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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미 Apr 04. 2020

혼자여서 괜찮고 함께라서 즐겁다.

Q.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요?”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   



이런 질문은 집순이인 내가 많이 받는 질문이자,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다. 나는 몇 주 이상 집에 있어도 답답함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무 약속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이 마음 알까?


 ‘아- 오늘은 종일 나랑만 있을 수 있겠다.’  


20대 때는 집순이는커녕 한시라도 집에 붙어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밖순이였다. 내 방 한 칸 없이 가족과 사는 집이라 혼자의 시간을 갖기 어려운 탓도 있지만, 굳이 혼자 있을 생각도 못 했다. 나를 혼자 두는 건 외롭고 불안하다고 느껴 계속 누군가 곁에 두려고 했다. 하지만 함께한다고 외로움이나 공허함이 채워지는 건 아니다. 


내 안에 너무 많은 타인을 두면 정작 ‘나’를 둘 곳이 없다는 걸, 그땐 몰랐다.  



어떤 시기, 시련으로부터 유배되듯 혼자 놓인 적이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혼자의 시간이 낯설고 무거웠다. 어색하던 ‘나’와 ‘대화’라는 것을 처음 해본 거나 마찬가지다. 늘 타인에게서 풀려고 했던 물음표들을 자신과 구하는 시간. 그러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과 놓아야 하는 것 등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혼자의 시간은 (놓쳤던)나를 만나기도 하지만(관성 같은)나를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날을 통해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를 데리고 서촌을 걷거나 공원을 가고 전시를 보여주며, 나를 위한 시간을 누리는 것. 집에서 완전한 혼자가 될 땐 모두가 잠든 새벽.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무한의 시간 속에서 마음을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썼고(새벽 감성이란 것이 폭발), 그 작업이 ‘창작’하는 직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집단에 휩쓸리듯 살던 나는 내면에 집중하면서 나의 섬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늘 나보다 타인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는데 내 섬을 만들며 나를 아낄 줄 알게 되었다. 마음에 섬 하나 지어놓으면 혼자서도 할 일이 많다. 상태를 관찰하면서 나무도 심어야 하고 밭도 갈아야 하니까. 생각의 꼬리를 따라가 마음껏 사유하는 것 또한 혼자 할 수 있는 재미. 창작이 필요한 프리랜서라면 혼자의 시간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쓰다 보니 집에 있는 걸 좋아하기보다 ‘나’와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집순이가 아니라 나순이일까) 결혼 후에는 남편이 출근한 동안 혼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굳이 나가지 않아 집순이가 되었나 보다. (새벽감성이 사라진 건 좀 아쉽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맛있는 것을 먹고 취향이나 감정에 대해 대화하는 것처럼, 그런 것들을 ‘나’와 할 필요가 있다. 계속 누군가와 함께하면 상대에게 집중하게 되어 ‘나’와 단둘이 있을 시간은 줄어든다. 

이제는 자신을 너무 혼자 두지 않을 때 되려 불안하다. 혼자의 시간을 예찬하게 된 30대에도 혼자 못 있던 해가 있었는데, 우울한 ‘나'를 마주하는 게 두려웠던 때다. 일부러 북적거리는 분위기에서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나며 혼자만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나의 우울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도록. ‘나’에서 멀어지려는 행동은 혼란의 기간만 더 늘릴 뿐, 결국 혼자의 시간에서 '나'와 오랜 대화를 통해 그 시기를 지날 수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매일 함께 지내야 하는 ‘나’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분위기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편이라 흥과 에너지를 발산하는 쪽이다. 만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고,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다 헤어지니 내가 혼자의 시간을 예찬하는 집순이라는 걸 말할 때마다 지인들은 새삼 놀란다. 혼자로서 충전이 되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얘기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함께인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거다. 


결국, 혼자 잘 있음은 함께 잘 지내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이건 꽤 오랫동안 천천히 자리 잡은 내 습관인데, 누군가와 종일 시간을 보내는 약속을 이틀 이상 연속으로 잡지 않으려 한다. 타인과의 만남 사이에 혼자의 시간을 일정으로 껴둔다. 충전은 물론, 함께 했던 대화나 재미의 여운을 곱씹으며 소중한 시간을 스크랩하는 과정이다. 3일 이상 연속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일은 어쩔 수 없겠지만 친목 약속이라면) 만남의 기쁨이 덜어질 뿐 아니라, 여운을 느낄 새 없이 만남이 하나의 덩어리로 합쳐지는 것 같다. 다 내가 아끼는 이들과 소중한 시간인데 하나로 퉁 쳐지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은 대체로 혼자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다.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여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알며 섬을 가꾸는 사람. 그들과 만나면 섬을 가꾸며 알게 된 얘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서로의 섬을 보여주기도 한다. 함께 나누고 얻은 이야기는 혼자의 시간 속에서 다시 가공되어 내 섬에 더해진다. 혼자의 시간을 이해하기 때문에 만나지 못한다고 사이가 소원해질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혼자의 시간'에서의 충전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만들고, 함께 할 때의 즐거운 리듬은 혼자의 시간에 여운을 남긴다. 혼자여서 괜찮고 함께라서 즐겁다.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혼자 있는 시간에 엄습하는 외로움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목숨처럼 써야 한다. 그러면서 진정한 자신의 주인이 된다. - 이병률/혼자가 혼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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