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는 것보다 힘든 일.
날이 더운 오늘, 가만히 집을 둘러보니 너무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쌓인 책과 노트, 필기구들은 마음을 바쁘게 만들고, 틈 없이 채워진 옷장은 맛집 앞에 늘어선 줄처럼 숨이 턱 막힌다. 전시품이 되어버린 커피잔들과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티백들, 화장대 위
사용하지 않는 화장품들은 비석처럼 서 있고, 신발장의 신발들은 칸칸이 폐역이 되어 운행을 멈춘 기차처럼 쓸모없이 놓여 있다. 서랍을 열면 자신이 쓰일 순서를 기다리는 생필품들이 줄을 서서 나를 재촉한다.
평소에 물건을 많이 사거나 쟁여 놓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둘러보면 뭐가 이렇게 많은지.
너무 많은 건, 물건뿐이 아니다.
너무 많은 말들, 너무 많은 의미, 너무 많은 그리움이나 너무 많은 화, 너무 많은 기억들.
이토록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는 마음이 공허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정리를 시작했다.
언젠가 쓸지도 몰라서, 버리자니 아까워서, 추억이 담겨서 따위의 이유는 과감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내게 필요한 것과 아닌 것, 내 것이 될 것과 함께 있었지만 결국 내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며 비워내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더하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훨씬 힘들 줄 알았더라면
섣불리 쉽게 채우지 않았을 텐데.
한꺼번에 다 하려다가 지쳐 관둘지 모르니 내일, 모레, 그다음 날, 그 다음다음 날, 꾸준히 비우기로 했다.
내 의지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줄여 가니 그제야 비로소 공간의 주인이 내가 되는 것 같았다.
마음도 마찬가지겠지. 너무 많은 감정에 짓눌리고 쌓아 두면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닌 게 되니까.
오늘 방 한 칸 비워낸 것처럼 오늘은 마음에 쌓인 고민 하나, 내일은 그리움 하나, 모레는 기억 하나,
그렇게 하나씩 비워 가면 마음에 내 자리도 생기겠지.
#.13 열세 번째 번짐
쓰다듬고 싶은 모든 순간 _ 민미레터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