘 향유고래는 건들지 말라고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아버님 상어에게 사냥을 하지 말라는 이유가 뭡니까’

‘돌아가’

‘할아버지’

‘너도 가라’

늙은 상어가 호통을 치자 세 마리의 상어가 다시 심해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습니다.

눍은 상어가 고래를 쳐다봅니다.

향유고래는 떨려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해파리가 떨듯 가만히 멈춰 있었습니다.

‘내가 무섭겠지 하지만 걱정마라 난 널 죽이지 않는다’

향유고래는 갑자기 드는 질문이 있었지만 입술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늙은 상어가 다시 말합니다.

‘묻고 싶은게 있나’

고래가 겨우 이야기합니다.

‘저를 아시나요’

상어가 말합니다.

‘아주 잘 알지’

‘어떻게 절 아시죠?’

‘너가 새끼때 만났다’

향유고래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습니다.

‘저의 과거를 아시는군요’

늙은 상어는 고래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뜸을 들인후

가볍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너는 이 바다에서 제법 유명해졌더구나 예술을 하는 향유고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너를 알 수 있었던건 어제 사냥터에서 봤던 너의 끔찍한 흉터 때문이였다.

그건... 너의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거지‘

‘제 아버지요?’

‘오래전 난 사냥을 나갔다.

그리고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났지.

넌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 고래였고

나는 입을 벌리고 너의 어머니의 목숨을 단숨에 끊어놓았다.

향유고래는 덩치도 크고 사납기로 유명하지만,

우리 상어떼에 노련미에 비하면 너희 가족은 너무 빈약했거든.

난 그리고 자그마한 너를 잡아삼키려 했다.

그때 너의 아버지가 갑자기 너를 물고 할퀴어 난리법석을 만들더니

내게 애원했다.

부디 이 흉측한 자식을 죽이지 말라고.

제발 자신과 아내만 잡아가라고 말이다.

일부러 자식의 몸에 상처를 내어 우리의 식욕을 떨어지게 만든것이다.

하지만 되려 피 냄새를 맡은 상어떼들이 그대로 새끼 고래에게 돌진했고

아빠 향유고래가 너를 보호하기 위해 혈투를 벌였다.

그리고 너의 아버지가 죽었지.

우리고 싸움으로 기진맥진 했고 너의 아버지 말대로

상처투성이인 죽어가는 새끼 고래까지는 먹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미 두 마리의 거대한 향유고래를 얻었으니까 말이다.

넌 당시 기절한 후라 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순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저는 두려워하지 않았나요?’

‘아니 넌 바들바들 떨고 있었어

아버지가 널 보호하고 있을때조차 그에게서 멀찌감치 도망가 있었지‘

향유고래는 상어의 긴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습니다.

원래는 이 상황에서 우리 부모님의 원수! 하면서 나섰어야 겠지만

향유고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고래는 도저히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차라리 새우와 불가사리가 죽었다면 모를까.

향유고래는 그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나지가 않습니다.

‘그랬군요’

‘왜 화를 내지 않지’

‘화가 나지 않아요’

‘부모님이 기억나지 않나’

‘저는 기억을 잃었거든요’

상어는 고래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알겠다 그만 돌아가라’

그때 향유고래는 상어를 쳐다보고 갑자기 구역질을 하며

몸 속에 있던 기이한 물체를 꺼냈습니다.

그건 희귀한 모양의 돌멩이였는데

향유고래는 상어에게 그것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래도 아는 생명체를 만나 반갑다는 향유고래만의 표시였지요.

상어는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향유고래는 돌을 전달하고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의 가족들을 만났지요.

이 일이 있은후에 고래는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상어떼의 무리속에 혼자 잠입해 살아돌아온 이야기는

물고기들 사이에도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가 되었으니까요.

또 향유고래는 이따금 상어떼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물고기들에게 힘든 바다 생활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말하자면 고래는 바다의 예술가이자 코미디언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향유고래의 살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왕진을 왔던 킹크랩 의사는 향유고래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너무 심하게 받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꿈과 연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꾸는 악몽들과 과도한 감수성이 그를 괴롭게 만들고 있다고 말이죠.

약을 처방 받았지만

그 순간에만 잠시 호전될 뿐 고래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습니다.

고래는 그날도 악몽을 꿨습니다.

늙은 상어가 이야기했던 그날의 꿈을 말입니다.

꿈 속에서 내내 가장 친하게 지내던 향유고래가

갑자기 돌변해 자신을 물어뜯습니다.

고통은 실제처럼 생생하고

결국 상대에게 산산히 찢겨 조각이 난 후에야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우울감에 빠졌습니다.

악몽의 기분에서 벗어날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래는 예술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심한 악몽을 꾸다보니

놀래미 형의 말대로 예술이란 것이

꼭 좋은 점만 있는것은 아닌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자신은 꿈을 사용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얼마든지 표현해낼수 있지만

만약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자신은 그냥 평범해지고 싶습니다.

갑자기 놀래미 형이 부럽습니다.

평범하더라도 그저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지요.

그것이 고래의 바람입니다.

순간 고래는 생각했습니다.

이 과도하게 큰 머리

어쩌면 모든 것이 이곳에서 나오는건 아닐까.

그러니까 이 머리를 으깨버리면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고래는 그 생각을 하고 무작정 심해의 바위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먼 곳에서 돌진해 자신의 머리를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피가 흐르고

서서히 앞이 흐려질때쯤

그제서야 고래는 간신히 편안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삶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끝없는 투쟁 같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잘 됐습니다.

여기서 죽는건 나쁘지 않습니다.

새우와 불가사리 놀래미가 슬퍼하겠지만

그들은 사실 진짜 가족도 아니라고 했으니까요.

한 순간 고래의 진짜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고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향유고래 2


‘저게 뭐야’

‘고래네요’

갑판 위의 선원들이 소리를 친다.

몇 번의 기합소리 후에 커다란 그물에

고래 한 마리가 끌려나온다.

선장이 혀를 찬다.

‘엄청난 크긴데’

‘무게가 얼마나 될까요’

‘몇십톤은 되겠지’

‘그런데 이 고래 이름이 뭐죠?’

‘보면 몰라 향유고래잖아’

‘고래는 처음봐서요 왜 향유고래인가요’

‘이 사람 그 정도 지식은 있어야지.

하긴 그건 지식이 있다고 될 게 아닐수도 있지만‘

‘무슨 말씀이세요’

‘이 향유고래는 매우 슬픈 동물이거든.

향유고래에게는 천적이 있는데 바로 대왕오징어야

아니 어쩌면 향유고래가 대왕오징어의 천적일지 모르지

어찌됐든 둘은 같이 살수 없어.

먼 옛날 거대 오징어 크라켄의 전설에도 향유고래가 등장하거든‘

‘크라켄? 그 괴물 문어 이야기?’

‘이 향유고래의 몸에는 상처가 많은게 특징인데,

그게 대부분 거대오징어와 싸우다 만들어진 거라고 해‘

‘그렇군요’

‘그런데 이 상처 때문인지는 몰라도 향유 고래의 기름은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값비싼 향료로 쓰이지‘

‘횡재했네요’

‘내가 그럼 왜 건졌겠어’

‘역시 사람은 배우고 봐야 된다니까요’

‘하지만 향유고래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

인간이 상처가 나면 그 상처를 치유하고

또 그 과정에서 예술을 탄생시키기도 한다던데

꼭 향유고래가 그런 생물 같거든.

오징어와의 싸움에서 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이런 고급 원료가 탄생하지 않나‘

‘선장님 예술가세요?’

‘뱃사람은 다 예술가지’

‘저는 그냥 뱃사람인데요?’

‘말을 말지’

‘그런데 선장님 저 뒤쪽에서 뭐가 따라와요’

‘상어떼야’

‘속력을 높일까요’

‘냅둬 피냄새 맡고 온걸테고

이런 큰 어선에는 접근 못해‘

‘아무튼 횡재했네요’

‘그래 잘 보관해놔 뜯긴 흔적도 없고

그냥 늙어서 죽은것 같으니‘

‘그런데 선장님’

‘왜’

‘마음속의 상처가 그렇게 쉽게 치유 됩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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