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치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Feb 25. 2019

보편과 공화

삼일운동 100주년 특별 국제학술회의 1일 차

20190225_삼일운동 100주년 특별 국제 학술회의

장소 : 메리어트 호텔 서울 5층

주제 : 민주 공화 100년, 세계시민 100년_보편 평화를 향하여


주요 연사

연세대 박명림 교수

프린스턴 필립 페팃 교수

센트럴 미시간 호프 엘리자베스 메이 교수

하버드 에레즈 마넬라 교수

류블랴냐 대학교 슬라보예 지젝 교수

튀빙겐대학교 위르겐 몰트만 교수



1. 개회 발표_박명림 교수(연세대)


보편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삼일운동 100주년을 돌아보자.


여러 가지 관점에서 삼일운동을 볼 수 있지만, 인류는 언제나 보편 평화의 이면에서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역사의 주변부에서는 경제적인 착취와 난민 문제, 내전과 정치적 독재가 이어지고 있었다.


보편주의의 입장에서 민족적으로는 공화주의가 국가적으로는 영구평화가 문명사적으로는 인간 평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의 여러 지도자들이 새로운 이론들과 평화구상을 했었다. 안중근의 동북아 평화론은 지금 봐도 보편적인 공화주의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2. 기조연설_필립 페팃_신자유주의와 신공 화주의


-요약


오늘은 neo-liberalism과 neo-republicanism에 대해서 알아보자.


불간섭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자유의 이상은 모든 강제력 있는 법을 자유에 대해 적대적인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반국가적이다.


또한 모든 시장 교환을 계약에 의한 자발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친시장적이다. 신자유주의는 선택이 극대화되고 국가가 매우 기본적인 안전망만을 제공하는 무한 경쟁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다.


비지배로서의 신공화주의적 자유의 이상은 입법이 선거와 경합을 통해 통제될 수 있고 지배에 반하는 한에서 친국가적이다. 시장의 교환행위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관계를 수립하거나 용이하게 한다면 신공화주의는 반시장적이다.


신공화주의는 시민들이 자유로운 인간으로 저항할 수 있을 만큼, 두려움도 경의도 나타나지 않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정된, 민주적으로 질서 있는 사회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신공 화주의


법에 의한 지배라는 공화주의 전 톤에 의해서 국가는 법의 담지자가 되고 법의 범위와 책임을 지도록 시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시민들은 국가에 의해서, 법에 의해서 동등하게 보호받고 ‘비지배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법의 의해서는 시민들은 자유의 범위를 인정받고, 안전하게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민들은 교육, 의료, 국방과 같은 기본권을 누릴 수 있어야 비지배의 자유를 부여받고 누릴 수 있게 된다.


공화주의에서는 개인의 사적 소유에 대한 사적지 배를 허용하고, 또한 공적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 공적 지배에 대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헤겔의 변증법으로 보자면 정은 개인의 자유, 반은 공적 자유, 합은 법에 의한 선거제도가 나오게 된다. 다른 인간에게 지배를 받지 않은 방식으로 그러나 자유를 누리기 위한 규칙에 의해서 선거를 통해서 법의 의해서 대표를 뽑고 공화국을 운영한다.


신공화주의는 기존의 공화주의가 추구하는 법의 이한 지배에 ‘시민의 견제력’이 추가되었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시민적 덕성이 충분히 성숙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공화주의


공화주의의 핵심이론은 자유, 법치, 공공선, 시민적 덕성이다.


기존의 공화주의의 논의는 시민의 견제력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단 정하고 나면 누구나 법의 지배를 따라야 하기에 공화국의 위기는 곧 혁명이 필요한 전제 군주정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신공화주의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시민 덕성과 함께 시민 견제력’이 포함되었고, 이것은 로크나 맹자의 저항권이나 시민 불복종의 개념도 포함하는 개념이 되었다.


결국 합의를 통해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적절한 교차점을 잡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신공화주의의 창시자인 페핏교수의 강연



에레즈 마넬라(하버드), 지구적 관점에서의 삼일운동


1919년의 삼일운동은 한국 역사의 거대한 분수령이었으나 또한 국제적 맥락 속에서 전개되었다. 삼일운동은 윌슨의 사상, 러시아 혁명의 충격, 파리 평화회의에 내재한 여러 가능성들, 동아시아의 여러 식민지에서 증가하는 소요사태 등을 포함한 제1차 세계대전에 뒤이어 나타난 국제적 요인들 속의 무수한 변화의 흐름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삼일운동은 단지 한반도의 한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 활동가들의 초국적 네트워크 역시 포함 함했다. 한국인들의 경험은 새로 등장한 평화담론, 특히 국제적 정당성의 기반으로서 자결 원칙의 확산, 이 어떻게 1919년과 이후의 사건들을 구조화하였는지 보여줌으로써 식민지 세계에서 국제적 사건과 민족적 운동의 발전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삼일운동은 공화주의를 떠오르게 했고, 제국주의 쇠락과 함께 독립국가로서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민주적 항거 운동이었다. 삼일운동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논쟁거리가 있다. 삼일운동이 일어날 시기에 한국은 독립을 외치기는 했으나 그러한 자격이나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역량의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몽양 여운영과 김규식, 이승만과 연결된 많은 사건들을 복합적으로 살펴볼 때 조선은 자체로서 보편 정신을 가지고 자생적인 아래로부터의 민족운동을 펼쳤고, 그것은 조선에만 국한된 운동이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볼 때 ‘보편적인 공화주의’의 시초가 되는 운동의 성격이었다.




3. 삼일운동과 세계평화사의 붉은 실_호프 엘리자베스 메이(센트럴 미시간)


1919년 삼일운동을 한국 독립을 위한 민족주의적, 항일 운동으로 보는 일반적 관점을 넘어서는 내러티브를 제시하려 한다. 삼일운동을 어떤 것에 대항하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적 이야기로 묘사하기보다는 국제평화사의 심층적 맥락 속에서 삼일운동을 어떤 것을 위한 것으로 그려낼 것이다.


삼일운동이 독립과 자결을 위한 이야기로 이해되어 오는 데 반해, 나는 이러한 서술 넘어 삼일운동이 어떻게 국제평화에 기여했고 현재에도 기여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리가 기존의 내러티브를 극복하고 삼일운동의 참여자들을 보다 넓은 지리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킬 때 삼일운동의 세계시민적이고 인도주의적 측면이 드러날 것이다.


각성된 의식과 세계시민적 감성, 새로운 형태의 우의와 국제 협력을 향한 갈망 등을 표출했던 보통 사람들의 복합적 이야기로 조망될 때, 삼일운동은 국제 평화 사의 ‘붉은 실’을 이루는 중요한 순간으로 빛나게 될 것이다.



-붉은 실, 평화 역사의 선


붉은 실을 평화 역사의 선이라고 생각해보자. 이것은 어떤 사건, 사상,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붉은 선을 규정한다면 이 붉은 선을 찾아내는 좆족 초세 대적, 초국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될 것이다.


베르타 폰 주트너와 함석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옛날에 있던 사람들이 다 훌륭한 일을 했지만 이걸 한 꿰미로 꿰있어야 구슬이 되겠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꿰는 것을 누가 해요? 내가 해야 돼요”라고 함석헌 선생님은 말했다. 또한 “역사라는 건 긴 릴레이 경주와 같다. 그 말입니다. 릴레이 경주라는 것 있지 않아요? 한 사람씩 제가끔 나가 뛰면 일등을 한 사람이 상을 받아도 혼자 받지만, 릴레이라는 건 첫 사람이 뒤고 돌아와도 반드시 바통을 그다음 사람 레엑 넘겨줘야 뛴 효력이 있고, 그다음 사람이 뛰어도 이걸 받아 가지고 뛰어야지 받지 못했으면 아무리 앞서가야 소용이 없어요. 그거 중요한 거예요. 역사라는 것도 릴레이 경주 모양으로 첫 사람, 둘째 사람, 셋째 사람, 넷째 사람 있지만 그것이 하나다, 옛날에 고구려 시대, 고려 시대 무슨 시대 있지만 그것이 다 하나의 일이라는 겁니다.”라고 함석헌 선생님은 1987년 3월 1일 봉원교회에서 연설 중에서 말했다.



-붉은 실, 삼일 운동의 숲으로 돌아가기


이야기의 풍성, 이야기의 바다, 광야는 평화의 역사와 삼일운동이다.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되는지,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 누구의 관점을 취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1899년에 축소해서 언제’를 살펴보자. 세계를 향한 호소는 권력에 진실을 말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들어준다는 것인데, 1899년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국제 상설 중재재판소가 열릴 때였다. 1907년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다른 법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한국이 평화 운동가들과 만나는 순간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베르타 폰 주트너였다.


1919년 3월 1일은 볼륨을 최대치로 올린 순간이었고 법정의 출현, 국제연맹, 상설 국제사법재판소에 영향을 미쳤다. 코리아 리뷰 잡지에는 한국 친우 회로 미국 의회에서는 상원의원 셀든 스펜서와 호크 스미스가 반응했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 고찰해야 하는가? 삼일 독립선언서 베르사유 조약과 대조된다. 삼일 독립선언서에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결코 오랜 원한과 한순간의 감정으로 샘이 나서 남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을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라고 민족사상이 담겨있다.


인물들은 ‘안창호-이승훈-함석헌’으로 이어지는 사상의 여정을 보아야 한다. 톨스토이는 Bethink yourselves에서 자아성찰과 메타노이아(회개)를 촉구한 인물을 이야기하면서 함석헌이나 신승희를 떠올리게 한다.


1919년 필리델피아, 1920년 유관순의 죽음 이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4. 저항과 외침(대중사회의 시민민주주의)_이은정(베를린 자유대학)


민주주의의 위기가 또다시 거론된다. Postdemocracy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와 같은 대중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더 이상 순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에도 이런 주장이 있었다. 대중사회에서 의회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의회민주주의보다 지도자가 결정하고 대중이 큰 소리로 환호하고, 손뼉 치며 그에 따른 것이 대중사회에 적절한 정치형태라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파시즘을 옹호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21세기 민주주의의 위기 논의 속에 다시 극우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 식민적 통치자, 권위주의적 지배자에 저항하는 대중의 함성이 미눚주의를 키웠다.


광장에 우리는 대중의 함성을 통해 대중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신이 주권적 주체자임을 지속적으로 천명해 왔다. 삼일운동을 통해 한국의 대중이 독립적 주권을 가진 자주적 국가의 시민임을 선언한 외침이었다. 그들의 외침이 한국 미눚주의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일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 논의는 대중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항상 깨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람들의 ‘외침과 변수’ 그리고 민주주의의 관계가 항상 우리의 화두로 남아 있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5. 세계 시민성 또는 행성적 집합성(세계, 지구적 폭력 그리고 행성적 상상)_Dr. Heike Harting(몬트리올대학교)


세계시민의 세계라는 용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만약 현재 비 배적인 단일한 세계 구성이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면, 어떻게 지구적 폭력과 세계 시민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 어떻게 세계라는 개념을 강압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상상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지속적인 탈제국주의적, 탈냉전 지형도에 ‘세계’ 개념이 의존하고 있는 정도를 규정함으로써 세계를 인간 보편적인 자명한 것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세계’ 용어의 규범적이고 유럽중심주의적인 구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 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펭 치아, 에드워드 사이드와 같은 탈식민지주의 사상가들과 함께 ‘월딩’(세계화, 마르틴 하이데거) 또는 ‘세계-형성’의 능동적 과정을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서 특별히 세계시민전쟁의 픽션적 내러티브가 한편으로, 민족국가의 분열에 대항해 세계를 월딩 하는 인식론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를 로렌 벌 렌트가 잔인한 낙관주의라고 부르 심각한 문제적 대상에 대한 액착, 역서는 자애로운 민족국가의 환상을 탈세계화하거나 재평가할 필요성을 드러나게 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려 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가야트리 스피박의 행성 성 개념으로부터 개인에게 집합적 행성적 주체로,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코즈모폴리턴적 보편주의에서 ‘부정적 보편역사’와 불안정성으로 이목을 전환시키는 세계 형성의 생산적 유형으로서 행성적 사유의 가능성을 고찰하려 한다.


이와 같이 세계를 박탈하는 세계화를 통해 세계 형성 과정을 가능케 하는 행성적 내러티브의 양식으로서 ‘세계’를 이론화한다. 방법론적으로 문화이론과 탈식민지주의 이론 사이의 비판적 대화를 생성하며, 크리스탈 하나 킴의 한국전쟁소설 if you leave me와 올루민데 포퓰러와 애니 홈즈의 난민 래려티브 모음집인 Breach등을 포함한 문학적 텍스트들을 분석할 것이다.


우리는 세계화를 탈세계화하고 재세계화해야 한다. 행성적 주체성이 나올 수 있도록 세계를 넘어서는 주체설정이 필요한 지점이다. 우주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민네이션, 생각


삼일운동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사회운동으로서의 삼일운동은 작은 차원에서 이해다. 보편정신으로서 ‘공화주의적 운동’의 성격으로 격상시키면 삼일운동은 문명사와 맥을 함께하는 비폭력공화주의적 방법론으로서의 세계정신일 수 있다.


신공화주의의 핵심은 법의 의한 ‘비지배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오늘 강연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신공화주의의 비판은 신자유주의가 강조하는 자유는 ‘비지배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고 ‘자본의 의해서 지배되는 자유’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법의 의해서 합의된 비지배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의 의해서 지배가 가능한 자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개인의 자유는 침해되고 일부의 자유만 확대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신자유주의가 각을 세우는 국가에의한 강압의 내용이 사회보험이나 공적부조와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공적지배에 대한 자유주의적인 반대는 개인에 대한 지배를 자본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비지배의 자유란 한마디로 ‘사람들을 볼 때 두려움이 없이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개인적 자유의 핵심이고 공적인 자유는 ‘사람들이 정부를 볼 때 우려움이 없이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삼일운동이 가지고 있는 인류보편적인 관점을 주체적 관점(민족), 주권적 관점(국가), 문명적 관점(세계정신)에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삼일운동이 베유사유조약과 반대된다는 근거는 삼일독립선언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운동의 성경에서만이 아니라 메시지의 성격에서도 ‘평화’를 담은 선언서에는 보편정신으로서 운동을 문명사적 이슈로 높여 놓을 것들을 볼 수 있다.


삼일운동의 주체는 민족주체들이다. 주체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애덤그랜트가 말한 ‘오리지널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항거하여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길 때 나오는 말이다. 그럼 이러한 주체의식은 어떤 과정에서 나오게 되는 건가?라고 할 때 ‘메타노이아’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내면적인 변화’에 의해서 시작된 다는 것이다. 정치학이나 사회학은 인간의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없고, 스케일에 있어서도 개인 이후를 보지 개인 이전의 내면의 일들을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분석학, 정신현상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다만 사료로 남겨진 일부만의 생각이나 글을 가지고서 ‘주체의식’을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민족 주체들의 변화는 생활사에서 알아봐야 하는데, 여기서는 당연히 민속지를 분석해볼 수 밖에 없다.


삼일운동 즈음해서 1919년에 세계사적으로 확대되고 공유되고 있던 세계정신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러한 정신이 있다면 어떤 ‘사건’에 의해서 촉발된 것인가? 아니면 문명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인간이 자연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인가?


만약 세계정신 혹은 시대정신으로서 보편평화라고 한다면 삼일운동이 거대한 세계사의 한 장면이지만 공통성은 공유하고 있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민네이션, 고민


사상과 정신은 공감을 일으키고 공감은 변화를 추구하게 만든다. 삼일운동의 정신은 독립선언문에 담겨져 있다. 그런데 독립선언문은 어떻게 쓰여진 걸까? 독립선언문의 사싱과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가 궁금하다.


주체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민족은 어떤 방식으로 주체가 되어 가는 것일까? ’시만의 탄생과, 인민의 탄생’을 볼 때 한국에서 사상의 발현은 엘리트주의가 아닌가? 엘리트주의가 언제나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엘리트의 사상과 정신이 마치 국민들의 정신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면, 실상은 그렇지 않았는데 오해하게 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엘리트주의에 의한 사상의 시작과 흐름이라면 삼일운동 자체를 세계사적 흐름으로 격상시키는 것과 공화주의적 전통의 시작으로 보는 것, 그리고 최근의 촛불혁명과 비교해서 보는 것들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메리토크라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성과주의에 묻혀버린주체들은 성과를 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나누어 버리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겪게 하는가?






참고하기 1. 신공화주의


https://m.blog.naver.com/gojuraphil/220376756288



공화주의 사상에는 세 가지 핵심 주제가 있다. 첫 번째 주제는 자유와 비지배의 동일시다. 여기에서 비지배란 타인의 의지에 종속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두 번째 주제는 법의 지배에 근거해 정치를 조직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이때 법의 지배란 어느 누구 또는 어떤 집단에게도 최종적인 권력을 부여함이 없이, 시민들의 자유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각기 다른 행위자들이 권력을 나누어 갖는 혼합정체와 같은 것을 지칭한다. 그리고 세 번째가 시민적 견제력의 회복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공식적 채널이든 비공식적 채널이든, 시민들은 정부 당국자들이 재직기간 동안 업무를 어떻게 수행했는지 공개적으로 설명하도록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어판 머리말, 5면)



하나의 이상으로서 비지배 자유는 풍부하면서도 매우 부담스러운 주제다. 왜냐하면 비지배 자유는 단순히 개인적 선택의 영역에서 타인의 간섭이 부재한 상태만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지배 자유는 개인적 선택의 영역에서 (실제로 간섭이 없더라도) 간섭할 수 있는 타인의 위협적인 권력에 그 누구도 종속되지 않는 상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국어판 머리말, 6면)



신공화주의의 다른 두 가지 주제들(법의 지배와 시민의 견제력)은 국가가 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국가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에 관련된 것들이다. (한국어판 머리말, 6면)



유사한 맥락에서 페팃은 비지배 자유를 '현실주의적 공화주의 이상'이라고 부른다. (옮긴이 머리말, 11면)



마지막으로 정치이론의 실효성은 그것이 제시하는 이상이 조정원칙(regulative principle)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페팃이 비지배 자유를 '조정적 이상'(regulative ideal)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 즉, 페팃은 신공화주의가 어떤 고정된 이데올로기나 이상국가의 청사진을 제공하기보다, 각각의 사회가 처한 정치적 환경과 문화적 유산에 따라 상이한 적용을 가질 수 있는 조정원칙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옮긴이 머리말, 11, 12면)



페팃과 자파테로 총리의 정치적 실험 ... (13면)



자유주의가 어느 사회의 지배적 이념이라는 것 자체는 정치사회적 문제가 될 수 없다. ... 그러나 모든 것을 자유주의의 틀 안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습관이 굳어지거나, 신자유주의의 병폐에 대한 지적마저도 자유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고집이 상식이 된다면, 어떤 사회에서 지배적 이념으로서 자유주의는 정치사회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옮긴이 머리말, 13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좀처럼 '기회의 균등'으로부터 '가능성의 평등'으로 관심을 이전하려 하지 않는다. ... 각주 4)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중산층의 붕괴와 빈부의 양극화로 심화시키기 시작한 시점부터, 센(Amartya Sen)과 너스바음(Martha Nussbaum)으로 대표되는 영미학계의 자유주의자들은 '기회'보다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자유주의   평등관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14면)



'공정사회'든 '정의'든, 한국사회가 '가능한 최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 이미 영미학계는 신공화주의의 주장을 폭넓게 받아들였다. 그 결과 지금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의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페핏의 공화주의가 있다. (16면)



'공화국'(res publica)이라는 개념 ... '공중의 것' 또는 '인민의 것'으로 번역되는 '공화국' ... 키케로의 서술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공중'을 단순한 군집과 구별된 결속으로 이해했다. 아울러 이러한 결속은 정의에 대한 합의와 공유된 이익을 통해 형성되고, 공중의 관심사를 토론할 상의기구와 서로간의 신뢰가 기초할 공통의 법적 토대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즉, 로마인들에게 '공중'은 법과 공통의 관심사를 심의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유로운 시민들의 결속이었다. (17면)



반면 로마공화국의 시민들은 '공중의 것'을 권리만큼이나 의무의 측면에서 바라보려고 무척 노력했다. 공중의 것을 그 어느 누구에게 도 속하지 않는 모두의 것으로 해석하고, 이를 위한 책임을 서로 나누고 의무를 교환하는 것을 공유의 내용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공적 부담을 나누면서, 서로에 대한 의무의 교환에 등가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시민적 연대가 공유의 핵심이었다. (18면)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나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이유로 비지배 자유라는 조건을 포기할 이유도 없고, 전자에서 보이듯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공공선이 있다거나 전체적 지침과 개인의 선호가 갈등할 때에는 주저함이 없이 전자를 선택하라는 암시도 없다. 여기에서 신공화주의는 자유주의보다는 훨씬 부담스럽지만, 공동체주의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관계의 개념들을 발견한다. (옮긴이 머리말, 18-19면)



... '비지배 자유'라는 관념은 내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25면)



정치처학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들을 만들어내야 했을 것이다. (40면)



비지배 자유라는 지배와 자유에 관한 언어가 우리가 민주주의와 결부시키는 수많은 핵심적 제도와 헌법을 형성했던 유규한 공화주의 사상의 전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41면)



내가 말하는 보다 오래된 공화주의적 전통은 로마공화정 시대의 키케로와 '로마서 강론'의 '신성한 마케아벨리',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여러 공화국의 여타 저술가들, 영국 내전과 영국공화정 시대부터 등장한 해링턴을 위시한 일군의 인물들, 그리고 18세기 영국과 미국, 프랑스에서 공화정 또는 커먼웰스를 주장했던 이론가들과 관련이 깊다. 이 중에서도 나는 17세기 후반에서부터 18세기에 영국과 미국의 정치사상을 지배했던 '공화파'에 주로 초점을 맞춘다. (43, 44면)



비지배 자유의 이상에 환호할 때, 전통적 공화파와 공화주의자들은 이것이 오직 재산을 소유한 엘리트, 즉 주류 남성들의 이상이라고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남성,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갔던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이상으로 비지배 자유의 이상을 적절하게 재해석하고 재소개해야 할 이유는 너무도 많다. (45면)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의 세계에는 많은 정당화(legitimation)의 언어들이 존재한다고 앞서 언급하였다. 이러한 언어들의 두드러진 특징들 중 하나는 이들 모두가 이러저러한 점에서 자유의 개념에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모두는 자유와 같은 공통의 관용어를 공유하고 있다. (45면)



스키너, 선스타인, 브레이스웨이트와 같은 이론가들이 스스로를 공화주의자로 규정하고 나도 자신을 공화주의자로 부를 때, 이때의 공화주의 전통은 다음과 같은 전통, 궁극적으로는 민중주의(populism) 전통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즉, 인민의 민주적 참여를 최고의 선 중 하나로 바라보고, 공동체주의적 입장에 서서 인민의 참여를 전제하는 밀접하고 동질적인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감상적 전통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구체화디는 공화주의 전통은 본질적으로 민중적이지 않으며, 우리가 나중에 살펴볼 것처럼 공동체주의적이지도 않다. 공화주의적 자유는 제4장에서 설명되는 의미에서는 공동체주의적 이상이긴 하지만, 이는 현대의 다원적 사회와 양립가능하다. 또한 공화주의 전통은 민주적 참여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이를 근본적인 가치로 여기지는 않는다. (49면)



중도좌파 자유주의자들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공화주의적 견해가 지니는 제도적 함의들에서 매력을 느낄 것이다. (52면)



... 불간섭 자유의 개념이 비지배 자유의 개념을 대신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으며, 지배적 정치철학으로서 자유주의가 공화주의를 대신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58면)



각주 15) 페핏이 사용하는 도미니움(dominium)과 임페리움(imperium)의 구분은 다분히 로마법 전통에 기초하고 있다. (58면)



제1부 공화주의적 자유(Republican Freedom)



제1장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이전의 자유



고대/근대의 구분은 19세기 초 콩스탕의 유명한 논문 '고대인의 자유와 근대인의 자유'(The Liberty of the Ancients and the Liberty of the Moderns)에 의해서 유명해졌다. 콩스탕의 근대적 자유는 벌린의 소극적 자유이고, 그의 고전적 자유, 즉 민주적으로 스스로를 통치하는 공동체에 속할 수 있는 자유는 벌린의 다양한 적극적 자유의 개념 중 가장 유명한 유형이다. 근대적 자유는 자신의 사적 의지의 지배에 넘겨지는 것이며, 고전적 자유는 민주적으로 결정된 공적 의지의 지배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 특징상 근대적 이상은 자유주의적이며, 고전적 이상은 민중주의적이다. (65, 66면)



나는 소극적/적극적 자유의 구분이 정치사상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다. 이는 자세한 내용은 차지하고서라도, 자유를 이해하는데 단지 두 가지 방법만 있다는 철학적 오해를 지속시켰다. 하나는 자유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외부의 방해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율과 자기실현을 촉진하는 기제들의 존재, 보통은 실행과 연관된 것이다. (66면)



소극적/적극적 자유의 구분 속에서, 개인적 자유와 민중주의적 자유 간의 이러한 철저한 이분법을 따르는 역사적 담화가 지속되었다. 이러한 담화 속에는 근대 이전의 자유를 언급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대부분의 경우 민주적 멤버십과 참여, 그리고 이러한 멤버십을 통해 얻게 되는 성취 등에 쏠려 있다. ... 반면 근대적 자유를 언급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각 개인이 자신만의 영역을 영위할 수 있는 행위의 사적 영역이라는 이상을 옹호하면서 공적 참여라는 이상을 거부하는, 보다 개인주의적인 사회의 산물로 보았다. (66, 67면)



나는 이러한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대립들이 오해되고 오도되었으며, 특히 자유와 그 자유의 제도적 요구사항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근본적으로 상이한 제3의 방식이 지닌 철학적 타당성과 역사적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러한 제3의 접근을 공호주의적이라고 명명한다. (67면)



이 전통(공화주의 전통)은 특히 키케로라는 이름과 결합된 고대 로마에 그 기원을 둔다. 그후 마키아벨리의 헌정주의적 사고에서 강력하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르네상스 시대에 소생하였고, 최초의 근대적 유럽 정체들이 있던 북부이탈리아 공화국들의 자아상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 이러한 보다 근대적인 공화주의 전통의 넓은 범주에는 해링턴, 몽테스키외, 그리고 아마 토크빌까지도 포함될 것이다. 만약 루소의 작업이 비민중주의적으로 해석된다면, 루소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내 견해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공화주의 전통의 가장 설득력 잇는 적용은 이런 유명한 저자의 저작에서가 아니라, '카토의 편지', '연방주의 교서'와 같은 저술에서 종종 발견된다. (68, 69면)



제2절에서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간의 구분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철학적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곳에 비지배 자유의 개념이라는 제3의 독특한 접근을 위한 여지가 남겨져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72면)



근대적 사고로 알려진 소극적인 불간섭 자유를 고안해 낸 사람들은 미국 혁명과 미국 혁명이 가져다 줄 희망찬 새 시대에 환호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혁명에 반대하고 영국 왕정의 이익을 옹호하려 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비지배 자유라는 공화주의적 개념에 의해 추종된 사람들은 바로 혁명을 환영하고 옹호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비지배 자유는 결국 (불간섭 자유라는) 근대주의적 관념에 의해 대체되고 만다. (72면)



제3의 개념: 비지배 자유 ... (73면)



그(이사야 벌린)는 적극적 자유는 자율(mastery over the self)이며, 소극적 자유는 타인에 의한 간섭의 부재라고 생각했다. (73면)



타인에 의한 지배의 부재가 어떻게 자율이라는 적극적 이상과 구분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타인에 의한 지배의 부재가 자율의 달성을 보장하는 것은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73, 74면)



이 둘의 차이는 간섭 없는 지배와 지배 없는 간섭이 가능하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 나에게 주인이 있는 한 나는 지배를 받지만, 주인이 간섭하지 않는 한 불간섭을 누린다. ... 여기서 그려진 사람은 나에게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내 일에서 마치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대리인과 같은 관계에 있다. ... 간서 없이 지배할 수 있는 것처럼, 지배하지 않으면서도 간섭할 수 있다. 첫번째 가능성은 간섭하지 않는 주인의 경우로 설명할 수 있고, 두번째 가능성은 지배하지 않는 간섭자로 설명할 수 있다. (74, 75면)



간섭과 지배 모두 없는 경우: 두 가지 이상에서 모두 좋은 상태


간섭과 지배 모두 있는 경우: 두 가지 이상에서 모두 나쁜 상태


지배는 있지만 간섭은 없는 경우: 비지배 이상에서만 나쁜 상태


간섭은 있지만 지배는 없는 경우: 불간섭 이상에서만 나쁜 상태 (76면)



공화주의 전통에서 민주적 참여의 중요성이 확고하지는 않더라도 꾸준하게 강조되긴 하지만, 그 주된 관심은 분명 간섭과 연관된 각종 해악을 피하는 데 있다. 이것이 최근 스키너를 비롯한 몇몇 사상가들의 업적에서 발전되어온 주제이다. (82면)



각주 10) 이러한 시각은 스키너가 마키아벨리와 같은 공화주의자들이 적극적 자유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유의 소극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처음 구체적으로 옹호되었다. 스키너의 연구가 없었다면 나는 제3의 자유의 개념을 공화주의 전통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82면)



이렇듯 참여를 성취하는 것보다 간섭을 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마키아벨리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후의 공화주의 전통에도 적재적소에 남아 있다. (85면)



종종 해밀턴은 대중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경시한다. ... 이 문장에서 드러나는 불신은 "무례한 군중들의 소음과 고함소리"를, 적극적으로 외면한 밀턴과, 얼마 후 "나는 순수 민주주의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해도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라고 언급한 시드니와 같은 당대 공화주의자들에게서도 보인다. (86면)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저자들, 즉 광범위한 공화주의 사상의 전통에 서 있는 저자들은 민주적 통제 - 참여적이거나 대의적인 - 의 기제들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간섭과 연관된 해악들을 피할 수 있는 상태로 자유가 정의된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89면)



민중주의적 선회는 하나의 새로운 발전이었고, 민주적 자치의 이상이 불간섭의 소극적 자유의 이상에 대한 주요한 대안으로 지지되었을 때, 아니면 적어도 자유에 관한 개념들 중 주요한 대안으로 옹호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형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공화주의적 전통을 민중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공화주의의 이상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바로 그 이분법을 유지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89, 90면)



공화주의적 비재배 자유의 개념: 자유 대 노예 ... (91면)



공화주의 전통이 지닌 주요 특징들이 민주적 참여라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주로 간섭에 반대하는 의미에서의 자유와 연관되어 있었다는 주장은 충분히 이야기했다. 이제는 결정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다. 간섭을 피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공화주의의 강조는 불간섭 자유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하는가, 아니면 비지배 자유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하는가? 나는 비지배로서의 자유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91면)



비지배 자유의 개념이 우리가 공화주의 전통에서 발견하는 자유의 관점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자유주의라는) 근대주의적 접근과는 대조적으로 공화주의 전통에서 자유는 항상 리베르(liber)와 세르부스(servus), 즉 시민과 노예 간의 대조를 통해 표현된다는 것이다. 자유의 조건은 노예와는 달리 타인의 자의적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하면 타인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사람의 지위로 설명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 간섭이 없어도 자유의 손실은 있을 수 있다고 간주된다. (91면)



공화주의 전통에서는 자유를 노예상태의 반대라고 규정하고, 타인의 자의적 의지에 노출되고 타인의 처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중대한 해악으로 간주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로마시대의 공화주의식 표현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의미했던 리베르(lber)의 반대말은 노예라는 의미의 세르부스(servus)였다. (92면)



노예는 실질적 간섭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지배에 의해서 특징되기 때문에 이(러한 대조)는 매우 중요하다. 노예의 주인이 전적으로 인자하고 관대한 사람이라고 밝혀지더라도 그 주인은 여전히 노예를 지배한다. (이와 같이) 자유를 노예상태와 대조하는 것은 자유가 불간섭이 아니라 비지배에 있다고 보는 명확한 근거가 된다. (92면)



그러나 자유와 예속, 자유인과 노예로 양극화된 언어가 실제로 공화주의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공화주의적 유산이 영국과 미국에서 발전될 무렵이었다. 해링턴은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물질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이러한 대조를 분명히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은 종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자기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자유인이 될 수 있다." (93면)



해링턴의 영향을 받은 공화파 전통은 자유/노예의 대립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 "자유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노예란 순전히 타인의 처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카토의 편지) (94면)



이러한 논지들 중 유명한 것이 자유의 역사는 노예화와 해방의 역사라는 주장이었다. (95면)



공화주의 전통에서 자유/예속의 주제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자유가 불간섭으로서가 아니라 비지배로 다뤄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 시드니는 1600년대 말에 "세상에서 최악의 주인을 섬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절한 주인을 섬기는 자 또한 노예이다"라고 서술할 수 있었다. .... 자유는 단지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지배의 부재를 의미해야만 했다. (97면)



두 번째 논의는 공화주의적 자유의 개념하에서는 자유의 상실이 전혀 없더라도 간섭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특히 간섭이 자의적이지 않고 지배형태로 나타나지 않을 때, 즉 간섭받는 사람들의 이익과 의견에 의해서 통제되고 그들의 의견을 따르는 동시에 그들의 이익에 이바지할 때, 간섭은 자유의 상실 없이도 발생한다. (98면)



공화주의 전통에 속하는 한 논평자가 말한 것처럼 "키리타스의 주된 특징은 법의 지배라는 점이다." (99면)



법은 필연적으로 간섭과 연관되고 그 본질상 강압적이긴 하지만 이때의 간섭은 자의적이지 않다. 또한 법적인 권위들은 오직 시민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고 이러한 것들을 시민들 사이에서 얻어지는 의견들을 따르는 방식으로 추구할 때에만 간섭할 자격과 능력을 가질 것이다. (100면)



해링턴에게는 법으로부터의 자유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은 데 반해, 적절한 의미에서의 자유란 법에 의한 자유, 즉 시민권이라는 의미에서의 자유이다. (104면)



헤링턴의 친숙한 공화주의적 구절로, 루카의 법은 "인간의 제국이 아니라 법의 제국이다"라고 말한다. (104면)



휘그 또는 공화파 전통과 궁극적으로 미국 혁명을 유도한 (공화주의) 전통은 홉스와 (해링턴이) 주고받은 이러한 논쟁에서 주저 없이 헤링턴의 편을 든다. 우리가 보았듯이 공화주의 전통에서 자유의 반대로 제시되는 것은 모든 종류의 강제가 아니라 지배 또는 노예상태이다. (105면)



그(로크)는 "절대적이고 자의적인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는 본질적인 것, 그리고 노예상태와 대조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필머와는 명백히 반대되는 입장에서 법은 자유를 창조한다고 주장한다. "(법이라는) 해악은 오직 수렁과 절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울타리라고 불릴 만하다. ... 법의 목적은 자유를 폐기하거나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105면)



블랙스톤은 다음과 같이 썼다. "법은 신중하게 고안될 때 결코 자유를 파괴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유를 창출한다. 왜냐하면 (로크가 잘 판결한 것처럼) 법이 없는 곳에는 자유도 없기 때문이다." (107면)



이 둘 중 어떠한 개념을 옹호하더라도 간섭과 지배가 모두 존재한다면 인간이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들은 또한 간섭도, 지배도 없을 때 인간이 자유롭다는 점에도 똑같이 동의할 것이다. 이들의 구별은 간섭과 지배가 나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며 이는 첫째, 간섭은 없으나 지배는 있는 간섭하지 않는 지배자의 시나리오와 둘째, 간섭은 있으나 지배는 없는 지배하지 않는 간섭자 - 이상적인 법 - 의 시나리오이다. (108면)



자유를 공화주의 전통에서처럼 비지배로 보지 않고 불간섭이라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 홉스라는 점은 앞에서 확인했다. 그에게 자유란 물리적 강제와 위협에 의한 강제의 부재였다. ...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홉스의 사상을 따랐던 사람으로 오직 한 명만을 언급했다. 바로 또 다른 권위주의자인 로버트 필머 경이다. (108면)



자유를 홉스식으로 개념화하면서 린드는, 홉스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법은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이란 모두 강제적이다. 이들은 구속 또는 억제의 효과를 지니며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 하거나 하지 못하게 강요한다. 내 재산을 지키는 법이 당신에게는 구속이며, 당신의 재산을 지키는 법은 나에게는 구속이다." (109면)



대부분의 공화파들에게 법은 구속하기 때문에 자연적 자유를 감소시킨다고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적 자유는 적절한 자유라고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연적 자유는 적절한 자유의 실현에 있어 장애가 되는 것, 즉 방종과 연관되었다. (111면)



그 이전까지는 영어권에서는 비지배 자유라는 공화주의적 자유의 개념이 확고하게 군림하고 있었다. 홉스의 개념은 역사적 관심에서 잊혀져 있다가, 영국의 미국 식민지에서의 예속과 지배에 대한 불평, 즉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평을 잠재우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갑자기 생겨났을 때에 재천명되었던 것이다. (112, 113면)



불간섭 자유가 명성을 얻게 된 근원 중 하나는 물론 벤담 자신이엇을지도 모른다. ... 롱이 언급한 것처럼, "벤담은 규제행위를 통해 주권자가 신민들의 자유가 지닌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주권자로부터 나오는 모든 규제행위들이 자유를 파괴한다는 사실에 대한 관심의 끈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114면)



페일리는 이 책(도덕, 정치철학의 원칙들)에서 "존경받을 만한 수많은 저술가들의 사례뿐만 아니라 공통적 담론에서 사용되는" 시민적 자유의 일반적 개념은 비지배 자유라고 인정한다. (115면)



그(페일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구속 그 자체는 해악이다. 둘째, 구속이 가져올 해악보다 공공이익이 더 커야 한다. 셋째, 이때 공공이익의 근거는 입법부에 있다. 넷째, 법이 가시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도록 만들어졌다면, 폐지하는 데 있어 충분한 사유가 된다." (116면)



그(페일리)는 비지배 자유의 이상은 정부에 대해서 지나치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며 국가에 불합리한 목표를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18면)



비지배 자유의 이상이 지닌 난해함은 근대 이전의 공화주의적 사상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 사이에서는, 국가는 소수의 남성 엘리트 - 즉, 시민을 이루는 재산을 소유한 사실상의 주류 남성들 - 만을 위한 이상을 달성하려 한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비지배 자유의 이상이 지닌 난해함은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에 들어, 인간은 평등하고 사회정치적 제도들 앞에서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더 일반적인 가정이 되면서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119면)



여성들이 아버지나 남편의 의지에 종속되어 있다는 시각이 (사회적으로 이미) 수용되어 있을 때, 여성이 비지배의 위치를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국가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을까? (119, 120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시민(의 범주)에 포함하는 일로 자신들의 관심을 점점 확장하면서, 이들에게는 비지배 자유라는 풍부하지만 오래된 이상에 집착하는 것이 분명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 심지어 벤담과 페일리가 공유했던 목표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비지배 자유를 보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루기 쉽고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122면)



자유의 형식적 현실화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중도우파 자유주의자들은 드러내 놓고 불간섭에 초점을 맞춘다. (123면)



... 평등이나 복지를 현실화하는 데에 관심을 보이는 좌파 자유주의자들도 일반적으로 불간섭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롤즈는 "자유는 오직 자유만을 위해서만 제한될 수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불간섭 자유에 대한 관심을 분명히 보여줬다. 법이란 항상 자유의 제한을 의미한다는 롤즈의 가정을 볼 때, 그의 자유개념은 홉스와 벤담의 자유개념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 (123면)



... 그(이사야 벌린)는 "법이 여러분을 이보다 더 무거운 사슬에 묶이는 것, 즉 자의적 전제와 혼돈으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한다고 할지라도 법이란 항상 족쇄이다."라고 말한다. 비지배 자유, 즉 공화주의적 자유는 정치사상가와 활동가들에게만 잊혀진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잊혀져버렸다. (124면)



행위자는 만약 그들이 다른 행위자에 대해서 특정 권력, 특히 자의적인 간섭을 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다면, 이러한 경우에 한해서만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 공화주의적 용법에서 볼 수 있듯이 (지배하는) 자들은 타인에 대해서 지배력을 가지며, 이때의 지배력은 자의적이다. (126면)



1)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


2) 자의적으로,


3) 타인이 내릴 수 있는 특정 선택들에 대해서. (127면)





참고 2. 삼일독립선언서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려 인류 평등에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에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가 있은 지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억누름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 지 이미 십 년이 지났으니, 그동안 우리 생존권에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명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러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면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 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이천만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인들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죄주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에 있을 뿐이요, 그것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펼쳐나갈 뿐이오,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도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스러움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였던 두 나라의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마침내 억누름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인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결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서로 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이천만 민족을 위력으로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 동양의 안전과 위태로움을 좌우하는 굴대인 4억 중국인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움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지나인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오.


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오랫동안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이 되살아나기를 재촉하는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정당과 개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