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어려운 사회생활

by 김민혜

나는 내 주장을 말하기 어려워한다. 어렸을 때 내 주장을 말하면 거절당한 경험이 많았다. 어렸을 때 내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지 못하니, 나이 먹은 지금까지도 소심하게 굴었다. 요즘엔 애견 유치원에서 원장님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 있다.


" 선생님! 맡은 아이들은 선생님이 끝까지 책임지시고 모든 걸 다 맡으셔야 돼요. 다른 유치원은 한 명당 열 마리씩 맡는데 선생님은 그래도 그 정돈 아니잖아요. "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사실 수긍이라긴 보다 울분에 차오른 묵묵부담이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노력을 많이 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찍은 반려견 사진들을 자주 보았고, 따로 분석도 해서 수첩에 적어놨다. 사진 찍는 건 자유지만, 천 장이 넘는 사진 속에서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진 강아지들 사진 50장을 골라야 한다. 그렇게 정리하면 얼추 300장이 추려졌다. 유치원 알림장에 50장을 올려서 원장님께 검사를 맡으면 거의 20장은 삭제 됐다. 좌절스러웠고, 자존감이 떨어졌었다. 공부의 문제일까? 내 센스 감각의 문제 일까? 아니면 애견 유치원 원장님마다 스타일이 다를 텐데. 나는 지금 원장님 스타일에 안 맞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처음에 피드백을 받았을 때는 스스로 자책을 많이 했다.


" 저희도 알려드린 거 또 알려주면 지쳐요. "


일이 적성에 잘 맞아서 버틸만했다. 고민은 늘,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됐다. 나는 아직 미생이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한 편도 아니고 살가운 성격도 아니라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계속된 피드백을 견딜 수 없을 때 주변 사람의 조언을 많이 구했다. 결론은 내가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고,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할 말은 차근차근하라고 했다. 물론 나는 싸우고 싶진 않고, 업무적으로만 주고받고 싶었다. ' 타인의 마음'이란 책에서 신경질 적인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읽었다. 왜,라는 물음표는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 어디서, 어떻게,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면 시정하겠습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이 방법을 써먹었다. 나의 공부한 수첩을 보여드리며 이야기했다. 절대 감정적으로 굴고 싶지도 않았고, 업무적으로만 이야기하고 싶었다.


" 선생님, 저는 이렇게 공부도 하고 선생님들 사진 찍는 법도 자주 보고 하는데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50장을 다 채우는데 거의 삭제가 되니까 죄책감이 들기도 해요. 그리고 빨리 하려다 보니까 실수가 자꾸 나와요.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


그러자 그제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팁이 나왔다. 그저 ' 이렇게 공부하시고요, 이렇게 하셔야 돼요. 왜 내 사진이 삭제되었을까, 고민도 해보시고요. ' 가 아닌, ' 저희는 사진 찍고 나서 틈틈이 사진 정리해요. 그리고 아침에 빨리 아이들 산책시키는 게 좋아요. ' 그렇게 진짜 팁으로 알려주신 방법대로 하니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업무를 끝낼 수 있었다. 내가 가졌던 억울함은 이렇게 공부도 하고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다니는데 그럼에도 부족하단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잡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엔 잔소리라고 생각했고, 그다음엔 나를 위해서 조언을 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악의는 없다고 하셨었다.


내 할 말을 하고 나면 그 뒤에 일어나는 정적들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돌파하고 싶었고, 그러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지 않고선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솔직히 나는 칭찬하면 신나서 일을 열심히 하는 타입인데, 원장님 방식은 달랐다. 칭찬을 하면 자만해진다고 했나. 오히려 적절한 당근과 채찍이 좋은데 말이다. 그래서 주중에 다니는 카페 알바 사장님들을 생각했을 때는 든든했다. 그분들은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를 적재적소에 말씀하셨다. 따로 큰 터치도 없으셨고 문제가 생기면 개인 문자로 조용히 피드백을 해주셨다. 이해심이 참 많은 분들이셨다. 처음 보는 유형의 사장님이라 너무 신기했다. 나도 언젠가 부하직원을 두게 된다면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달까.


미생으로 살아가는 건 다듬어지지 않은 비탈길 위를 걷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자국을 남기고 있으니, 헛된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정민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었는데, 하나님은 내가 훈련받을 수 있는 상황에 넣으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자꾸 그걸 피하면 어딜 가든 똑같은 문제는 반복될 거라고 하셨다. 그때 생각했다. 아, 결국 내가 알을 깨고 나와야 되는구나. 담대하자, 용기를 가지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에 이걸 쭉 밀고 나가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꼭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지금보다 한 단계 성장해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안주하고 싶지 않다. 미래의 나를 위해 성실하게 걷고 싶다. 속도가 어떻든 상관없다. 거북이도 결국에는 도착 지점에 다다르니까. 미생이기에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아 감사하다. 그리고 언제 그만둘지 모르겠지만, 같이 일하는 분들을 존중하고 끝까지 발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아닌, 나의 성장을 위해서.


그러고 보면 요즘 참 당기는 것이 있다. 뜨끈한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 호호 불어먹고 싶다. 이런 소소한 행복이 있으니까, 버티자. 전진하자. 긍정의 조각들을 만들기를 바라며.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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