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일할 거예요?

웬만하면 빨리 도망쳐요

by 김민혜

" 여기서 너무 오래 일하진 마요. 정신건강에 안 좋아. 도망쳐요. "



웬걸, 내가 첫 아르바이트로 빵집에 출근했을 때 사수에게 들은 말이었다. 이곳은 집 바로 앞에 있는 빵집이었다. 마침 주말만 일할 사람을 뽑길래 지원한 곳이었다. 알바 초보였던 시절의 나는, 가까운 거리가 제일 좋단 말에 무턱대고 출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나를 강하게 키우셨다. 전문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차비 10만 원 정도 그리고 식사비 10만 원 해서 약 20만 원가량 지원해 주셨다.


이외에는 내가 모두 충당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 평일에는 학교 열심히 다니고 주말에는 일을 하자. 그렇게 마음 먹었는데 도망치라니. 당시 인수인계를 해준 사수는 곧 졸업반이었다. 나에겐 정말 멀리 있는 선배처럼 느껴졌다. 같이 일하는 동안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어려움이 닥쳐도 차분하게 일을 알려주신 분이었다.


어리바리한 내게는 이런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벌써 10년 가까이 다 된 시절이다. 어쩌면 왜곡된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일이 힘들어도 사람이 좋다면, 버틸만하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사수 분과 한 달 가까이 일하면서 열심히 일을 배웠다. 그런데 웬걸. 사수 분이 그만둔다고 하셨다. 멀고도 가까운 사이었다. 처음으로 사회생활 하면서 만난 사람이라 아쉬움이 컸다.


지금 생각하면 사수 분의 나이도 어린 나이인데. 가끔 난감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와주신 분이라 더 서운했다.

딱 한 가지, 지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어떤 중년의 아저씨가 케이크를 들고 들어와서 카운터에 던 지 듯이 놨다.



" 아니, 먹다 보니까 케이크에 머리카락이 들어있더라고요? "

" 환불해주세요. "



사수 분에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장님에게 연락을 취했다. 버터케이크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걸 우리가 진열하는 방식이라 머리카락이 언제, 어떻게, 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분은 영수증도 없으셨고, 언제 사갔는지 알 수 없었다. 거의 절반 이상을 이미 드신 상태였다. 오래전 기억이라 잘 기억 안 나지만, 그분이 폭언을 하고 가게 밖을 나섰다. 내 기억이 맞다면 당장 환불은 어렵다고 말씀드렸었다. 이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셨던 거 같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러나 폭언은 언제나 상처받는 법이다. 사수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그분이 담당하는 일을 하나 둘씩 처내었다. 그게 내 위로의 방식이었다. 알바 초보 시절이라 폭언 몇 마디에 심장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쿵, 쿵. 그리고 시간이 훨씬 지나고 나서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 4시부터 두 시간은 사람 붙여줄 거야. 근데 6시부터는 혼자 맡아볼래? 시급 올려줄게. "



늘 돈이 부족하던 나에게 단비 같은 말이었다. 나는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 솔직히 혼자 가게를 맡아서 4시간 동안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도 컸었다. 그래도 첫 알바 면접을 볼 때 패기를 잊지 않았다. 이 자신감으로 혼자 가게를 맡기 시작했다. 마침 사수 분이 일을 관두고 새로운 분이 오셨다. 일도 나보다 더 잘하시고, 활기찬 분이었다. 나는 참 인복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 아니, 조리사 님이 아침에 그러더라고요. 원래 마감이 철판 트레이 하나, 하나 다 닦아야 된다고. 근데 왜 안 닦는 거냐고. 그래서 제가 마감은 할 일 많다고 했죠. "



내가 말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대신 커버를 쳐주셨다. 근데 억울했다. 나는 그걸 꼭 닦아야 된다고 전달받지 못 했다. 일한 지 몇 개월 만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내가 없을 때 내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겠다고 느꼈다. 그때 느꼈다. 알바는 일만 열심히 하고, 말 수는 줄이자. 일할 때 말이 많으면 딱히 좋은 점은 없는 것 같았다. 참, 이곳은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그래서 나는 첫 면접을 어떤 아저씨께 봤었다. 집도 가깝다는 걸 어필하고, 가정도 화목해서 긍정적이라고 했었다. (이 이야기는 안 해도 됐을 거 같은데 말이다.) 오래 할 수 있냐는 말에 당연하다고 했다. 버티는 건 자신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은 아저씨가 아니라 어떤 여성 분이셨다. 항상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니셨고 고정된 앞머리가 단 한 번도 찰랑 거리지 않았다. 만화 캐릭터에 나오는 사람 같았다.


그분에게 일을 스파르타 식으로 배웠다.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내가 일했던 곳은 우리 동네에서 기피해야 될 가게로 꼽히고 있었다. 사장이 무섭고 이상하다며. 그때 나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줬던 사수분의 말이 생각났다.



" 빵 하나 먹어도 된다고 해서 브라우니 먹고 있는데 전화가 온 거예요. 저를 cctv로 보고서 전화하신 거죠. ' 너 지금 빵 먹고 있지? 그만 먹고 일해. "



틈만 나면 전화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는 늘 조심하게 일했다. 하던 일을 미루지 않고 다 해놓기도 했는데, 몇 번은 에어컨 끄는 걸 잊어먹어서 샤워하다 말고 가게 앞으로 갔었다. 사장님 께 전화해서 울었다.



" 죄송해요. 제가 에어컨을 안 끄고 나왔어요. "

" 괜찮으니까, 집에 들어가 얼른. 늦었다. "



평소에는 예민한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분이지만, 이럴 때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는 메모장에 적어두고 마감 때 빠진 게 없는지 체크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처음 일 시작할 때는 빵 종류도 외워야 하고, 빵에 맞는 박스 호수도 알아둬야 하고, 빵 계산 손님이 밀려서 음료 준비가 늦어지면 듣던 고객의 불만도 벅찼었다.


그리고 10개월을 다 채우고 나서야 그만두었다. 당시 나는 졸업반이었고, 9시가 넘어서야 학교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 사장님 안녕하세요. 마감조 00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졸업반 준비로 할 게 많아져서 일은 10월 말까지 하고 그만두겠습니다. 전화로 말씀드려야 되는데 바쁘실 거 같아, 문자로 먼저 빨리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



문자를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사장님은 아쉬워하며 남은 달만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스파르타 식으로 일을 배우고, 한 달 만에 혼자 가게를 책임지면서 10개월 동안 일을 하게 되었다. 이때 인내심과 책임감을 기르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도 성장했다. 사회는 냉정하고 힘들구나. 그래도 가끔 친절한 손님을 만나면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 나 역시도 늘 친절을 베풀기를 노력했다. 그리고 악명 높았던 곳에서 오래 일한 나는 약간의 자부심도 가졌다. 처음에 힘든 곳에서 일하면 다음 스텝은 조금 쉬워진다.


결론 적으로 빵집 관련 알바 팁을 전수하자면,


1. 아침 조는 마감 조보다 할 일이 더 넘쳐난다. (아침형 인간이면 아침 타임이 맞을지도 모른다.)

2. 미들 타임에는 점심 먹고 오는 손님들이 많아서 정신없다.

3. 크리스마스 때는 케이크를 쌓아둔다.

4. 빵 이름만 잘 외우고 포스만 잘 다룰 줄 안다면 큰 문제는 없다.

5. 통신사 별 할인을 외우고 있으면 유용하다.

6. 적립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꼭 물어봐야 한다.

7. 체력이 좋고, 오래 일 할 수 있다는 어필이 중요하다. (어딜 가든 공통된 말인 거 같다.)

8. 쓸고 닦고를 많이 한다. 특히 빵 진열 된 곳을 자주 쓸고 닦아야 한다.



빵을 좋아하고, 빵 포장을 빨리할 수 있다면 추천한다. 손재주가 좋은 건 덤. 그렇게 나는 알바 이력서에 한 줄 이 생겼다. 빵집 알바 경험. 10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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