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기도한 적이 있다. 만약 지금 다니는 애견 유치원에서 1년을 못 채우면 자연스럽게 나가게 해 달라는 기도. 그랬더니 정말 자연스럽게 나가게 됐다. 면접을 볼 때마다 원장님들이 물어봤다. 지금 다니는 유치원은 어쩌다 그만두게 되셨나요. 아, 아이들이 적어져서 유치원 사정이 어렵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다들 같은 업종이라 그런지 이 상황을 이해해 주셨다. 사실 애견 유치원 사업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주로 수원이나 서울 쪽에 몰려있다. 수의 테크니션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공고가 올라오지만 애견 유치원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공고가 뜰 때면 여기저기 이력서를 제출했다. 마음이 조급했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 싫었다. 누구에게 의지하기도 싫었고, 그럴 성격도 못 됐다. 나의 불안이 도전을 만들었고, 나의 조급함이 추진력을 만들었다. 그런데 초조하고 조급해질수록 불안이 커졌다.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책을 읽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막연히 잘 될 거란 마법 같은 단어를 중얼거렸다. 조급한 이유가 무엇인지 조용히 생각해 봤다. 일자리가 없었고, 다니고 싶은 직장은 거리가 너무 멀었고, 생계를 유지해야 된다는 압박감. 아마 이런 것들이 나를 옥죄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감사한 것들을 생각했다. 편하게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분신과 같은 친구들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밥 먹을 쌀이 있고 내게 자격증이 있고, 그동안 원했던 것들은 다 쟁취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취준생을 존경하게 되었다.
나는 백수가 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집에서 울고 불고. 답이 없다고 느끼는 찰나에 묵묵하게 앞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 대단하고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뜬금없지만, 올해 1월부터 '쉬었음 청년'이란 단어에서 '숨 고르기 청년'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단 뉴스를 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었음 청년'이란 단어는 자주 보인다. 직접 겪으니 마음고생이 심했고,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넣어도 부담감이 상당했다.
당장 먹고살기에 급급해서 연애는 사치였고 결혼조차 꿈꾸지 못했다. 우리나라 청년들 너무나도 능력이 출중한 상태에서 그저 취업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기회를 기다렸고, 그 기다림이 파도처럼 휩쓸려 왔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숨 고르기 청년들을 응원하고 있고, 같이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터널 속에 있더라도 끝은 있다고 느낀다. 그 끝을 끝내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도약하고 준비한다는 것. 나는 그 준비를 나비가 되기 전, 애벌레 상태라고 생각한다. 아직 꿈틀거리는 시기지만, 곧 나비가 될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쉬었음 청년'이란 단어가 나타나기 전. 2년 넘게 집에만 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지나서 생각해 보면 필요했던 시기 같다. 그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도전이 두렵지 않고, 무언가에 확신할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필연적으로 겪어야 되는 과정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시련을 겪고 나서 살아가는 인생과 시련 없이 승승장구하는 인생은 마치 신기루 같으며, 사연 있던 인생은 심지를 두텁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들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할 뿐만 아니라 어쭙잖은 위로보다 그저 안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쉽게 포기하기보단 도전하고,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도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힘든 상황이라면, 굳이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럴 땐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각자의 성격도, 외형도, 직업도 다 다른 만큼 각자의 인생도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감히 여기서 어떤 말을 더 얹을 수 있을까. 솔직히 다들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평화주의적인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어제 엄마한테 들었던 말이 있다.
" 나는 너 걱정 안 해. 자신감도 보이고 일을 잘 처리하더라고. 밥도 잘 먹고. 잘 될 거야. "
사실은 친구나 가족들 앞에서 울진 않았다. 혼자 집에서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사람에게 감정 풀이 하기 싫었고, 그렇다고 해서 당장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열렬히 기도하고, 혼자 울었다. 그러더니 막연하지만, 평안이 생겼다. 나는 항상 욥기 5장 8절을 기억했다.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도움이 많이 되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이참에 쉬지 뭐. 별거 있어 우 씨.
??? : 쉬지 마! 이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