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갈 용기

by 김민혜

나의 시력은 -5.5다. 안경을 쓰지 않는 날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야 물체가 잘 보였다. 처음에는 이런 과정이 참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시력이 좋았더라면. 유전이 아니었더라면. 애꿎은 부모님 탓만 하고 새벽마다 핸드폰을 봤던 나를 자아성찰 하지 못 했다.


그러다 면접을 보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내 안경에도 습기가 찼다. 안경 너머에 있는 면접관들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기 힘들었다. 때로는 무표정. 때로는 미소. 아니면 눈동자만 움직이는 인형 같은 모습. 그런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다 대학원 면접을 볼 때 갑자기 안경을 벗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안경을 벗어 놓고 면접장에 들어간 기억이 있다. 불과 몇 미터 안 되는 거리였는데,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표정조차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당당하게 정면을 보고 시선을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다시 말해 기죽지 않고 면접을 봤단 이야기다. 그렇게 본 면접들은 합격이었다. 안경을 쓰고 벌벌 떨었을 때는 재주를 발휘하지 못했는데, 안경을 벗고 나니 뵈는 게 없어서 이상한 자신감이 넘쳤다. 그 이후로 안경을 쓰고 벗고 하는 삶이 나름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마치 안경을 쓰면 진짜 현실을 마주하는 느낌이고, 벗으면 내가 원했던 이상 세계를 맛보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발상으로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약점이라 여겼던 것들이 장점이 되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며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불과 몇 년 전, 집에서 은둔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 방송대를 들어가서 공부했던 경험이 있다. 그 경험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루하루 조금씩 도전의 할당량을 채우면 미래의 내게 희망을 주었다. 어둠 속에서 빛이 안 보여서 허우적거릴 때, 이미 나는 허우적거리는 손을 뻗어 빛을 찾고 있었다.


나 자신이 빛을 뿜어낸다면 어둠도 쉬이 다가오지 못한다. 우울함에 짓눌려 몇 날 며칠 누워있더라도, 어느 날엔 이불을 펼쳐 정리하고 샤워를 한다면, 그것이 새로운 기회를 던져준다고 믿는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브런치북은 은둔하고 계신 분들께 나의 경험담을 전하고 싶었다. 나처럼 중증 불안장애에 양극성 장애에 별의별 명칭을 얻는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는 매일 뜨고, 마음 안에 작은 울림이 있다는 것. 그것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빛을 잃었다고 생각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노란 장미는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다고 한다. 사람도 똑같지 않을까. 장미꽃이 피려면 가지치기를 하고, 바람도 쐬어주고, 햇빛도 쐬어주어야 한다. 하물며 식물도 햇빛을 쬐는데. 베란다라도 좋으니 햇빛을 쬐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햇빛이 주는 영향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드는 능력과 새 출발 하는 기분을 주니까. 그러던 어느 날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자, 내가 땅굴을 파놨으니, 어서 들어가!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 땅굴에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땅굴을 판 자와 맞서 싸울 것인지. 매 순간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연속이 미래와 희망을 만든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힘들수록 긍정을 외쳐야 되는 건, 그 생각을 끌어당기는 힘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긍정 회로. 그것을 열심히 만들어간다면, 언젠가 다시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안다. 풀이 죽은 얼굴 너머 뒤로 잘하고 싶단 마음을. 잘 살고 싶단 마음을. 그렇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문고리만 잡고 돌리는 것만 해도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겐 오늘을 누릴 자격이 있다. 언제나, 늘.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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