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시체들의 아침
김자까의 57번째 오분 글쓰기
김자까의 오분 글쓰기는 구독자 분들의 사연을 각색해 색다른 소설을 지어보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신청방법: 채널 내 아무 영상 밑 덧글 남기는 곳에 신청 이유와 사연을 적어주세요.
사연 주신 분: 서모군
사연: 취업 걱정이 많아요. 근데 취직을 하기에는 저는 너무 무기력하네요. 이런 상태로 취직을 할 수 있을지…
또 생각나는 게 아, 친구에게 최근 돈을 빌려줬어요. 딱히 받을 생각은 없고요.
오분 글쓰기 시이작->
내 룸메이트 잭은 참 부지런하다.
그는 아침이면 항상 넥타이를 매고
빗으로 머리를 말끔하게 정돈한다.
난 그런 그의 부지런함이 늘 존경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잭이 물었다.
'존,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15달러만 빌려줄 수 있어?'
나는 몸을 일으켜 지갑에서 15달러를 꺼내어줬다.
그는 기뻐하며 곧 갚겠다고 말하고 방에서 나갔다.
(그러나 받을 생각은 없다. 이미 세 번째 빌려가는 것이고
갚지도 않을 걸 알지만 잭은 열심히 살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그런데 잭이 돈을 빌린 후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잭이 메던 넥타이라거나 티셔츠,
왁스 같은 것을 바르며 혼자 지냈다.
물론 내가 활동하는 시간은 주로 한밤중이라 누군가의 눈에 띌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내 모습을 가꾼다는 행위 그 자체가 좋았다.
살아있는 기쁨.
행동을 좇다 보니 부지런히 사는 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될 것 같았다.
그러다 잭이 돌아왔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도 그의 몸이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무릎은 까져 뼈가 보일 지경이었고
피부는 볕에 심하게 그을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다.
'이런 잭, 대체 어디를 갔다 온 거야? 그 상처는…'
나는 침을 삼키고 조심히 덧붙였다.
'자네 혹시 아침에 돌아다닌 건 아니겠지?'
잭이 답했다.
'원 질문하고는 존, 사람이 그럼 아침에 돌아다니지
다 자네처럼 밤에 돌아다니는 줄 아나? 나는 올빼미 족이 아니라고'
'무슨 말을…'
뜸을 들이다 말했다.
'잭, 설마 우리가 죽었다는 것을 또 잊었나?'
넥타이를 풀던 잭의 손이 멈칫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죽었다니?'
잭은 거울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머리가 복잡한 지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북북 긁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봐 존!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아무튼 다 자기 같다고 생각하지 말게!'
잭은 화를 내며 넥타이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문을 박차고 나섰다가 다시 들어와 말했다.
'다신, 그런 이상한 소리 말게. 우리는 죽지 않았어.
이렇게 사지 멀쩡히 살아있는데 왜 그런 엄한 소리를 하나.
저번에 준 돈으로는 선물을 샀네. 갚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 아무튼 고맙네'
그 길로 잭은 나가서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을 바라보다 화장실로 갔다.
거울에 미친 내 모습,
잭과 마찬가지로 얼굴에는 좀이 슬고 눈 밑에 벌레가 기어 다닌다.
그렇다. 나는 좀비다.
좀비는 낮에 돌아다닐 수 없다.
그건 현실이다.
근데 올빼미 족이라니.
자존심이 상해 물을 세게 틀었다. 그리고 잭처럼 세수를 시도했다.
하지만 물이 손에 닿을 때마다
손가락이 떨어질 것처럼 아프다.
(이미 새끼손가락 하나는 덜렁거린다)
'잭은 매번 이걸 어떻게 참지?'
다시 물이 닿았던 곳을 수건으로 닦으려는데 찬장에 새 수건이 보인다.
존에게 라는 메모가 있고 수건에는 LIFE라는 글귀가 크게 박음질되어있다.
잭의 살아있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나는 오랜만에 햇빛이 그리워졌다.
그의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묘지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예상대로 피부가 불같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뜨겁고 아프다.
겁이 나서 다시 들어가려는데 묘비 앞 벤치에 잭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어폰을 꽂은 채 이미 해골이 되어 축 늘어져 있었다.
타들어가는 몸을 이끌고
그의 옆에 앉으니 그가 아침 내내 햇빛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젯밤 나갔는데 고작 반나절 사이에 이렇게 돼버린 것이다
그래 이게 좀비의 삶이다.
끈질기게 버티지만 한 순간에 재가돼버리는.
웃음이 나왔다.
목에서 오랜 흙이 피부와 섞여 살점이 뭉텅이 째
떨어진다.
이러나저러나 잭이 불쌍하다.
죽은 몸으로 햇빛을 마주하다니.
하지만 그를 비난할 수가 없었다.
'잭 그래도 자네는 항상 살아있었군'
나는 그가 끼고 있던 이어폰을 뽑아 다시 묘지로 들어섰다.
죽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당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연거푸 좌절을 겪었다.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잭은 죽자마자 만난 첫 친구였다.
그는 단기 기억 상실증을 겪고 있었다.
그가 죽으니 묘한 감정이 든다.
다시 시작해볼까?'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도 있으니 나에게도 새로운 시작이 찾아오지 않을까.
누군가의 죽음을 나의 시작으로 삼다니 시적이다.
그의 방으로 가니 살아있는 인간들의 물건들이 많다.
난 살아있을 때도 이렇게 살지 않았는데
그는 죽어서도 늘 이렇게 사람같이 산다.
LIFE라는 글자가 진정 어울리는 친구다.
방 가운데 놓인 컴퓨터를 켜고
곰팡이가 슨 손가락을 부지런히 놀려 취업 강의 사이트를 찾았다.
책상에 그가 손톱으로 새겨놓은 글자가 보인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죽는 게 아니다.
죽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죽는다'
오분 글쓰기 끝
제목:살아있는 시체들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