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치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Sep 24. 2018

정치와 몫

에티엔 발리바르_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를 넘어서

에티엔 발리바르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를 넘어서      

진태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에티엔 발리바르는 누구인가?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Etienne Balibar, 1942~)는 국내의 젊은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90년대 대학을 다니고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들에게는 꽤 친숙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전개된 한국사회성격논쟁에서 이른바 민중민주혁명(PD)파의 이론적 주춧돌이었다. 그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된 이후 그는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공론장에서 거의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맹위를 떨치고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극우 정치의 온상으로 기능하게 되면서 발리바르는 다시 유령처럼 국내에 되돌아왔다. 왜 대중들은 스스로 예속당하는 것을 욕망하는지, 왜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 연대하는 대신 부자들을 위해 서로 증오하는지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이가 바로 발리바르이기 때문이다. 

  발리바르의 사상적 이력은 외관상 크게 두 개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려 했던 그의 스승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의 이론적 문제설정에 기반을 두고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원칙 및 주요 개념들을 쇄신하려는 작업을 수행하던 시기다(1960년대~1970년대 말). 두 번째 시기는 알튀세르가 착란 속에서 부인을 목졸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유폐된 이후 역사적 마르크스주의를 해체하면서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1789)에 대한 재독해에 의거하여 급진 정치철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시기다(198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는 현대 유럽 이론가들 중에서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끊임없이 참조하는 드문 이론가이고, 인종과 민족 또는 국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거의 유일한 사상가이며, 알튀세르 사상의 현재성을 고수해온 유일한 인물이다.    



이데올로기론을 개조하기     

  1980년대는 발리바르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을 시도한 시기였다. 우선 발리바르는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이데올로기 개념의 동요에서 찾는다(�대중들의 공포�, 서관모ㆍ최원 옮김, 도서출판b, 2007 참조). 곧 고전 마르크스주의는 경제적 모순을 다른 사회적 모순들이 근거해야 하는 중심적이고, 심지어 유일한 모순으로 간주했으며, 더욱이 이를 진화주의나 종말론적인 역사철학에 따라 사고했다. 그리하여 공산주의로의 이행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사고되거나 아니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결정적인 투쟁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맹목은 곧바로 파시즘과 나치즘의 집권이라는 대가를 낳았으며, 결국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붕괴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진단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스승인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개념과 호명(interpellation) 개념에 입각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론을 개조하는 데 핵심적인 진전을 이룩했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여전히 난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는 역사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데올로기가 역사적으로 전개되고 위기와 전환을 겪는 과정을 충실하게 분석할 수 없었다. 둘째, 그의 이론은 이데올로기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재생산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경제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지만, 이데올로기가 다른 물질적 모순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사유하지 못했다.

  따라서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쇄신은 발리바르가 1980년대에 시도했던 마르크스주의 탈구축의 핵심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그는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공동으로 저술한 �인종, 국민, 계급�(1988)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맹목점으로 남아 있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분석하기 위해 국민형태(nation form) 개념을 제안한다. 국민형태라는 개념은 프랑스, 러시아, 독일 같은 국민 공동체를 자연적이고 초역사적인 공동체로 간주하는 가상에서 벗어나, 국민의 역사적 형성과 재생산, 전환 과정을 계급투쟁과 결부시켜 사고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국민형태 개념은 한편으로 국적=시민권 개념과, 다른 한편으로 허구적 민족체(fictive ethnicity)라는 또 다른 개념과 연결된다. 국적=시민권은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국적을 가진 성원에게만 부여해온 근대 국민국가의 경향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는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표현된 보편적 민주주의 원칙을 제한해온 근대 민주주의 정치체의 한계를 드러내준다(�정치체에 대한 권리�,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1 참조). 또한 허구적 민족체는 국민국가의 배타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적 국민 공동체가 마치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초역사적 민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처럼 제시하는 가상(‘단군의 자손’과 같은)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 발리바르는 근대 국민국가의 모순과 함께 그 변혁의 방향을 사고하기 위한 이론틀을 마련한다.     




스피노자와 함께 정치를      

  �스피노자와 정치�(초판 1985; 진태원 옮김, 그린비, 2014)에 집약되어 있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연구는 계급 관계로 환원될 수 없는 대중운동의 철학적 기초를 탐색하는 데서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그는 네그리와 더불어, 하지만 또한 네그리와 매우 다른 관점에서 스피노자 다중(multitude) 개념의 독창성에 주목한 최초의 연구자였다. 네그리가 다중을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이해한다면, 발리바르에게 다중 개념은 방법론적 개체론과 전체론을 넘어서는 관개체성(transindividuality)을 사고하기 위한 원천이 되며 민주주의의 양면성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관개체성 개념은, 사회적 관계는 원자적인 개인들로 구성되지 않고 국가나 국민 같은 초개인적인 전체로 구성되지도 않으며, 따라서 사회적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개인이나 국가 같은 추상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개인이나 국가는 스피노자가 다중이라고 부르는 사회적 갈등 관계 속에서 생성, 재생산, 전환을 거듭한다.

  또한 다중은 민주주의와 관련한 스피노자의 이중적 태도를 집약적으로 드러내주는 개념이다. 한편으로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가장 완전한 정체”로 규정하며, 모든 국가의 토대를 “다중의 역량”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치론� 이곳저곳에서 다중으로의 복귀를 어떻게 해서든 피해야 하는 위험 또는 파국적 상황으로 묘사한다.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이러한 모순적 태도에서 민주주의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는다. 

  첫째, 스피노자에게 다중으로의 복귀는 아나키, 곧 사회적 관계의 해체를 뜻한다. 따라서 이는 폭력과 갈등의 폭발을 의미하며, 개인들에게는 생명과 안전의 위협을 뜻한다. 자연 상태와 유사한 이러한 아나키 상태에서 개인들의 평등과 자유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는 결국 스피노자가 민주주의 및 정치적 관계 일반을 본질적으로 취약한 것, 또는 선험적인 토대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하지만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거부하지 않고 다중을 통제나 억제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다중을 모든 국가의 토대로 제시한다. 이는 스피노자에게 정치란 초월적(가령 신)이거나 자연적인 토대(가령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에 기초를 둘 수 없으며, 오직 대중들의 집합적인 실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뜻한다. 곧 스피노자에게 민주주의는 오직 제도들 및 집합적 실천의 결과로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발리바르는 민주주의는 법적인 관점에서 규정된(곧 군주정이나 귀족정과 구별되는) 하나의 정치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갈등적인 과정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기존의 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민들의 봉기 운동인 ‘민주주의의 민주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의 세 개념     

 1990년대 이후 에티엔 발리바르는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해체 작업을 넘어 진보 정치를 쇄신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을 수행해왔다. 특히 「정치의 세 개념: 해방, 변혁, 시민다움」은 1990년대 이후 발리바르 정치철학의 개념적 모체를 명료하게 보여준다(�대중들의 공포�에 수록). 

  첫 번째 정치의 개념인 해방(emancipation)은 근대 민주주의 정치는 초월적이거나 자연적인 토대를 갖지 않으며, 피억압자 자신의 해방의 역량을 유일한 기초로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리바르는 1789년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선언�(이하 �선언�으로 약칭)에서 이러한 해방의 정치의 원칙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었다고 본다. 

  반면 두 번째 개념인 변혁(transformation)은, 정치를 규정하는 물질적ㆍ상징적 조건들, 특히 지배 구조 및 권력 관계들의 변혁을 정치의 중심적인 대상으로 삼는 정치를 의미한다. 그는 마르크스와 푸코의 사상을 변혁의 정치의 두 가지 경쟁적인 모델로 제시한다. 

  세 번째 정치는 시민다움(civility)의 정치로, 이는 정체성들의 폭력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를 가리킨다. 세 번째 개념이 필요한 이유는, 해방과 변혁의 정치는 능동적인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을 전제할 뿐, 지배 구조의 강화로 인해 그러한 주체의 가능성이 잠식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민다움의 정치는 극단적 폭력을 퇴치하거나 감축하기 위한 반(反)폭력의 정치다.     

평등자유명제      

  �선언�은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발표된 문서로, 근대 세계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텍스트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프랑스 헌법은 �선언�을 헌법 전문(前文)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선언�을 이중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한편으로 중세의 신분적 예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선언�은 정치적 해방을 선언하고 있지만, �선언�이 말하는 정치적으로 해방된 인간 내지 시민 대부분은 아무런 소유도 없이 자본의 굴레에 예속된 프롤레타리아들이다. 따라서 �선언�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할수록,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의 현실은 은폐되고 만다.

  하지만 발리바르가 보기에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은 �선언�의 의의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방의 정치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도 장애가 된다. 발리바르는 �선언�의 핵심은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긍정한 데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가 뜻하는 것은, “피압제자들의 해방은 오직 그들 자신에 의해 쟁취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약간 부연해보자. 근대 이전까지 정치 공동체는 한편으로 신의 율법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다른 한편으로 자연적인 질서(인간 본성이나 혈통과 같은)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선언�이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선언하면서, 정치 공동체는 더 이상 신성하거나 자연적인 질서에 기초를 둘 수 없게 되었다. 곧 정치 공동체는 이제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자유와 평등을 지키고 보장하기 위해 세운 정치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정치 공동체 안에 억압과 지배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근거는 피억압자들과 피지배자들 자신의 단결된 힘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곧 시민들의 평등 없이 시민들의 자유 없고, 또 역으로 시민들의 자유 없이 평등 없으며, 시민들 자신의 연대와 단결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뜻이다. 발리바르는 이를 “평등자유명제”라고 부르며, �선언�의 핵심에는 바로 이 명제가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이 명제는 1789년 당시에만 유효했던 명제가 아니라, 그 이후 역사적으로 존재한 거의 모든 해방 운동의 근거로 작용했던 명제다. 가령 19세기 후반의 여성운동, 20세기 초반의 식민지 해방운동, 20세기 후반의 흑인인권운동이 모두 이 명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선언�과 그 핵심으로서 평등자유명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보 정치의 주춧돌을 이룬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주장이다.     




시민다움     

  발리바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시민다움의 정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는 오늘날의 세계에는 극단적인 폭력의 양상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폭력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초객체적 폭력(ultra-objective violence)이다. 이것은 가령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거나 고통 받는 아프리카, 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회용 인간’으로서 마약 밀매나 중노동에 시달리는 남아메리카 등에서 나타나는 폭력이다. 곧 사람들을 사물이나 도구로 환원해버리는 폭력이다. 이러한 참혹한 현실은 겉보기에는 자연재해나 전염병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다중적인 요인들에서 생겼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초주체적 폭력(ultra-subjective violence)이다. 이 폭력은 어떠한 진보적 변혁도 목표로 삼지 않는 희망 없는 반역, 목적 없는 폭력의 일반화(테러나 자살 폭탄 등을 포함하는) 같은 현상들을 가리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1990년대 이후 여러 차례 발생한 이른바 ‘민족 청소’나 대량 학살 등에서 나타나는 증오의 이상화 현상이다. 곧 자기 내부에 있는 타자성과 이질성의 모든 흔적을 제거함으로써 민족이나 인종의 정체성을 순수하게 구현하려는, 심지어 자기 자신을 파괴하면서도 그것을 구현하려고 하는 맹목적이고 초주체적인 의지 작용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극단적 폭력을 특수한 지역이나 경우에 국한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초객체적 폭력은 사람들이 단순한 사물이나 도구(또는 상품)로 취급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나타나며, 또한 초주체적 폭력은 개인들이 어떤 집단적인 권위나 이상(특히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속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정치의 개념들이나 문제틀로는 이러한 극단적 폭력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정치 문법은 그것이 착취이든 억압이든 폭력이든 간에, 그것에 맞서고 더 나아가 그것을 폐지하거나 철폐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를 자명한 것으로 가정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객체적 폭력과 초주체적 폭력이 공격하고 잠식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집단적 주체의 가능성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신자유주의와 새로운 공안 정치의 결합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극단적 폭력들에 맞서기 위해 발리바르는 원칙적으로 두 가지 정치를 결합해야 할 필요성을 지적한다. 하나는 모든 헌정에 내재적인 구성적 봉기의 역량을 복원하고 확장하려는 운동으로서 시민권의 정치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 공동체를 탈본질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시민다움의 정치다. 정치 공동체를 어떤 특정한 정체성(가령 민족)을 지닌 시민들 위에 근거 짓지 않고, 좀더 개방적이고 다원화된 (탈)정체화의 과정 속에서 개조하는 것이 바로 시민다움의 정치의 목표다. 




  따라서 발리바르에게는 “차이 및 평등의 권리와 동시에 연대와 공동체의 권리를 함께 요구하는 것”(�정치체에 대한 권리�), 그리고 그것을 담론과 실천, 제도 속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오늘날 진보 정치의 근본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대중민주주의()폭력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철학 강사 인터뷰          

1. 강의의 부제가 대중민주주의반폭력” 입니다이 주제들을 부제로 삼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 세 가지 단어는 제가 보기에 1980년대 이후 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사상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라고 할 만한 것을 선별해본 것입니다.      

“대중”이라는 주제는 한편으로는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재해석과 관련되어 있고(네그리와 더불어 스피노자 철학에서 다중(multitudo)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밝혀 준 연구자가 발리바르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맑스주의 전통에서 정치의 주체로 간주된 ‘계급’으로 환원되지 않는 정치적 행위자, 가령 인종, 민족 내지 국민 같은 행위자를 사고하기 위한 준거의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대중”은 정치의 환원 불가능한 복합성을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민주주의”라는 주제 역시 발리바르 정치철학의 중핵을 이루는 주제입니다. 민주주의라는 주제는 겉보기에는 진부한 주제 같지만, 사실 국내에 널리 소개된 유럽 사상가들 중에서 민주주의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이론가는 별로 없습니다. 아마 자크 랑시에르 정도가 민주주의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주목할 만한 철학자이고, 바디우가 됐든 지젝이나 네그리, 아감벤이 됐든 민주주의에 관해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뒤에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발리바르의 민주주의론은 그가 “평등자유명제”라고 부르는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간단히 말하자면, 한편으로 계급 관계에 기초를 둔 맑스주의 정치학과 다른 한편으로 흔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18세기 프랑스혁명 및 미국 독립혁명에 토대를 둔 근대 민주주의의 유산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발로입니다. 과거에 맑스주의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계급 착취의 현실을 은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고,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자들은 맑스주의 정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무시하는 전체주의 정치학이라고 비판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역사적 맑스주의가 종언을 고함으로써 오늘날 이러한 논쟁은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또 자유주의자들은 결국 승리한 것은 자유민주주의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서 그 대안적인 체제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개 ‘진보적인’ 학자들이 내놓는 답변은 북유럽식 복지국가입니다. 복지국가가 중요한 역사적 업적이기는 하지만, 발리바르는 국민국가의 역사적 성취로서 복지국가 또는 그의 용어법대로 하면 국민-사회국가 내지 사회적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좀 더 급진적인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반폭력”은 지난 1990년대 이후 발리바르 정치철학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발리바르가 말하는 반폭력은 폭력 일반에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극단적 폭력이라고 부르는 폭력의 극단적 형태들에 반대한다는 뜻입니다. 극단적 폭력은 사람들을 일회용 상품으로 만드는 폭력이면서 자신들과 다른 타자를 극단적으로 증오하고 배척하는 폭력이기도 합니다. 발리바르는 극단적 폭력은 정치적 주체성을 잠식하는 폭력이기 때문에 특히 위험하고 심각한 폭력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폭력에 맞서 정치적인 것을 보존하고 확장하려는 노력을 표현하는 것이 반폭력이라는 개념입니다.          


2. 발리바르는 80년대 PD의 사상적 준거였다고 하셨는데, 2016년의 우리에게 발리바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에티엔 발리바르는 오늘날 우리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1) 제가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황해문화� 2014년 봄호)에서 말한 바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각광받는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조르조 아감벤, 안토니오 네그리, 또는 어느 정도는 자크 랑시에르 같은 이론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깥의 정치’를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바깥의 정치라고 부르는 사상은 현대 정치의 대표적인 모델로 간주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지배의 체제라고 간주하며, 따라서 인민의 권력으로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바깥에 존재하는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발견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그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 중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첫째, 우선 바깥의 정치의 사상가들처럼 반동적 정치체제로서 자유민주주의와 거기에서 벗어나는 해방적인 정치 체제를 전면적으로 대립시키는 것은 외관상으로는 명쾌하고 선명해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는 정치체의 역사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습니다. 둘째,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관점은 역설적이게도 제도적인 민주주의 정치가 지배의 체제로 기능하는 것을 이론적실천적으로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입니다. 바깥의 정치에서 주장하듯이 제도적인 정치가 본성상 지배의 체제라면,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는 그 바깥에서 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제도적인 정치 자체를 내부에서 개조하는 일은 헛수고에 불과하거나 사소한 문제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제도적인 정치 내부에서 어떠한 퇴락이나 퇴행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비판하거나 제어하는 것 또는 그것을 개혁하는 것은 어렵게 됩니다. 제도적인 정치는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배자들로서는 오히려 환영할 만한 관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반면 발리바르는 바깥의 정치 사상가들처럼 제도적인 정치 바깥에서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찾지 않으며, 최장집 교수처럼 제도적인 정치(특히 정당정치)야말로 진정한 정치의 영역이라고 강변하면서 운동을 배제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바깥의 정치와 제도 정치 사이의 변증법에 주목합니다. 발리바르가 보기에 근대 민주주의는 1789년의 프랑스혁명과 같은 봉기적인 사건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제도적 민주주의의 퇴락과 보수화 경향에 맞서 그 생명력을 유지ㆍ강화시켜 주는 것 역시 시민들의 봉기적인 투쟁입니다. 하지만 봉기가 일회적인 사건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강한 의미에서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발리바르는 봉기와 제도의 변증법 속에서 자신의 민주주의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2) 우리나라에 널리 소개되어 있는 동시대의 많은 유럽 사상가들에게 특징적인 점은 매우 환원적인 사상적 성향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특히 앞에서 이야기한 바깥의 정치를 주창하는 이론가들이나 특히 제가 좌파 메시아주의 사상가들이라고 부른 바디우, 지젝, 아감벤은 지극히 환원주의적인 사상가들입니다. 가령 아감벤에게서 정치의 문제는 주권과 생명의 문제로 환원되고, 지젝은 고전적인 혁명론을 실재의 차원에서 되풀이하고 있으며, 바디우나 네그리는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이론화한 공산주의야말로 진정한 정치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제가 5강에서 다루겠지만, 발리바르는 근대 시민혁명의 핵심을 이루는 해방(emancipation) 개념, 맑스주의와 푸코 정치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변혁(transformation) 개념, 그리고 반폭력의 정치의 요체를 이루는 시민다움(civility) 개념 같이 적어도 세 가지 개념을 통해 정치의 복합적인 다면적인 측면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맑스주의적인 변혁의 정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근대 시민혁명에서 유래한 민주주의의 이상과 연결하려는 시도이며, 또한 두 가지 정치만으로는 제대로 개념화할 수 없는 폭력의 문제를 시민다움 개념으로 사고하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처럼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한 가지 개념이나 관점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헛된 시도에 그칠 수 있으며, 더욱이 체제 전체를 단숨에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중 매체의 관심을 끌기는 좋겠지만, 의미 있는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구체적인 실천을 중시하는 진보적인 활동가나 연구자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복지국가론이나 제도적 민주주의론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제도권 정당 활동에 투신하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이런 연구나 활동이 나름대로 중요성을 지닌다는 점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발리바르의 작업은 바깥의 정치냐 제도 정치냐, 정당이냐 운동이냐, 대항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하는 불모의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3. 발리바르의 평등자유명제라든지, “시민다움과 같은 개념들은 계몽적인 느낌이 나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어요좌파 지식인이 이런 주제에 천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발리바르의 민주주의론은 사실 한편으로 맑스주의적인 정치학과 다른 한편으로 18세기 프랑스혁명 및 미국혁명에서 표출된 근대 시민혁명 또는 부르주아 혁명의 유산을 함께 사고하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등자유명제”라는 것 자체가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발표되었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대한 재해석에서 도출된 명제입니다. 보통 맑스주의자들은 계급적 관점에서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진정한 민주주의 또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주창하곤 했습니다. 「인권선언」에서 제시된 인간의 권리나 시민의 권리 같은 것은 이미 낡았을 뿐만 아니라 형식적이고 제한적인 민주주의의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맑스주의적인 민주주의론은 숱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제대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자유주의적인 비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 곧 당의 독재에 대한 옹호론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또한 최근 국내에 번역된 �불화: 정치와 철학�에서 랑시에르는 맑스주의적 정치학을 메타정치라고 규정하면서 그 한계를 고발한 바 있습니다.     

발리바르의 경우는 맑스주의에 대하여 자유주의적인 의미의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보충하거나 접합하기보다는, 민주주의 개념 그 자체를 다시 사고해보기 위해 1789년 발표된 「인권선언」 텍스트로 되돌아가 이 텍스트에서 “평등자유명제”를 추출해냅니다. 이 명제의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프랑스의 정치철학자였던 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의 작업이 꽤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르포르는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구별을 통해 근대 민주주의의 본질을 새롭게 사고하려고 시도한 바 있습니다. 프랑스어에서 정치를 가리키는 단어는 라 폴리티크(la politique)이며, 르 폴리티크(le politique)는 원래 ‘정치가’를 뜻하는 말입니다. 반면 르포르는 경제나 사회, 문화와 구별되는 인간 활동의 한 영역을 지칭하는 정치와 구별되는 좀더 근원적인 차원, 곧 어떤 사회를 하나의 사회로 성립하게 해주는 상징적 차원을 가리키는 말로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이라는 개념을 정의합니다. 특히 ‘정치적인 것’은 정치적 근대성 및 그것을 창설한 프랑스혁명의 새로움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고안되었습니다(L’invention démocratique, Fayard, 1981; Essais sur le politique, Seuil, 1994).     

그에게 근대 민주주의 체제가 이전의 체제와 다른 점은, 예전에 왕으로 대표되던 주권자의 자리, 곧 “권력의 자리”를 “빈 장소”로 비워놓았다는 점입니다. 이 자리는 상이한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를 가진 집단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영원히 차지할 수는 없으며, 그 자리의 점유자는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교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전체주의 체제는 총통이나 수령, 당의 이름으로 비어 있는 그 자리를 (영속적으로) 메우려고 했으며, 이것이 두 체제를 가르는 본질적인 차이점입니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반(反)전체주의로 규정하고 주기적인 선거와 다당제를 그것의 핵심 특징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르포르 정치학은 일면 자유주의적 성격을 지닙니다. 하지만 르포르가 르포르가 상징적 통일성과 현실적인 분열 사이의 괴리를 가리키는 ‘빈 장소’를 강조할 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인권선언」에서 표방된 권리가 제도화된 법적 틀을 넘어선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것은 법적ㆍ제도적인 틀을 기초 지으면서 동시에 그러한 틀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권리의 창조를 촉발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봉기적 원천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발리바르가 ‘평등자유명제’로 재해석하려는 것이 바로 근대 민주주의의 이러한 봉기적 특성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제도화된 자유민주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의 근저에 놓여 있으며, 그러한 역사적 제도의 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시민다움’(civility)이라는 개념은 반폭력의 정치를 사고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약간 곤혹스러운 측면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프랑스어의 civilité나 영어의 civility에는 우리말로 하면 ‘공중도덕’ ‘사회적 예법’ 같은 의미도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약자나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거리에 침을 뱉지 않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 등이 civilité나 civility의 일상적 용법일 것입니다. 이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데, 문제는 이처럼 공중도덕이나 사회적 예절을 강조하는 것이 쉽게 치안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동원된다는 점입니다. 가령 2005년 프랑스의 방리유 소요를 촉발했던 계기 중 하나도 당시 프랑스 내무장관이었던 사르코지가 내걸었던 ‘엥시빌리테(incivilité)와의 투쟁’, 곧 사회 질서나 공중 예절을 어지럽히는 무뢰배들(주로 이주자들)과의 투쟁이었습니다.     

하지만 발리바르가 시빌리테 또는 시빌리티라는 용어에서 주목하는 것은 오히려 마키아벨리적인 유산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탈리아어인 키빌리타civilità라는 용어가 발리바르가 말하는 시빌리테의 더 직접적인 이론적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 시대에 ‘시민적인 것’(시민적인 업무/활동)과 ‘시민적인 삶의 양식’을 가리키던 이 개념은 발리바르의 시빌리테라는 개념이 목표로 삼는 것을 잘 드러내줍니다. 시빌리테라는 개념은 단순한 사회적 예절이나 공중도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극단적 폭력으로 인해 그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시민적인 것, 곧 정치적인 것의 영역을 가리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영역을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 특히 그것을 뒷받침하는 시민들 자신의 윤리적 노력과 의지를 표현하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시빌리테라는 개념은 시민권 내지 시민성(citoyenneté/citizenship)이라는 개념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들이 계몽적인 개념인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습니다. 발리바르는 이 개념들을 군주정이나 봉건 질서에 맞선 근대 초기의 시민들의 투쟁이나 시민혁명 그리고 그에 대한 이론적 성찰에서 이끌어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발리바르의 이론적 작업은 ‘새로운 계몽주의’를 추구하려는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단, ‘새로운 계몽주의’라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두 가지 점만 간략하게 지적해보겠습니다.     

말년에 푸코가 관심을 기울인 텍스트는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1984)라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에 대해 강의도 하고 또 같은 제목의 논문도 발표하면서 푸코가 강조한 점 중 하나는 ‘소수, 약소자, 미성년’이라는 다양한 뜻을 갖는 minorité/minority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소수[약소자, 미성년]에서 벗어날 것인가가 계몽주의의 핵심 주제였으며, 푸코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의 화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는 들뢰즈-가타리의 작업에서도 중요한 문제였고, 랑시에르도 매우 강조하는 논점이었습니다. 랑시에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해방이란 소수[약소자, 미성년]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자기 스스로의 힘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소수[약소자, 미성년]에서 탈출할 수 없다. 노동자들을 해방하는 것은 노동을 새로운 사회의 정초 원리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소수[약소자, 미성년]의 상태에서 탈출하도록 만드는 것이자, 그들이 정말 사회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고, 그들이 정말 공통 공간 속에서 모두와 소통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도래할 사회를 지배할 대항-권력을 정초하는 것보다는 능력을 증명하는 것―그것은 또한 공동체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이 중요하다. 스스로 해방된다는 것은 이탈을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 세계를 함께-나누는 자로서 자신을 긍정하는 것, 비록 겉모습은 다르지만 우리가 상대와 같은 게임을 할 수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도서출판 길, 2013, 93쪽)     

어떻게 노동자 또는 대중 또는 민중 또는 을(乙)들이 소수파와 약소자 또는 정치적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는, 18-19세기에만 중요했던 질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당장 여기에서 제일 간절한 질문입니다. 헬조선, 망한민국, 금수저, 흙수저라는 혐오 담론이 유행하고 있지만, 그 담론들이 증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약소자들, 소수파들, 정치적 미성년들이 다수를 이루는 사회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실로 이것이, 다시 말해 민중, 다중을 약소자들[소수들미성년들]의 다수로 또는 을들의 다수로 만드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효과입니다. 이 문제를 중요한 정치적 질문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계몽주의입니다.

둘째,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약소자[소수, 미성년] 또는 을이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는 간단한 숫자로 드러납니다. 몇 년 전 뉴욕에서 벌어졌던 오퀴파이 운동의 구호는 “1 : 99”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숫자는 심각한 착각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염두에 둔다면, 오히려 더 현실성 있는 숫자는 “51 : 48”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후자의 숫자는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50대 이상, 특히 60대 이상의 노년 유권자들은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 노년 유권자들 중 대다수는 우리가 방금 전에 약소자[소수, 미성년] 또는 을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선거공학적인 숫자놀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매우 새로우면서도 심각한 현상입니다. 저는 이것도 역시 새로운 계몽주의가 화두로 삼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4. “평등자유명제가 궁금합니다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이 생기는데 자유와 평등을 한꺼번에 말할 수 있다는 건가요?     

“평등자유명제”(proposition of the equaliberty)는 2010년 발리바르가 프랑스어로 출간한 책 제목이면서, 그가 1989년에 발표한 논문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제목에서 흥미로운 표현은 “평등자유”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프랑스어로 하면 l'égaliberté이고 영어로 하면 equaliberty입니다. 보시다시피 이것은 ‘평등’을 뜻하는 égalité/equality와 ‘자유’를 뜻하는 liberté/liberty를 합쳐서 만든 합성어입니다.      

발리바르가 이렇게 두 개의 단어를 합쳐서 합성어를 만든 첫 번째 이유는 평등과 자유라는 것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본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바로 프랑스혁명 및 「인권선언」의 철학적ㆍ정치적 핵심을 표현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평등과 자유를 정치의 핵심적인 원리이지만 또한 서로 상반된 또는 적어도 매우 상이한 지향을 갖는 원리라고 간주합니다. 평등을 추구할 경우 자유가 침해되거나 약화되고 반면 자유를 추구할 경우 평등이 위태로워지거나 훼손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발리바르가 ‘평등자유’, 곧 평등=자유라는 개념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평등이 반박되고 부정당하는 역사적 상황은 자유가 반박되고 부정되는 역사적 상황과 정확히 같다는 사실, “평등을 억압하거나 제한하지 않으면서—즉 폐지하지 않으면서—자유를 억압하거나 제한하는 조건들의 사례는 없고, 또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둘째, 중요한 것은 개인적 자유와 집단적 자유,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을 구별하고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과 자유를 서로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어떤 것인지 묻는 것입니다. 예컨대 자유가 평등이 아니라면, 곧 자유가 불평등의 조건 속에서 성립하는 자유라면, 그때 자유는 우월성이나 특권의 표현(강자의 자유, 귀족의 자유 등)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신보다 우월한 어떤 힘이나 세력에 복종할 수 있는 ‘자유’(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신분적 예속으로부터, 생산수단으로부터 이중으로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가 평등과 분리되어 실제로는 전혀 자유가 아닌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평등과 결합되고, 그것과 동일화되어야 합니다. 역으로 평등은 “모든 예속과 지배에 대한 근본적 부정의 일반 형식으로, 곧 자유 그 자체의 자유화/해방(libération)으로 사고되어야” 합니다. 요컨대 우리는 불평등한 상태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고, 또한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진정으로 평등할 수 없다는 것이 발리바르가 평등자유명제를 통해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로 추출해낸 명제입니다.     

따라서 발리바르가 평등자유명제를 「인권선언」의 이론적 핵심으로 제시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근대 정치, 근대 민주주의의 본질은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의 선언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억압받고 착취 받고 차별 받는 피지배자들, 을들의 해방은 을들 스스로 쟁취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점입니다. 근대 정치는 더 이상 신과 같은 초월적 원칙이나 본성이나 혈통 같은 자연적 원칙에도 근거하지 않고, 시민들 자신의 상호 이익 내지 호혜성을 위한 결사체라는 데 자신의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5. 끝으로 발리바르를 처음 읽는 수강생들이 미리 읽었으면 좋을 만한 책을 1~2권 소개해 주시죠.        

제가 권하고 싶은 책은 우선 제가 번역한 �정치체에 대한 권리�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발리바르의 다른 책에 비하면 분량도 많지 않고, 문체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편입니다. 특히 「국민우선에서 정치의 발명으로」 같은 글은 1990년대 발리바르가 고민했던 민주주의의 핵심 쟁점을 아주 구체적이면서 설득력 있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글입니다.      

두 번째로 권하고 싶은 책은 �스피노자와 정치�라는 책입니다. 특히 1부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1부는 원래 프랑스에서 문고판 단행본 저작으로 출간된 바 있으며,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그의 정치학에 관한 가장 탁월한 입문서로 평가받고 있는 책입니다.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려는 독자나 발리바르 정치철학에서 스피노자가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려는 독자 모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몫 없는 이들의 몫을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I. 몫 없는 이들로서의 을     

  을(乙)이라는 용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시사적인 용어 중 하나가 되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을은 크게 두 가지 뜻으로 정의된다. 하나는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이 있을 때, 그중 하나의 이름을 대신하여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둘째를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다. 앞의 것은 을이 계약 관계에서 두 상대방 중 하나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는 뜻이고, 뒤의 것은 갑, 을, 병, 정 등에서 을이 두 번째 위치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을이라는 말은 아주 평범한 말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을이라는 말은 비정규직 취업자들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고, 대기업의 하청 업체 직원들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들, 또는 재벌 기업의 횡포에 피해를 당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을은 약자이고 피해자, 못 가진 자, 주변화된 자, 배제된 자, 또는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린다면 “몫 없는 이들”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용어가 학자들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대중들 스스로 만들어낸 말이라는 점이다. 주로 계약관계에서 당사자 중 한 쪽을 지칭하기 위해 널리 통용되던 말이 사회적 약자, 몫 없는 이들 일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등장하고, 이제 어느덧 하나의 개념의 지위의 문턱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여러 모로 흥미로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을이라는 말이 이처럼 무거운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두 가지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하나는 최근 영국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기한 ‘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두 개의 레그눔regnum 사이의 시대, 곧 하나의 통치 시대와 다른 통치 시대 사이, 하나의 정치체와 다른 정치체 사이, 더 나아가 하나의 문명과 다른 문명의 사이라는 문제. 사회적 약자, “몫 없는 이들”의 아우성의 표현으로서의 을은 이러한 사이의 문제, 이행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주체에 관한 물음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치적 주체의 문제는 현대 정치철학의 근본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다. 어쩌면 화두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대 정치철학에서 정치적 주체의 문제가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첫 번째 인터레그넘의 문제와 긴밀하게 결부돼 있다. 곧 이전의 통치, 이전의 정치체, 이전의 문명에서 정치의 주체로 존재했던 것들이 더 이상 정치적 주체로 기능하지 못하는 반면, 새로 나타날 정치적 주체는 누구인가, 어떤 정치적 주체가 새로운 통치와 정치체, 문명의 주체가 될 것인가의 문제는 불확실한 채 남겨져 있다. 이 문제에서 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주체의 명칭인가 아니면 적어도 우리에게 그 주체의 방향을 가리켜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을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과거의 주체의 잔영인가? 이것이 내가 두 번째로 제기하고 싶은 질문이다.




II. 인터레그넘의 시대     

  인터레그넘이라는 개념은 로마법에서 유래하는 용어로, 원래는 최고 권력의 공백 상태 또는 헌정의 중단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가령 통치하던 왕이 죽었는데, 아직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이전의 상태가 바로 인터레그넘에 해당한다. 이 용어에 대해 좀 더 현대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였다. 그람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기는 정확히 말하면, 낡은 것이 소멸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인터레그넘에서는 극히 다양한 병리적 증상들이 출현하게 된다.” 그람시는 원래 법학 개념이었던 인터레그넘에 대하여 좀 더 포괄적인 사회적ㆍ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곧 레닌이 ‘혁명적 상황’을 ‘지배자들이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고 피지배자들이 더 이상 지배받으려고 하지 않는’ 상황으로 정의했던 것을 염두에 두면서도 그람시는 그것을 진지전의 맥락에서 재해석한다. 곧 그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조형하는 법적ㆍ제도적 틀이 더 이상 자신의 효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것을 대체해야 할 새로운 틀이 아직 형성되지 못한 상태 또는 여전히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인터레그넘의 시기로 규정한다. 

  바우만이 그람시의 이 개념을 되살려 말하고자 한 것은 현대 세계가 인터레그넘의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는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세계 질서를 뒤흔들어버렸다. 영토ㆍ국민(또는 인구)ㆍ주권이라는, 기존의 정치 질서를 특징짓는 세 가지 요소는 세계화로 인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국가에 기초를 둔 주권은, 세계 시장, 초국민적 자본의 힘으로 인해 반쪽짜리의 권위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우만이 간명하게 말하듯이 “정치가들은 결정을 내릴 때면, 월요일 주식시장이 재개된 뒤 과연 자신들의 결정이 제대로 실행될 기회를 얻게 될지 아니면 그릇된 결정이었다고 판명이 날지 초조하게 기다린다.” 따라서 오늘날 각 국 정부는 한편으로 그들을 뽑아준 유권자들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시장의 압력 역시 받게 된다.

  바우만은 “권력과 정치의 결별”에서 인터레그넘의 핵심적인 징표를 발견한다. 여기서 권력은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며 정치는 “어떤 것을 실행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국민국가의 시대에 권력과 정치는 동일한 영토의 한계 내에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작동했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에 권력은 국민국가의 영토를 넘어서 “정치에서 자유로운 ‘흐름의 공간’으로 증발되어” 버린 반면, 정치는 여전히 이전과 마찬가지로 국민국가라는 지역적인 수준 또는 “‘장소들의 공간’”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국민국가의 정치적 제도 바깥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특히 세계시장 및 자본의 권력)이 오늘날 사회적ㆍ개인적인 삶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국민국가의 정치적 제도 및 그것이 대표하는 국민 또는 인민의 주권적 힘은 이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바우만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나는 우리 역시 인터레그넘의 시기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바우만이 살고 있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세계화의 강력한 자장에 속해 있는 만큼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그가 분석한 바와 같은 인터레그넘의 시기에 속해 있지만, 우리는 또한 또 다른 의미의 인터레그넘의 시기를 겪고 있다. 나는 이것이 특히 세월호 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지난 4월에 출간된 인문학자들의 세월호에 관한 성찰을 묶은 책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세월호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 바 있다. 

  첫 번째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가장 단단한 현실”이라고 믿었던 국가가 사실은 “너무나 허망한 어떤 것이라는 점 ... 커다란 공백이고 검은 구멍이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고 늘 자랑하던 자신들의 국가가 사실은 한 사람의 국민의 생명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둘째, 더욱이 이러한 무능력은 “단순한 무능력이 아니라 무의지의 표현이라는 점, 곧 국가는 단지 구조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조할 생각이나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치안기계로서의 국가가 가장 큰 관심과 공력을 기울이는 것은 더 이상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대중적 분노를 일으킨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국가는 당연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의 목숨을 구조하는 것을 일차적인 의무로 여겨야 한다고 믿었던 대중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드러낸 이러한 계급적이고 치안기계적인 성격에 분노하고 또한 절망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은 많은 사람들에게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가리키는 환유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분노, 좌절감을 가져다 준 것은, 이 사건이 “가난한 우리를 위한 국가는 없다, 가난한 나를 위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 그리고 다음 차례는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가는 그들의 편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었다.

  세월호라는 이름이 뜻하는 두 번째 것은, 세월호 사건이 말하자면 과소주체성(under-subjectivity)의 표현이라는 점이다. 과소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의미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세월호 사건은 객관적 요인보다는 주체적인 요인에 의해, 더 정확히 말하면 주체성의 부재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선원들의 도덕적 책임감의 부재일 수도 있고, 오직 이윤추구만을 위해 다 낡은 배를 무리하게 운항한 해운사의 천박한 경영 방식일 수도 있고, 이를 제대로 관리ㆍ감독하지 못하고 방치한 정부 기관의 도덕적 해이일 수도 있고, 눈앞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승객들을 보고도 외면한 해양경찰들의 잘못일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건이 일어난 후 이를 제대로 수습하고 처리하지 못한 중앙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일 수 있으며, 피해를 당한 유가족들을 충분히 위로하고 그들의 요구에 따라 진상조사에 최선을 다하기는커녕 오히려 유가족들을 불온한 치안 방해꾼으로 취급한 현 정부의 비인간적인 처사일 수도 있다. 어쨌든 세월호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체성의 부재, 주체성의 결여로 특징지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과소주체성의 또 다른 의미, 좀 더 심층적인 의미는 이 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좌절한 이들이 동질적인 이들, 하나의 동일한 주체를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편으로 본다면 세월호 사건이 이처럼 큰 사건으로 부각된 데에는 대중들의 놀라운 공감과 유대의 능력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사건이 일어난 당시부터 사건의 추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구조를 요청하는 승객들에게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내면서 사고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를 비난하면서 해결을 촉구했으며, 또한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사들을 질타했다. 아울러 배가 침몰하고 수색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도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서 유지시켜온 것 역시 대중들 자신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후부터 “자식들 팔아서 한 몫 챙기려고 한다, 세월호 때문에 장사가 되지 않는다, 국가에 무슨 대단한 공을 세웠다고 유공자 행세를 하려 드느냐는 비난들을 일상 속에서 입에서 입으로 옮”겼던 이들 역시 대중들이었다. 또는 적어도 그러한 비난들을 묵과하고 용인했으며,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로 덮고 싶어 하는 정권 및 여당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 역시 대중들이었다.

  한 편으로 국가가 우리 편, 나의 편이 아니라 그들의 편이라는 사실에 분노하고 절망한 이들, 적어도 그들 중 어떤 이들이 곧바로 이렇게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원망과 비난으로 표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국가가 그들의 편이라면, 그리고 우리는 국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 어렵다면, 내가,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내가 그들에 속하는 길이다. 실제로, 곧 경제적으로ㆍ물질적으로 그들에 속할 수 없다면, 상상적인 방식으로라도 그들에 속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개인적ㆍ집단적인 경험을 통해 힘 있는 자들, 몫 있는 자들의 편에 속하는 것이 자신들의 삶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특히 국가의 보호가 없이는 하루하루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람들, 가장 몫이 없는 이들이야말로 이러한 실존적 진리를 절박하게 체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몫 없는 이들은 또한 가장 과소 주체화된 이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상징적 주체성을 힘 있는 이들과의 상상적 동일시로 대체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세월호가 뜻하는 세 번째 측면이 나온다. 그것은 “주체적인 것으로서의 국가 또는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다시구성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세월호 사건이 드러낸 것이 검은 구멍, 검은 공백으로서의 국가이고, 그러한 공백을 통해 표현된 것이 과소주체성이라면, 제기되는 문제는 주체성을 상실한 국가, 따라서 계급적인 치안기계로서의 본성(만)을 갖게 된 국가를 어떻게 (다시) 주체화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인터레그넘의 문제라면, 이는 이 문제가 해방 70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역사적 위상과 그 장래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본다면 지난 70여년 또는 60여 년 동안 한국인에게 유일한 문제는 먹고사는 것이었다. 해방과 전쟁이 남겨놓은 가난 속에서 사람들에게 지상과제는 하루하루의 생존이었으며, 먹고사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의 유일한 화두였다. 문제는 흔히 말하듯 이제 ‘먹고 살만한’ 처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에게 유일한 화두는 먹고사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그저 끼니를 때우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 좀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 달라졌을 뿐, 유일한 개인적ㆍ국가적 관심사는 먹고사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없다. 이것을 우리가 정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먹고사는 것 이외에 공동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전무한 공동체를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 ‘정치’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런 방식으로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또는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는 정치공동체라기보다는, 랑시에르가 정의한 의미에서 치안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랑시에르가 �불화�에서 사용한 치안 개념은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이를테면 반(反)정치적인 정치성이다. 랑시에르가 푸코에게 빌려와서 변형시키고 있는 치안police 개념은 우리가 보통 정치라고 부르는 것, 곧 “집단들의 결집과 동의, 권력의 조직, 장소들 및 기능들의 분배, 이러한 분배에 대한 정당화 체계가 이루어지는 과정들 전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랑시에르가 이것을 정치가 아닌 치안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과정들 전체는 정확히 데모스를 정치로부터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철인정치를 꿈꾸었던 플라톤의 아르케정치archi-politique에서부터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자유 민주주의 정체에 이르기까지 치안은 데모스를 대신하여(또는 데모스를 배제한 가운데) 통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다른 하나는 치안은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 뿌리를 둔다는 점이다. 치안은 무엇보다 행위 양식들과 존재 양식들 및 말하기 양식들 사이의 나눔을 정의하는 신체들의 질서이며, 이 질서는 신체들이 그것들의 이름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과제를 부여받도록 만든다. 이 질서는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의 질서로서, 어떤 활동은 가시적인 것으로 다른 활동은 비가시적인 것으로 만들고, 어떤 말은 담론에 속하는 것으로, 어떤 말은 소음에 속하는 것으로 알아듣게 만든다. 예컨대 전통적으로 노동의 장소를, 공적 영역이라 불리는 것에 고유한 보기 및 말하기 양식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사적 영역으로 만든 것이 치안의 법이다.

  그러나 지난 60~70여 년 동안 존속해온 이러한 공동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공동체 또는 공동체의 새로운 가치들이 무엇인지, 그것들을 구현하는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제도와 운동, 절차들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 만한 주체 내지 행위자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따라서 세월호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치안기계로서의 국가의 본성은 지난 70여 년 동안 오직 먹고사는 것 하나만을 유일한 가치로 추구해온 대한민국이라는 이상한 공동체의 역사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호명하는 것이 “너희가 욕망하는 나라는 무엇인가, 너희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것인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월호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길은, 그 유가족들 스스로 제기하는 이 문제, 곧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를 (다시) 구성하는 문제를 우리가 집합적으로 제기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곧 내가 생각하는 인터레그넘의 문제다.     




III. 어떤 정치적 주체?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왜 ‘을’의 문제로, ‘을의 민주주의’라는 문제로 제기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짧게 말한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인터레그넘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정치적 주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며, 또한 다른 한편으로 ‘을’이라는 용어가 이 정치적 주체라는 문제에 관해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그 중에서 특별히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이 용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과소주체적 현실, 곧 정치적 주체성의 부재에 대하여, 더 나아가 정치적 주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한국어 용어 내지 개념의 부재에 대하여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을이라는 이 용어가 정치적 주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한국어 용어 내지 개념의 부재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주장에 대해 다소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알다시피 우리에게는 ‘국민’이라는 말도 있고, ‘대중’이라는 말도 있으며, 또한 1970~80년대 인문사회과학에서 널리 사용되던 ‘민중’이라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에서 정치적 주체성을 표현하는 용어가 부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선 국어사전에서 이 용어들이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국어사전에 따르면(여기에서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어대사전�을 참조하고 있다) ‘국민’은 “한 나라의 통치권 아래에 있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국민은 정치적 주체라기보다는 통치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민은 어떤 정치 공동체에 대한 법적 소속을 가리키는 용어이지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 이는 ‘국민’은 주권의 담지자이며, 모든 권력의 주체라는 점을 표현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헌법적인 규정에 따르면 국민은 유일한, 또는 적어도 탁월한 정치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어사전에서 국민을 이런 의미의 정치적 주체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는, 내가 확인한 바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어사전의 용법에 따를 경우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거나 법적 소속을 가리키는 용어일 뿐이다. 

  나는 이것이 국어사전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국어사전은 한국어 단어들의 실제 용례를 수집해서 기록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어사전은 국민이라는 용어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헌법전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헌법상으로는 국민이 정치적 주체로 규정되어 있지만우리는 국민을 정치적 주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그것이 지난 60여 년의 정치적 경험의 표현이든, 아니면 현재의 사회적 현실의 표현이든 간에, 국민을 실제로 정치적 주체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자들인 경우 더욱 더 드물다. ‘국민이라는 노예’, ‘국민이라는 괴물’,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같은 저서들의 제목이 가리키듯, 인문사회과학자들, 특히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자들일수록, 국민을 정치적 예속과 피지배의 표현으로 간주하지 정치적 주체의 표현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민족’이야말로 국민보다 정치적 주체에 더 가까운 용어라고 생각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민중’이야말로 우리말에서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진정한 용어라고 간주한다. ‘민족’의 경우는 차치해두고 여기에서는 ‘민중’이라는 용어를 살펴보기로 하자. 역시 국어사전에 따르면 민중은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보통 피지배층을 이루는 노동자, 농민 등을 이르는 말이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따라서 이 정의에서도 민중은 정치적 주체를 표현하지 않는다. 민중은 한편으로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따라서 국가와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사회에서 아래쪽에, 피지배층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 특히 노동자와 농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 또는 국가와 사회의 대다수를 이룬다는 것이 정치적 주체를 뜻하지는 않는다. 과거 노예제 시절이나 봉건제 시절에도 피지배자들은 국가와 사회의 대다수를 이루었지만, 그들이 정치적 주체를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어사전의 용법에 따를 경우 민중을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학자들의 경우에는 민중을 정치적 주체로 간주하고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이 경우에도 답변은 부정적이다. 지난 192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민중’ 개념의 계보를 검토하고 있는 글에 따르면 신채호를 비롯한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3ㆍ1운동을 거치면서 더 이상 “역사의 주역으로서의 영웅의 존재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고 그 대신 민중을 강조하게 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들어서 함석헌은 “어떠한 정치적ㆍ사회경제적 제도에 의해서도 오염되지 않은 원초적인 의미의 사람이자 민”을 가리키는 용어로 민중 내지 씨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이르게 되면, 민중신학, 민중사학, 민중문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민중이라는 용어가 점점 더 “역사를 이끌고 가는 하나의 주체로서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단계에 있어서의 대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히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민중이 “(신)식민지 자본주의 사회의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의 변혁주체”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민중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의 자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첫째, 이제는 거의 누구도 역사의 주체, 변혁의 주체로서 민중이라는 개념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로 민중이라는 용어는 한국 인문사회과학에서 점점 더 사용되지 않게 되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최근 들어 “민중사학 이후의 민중사”라는 의제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민중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일군의 역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1980년대의 민중 개념(적어도 민중사학에서 사용된)이 “현실에서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이 구성해낸 ‘개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오히려 ‘일상적’이고 ‘다성적’인 주체로서의 새로운 민중을 재현하는 것을 자신들의 공통의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둘째, 더 나아가 192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주체로 설정된 민중의 실제 의미는 저항의 주체라는 점이다. 곧 혁명가나 활동가 또는 학자나 문인들이 호명한 민중은 엄혹한 지배의 현실에 맞서 투쟁하고 저항할 수 있는 집합적 존재로서의 민중이지, 정치적 주체로서의 민중은 아니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민중은 실제의 민중이라기보다는 당위적으로 요청된 민중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저항의 주체와 정치의 주체를 구별한 것은, 저항이 정치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간과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저항 자체에 머물러 있는 주체, 따라서 자신을 구성과 통치의 위치에 놓지 못하는 주체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의 주체에 미달한다는 점이다. 집합적으로 어떤 정치체를 구성하고 그 정치체를 통치하고 조직하는 위치에 존재하는 것만이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주장할 수 있다. 반면 민중은 ‘민중이 나라의 주인 되는’(김남주) 같은 시적 표현들이나 ‘민중민주주의’ 같은 사회과학적 표현들에서는 지속적으로 주체의 명칭으로 호명되었지만, 민중이 주인 되는 나라, 민중이 통치하는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실제로 누구도 그려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어에는 놀랍게도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민중도 대중도 아니며, 국민도 아니다. 북한에서는 ‘인민’이라는 용어가 바로 이러한 의미의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북한 사회과학원에서 나온 �조선말 대사전 증보판�에 따르면 인민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1. 나라를 이루고 사회와 력사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서 주체로 되는 사람들. 혁명의 대상을 제외하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다 포괄된다. 2.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에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자주적으로 살아나가기를 원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 3. 어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통털어 이르는 말.” 이 세 가지 정의 가운데 첫 번째 정의가 바로 정치의 주체로서 인민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 사용되는 말 가운데는 이러한 의미의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가 부재한다.

  하지만 이것이 마냥 불운한 일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의 이러한 부재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정치적 주체의 성격에 대해 새롭게 고찰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가 조금 뒤에 살펴볼 정치철학자들의 논의에서 좀 더 분명히 드러나겠지만, 북한 사전에 나와 있는 인민에 대한 정의는 대문자 인민과 소문자 인민, 통치의 주체로서의 인민과 소외되고 주변화되고 배제된 이들로서의 인민 사이의 간격과 괴리를 상상적으로 봉합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사전에 따르면, 북한에는 피지배자로서의 인민, 몫 없는 이들로서의 인민, 을로서의 인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최근 정치적 주체의 문제를 제기한 몇몇 서양철학자들의 작업을 검토해보고 싶다. 내가 살펴보려는 철학자들은 이탈리아의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과 프랑스의 자크 랑시에르, 그리고 작년에 타계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영국 철학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정치적 주체의 문제를 이탈리아어의 포폴로popolo, 불어의 푀플peuple, 영어의 피플people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이 단어들은  모두 우리말로 하면 대략 ‘인민’이나 ‘민중’ 등으로 옮길 수 있을 터인데, 이 말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의 문제가 내가 살펴보려는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따로 번역하지 않고 그냥 음역해서 사용하겠다). 더 나아가 이들은 정치적 주체로서 포폴포, 푀플, 피플의 핵심적인 특징은 그것의 내적 분할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1. 아감벤과 포폴로     

  아감벤은 �목적 없는 수단�이라는 논문 모음집에 수록된 「포폴로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서양어, 특히 유럽의 언어적 전통에서 ‘피플’people이라는 말이 갖는 이중적 의미를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이탈리아어 포폴로popolo, 프랑스어 푀플peuple, 스페인어 푸에블로pueblo 같은 어휘들은 근본적으로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말들이다. “즉 동일한 하나의 용어가 구성적인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동시에권리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실상 정치로부터 배제된 계급도 가리키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포폴로, 푀플, 푸에블로 같은 용어들은 한편으로 “총체적이면서 일체화된 정치체로서” 대문자로 된 포폴로Popolo, 푀플Peuple, 푸에블로Pueblo를 표현한다. 반면 동일한 용어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하고 배제된 자들의 부분적이자 파편화된 다수”인 소문자 포폴로, 푀플, 푸에블로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자는 근본적으로 포함적인 반면, 후자는 본질적으로 배제적이다. “한 쪽 극에는 주권과 일체화된 시민들의 완전한 국가가 있고, 다른 쪽 극에는 비참한 자ㆍ억압받는 자ㆍ정복당한 자로 구성된 (‘기적의 궁전’이나 수용소 같은) 금지구역이 있다.”

  이러한 언어학적 고찰에 기대어 아감벤은 그 자신이 나중에 �호모 사케르� 연작을 통해 발전시킨 바 있는 서양의 정치 형이상학의 기본 구조를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포폴로라는 개념에서 우리가 본래의 정치 구조를 규정하는 짝패 범주들을, 즉 벌거벗은 생명([소문자] 포폴로)과 정치적 실존([대문자] 포폴로), 배제와 포함, 조에zoe와 비오스bios를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포폴로라는 개념은 그 안에 근본적인 생명정치적 균열을 이미 언제나 담고 있다. 포폴로는 자신이 이미 언제나 포함되어 있는 전체에 속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전체에 포함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감벤은 역시 그가 나중에 �호모 사케르� 연작에서 제시한 바 있는 종말론적인 또는 오히려 메시아주의적인 정치철학(또는 정치신학)의 논지를 피력하고 있다. 곧 나치의 유대인 학살수용소에서 난민수용소를 거쳐 미국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배제된 자들인 포폴로를 근본적으로 제거함으로써 포폴로를 분할하던 분열을 메워보려는 집요하고도 체계적인 시도에 불과”하다. 특히 오늘날 “발전을 통해 빈민 계층을 제거하려는 자본주의적-민주주의적 계획은 자신의 내부에서 배제된 자들로 구성된 인민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모든 주민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바꿔놓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전지구적인 내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근본적인 생명정치적 분열[곧 조에와 비오스의 분열-인용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치만이 유일하게 이런 진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지구상의 포폴로와 시민 전체를 분할하는 내전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감벤의 논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서양어, 특히 유럽의 로만스 언어 계열에서 정치적 주체를 가리키는 용어들(포폴로, 푀플, 푸에블로, 또는 어느 정도까지는 영어의 피플)은 본질적인 중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용어들은 한편으로 어떤 정치체의 성원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 그 중 특정한 일부, 곧 소외되고 주변화되고 배제된 이들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러한 중의성은 고대 로마에서부터 지속되어온, 특히 프랑스혁명 이후의 근대성을 근원적으로 특징짓는 생명정치적 이원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가 상징적으로 표현하듯, 배제되고 주변화된 포폴로를 완전히 배제하고 절멸시키려는 기획을 표현한다. 따라서 아감벤의 정치적 기획은 이러한 묵시록적인 절멸의 기획, 전지구적인 내전의 기획에 맞서 벌거벗은 생명을 정치적 주체로 또는 오히려 정치적 탈주체로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랑시에르와 푀플     

  아감벤과 마찬가지로 랑시에르 역시 서양 정치철학의 시초에서부터 정치적 주체는 이중적으로 분할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한다. 하지만 아감벤과 달리 그는 이를 시원적인 생명정치적 분할과 연결시키지 않으며, 메시아주의적인 정치적 기획과 관련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시초부터 유일한 정치적 주체는 몫 없는 이들로서의 푀플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랑시에르의 논점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텍스트를 통해 그의 주장을 검토해보자. 랑시에르는 「정치에 대한 열 개의 테제」 중 5번째 테제에서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푀플peuple(랑시에르 저작의 국역본에서도 역시 이 단어는 모두 ‘인민’으로 번역되어 있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테제 5: 민주주의의 주체이며, 따라서 정치의 모체가 되는 주체인 푀플은 공동체 성원들의 총합이나 인구 중 노동하는 계급도 아니다. 푀플은 인구의 부분들에 대한 모든 셈에 관하여 대체 보충적인 부분으로, 이것은 공동체 전체를 셈해지지 않는 이들의 셈과 동일시할 수 있게 해준다Il est la partie supplémentaire par rapport à tout compte des parties de la population, qui permet d'identifier au tout de la communauté le compte des incomptés.     

5번째 테제를 번역하면서 번역자는 프랑스어 원문의 “la partie supplémentaire”를 “보충이 되는 부분”으로 옮겼지만, 나는 이것을 데리다적인 의미에서 “대체보충적인 부분”이라고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테제에서 푀플은 두 가지로 정의되고 있다. 첫째, 푀플은 “민주주의의 주체”, 따라서 “정치의 모체가 되는 주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주체로서의 푀플은 “공동체 성원들의 총합collection des membres de la communauté”이 아니며, 인구를 구성하는 여러 개인들이나 집단들 중에서 “노동하는 계급classe laborieuse”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둘째, 민주주의의 주체로서의 푀플은 “인구의 부분들에 대한 모든 셈에 관하여 대체 보충적인 부분”을 뜻한다. 그리고 랑시에르는 이러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이것은 공동체 전체를 셈해지지 않는 이들의 셈과 동일시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두 번째 정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푀플은 공동체의 부분들 각각에 대한 셈을 대체 보충하는 부분으로이러한 대체 보충적인 부분에 의해 공동체 전체는 셈해지지 않은 이들의 셈과 동일시될 수 있다. 푀플에 대한 랑시에르의 정의는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1)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우선 이 테제는 그리스 민주주의의 기원에 대한 랑시에르의 해석을 포함하고 있다. 랑시에르는 기원전 500년 경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클레이스테네스가 이룩한 민주주의 개혁을 “민주주의에 그것의 장소를 부여하는 중대한 개혁”으로 평가한다. 그 이유는 이러한 개혁을 통해 혈연에 기반을 둔 통치 체제와 단절하는 민주주의 정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이 개혁의 핵심은 클레이스테네스가 도입한 행정구역 재편에 있다. 이전까지 아테네는 ‘퓔레phyle’라고 불리는 혈연에 기반을 둔 4개의 부족 체제로 이루어져 있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이것을 해체하고 대신 아테네 시와 그 주변지역, 해안지역, 내륙지역 같이 3개의 구역으로 아테네 국가를 정비하면서 데모스demos라 불리는 촌락공동체가 중심 단위를 이루는 10개의 부족으로 재편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체제에서 남성들은 18세가 되면 데모스에 등록하여 재산이나 혈연과 무관하게 참정권을 비롯한 시민의 권리와 지위를 평등하게 보장받았다. 따라서 랑시에르에 따르면 “요컨대 인민이란 출생의 원칙을 이어가기 위해 부의 원칙을 부여하는 논리를 가로막은 인위적 고안물artifice이다.” 랑시에르가 푀플에 대하여 제시한 정의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재해석의 결과다.      


2) 추상적인 것으로서의 푀플      

  그는 테제 5를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한다. “푀플은, 인구를 이루는 부분들이 공동체에서 몫을 나누어가질 자격에 대한, 그리고 이 자격에 따라 그들에게 돌아올 몫들에 대한 모든 실제의 셈과 관련해볼 때 추상적인 하나의 대체 보충이다. 푀플은 셈해지지 않은 이들에 대한 셈 또는 몫 없는 이들의 몫, 곧 말하는 이들의 평등—이러한 평등이 없이는 불평등 자체도 사고 불가능하다—을 기입하는 대체 보충적 존재다.”

  이러한 재규정에서 우선 주목할 점은 푀플은 “모든 실제의 셈과 관련해볼 때 추상적인 하나의 대체 보충”이라는 규정이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모든 실제의 셈”이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 곧 각각의 개인과 집단, 계층과 계급들이 그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갖게 되는 몫에 대한 규정을 뜻한다. 이러한 몫은 좁은 의미의 경제적 이익이나 이러저러한 권리만이 아니라 각각의 부분이 지니는 정체성과 성질 및 자격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그런데 랑시에르는 푀플이 이러한 “모든 실제의 셈과 관련해볼 때 추상적인 하나의 대체 보충”이라고 말한다. “추상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푀플이라는 속성 내지 자격이 몫의 분배와 관련된 “실제의 셈”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뜻한다. 곧 푀플이라는 속성 내지 자격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어떤 몫을 더 받거나 덜 받게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푀플이 단지 “추상적인” 자격이나 속성이 아니라 “하나의 대체 보충”이라는 점이다. 푀플은 공동체에 속하는 각각의 개인들이나 집단들이 지닌 이러저러한 속성이나 자격, 정체성에 덧붙여진 추가적인 속성 내지 자격이다. 그것은 실제의 셈의 대상이 아니고, 따라서 분배의 몫을 규정하는 데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정치 공동체인 한에서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 모든 성원들이 항상 이미 지니고 있는 속성 내지 자격이 바로 푀플이라는 속성이다.     


3) 대체하는 보충으로서의 푀플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대체하는” 보충인가? 이것이 “대체하는” 것은 무엇인가? 랑시에르에 따르면 어떤 공동체를 구성하는 부분들, 곧 개인들이나 집단들에게 돌아갈 몫들의 분배를 규정하는 것은 아르케arkhe의 논리다. 그리스어로 “시초”, “원리”, “지배” 등을 뜻하는 아르케라는 말은, 랑시에르에 따르면 어떤 공동체 성원들의 속성 내지 자질과 그에 따른 분배의 몫을 규정하는 원리를 뜻한다. 이러한 원리에 따르면 가령 고귀한 혈통 출신의 사람들이 비천한 혈통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자격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더 많은 몫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또 나이가 더 많거나 재산이 많은 이들, 또는 남들보다 더 유덕하거나 더 많은 지식을 지닌 사람들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자격을 지니고 있고, 그에 따라 더 많은 몫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반대로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 비해 자격이 덜한 사람들, 곧 혈통이 비천하고 나이도 적고 재산도 변변찮고, 유덕하지도 못하며 지식도 없는 사람들은 더 적은 몫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셈 자체에서 배제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리스의 경우 여성이나 노예, 외국인 등이 그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르케의 논리는 불평등의 논리이자 배제의 논리며, 이러저러한 본성적인/자연적인 자격의 차이에 근거하여 그러한 불평등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다. �불화�에서 랑시에르가 사용한 용어에 따른다면, 아르케의 논리는 모든 종류의 치안—우리가 흔히 정치체 내지 정치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을 근거 짓는 논리다.

  푀플이라는 속성 내지 자격이 대체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아르케의 논리다. 아르케의 논리에 따르면, 가령 한국 최고의 재벌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이태원 전철역 앞에서 노숙하는 사람은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한 성원이기는 하되, 그들이 공동체에서 차지하는 몫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달라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는 엄청난 속성과 자격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푀플이라는 원리에 따르면,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자격 및 따라서 그들에게 돌아갈 몫에 대한 실제의 모든 셈과 무관하게, 그러한 셈에 앞서 한 사람의 푀플한 사람의 데모스라는 점에서는 동등하다(데모스라는 말의 또 다른 뜻에 따르면, 두 사람은 모두 한남동의 주민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양자는 모두 한 사람의 푀플이며, 그런 한에서 동등한 정치 공동체의 주체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이 두 사람은 정치적 주체로서의 동등한 몫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 따르면 일정한 속성이나 자격의 부재 때문에 공동체의 몫의 분배 질서에서 배제된 사람들 역시 한 사람의 푀플, 하나의 데모스라는 점에서는 모두 동등하며, 정치적 주체, 민주주의의 주체로서는 모두 동등한 몫을 지니고 있다. “푀플은 셈해지지 않은 이들에 대한 셈 또는 몫 없는 이들의 몫, 곧 말하는 이들의 평등—이러한 평등이 없이는 불평등 자체도 사고 불가능하다—을 기입하는 대체 보충적 존재다”라는 랑시에르의 말은 바로 이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4) 민주주의=몫 없는 이들의 몫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대체 보충적인 부분이 “공동체 전체를 셈해지지 않는 이들의 셈과 동일시할 수 있게 해준다”(테제 5)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공동체 전체가 셈해지지 않은 이들의 셈과 동일시된다는 것은, 첫째,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 공동체로, 이러한 공동체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들의 합과 동일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각각의 부분들의 속성과 자격 및 그에 따른 몫의 분배가 아르케의 논리를 따르며, 아르케의 논리는 자연적인 불평등 질서의 표현이자 정당화를 뜻하는 데 반해, 정치 공동체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아르케 논리와의 단절을 통해 형성된 “인위적 고안물”이다. 

  둘째, 정치 공동체가 인위적 고안물인 이유는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는 성원들인 데모스 또는 푀플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존재자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구성된, 또는 발명된 존재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닌 속성(혈통, 부, 유덕함, 지식 등)의 차이에 관계없이, 능력이나 자격의 정도와 무관하게 동등한 주체들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오직 그러한 평등을 서로에게 인정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정치 공동체의 유일한 토대 아닌 토대로 긍정하는 정치적 주체들의 행위를 통해 비로소 가능하며, 또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푀플 내지 데모스라는 정치적 주체의 등장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인구 자신을 그 내부에서 분할하는 일이다. 데모스가 등장한 이후 어떤 공동체를 구성하는 인구들은 더 이상 그 이전과 동일한 인구가 아니다. 그 이전에 공동체를 구성하는 인구들이 아르케 논리에 따라 규정되고 몫을 분배받는 존재자들이었다면, 푀플 내지 데모스의 등장 이후의 인구들은 그들의 “모든 실제적인 셈”에 앞서, 푀플이라는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격으로 규정되는 인구들이다. “푀플은 정당한 지배의 논리를 중단시킴으로써 인구를 인구 자신으로부터 탈구시키는 대체 보충이다.”     


3. 포퓰리즘과 피플     

  마지막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를 처음으로 제창한 인물이자 현대 포퓰리즘 이론을 쇄신한 바 있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피플에 대한 재규정을 살펴보자. 라클라우는 랑시에르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사회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민주주의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전자의 부분은 단순한 한 부분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 질서에서 억압되고 배제된 부분이다. 

  이를 라클라우는 플레브스plebs와 포풀루스populus라는, 로마 시대의 정치적 집단을 지칭하는 두 가지 상이한 명칭을 통해 표현한다. 포풀루스가 어떤 정치 공동체의 성원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따라서 가령 국민 공동체의 합법적인 성원들 전체로서의 ‘인민’)이라면, 플레브스는 포풀루스의 일부분이기는 하되, 기존의 사회 현실과 정치 질서 속에서 제대로 인정받거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집단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러한 집단들은 각자 상이한 이해관계 및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들은 분산되어 있는 플레브스로 계속 머물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서로 접합된다면, 다시 말해 공동의 대의를 통해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곧 포퓰리즘적 주체로 구성된다면, 그들은 분산된 플레브스로 머물지 않고 스스로 전체를 자임하는 부분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포풀루스는 진정한 피플이 아닌 억압적이고 기만적인 피플로 드러나며, 반대로 기존의 사회 질서에서는 부분으로 나타났던 플레브스는 진정으로 보편적인 포풀루스를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주어진 것으로서의 포풀루스(현재 존재하는 대로의 사회적 관계의 총화)는 자기 자신을 허위적 총체성으로, 억압의 원천인 부분성으로 드러내게 된다. 반면 플레브스의 경우 그것의 부분적 요구는 온전하게 충족된 총체성의 지평 속에 기입될 것이며, 진정으로 보편적인 포풀루스를 구성하는 것을 열망할 수 있게 된다. 포풀루스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이 엄밀하게 공약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성, 곧 플레브스는 자기 자신을 이상적 총체성으로 인식된 포풀루스와 동일시할 수 있게 된다.


랑시에르와 라클라우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라클라우는 차이의 논리에 따라 분산되어 있는 개인 및 집단들이 피플이라는 정치의 주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상징적 준거로서의 지도자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때의 지도자는 살아 있는 현실적인 인물일 필요는 없으며, 그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고 결합될 수 있다면 족하다. 따라서 실제로 필요한 것은 지도자의 이름이다. 라클라우의 모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이나 중국의 마오쩌뚱,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 또는 노무현 대통령 등이 바로 그러한 이름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둘째, 랑시에르는 정치를 곧 주체화subjectivation와 동일시한다. 랑시에르가 주체화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가령 고대 그리스의 데모스라는 정치적 주체의 형성이나 19세기 프랑스에서 프롤레타리아라는 근대적 주체의 형성, 또는 19세기 후반 여성이라는 또 다른 주체의 형성, 20세기 말 이주자라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 등이다. 랑시에르는 주체화를 -정체화dis-identification로 정의한다. 곧 치안이라고 불리는 기존의 사회 질서를 통해 부여된 이런저런 정체성들을 거부하고 그러한 정체성들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주체 형성을 시도하는 것이 바로 주체화이다. 

  랑시에르는 19세기 프랑스의 급진적인 정치가였던 오귀스트 블랑키가 사용했던 ‘프롤레타리아’라는 명칭을 이러한 주체화 과정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블랑키는 1832년 열린 재판에서 검사가 그의 직업을 묻자 “프롤레타리아”라고 대답한다. 검사가 그것은 직업이 아니라고 반박하자, 블랑키는 “프롤레타리아는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우리 인민 대다수의 직업”이라고 답변한다. 여기서 검사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치안의 논리로서 정체화의 논리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블랑키의 대답은 엉뚱한 대답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는 직업의 명칭이 아닐뿐더러, 블랑키 자신이 노동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블랑키는 정치적 주체화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는 사회학적인 정체성을 지닌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셈-바깥을 가리키는 이름, 내쫒긴 자의 이름”이다. 따라서 그것은 “천민들parias”이 아니라 “계급 질서에 속하지 않는 이들, 따라서 그 질서의 잠재적인 소멸인 이들(마르크스가 말했던 모든 계급의 소멸인 계급)”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화 과정을 탈-정체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라클라우가 차이의 논리를 넘어선 피플적인 등가성의 논리를 통해 비로소 급진 민주주의 주체인 피플이 형성된다고 주장할 때, 라클라우의 주장도 랑시에르의 주장과 유사하다. 단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이론 및 헤게모니 이론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투쟁들을 어떻게 접합하고 결속시킬 것인가에 있는 데 반해, 랑시에르는 주체화라는 이름 아래 이러한 투쟁들의 고유성과 이질성을 강조할 뿐, 그것들이 어떻게 서로 연대를 형성하고 결속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랑시에르가 역사적인 몇몇 사례(고대 그리스의 데모스, 19세기 프랑스의 프롤레타리아, 19세기 후반 여성)를 통해 주체화 과정을 예시하는 반면, 라클라우는 이를 사회운동, 정치운동의 일반 논리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라클라우에게 제기되는 질문은, 포퓰리즘을 통해 형성된 인민을 어떤 근거에서 민주주의적 인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바꿔 표현될 수 있다. “만약 좌파 포퓰리즘 내지 진정한 민주주의적 포퓰리즘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그 포퓰리즘을 우파 내지 극우파와 구별되는 좌파 포퓰리즘으로, 진정한 민주주의적 포퓰리즘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4. 을의 민주주의불가능한 기획?     

  ‘을의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잘 정리된 개념보다는 하나의 화두에 가까운 말이다. 을이 누구인지, 그들이 실제로 정치적 주체로, 민주주의적 주체로 구성될 수 있을지, 그들이 과연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역사적 대한민국’의 공동체와는 다른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을은 그냥 잠시 사용되었다가 곧 소멸하게 될 유행어인지, 따라서 인터레그넘의 시기를 건너는 새로운 정치의 주체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할지, 그것은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을 을이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사회 스스로 을이라는 이 평범한 말을, 심각하고 무거운 말로, 사회의 심층적인 현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을들의 자기 지칭으로서의 을이라는 표현은 을의 민주주의가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첫째, 을이라는 말은 이 사회에는 동료 시민들에게 지배되거나 모욕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더욱이 그들이 다수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보편적 평등의 원리에 입각해 있는 민주주의의 이념에 비춰보면, 이는 한국 사회가 더 이상 민주주의적 사회가 아니든가 아니면 적어도 심각하게 민주주의가 왜곡되거나 훼손된 사회라는 것을 말해준다. 을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 한국 민주주의의 병리성을 표현해주는 개념이다.

  둘째, 갑에 의한 이러한 억압과 주변화, 소외에도 불구하고, 을들은 과소 주체적 존재자들로 실존하고 행위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을들은 동등한 을들이 아니라, 을 아래의 병, 병 아래의 정 등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을은 자신이 갑에게 당하는 것 못지않게 병 위에 군림하며, 병은 또 다른 자신의 을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적 주체화의 근본 과제가 을의 연대의 문제라는 것, 더 나아가 갑과 을 사이의 구조화된 위계 관계를 어떻게 평등한 민주주의적 관계로 전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을‘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곧 을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을을 새로운 지배자, 새로운 갑으로 구성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기 위함은 아니다. 오히려 을의 민주주의라는 화두가 묻고자 하는 것은 을이 지배자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주인이 아닌(따라서 또 다른 하인이나 노예를 전제하는) 주체, 주권자가 아닌(따라서 또 다른 신민(臣民), 백성을 전제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여부다. 그것을 우리가 여전히 주체subject라고(곧 객체를 전제하는 어떤 것) 부를 수 있는지, 다시 말하면 근원적으로 양가적인 주체라는 이 용어를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지도 우리가 질문해봐야 할 것 중 하나다.

  셋째, 을은 한국 현대사의 증상을 표현해준다. 곧 한국 현대사에서 민은 (간헐적인 봉기의 순간들을 제외한다면) 정치적 주체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 한국어에는 역시 정치적 주체를 지칭하는 용어가 부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따라서 을의 민주주의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인터레그넘의 시대에 처하여, 세월호 이후해방 70의 시점을 맞이하여 민주주의 자체에 대하여, 민주주의의 주체에 대하여, 정치 공동체에 대하여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고, 평등과 자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연대의 구성에 대해 실험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장래, 도래할 한국 민주주의의 성패는 여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저작권문제가 되지 않도록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례와 대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