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유목민

툭하면 그만두던 시기

by 김민혜

이 시기의 나는 정신을 못 차렸다. 여러 갈래의 선택지를 찾아보지 못 했다. 사실 눈만 살짝 돌리면 다른 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편입을 핑계로 캥거루족이 되었던 거 같다. 그래서 자기 합리화를 하고자 피시방 알바를 하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집에만 있는 건 아니잖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객관화 안 되는 찌질한 역사 그 자체였다. 말하기 창피하지만, 결론적으로 3개월만 하고 관두었다. 사장님이 넌지시 말씀하셨다.



" 그래, 무슨 공부한다고? "

" 편입이요. 하하... 근데 쉽지 않네요. "

" 그래도 무언가 목표를 가지고 나간 다니 다행이다. 응원할게. "



주말 오전부터 오후까지 카운터를 맡았다. 손님들이 나간 자리를 청소하고, 키보드를 탁, 탁 털어서 먼지 한톨 없게 했다. 그리고 음료 주문 부터 밥 종류, 면 종류, 튀김 종류를 다 합해서 만드는 음식이 많았다. 처음에는 서툴렀다. 우르르 모여 드는 손님들은 무조건 하나씩 음식을 시키셨다. 나는 주방 벽지에 붙여진 레시피를 보며 만들었다. 처음엔 익히기 어려웠다. 전자레인지가 다 돌아가면, 튀김을 꺼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료도 만든다.


어쩔땐 손님이 키보드가 고장 났다는 이야길 하신다. 그럴땐 자리를 바꿔드렸다. 그리고 사장님께 보고 드렸다. 사장님과 처음 만나서 일을 배울 때가 생각났었다. 맨 앞 컴퓨터에 앉아서 게임을 하셨다. 나는 카운터에 앉아서 일을 봤다. 사장님은 어려운 게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다. 근데 딱히 어려운 건 없었다. 그러다 창고 뒤에서 맥주를 가져오셨다.



" 너도 먹을래? "

" 에? 아니요. 괜찮아요. "



사장님은 연차가 오래된 알바생 분과 같이 맥주를 드시며 게임을 마저 했다. 그러다 다음 타임 알바분이 오시면 교대를 했다. 그분께 인사를 꾸준히 했는데 받아주신 적이 손에 꼽았었다. 처음엔 당황했다. 그래서 말을 먼저 걸었다.



" 제가 바빠서 밥은 못 했어요. 밥 하셔야 될 거 같아요. "



당당하진 못 했다. 업무를 다 끝내지 못 한게 찝찝했다. 요리만 만들다보니 시간이 훌쩍 넘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분은 대답이 없으셨다. 들으신 건가? 아무튼 머쓱해선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 일이 3달째 반복되자, 나도 점점 의기소침해져서 교대정산만 전달드리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사장님이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달 시켜주셨다. 카운터에 간이 책상을 펼쳐서 서로 나란히 마주보고 먹었다.



" 그래도 같이 얼굴 보고, 일도 했는데 밥은 사줘야 될 거 같아서. "

" 감사합니다. 너무 맛있어요. "



주문이 들어올까봐 전전긍긍하면서도 짜장면은 맛있게 먹었다. 나는 아직도 이 날을 잊지 못한다. 사장님이 무언가를 배달 시켜주신 건 처음이었다. 나는 단순했다. 먹을 걸 사주는 건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피시방은 전에 했던 알바보단 어려운 건 없었다. 물건이 배송오면 뜯어서 정리하고, 음식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조리를 했다. 그리고 역시나 라면을 재고 조사 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어떤 손님이 키오스크로 만원을 충전하셨다. 그분이 저 기계가 만원을 먹었다면서, 어떡하냐고 물었다. 바로 사장님께 전화 걸었다. 받지 않으셨다. 다시 걸었다. 그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나는 카운터에서 만원을 꺼내 그분께 드렸다.



" 일단 이걸로 드릴게요. "



그런데 다음 근무자 분에게 혼났다. 오래 일하신 분이었는데 거의 터줏대감이었다. 나는 간의 의자에 앉아서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가만히 들었다.



" 기계가 먹은 걸 확인은 했어요? "

" 아니요... 너무 순식간이라. 죄송합니다. "

" 하... 다음부터는 혼자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마세요. 만원이 비잖아요, 지금. "

" 죄송합니다. "

" 사장님껜 말씀 드렸어요? "

" 아, 집에 가면서 연락드릴 생각 입니다. "

" 일단 알았어요. 이만 가보세요. "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가 얼른 끊었다. 카톡으로 상황을 말씀 드리고 나중에 답장이 오셨다.



' 괜찮아. 다음부터 확인 잘 해줘. '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앉아 있던 그네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하다니.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죄책감도 심했다. 그리고 마지막 출근날 인사를 안 받아주던 분을 마주쳤다. 내가 먼저 그분에게 인사를 드렸다. 순간 정적이 일어났다. 사장님이 정적을 깨고 들어오셨다.



" 야, 인사하잖아. 너도 인사해야지. "



그녀는 어색한 몸동작으로 하는 듯 마는 듯 눈을 피하며 대충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마지막이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웃으면서 가게를 나왔다. 여기도 내 자리가 아닌 가보다. 씁쓸한 걸음을 뒤로하고 다음 스텝을 생각했다. 대형병원 편의점도, 동네 피시방도 안 맞으면 내가 문제인가? 갑자기 자아성찰이 시작 되었다. 그러다 올해 알바는 그만하기로 결심했다. 일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었다. 내 세상에만 머물러 있으면 고립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짧은 어색함 조차 견디지 못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그렇다면 혼자 지내는 이들은 어떨까. 아마 내가 그랬던 것 처럼 핸드폰을 종일 들여봤을 것이다. 나를 해방시키고 싶다면 간단한 알바부터 하는 것을 추천한다. 결론적으로 짧지만 내가 일한 피시방은 이랬다.



1. 단체 손님은 무조건 3개 이상의 음식을 시키신다.

2. 간단한 조리 방법은 외우는 게 좋다.

3. 밥은 떨어지면 그때 그때 바로 하는 게 좋다.

4. 현금 계산 하시는 분은 쟁반에 음식과 거스름돈을 같이 놓으면 편하다.

5. 번화가 피시방은 바쁘다.

6. 동네 피시방은 한가할 때가 꽤 많다.

7. 흡연실이 있어도 전체적으로 냄새 나는 경우가 있으므로 참고하시길 바란다.

8. 사장님께 배우는 것도 좋지만, 오래 일한 알바생에게 꿀팁을 전수 받으면 좋다.

9. 야간 시간대에 신분증 확인은 필수다.



그렇게 나는 짧지만 경험은 많은 알바 유목민이 되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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