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늘 선택과 방향의 기로에 서 있다. 나의 계획과 다른 이의 조언 그리고 예상 밖으로 벌어지는 일들. 하지만 두려움과 불안이 앞선다면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게 된다. 그저 씻고, 눕고, 먹는 것조차 버거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번아웃 상태. 그래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건, 내 몸을 가동할 기름이 있고, 에너지가 있다는 것. 나는 선택과 방황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길을 걸어왔다. 나를 지나친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곁에 남아준 사람들. 때론 그들이 나를 일으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엔 죄책감이 심했다. 나는 왜 끈기가 없을까. 의지가 없을까.
그런데 이제는 안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어떤 걸 가장 싫어하는지. 나와 친해져야 선택과 방향을 올바르게 잡을 수 있다. 만약 잘 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해도, 바로 잡을 수 있다. 조금만 걸음을 옮기면 된다. 내가 나의 시선으로 볼 때 틀렸다고 할 수 있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이 볼 땐 넌 다를 뿐이지 잘 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그런 말을 듣고 다시 일어나서 페달을 돌린다.
걷고 뛰고를 반복하다 보면 쉼터가 나오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준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조급해서 도전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지금 심정으로는 솔직히 괜찮다. 누군가에게 나의 경험을 들려주고, 내가 했던 경험이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도움만 된다면, 그걸로 너무나 충분하다.
필요 없는 거름도 없고, 쓸데없던 길도 비포장 도로일지라도 쓸모 있다. 버려진 조각도 다시 주워서 만들면 된다. 그저 묵묵히 앞을 걸어간다면 희망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도 한때 가정사로 인해 그리고 질병으로 후회 가득한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까워서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희한하게도 지금의 나에게 힘을 주는 시기였음을. 방밖을 나가지 못했어도, 나만의 골방에서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감사하고 그때의 시간이 경이롭다고 느껴진다.
결국 틀린 건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방황의 끝엔 무수히 많은 도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 도전이 헛되지 않고 되레 또 다른 꿈을 만들어준다는 걸 깨닫는다.
(마치 내가 유기묘 카페를 3일 만에 탈주한 것처럼 말이다. 처음으로 고양이가 고양이의 별로 떠난 걸 보고 하루 종일 울었다. 아무래도 나는 돌봄 자질은 없나 보다. 적고 싶은 이야긴 많지만 여기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