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독에 물 붓기
23살 무렵이었다. 편입을 망치고 재수생으로 등극했다. 지원해 주신 부모님께 죄송해서 알바를 다시 알아봤었다. 동네 주변에는 알바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있는 알바자리를 찾아봤었다.
그러다 편의점 알바를 발견했다. 어느 대학병원 안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알바생을 구하고 있었다.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와, 알바도 하고 공부도 같이 하면 되겠다. 편의점에 출근하려면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나는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첫차를 타고 환승한 뒤 병원까지 걸어갔다. 아침 7시까지 도착해야 돼서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평일 5일 출근이니, 알바비를 꽤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그만큼 노동 강도는 심했다. 오전에는 사이즈 별로 슬리퍼 재고를 조사하고 새로 채워놨다. 중간중간 고구마도 채워놔야 했다. 다 떨어지기 전에 미리 구워놨다. 그런데 사수가 말했다.
" 고구마는 미리 채우실 필요 없어요. 떨어질 거 같을 때 구우시면 돼요. "
고구마를 진열한 칸에는 뜨거운 수증기가 가득했다. 수증기가 고구마를 물렁하게 만들고 있었다. 동시에 꼬치를 팔며 계산도 같이 했다. 계산을 담당하는 자리는 따로 있었는데, 어쩌다 줄이 길면 내가 맡기도 했다. 나는 진열, 재고 조사, 고객 응대 담당 조였다. 그래서 매장을 돌며 떨어진 물건을 바로바로 채웠다. 선입선출. 그게 가장 기본적인 수칙이었다.
그러다 점심이 되면 식품이 들어왔다. 식품을 찾으러 가기 위해 알바분과 지하로 내려갔다. 물류창고형 구르마가 있었는데, 거기에 카트가 잔뜩 쌓여있었다. 마치 탑처럼.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걸 편의점에 가져오면 진열조와 함께 선입선출했다. 다른 분은 수량을 파악하며 용지에 체크를 했다.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서 채워도 금방 떨어졌다. 마침내 휴게시간이 오면 돌아가면서 30분씩 쉬다 돌아왔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허기보다 피곤함이 심했다. 그래서 사람 없는 쪽으로 가서 소파에 앉아 쪽잠을 청했다. 쉬고 오면 동료들이 물었다.
" 뭐 먹었어요? "
" 아... 배 안 고파서 안 먹었어요. "
" 그게 가능해요? 엄청 배고플 거 같은데. "
" 괜찮아요. 집 가서 먹으려고요. "
수면이 식욕을 이겼다. 의자에 앉아서 멍 때린 적도 많았다. 아, 내가 돈을 좇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건가. 아니면 단지 부모님께 죄송해서 그 이유 하나만으로 온 건가. 몸이 힘들면 아무 생각도 안 든다고 하던데. 나 같은 경우 몸이 힘드니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3시 퇴근으로 위안 삼으면서 다녔다.
그때는 마침 실습으로 오신 매니저 분들이 우르르 오셔서 교육 중이셨다. 그러다 그분들 중 한 분과 지하로 같이 내려간 날이 있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긴장이 되었던 건지. 순간 층수를 헷갈렸다. 그가 말했다.
" 너무 어리바리 타는 거 아니에요? "
" 네? 하하하. "
그저 웃음으로 무마했다. 이것도 일의 연장선인가. 정적을 깨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 일하고 싶다.
" 어디 사세요? "
" 아, 저 oo 살아요. "
" 거기서 여기까지 오신 다고요? "
익숙한 반응이었다. 아무렴. 다른 사람이 봐도 너무 먼 거리긴 했다. 갑자기 사수가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 일 왜 그만두시는지 여쭤봐도 돼요? '
' 아, 노동 강도는 높은데 시급은 그대로라서요. 그래서 저희 다 같이 나가는 거예요. '
그랬다. 세 분이 동시에 퇴사해서 나랑 같이 뽑힌 동료들이 있었다. 그냥 지나친 말이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내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일이 익숙해져 갈 때 즈음 퇴사를 결심했다. 그때가 한 달 차였다. 퇴근할 때면 물류가 또 들어왔었다. 슬리퍼, 대형 생리대 등. 각자 맡은 물품으로 수량을 체크하고 물품실에 넣어놨다. 한 달 동안 그 물류들을 관리하니 허리와 손목이 아파왔다. 수없이 고민하다 매니저분께 말했다.
"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두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리고 덧붙였다.
" 진열 쪽에는 저 혼자 여잔데, 아무래도 제가 하는 일은 여자가 하기엔 무리인 것 같아요. 남자분 뽑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렇게 내가 다시 사수가 되고, 인수인계를 받으실 남자분이 오셨다.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했다. 일도 일이지만, 같이 일하던 몇 동료분들과 마음이 맞지 않았다. 혼자 무인도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퇴사서를 쓸 때 수습 매니저 분이 조용히 물으셨다.
" 근데 진짜 나가시는 이유가 뭐예요? 열심히 하셨잖아요. "
" 어... 사실은... "
" 아, 그래요? 아쉽네요. 그런 줄 알았으면 계산대 자리로 옮겨드릴 수 있었을 텐데. "
"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
자세히 쓰면 특정될 수 있기에 말은 다 못 하지만, 그때 솔직한 이유를 말했다. 난 그 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냈던 동료분들과 쫑파티를 했었다. 여전히 내 앨범 속엔 그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이때 깨달은 몇 가지가 있다. 자신의 성정에 맞지 않는 알바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너무 돈만 좇아서 간다면 나를 잃게 된다는 것을. 재수한답 시고 시도했던 알바는 허탈하게 끝났다. 남은 건 통장에 꽂힌 급여였다. 뭣도 모르고 젊음의 패기로 도전했던 일이었다. 무모하니까 겪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조급하면 일을 그르쳤다. 그리고 아무래도 편의점은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1. 정말 돈이 급하다면 대학병원 편의점을 추천한다. (단, 튼튼한 체력과 강철 멘탈은 필수다.)
2. 편의점은 주변에 뭐가 있는지 중요하다.
3. 아파트 근처 편의점이라면 바쁘다.
4. 오피스텔 근처 편의점은 어느 정도 여유롭다.
5. 담배 위치를 잘 외운다면 어려울 건 없다. 남은 건 계산뿐.
6. 편의점이라고 쉽게 봤다가 큰코다칠 수 있다. (필자처럼)
7. 사장님을 잘 만나면 대신 대타도 뛰어주신다.
8. 한 귀로 듣고 흘리는 스킬이 꽤나 필요하다.
그렇다. 이 이후에 아파트 근처 편의점을 일한 적 있었다. 그때 모멸감을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알바도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러다 정직원이 될 기회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두 번째 알바가 끝났다. 마치 신기루처럼.
tmi. 이 이후로 편의점 근무하시는 분이 바코드를 잘 보실 수 있도록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