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벡의 '위험사회' 서문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읽을 시간이 왔다. 사회학스터디에서 마누엘카스트-푸코’를 지나서 울리히 벡까지 왔다. 전대, 근대, 전근대, 탈근대까지 가는 과정에서 근대성은 어떻게 변화되고, 사회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살펴보자.
우리는 결국 ‘세계의 변화 -국가의 구조-사회세력의 변동’의 함수에서 어떻게 사회세력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침범당하지 않고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담론, 상황, 전략을 갖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다.
울리히백은 탈근대가 아니라 전근대성 안에서 ‘성찰적 근대성’을 통해서 위험을 통제하고 사회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전문가의 독재가 아니라 공유된 의사결정을 통해서 각자의 경험과 인식이 이론과 합쳐지는 공론장에서 가능한 위험에 대한 대비이다.
위험사회는 ‘데이타-정보-지식-지혜’의 상위단계로 갈수록 더 많은 사회 성원들과의 공유와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말 그대로 다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며, 흩어지면 오히려 더 사회는 힘을 잃는다는 것을 핵심으로 보고 있다.
헤게모니가 지배하는 문화적 울타리를 벗어나서 소규모 사회학자 및 인류집단이 특히 주목해 온 것은 다음의 세가지 상황이다.
첫째, 그런 물리적 위험들은 사회체계 내에서, 예를 들자면 위험한 활동을 관리하고 통제하기로 되어 있는 조직들과 제도들에 의해 항상 발생하고 초래된다. (이건은 소방방재청을 예로 들면 그들의 부주의나 상황대처의 미숙으로 위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러므로 물리적 위험들의 크기는 사회관계와 과정의 질적 차원에 대한 직접적인 함수이다. (결국 실재로 위기는 사회관계 내에서 조직적으로 힘을 가진 집단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셋째, 그러므로 기술적으로 가장 강력한 활동들에 대해서조차 일차적인 위험은 문제의 위험들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낯설고, 잘 알지 못하며, 가까이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한 제도들 및 행위자들에 대한 사회의 종속의 위험이다. (제도와 구조를 만지는 전문가의 독재가 위험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3차원적 지식수준에서만 다루어지는 위험에 대한 해결은 생활 기반의 위즈덤적 대안을 낼 수가 없다.
위험을 담당하는 조직들이 지식수준에서만 다루는 위험에 대한 대처는 계속해서 지속가능한 위험 사회를 양산한다.
결국 전문가의 독재를 막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유된 의사결정이 필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