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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미 Mar 28. 2020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Q. 좋아하던 친구가 왜 미워지는  걸까.

                                                                                                                                                                                                                                                                                                       

어느 날, 친구 A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편지 같은 긴 내용이었는데 요약하자면 이렇다. '언니를 정말 좋아하지만 이제 더는 만나기 어렵겠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내 작업실 오픈 파티에 와서 선물까지 주며 축하해준 친구다. 혹시 그날 내가 서운하게 한 거라도 있는지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아 문자를 남겼다. 서운한 게 있다면 미안하다고, 아니면 혹시 잠수 타고 싶은 시기라면 기다릴 테니 수면 위로 나왔을 때 연락 달라고. 답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 떨어져 있는 시간일 거라, 무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로 SNS 관계도 끊기고, 나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과 만남은 유지하면서 나와의 연만 끊은 걸 보고 그제야 심각성을 알았다. 

아- 오랜 기간 천천히 나를 정리했던 거구나. 평소에 서운함을 티 냈거나, 싸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꽤 긴 시간 동안 이유를 찾아야 했다. 게다가 ‘언니를 좋아하지만’이라는 말이 제일 혼란스럽게 했다. 차라리 싫다고 했으면 상처는 받더라도 나도 쉽게 끊어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좋아한 만큼 그 친구 역시 나를 좋아했던 걸 알기 때문에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을 깎아내리며 원점으로 돌아가길 반복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흘러 우린 남이 되었다. 

그즈음 자주 만나던 친구 B는 나와 잘 맞고,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즐거웠다. B가 꿈꿔온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진심으로 그를 응원했었다. 

잘 지내던 친구였는데, 언제부턴가 그의 얄미운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화하고 돌아서며 거슬리는 말이 쌓이고 나도 모르게 마음을 아끼곤 했다. 좋아하는데 왜 그럴까. 지금 내 마음의 여유가 없나. 얄팍한 질투일까. 내가 이 정도 깊이 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원래 있던 단점을 내가 못 봤던 건지, 그가 나중에서야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알 순 없지만 한번 물꼬를 튼 미움은 한 쪽으로만 흘러갔다. 


그가 하는 일이 잘 되어 축하할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안 만나고 말지, 속으론 얄미워하면서 겉으로만 친분을 이어가는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하는 게 딱 그런 것이 아닌가. 한때 시간을 잘 보냈던 친구에 대한 마음이 미움으로 향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만난다면 나는 기어이 그를 싫어할 것이고, 스스로에게도 실망할 것이다. 친구가 보기 싫은 것보다, 그를 미워하려는 내 일그러진 마음을 보기 싫었던 거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못난 내 모습을 마주하는 거라,
결국 나를 싫어하는 것과 같다.


             


                                                                                                                                                 



그 이후로 B와도 천천히 멀어졌다. A처럼 문자로 인연의 끝을 선언한 건 아니지만, 서로의 일상에서 자연히 멀어져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면서 A의 문자가 다시 떠올랐다. ‘언니를 정말 좋아하지만’ 이란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미운 감정으로 혼란스러웠겠구나. 내 작업실 오픈 파티에서 진심으로 축하할 수 없었던 자신을 발견하곤 놀랐을 너. 


나를 끝내 싫어하지 않기 위해 거기서 멈추고 돌아섰던 거구나.


마음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그만큼 좋아했기 때문에, 원래 누군가를 쉽게 미워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운 것이다. 

어째서 미워지는 걸까? 내 마음이 삐뚤어져서 그리 보일 수도 있고, 실제로 미운 행동을 해서일 수도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 다양한 이유 중 어느 하나도 마음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면? 이유도 모른 채 내 마음이 미워하고 있다면? 자신을 탓해야 할까? 이유를 찾아내면 다시 좋아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싫어지는 것은 내 속에서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가 거절하고 있기 때문 _ 마스다 미리’ 


그러면 ‘마음이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워하려고, 혹은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마음에 들어간 긴장이 느슨해진다. 이유 없이 좋아했으니까 이유 없이 미울 수도 있지.



마음이 밀어낸다면 누구보다 중요한 내 마음에 손들어주고 싶다. 


미움도 감정이니 흘러갈 것. 언젠가 우연히 B의 좋은 소식을 듣고 아무런 요동 없이 진심으로 축하하는 나를 보며 미움이 흘러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종종 연락을 하며 다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미워하지 않기 위해 둔 거리가 도움이 된 셈이다. A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던 나에 대한 미움도 흘러갔길, 이해하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너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길, 언젠가 다시 만나기 위한 거리를 지내는 중이라고, 그렇게 내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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