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 선생님 다음 달 근무 스케줄 말인데요. 아이들이 빠지게 되면서 유치원 타격이 커요. 그래서 선생님 스케줄이 많이 줄 거 같아요. 아무래도 선생님이 자취 중이시니까... "
3월의 마지막 근무 하루를 앞두고 통보받았다. 처음엔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집에 와서 가만 생각해 보니, 등원하는 유치원 친구들이 다시 많아져서 내가 일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연락을 드렸다. 계속 근무가 어려울 거 같다고. 다만 아쉬웠던 건 당일 통보에 가까운 말이었다. 나는 이미 몇 마리의 강아지가 나간 다는 걸 귀띔으로 알고 있었다. 차라리 그때 확실하게 물어봐서 미리 다른 직장을 알아봤어야 했다. 아니면 원장님께서 한 달 전에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내가 지금 처럼 머리 복잡하게 밤을 지새우는 날도 없었을 거다. 일자리를 처음 잃어봐서 상실감이 컸다. 그리고 최선을 다 한 만큼 후회가 없으면서도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사람이 말을 조심해야 되는 게, 친적과 통화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거 같다고 여러 번 말을 했었다. 그러지 말걸. 여러 군데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곳은 핸드폰이 갤럭시라는 이유로 뽑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사진을 찍어야 되는데 아이폰을 더 선호하셨다. 하긴, 일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자격증이 있듯이 핸드폰도 그와 같은 맥락이겠거니, 했다. 계약직으로 라도 좋으니 붙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평, 불만으로 가득 채우던 날을 후회했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걸.
그래도 늦지 않았다고 느꼈다. 아주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긍정과 희망을 가지면 계속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만약에 파도 같은 우울에 잠식되어 있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다. 그래도 면접의 기회가 주어지고 넣을 수 있는 이력서가 존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성경에서 말씀하신, 인생은 고난에서 난 것이다.라는 말씀이 위로가 되었다. 그저 지금은 인내를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인내도, 책임도, 의무도 다 하지 않으면, 나는 어른이라고 할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짐이 되기 싫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먼 지역이라도 이력서를 넣었다. 다만 조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기도했다. 사람인지라 걱정이 아주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계속 문을 두드린다면 길이 나올 거라고 믿었다.
나의 하루하루가 무거운 이유는, 해고 통보를 받아서도 아니고, 경기가 어려워져서도 아니었다. 내 안에 있는 불평과 불만이었다. 부정적인 회로를 멈추고 싶었다. 그리고 어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 하며 징징거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려웠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기도를 먼저 했다. 저자_ 유석경 전도사님의 '당신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이런 문장이 있다. '많은 고난을 올바른 태도로 반응한 사람만이 영적으로 가치 있는 품성을 갖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즐겁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을 중얼거렸다. 잘 될 거야, 잘 되겠지. 걱정하지 말자. 잃은 것에 불평하지 말고 지금 나에게 있는 것들로 감사하자.
아마 이번 달은 아주 치열한 4월이 될 거 같다. 내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꺼지지 않는 나의 작은 불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가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우울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