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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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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an 22. 2019

태양과 기슭

외투 하나로 바꾼 아버지의 생신날에

한 겨울 몹시 추우셨을텐데

이제서야 생신이라고서는


콜롬비아 구스다운패딩을 선물하면서

잘난척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도


흥이나시는지 아니면

대견하신지 연이어


컬컬 웃으시는 아버지의

헛웃음이 정겹다


주위에서 아버지들이 많이

세상을 떠나셨다


생과 죽음이 한치 차이라지만

점점 아버지의 주름이 말해주는


세월의 무상함과

삶의 의미들


나는 8할의 인생을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고민했는데도


점점 더 죽음이 무서워진다

점점.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지 못할까봐서


그들이 내 기억속으로만

존재하고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서.


빼콤히 미래를 내다보는 일은

아버지의 주름에서 가서는 멈춰버렸다


누군가에게는 기대되는 미래지만

희망할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자식들의 재롱잔치에

인생을 걸어보는 시간이지 않을까




아빠 내일 입고 갈꺼야?

내일 춥대~입고가~


아니야~ 토요일에 시골갈때

입고 갈꺼야 아껴야지


아버지와 아들의 술자리는

어느순간부터 아버지의 친구분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외제차 못지 않은 자랑거리였다


하물며 아들과 생일을 축하하고

선물로 받은 외투의 소중함이란.


평 남짓의 정든 우리집

나는 아직도 이 집에서


부모님과 말을 섞으면서

엎치락 뒤치락 싸우면서 살아간다


미친놈, 썩을놈

오만가지 욕을 들어가면서도.


어머니는 집에 빨리 들어오지 않는

아들에게 조용히 전화를 거신다


요즘들어서 나는 어머니가 끊으려고 하면

한마디를 더 해서 꼭 웃음을 받아내고 끊는다


못내 아쉬운건 점점 부모님이 아니라

나다, 나. 못난 아들.


흔히 안겨드릴 수 있는 행복의

자그마한 조각도 드릴 수 없지만


한통의 전화, 일주의의 한번의 외식

생일때야 겨우 드리는 외투 한벌로


행복을 갈음하고서는

조금은 더 살깝게 대하겠노라고


부모님이 더 늙어서도

지금보다 더 자주 술한잔 하겠노라고.


되내이는 아들의 눈가에는

최근들어 더더욱 강기슭 안개처럼


뿌연 안개가 어리우고

삶은 더욱 깊은 골짜기로 들어간다




새벽을 맞이하면서

잠이 오지 않는 사이에


나는 지난 30년을

타자로서의 부모님의 삶을.


나로서의 부모님을 본다

그 분들의 관점에서


어린아이에서 지금처럼

장성한 아들이 되어가는 나를.


타자로서의 자기자신은 사실은

부모들이 보는 자녀들의 시선이다


타자가 나를 소환할 때

자신을 모두 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런 희생과 배려가

진정한 사랑이리라


나는 그럼 사랑을 먹고 자란

집안의 태양이 아니던가


오늘도 힘을 내서

부모님의 삶을 비춰야지.


언젠가 나의 자녀들이

삶의 기슭으로 들어가는 나에게


작은 태양이 되어서

나를 밝혀주겠지, 나의 가는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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