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인간 호모사피엔스는 상상력을가지고 사회를 만들어냈고 도구를 생산하는 인간 호모파베르는 사회를 담아낼 플랫폼을 만들어 냈다. 인간이 생산하는 도구들이 인간 신체의 확장이라고 본다면 플랫폼은 무엇의 확장일까? 아마도. 다른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상상력이 실현되는 공간의 확장일 것이다. 플랫폼을 만드는 사람의 상상의 공간 속에서 플랫폼에 대한 어떤 정의와 이미지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실현되면서 실제의 플랫폼으로 구성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용하는 플랫폼이 불편하거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상상의 공간 속에서 무엇인가가 문제이지 않을까? 그 공간에 시민이 없고, 열린문이 없고, 광장이 없고, 진정성이 없고, 투명성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만든 플랫폼은 활성화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에서 시작해서 우리는 정부가 만든 플랫폼에 접근했다. 17개 지자체의 플랫폼의 대해서 ‘현상-평가-이해-대안’의 순서로 흐름을 만들어 보았다. 5가지가 없는 지자체 플랫폼의 특징을 현상에 담아 보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없는지를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이번 글을 마련해 보았고, 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10대 지표’를 통해서 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글에서는 5가지가 없는 지자체 플랫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다. 그럼 현상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하나하나 살펴보자.
1.시민이 없다, citizen
시민citizen이 바뀌었다. 왜 플랫폼에 시민이 없을까? 그 많던 시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부와 시민은 여러가지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시대적 흐름에 따른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따라서 정해진다. 초기에 시민과 정부는 서로의 영역에서 교류가 없이 정부에서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몰두했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았다. 이것을 '독립모델'로 본다면 정부 1.0의 수준에서 이제 걸음마의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되고 정부모델이 바뀌면서 시민과 정부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플랫폼이 등장 하지만 '의존모델'의 형태로 이루어진 상태에서는 시민들이 '민원제기'에 그치는 참여를 보였다. 정부는 이것을 전자정부 2.0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전자정부 3.0의 시대가 열리면서 시민과 정부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상호의존모델'의 시대가 열렸다. 정부에서는 시민들의 참여를 위해서 플랫폼에 정책제안의 창구를 열고, 시민들이 제안하는 정책에 댓글도 달고 실제로 실행하면서 결과를 보여준다는 비전이 예상되었다. 아래 그림과 같이 정부와 시민모델은 시대적 흐름과 함께 발전했다.
[그림 1] 정부와 시민의 관계 변화
그러면 시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분석한 것처럼 17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에서는 시민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하다. 전자정부 3.0의 시대가 열리고 상호의존하는 모델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정부에서 실행하고 시민은 참관하는 형식의 의존모델이나 정부정책은 따로 진행되고 시민들은 그 사실을 tv에서나 보다는 식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은 더 편하고, 더 열려져 있는 시장플랫폼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부에서 만든 플랫폼은 시민들을 위한 플랫폼이라기보다는 정책의 한 수단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정부와 시민의 관계는 서로의 활동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서 상호활동모델로 변화될 것이다. 같은 정보를 교류하지만 서로 활동하는 것들이 시너지가 나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정부의 플랫폼은 이것을 담아내야 한다. 의존모델에 머물러 있는 현상 속에서 시민들은 그곳에 없다. 오히려 더 잘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는 곳에 있다. 시민은 대상에서 주체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대상으로 존재하는 공간에서 시민은 없다.
2.모두에게 열린 문이 없다, context
맥락context가 바뀌었다. 우리의 일상은 미닫이문에서 자동문으로 바뀌었다. 모두에게 열린문이 없다는 것을 닫혀있다는 뜻이다. 특정한 소수에게, 인증된 소수에게만 허영되는 플랫폼은 합리성을 모더니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정한 자격과 신분을 가진 사람의 의견은 합리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일정한 형식과 방법을 알고 있고, 플랫폼에 접속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으며 합리적이고 오래된 전통에 반기를 드는 시대가 왔다. 모스트모던이라는 합리성 이후의 개별성을 중시하는 시대가 이미 한세대를 지나온 듯 하다. '깃발내려, 나는 내가 대표한다!'라는 슬로건처럼 개인이 바꾸는 세상의 시대가 도래했다. 누구나 열린문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참여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을 통해서 플랫폼에 참여한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민들은 열린문을 찾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시민이 정책제안 플랫폼을 이용하고자 할 때는 크게 4단계로 나눠서 설명할 수 있다.
‘발견’ 단계는 해결하고 싶은 공적 문제를 인식하고, 플랫폼 탐색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접근성 지표는 플랫폼 탐색에 드는 물리적 장벽(시간, 에너지) 등을 낮춰 이용자가 플랫폼을 쉽게 검색해 찾을 수 있게해야함을 의미한다. ‘선택’ 단계에서 고려되어야 할 지표들은 개방성, 보안성, 시민친화적 디자인, 투명성이 있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고려되는 요인들이다. ‘경험’ 단계에서는 이용자가 인식한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요인들이 있다. 그러한 요인들에는 숙의성, 효능감, 사회적효과, 시민연대가 있다. ‘공유’ 단계에서 충족된 경험을 얻으면서, 이용자는 공유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 플랫폼 내에서의 경험을 외부에 다양한 형태로 알리고자 하는데, 공유를 용이하게 하는 지표가 ‘확산성’이다.
이러한 4단계의 과정은 한단계씩 진행해보면 단계별로 확인해야 하는 지표들이 있다. 10대 지표를 중심으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3.광장이 없다, plaform
온라인 광장으로 바뀌었다. 오프라인의 광장이 온라인의 플랫폼platform으로 바뀌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광장은 온라인에서 그대로 제현되어 플랫폼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은 웹사이트에 머물러 있다. 웹사이트에서는 제작자가 일방적으로 구성한 게시판에 접속한 사람이 1:1로 댓글을 달거나 문의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에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수준에 그칠 때 시민들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소통을 위한 참여보다는 민원을 제기하는 수준의 수동적인 위치에 머무르게 된다. 서비스는 제공하는 사람과 제공을 받는 사람의 관계만 형성되고 더 확장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서비스만 제공하려고 하는 웹사이트에서 당연히 광장은 없다. 플랫폼은 일방향소통이나 1:1 소통을 넘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소통하는 광장이다. 온라인에서 플랫폼이라고 하면 시민들이 온라인 광장에서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가 제안한 정책을 이해하고 공유하면서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가치'단위로 소통을 하는데, 시민이 참여하는 온라인플랫폼에서는 필요한 가치 단위를 10대 지표로 정리했다고 보면된다. 웹사이트에 플랫폼은 없다. 그러므로 광장은 없다.
4.진정성이 없다, community
community로 바뀌었다. 지구촌이라는 언어를 쓴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세계는 온라인으로 모두가 연결된 지구마을이 되었다. 말그대로 관계가 바뀐 것이다. 테이블 위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양면게임이 끝난지가 오래되었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시민은 이제 서로 대립해서 싸우는 관계가 아니다. 정부의 정책과 시민의 참여가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공동체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공동체의 사고에서는 서로 관계 맺을 때 돈으로 보상을 하지는 않는다. 친한친구나 가족에게 열심히 했으니 그에 해당되는 보상으로 돈을 준다고 생각해보라! 시민들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서 보상을 하는 제도의 이면에서는 여전히 양면게임이 도사리고 있다. 다른 편에 서 있는 시민들을 움직이거나 조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보상의 방식으로는 시민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진정성은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이 참여로 이어지게 만드는 원천이 된다.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상호적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다. 플랫폼을 구성하고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시민과 공동체commuinty라는 관계설정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의 플랫폼에서는 진정성이 사라지고 보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상의 관계에서는 진정성은 없다.
5.투명성이 없다, cotents
contents로 바뀌었다. 시민이 참여하는 방식이 민원처리complain에서 정책제안contents로 바뀌었다. 시민이 불편한 사항에 대한 불만을 제시하면 그에 따른 대응의 과정에서는 투명성이 필요가 없다. 되었는가 아닌가?라는 식의 단순한 결과만 확인하면 된다. 그러나 정책제안의 경우에는 정책이라는 contents가 가지고 있는 성격상 '누가제안했는지, 제안한 이유가 무엇인지, 제안 후에 진행과정에서 어떻게 변화가 되었는지, 확정된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그래서 최종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주는지' 등 과정의 변화가 중요하다. 과정중에 새로운 정책이 나오기도 하고 다른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민원처리는 1:1로 진행되지만 정책은 정해지면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제안을 통해서 나온 contents는 모두의 것이 되고, 다른 contents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투명성이 없다는 것은 아직도 플랫폼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정책제안'이라고 쓰고, '민원제기'라고 읽고 있는 것과 같다. 정책을 민원으로 보고 있는 이상 투명성은 없다.
0. 나오기
생각하는 인간과 도구적 인간 사이에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가 있다. 놀이하는 인간은 상호간에 주고, 받는 놀이를 통해서만 생활을 영위해 간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랫폼도 간단하게 놀이의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시민이 이야기를 하면 정부에서 답변을 하고, 정부에서 이야기하면 시민이 듣는다. 반대로 시민이 정책을 제안하면 정부에서 듣고, 정부에서 시행하면 시민이 동참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책이라는 contents를 가지고 광장인 플랫폼에서 놀이한다. 맥락이 바뀌고 시대가 변할수록 시민들은 더욱 참여를 원하고, 단순한 참여만이 아니라 과정에서의 참여까지도 기대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있다. 이제는 플랫폼을 구성하는 이들의 상상 속에서 함께 놀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그러한 상상이 곧 현실이 되어서 많은 시민들이 즐겁게, 주체적으로, 듣도보도 못한 정치를 꽃피울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