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로 랄랄라 1
하루에 구만리를 날아간다는 붕조보다 더 빠르게 열흘 간의 여행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사놓고 몇 번 쓰지도 못한 수트케이스가 장렬히 전사했다.
애지중지까지는 아니어도 꺼내 놓은 것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했던
캐리어(혹은 수트케이스)가 쓰레기가 돼버렸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서로 너무 다른 성향을 가진 세 친구들과의 자유여행은
배려심과 협동심을 바탕으로 행복하게 잘 마무리가 되었고 귀국길에 올랐다.
자신은 절대로 이코노미 타고 유럽을 가는 건 불가능하니
혼자라도 비즈니스를 타겠노라고 선언을 했던 친구가 있었다.
듣자마자 눈꼽만큼이나 있는 의리마저 밥 말아먹어 치운 인간이라며
쓴 소리를 있는 대로 날렸던 게 불과 얼마전이었다.
그런데 열흘 간의 여행을 마치고 좁디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몸을 웅크린 채
15시간을 견디자니 절로 그 친구의 결단에 수긍이 갔다.
그래! 돈 되면 혼자라도 비즈니스 타라~~~ !!!
암튼 힘든 비행 끝에 구겨진 몸을 펴고
한국 땅을 밟은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KE OOO에 탔던 200명 넘는 승객 중에 오로지 내 수트케이스만
경유지인 마드리드에서 안 왔다는 것이었다.
맙소사!! 이런 일이 있기는 있구나.
그런데 당사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그래,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을 수 있지.
쿨~~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오랫만의 해외여행이라 자질구레하게 사넣은 기념품들이 걱정되긴 했다.
설마 터지진 않겠지...
사흘 뒤, 담당자가 전화를 했다.
지연된 수하물이 인천공항에 도착을 했는데
손잡이 부분이 부러져서 수리를 하든지 보상을 하든지 해준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시든가요..' 속으론 중얼거리고
수트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만 괜찮으면 됐지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받은 내 사랑하는(갑자기?) 수트케이스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손잡이가 부러졌다기 보다는 거의 아작난 수준이었을 뿐 아니라
귀퉁이마다 움푹 들어가 있고 여기저기 긁혀서 거의 사망 수준이었다.
"아놔, 무슨 이런 O같은 경우가 다 있어?"
"이거 남의 소중한 물건을 그냥 내 던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른 수트케이스들은 모두 아무 일 없이 공항에 무사히 도착해서
주인님들 손을 잡고 편안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불쌍한 내 수트케이스만 말도 통하지 않는 막막한 외국 땅에서
불한당들 손에 패대기쳐진 상태로 어딘가에 쳐박혀 있었구나 싶은 마음에
울컥한 심정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후 벌어진 상황은 겪어본 사람은 다 알만한 내용이다.
구입했던 햇수만큼이나 가격이 평가 절하돼서
"돈으로 보상 받으신다면 5만원도 안되는 액수이고요.
대신 저희가 같은 제조사는 아니지만 새 수트케이스로 보상은 해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그동안 애정을 듬뿍 쏟아부으며 아껴아껴 썼던 내 수트케이스에 대한 가치는
그들의 보상 기준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쓰레기통에 쳐박혔다.
괜히 몇 년 전 세간을 뒤흔들었던 그들의 보스의 더러운 악취가 다시 풍기는 듯했고
왜 망하지 않고 뻔뻔하게 다시 고개 들고 권력을 행사하는지 악담이 절로 나왔는데
니들 수준이 그것 밖에 안되니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분노를 쏟아낼 가치도 없는 것들 때문에 버려지는 내 시간이 아깝다!!(독백!)
하여 모든 걸 접고 그럴 듯한 수트케이스를 받고 끝을 냈다.
그나마 촘촘히 구겨 넣었던 물건들이 별탈없이 내 손에 들어온 것에 만족하자. 쩝……
번쩍번쩍 빛나는 새 수트케이스는 아직 개시도 못한 채 박스 안에 있고
버리기 아까운 내 소중한 수트케이스는 아직 베란다 끝에 모셔져 있다.
좋은 날, 좋은 시간을 잡아서 고이 보내드려야 찜찜한 내 분노도 종결되리라.
새로운 친구와도 더 아름다운 곳에서
더 설레는 시간들을 많이 만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