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다룬 “하숙집” 에서는 더블린 시 사람들의 속물근성과 물질주의적인 모습을 통해 더블린 사회의 ‘마비’를 엿볼 수 있었다. 오늘은 《더블린 사람들》의 5번째 단편인 “경기가 끝난 뒤”를 소개한다.
며칠 전에 친구와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 ‘암살’을 보고 왔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이 소설이 떠올랐다. 아일랜드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꽤 비슷하다. 우리는 일본에게 36년간 식민지배를 받았고, 아일랜드는 무려 800년 이상(!)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영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한국어 사용을 금지한 것처럼 아일랜드 토착어인 게일어(Gaelic)를 말살했다. 또한, 한국이 광복을 맞게 되기까지 몸과 마음을 독립을 위해 바친 존경스러운 독립운동가분들이 있는 반면 오히려 일본에 협조해 편한 삶을 살아왔던 친일파들도 존재했다. 아일랜드 역시 식민통치 시기동안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많은 친영파들이 존재했다. 소설은 변절한 민족주의자의 아들인 지미(Jimmy)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아일랜드의 심화되어 가는 식민지 상태와 정치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식민지’ 아일랜드의 모습에 집중하며 글을 읽어보자.
1. 식민지 아일랜드
- 자동차 경주
이야기는 자동차 경주가 열리는 아일랜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시작된다. 경기(Race)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1903년 아일랜드에서 실제 열렸던 ‘경주’를 의미함과 동시에 아일랜드 ‘민족’을 의미한다.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이 경주를 평한다. “이 빈곤과 무력감의 길 사이로 대륙은 자신의 부와 근면함의 속도를 올렸다” 라고. 차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당시 ‘경주용 차’는 사치품이자 부의 상징이다. 아일랜드인들은 이 경주용 차들을 구경할 뿐, 경기에 참가하지는 못한다. 자동차 경주는 아일랜드의 빈곤한 상황과 다른 유럽대륙 국가들의 풍족함을 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작가는 경기를 구경하는 아일랜드인들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작가는 경기를 구경하는 아일랜드 인들을 “감사하게 억압받는 자들”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식민지 상태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아일랜드인들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준다.
- 변절한 민족주의자
지미의 아버지(Mr. Doyle)은 한때는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던 졸부이다. 그가 부자가 될 수 있던 이유는 변절하고 친영파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지미의 아버지는 친영적인 사람들이 많은 킹스타운에서 도축업을 시작해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일단 영국에 협조하기 시작하니 따내기 어려운 경찰 납품 계약도 쉽게 따내게 되고, 언론에서 주목하는 부자가 된다.
- 가면을 쓴 더블린(Dublin)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은 식민지 상황 하에서 수도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런 더블린의 모습을 작가는 ‘수도의 가면(Mask)’을 썼다고 묘사한다.
- 프랑스에 호의적인 아일랜드
영국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는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의 라이벌이자 적인 프랑스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동차 경주에서 아일랜드인들은 프랑스인들의 자동차를 응원하고, 지미는 프랑스인인 세구엥(Segouin)에게 다른 친구들에게보다 잘 보이고 싶어한다.
2. 주인공 ‘지미’
부자 아버지를 둔 탓에 편한 삶을 사는 지미는 프랑스인인 세구엥을 비롯한 대륙인들과 어울린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는 (그도 아일랜드인이지만) 아일랜드를 “속된 세계”로 규정하고 멋진 대륙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신의 세계를 신성하게 여긴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돈이 많다 해도, 그가 멋진 친구들과 어울린다 해도, 그의 아버지과 영국과 친하다고 해도 지미는 여전히 2등 국민인 식민지 국민이다. 친구들과 차를 타고 다니며 들떠있던 지미의 마음은 영국인 라우스(Routh)가 합류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라우스가 합류한 자리에서 세구엥이 화제를 정치 쪽으로 몰고 가자 술에 취한 지미는 (아마) 영국과 아일랜드에 대한 얘기를 꺼내게 되고, 이는 영국인 라우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지미의 민족주의적 발언이 진정한 민족주의적 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지미가 자신이 부정하는 “속된 세계”를 벗어날 수는 없는 모양으로 보인다.
3. 카드 게임
자리를 옮겨 이어진 카드 게임에서, 영국인 라우스는 가장 많을 돈을 따는 반면 지미는 가장 많은 돈을 잃게 된다. 더 상류계층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지미의 시도는 결국 카드게임 후에 더 빚만 지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지미는 계속 돈을 잃어만 가는 카드게임에서도 발을 빼지 못한다. 지미는 날이 밝으면 분명히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 진행되는 게임이 즐겁다. 이런 지미의 모습은 작품 첫 부분의 “감사하게 억압받는” 아일랜드 구경꾼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작가는 지미같은 아일랜드 상류층들의, 유럽 상류층에 속해보려는 과한 열망1)을 정확히 그려냄과 동시에 더블린 사람들이란 작품의 전체적인 모티프인 ‘마비’의 모습을 지미와 아일랜드 사람들을 통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