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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철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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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ug 08. 2019

리처드로티' 손으로 그리기

#1 자유주의적 아이러니스트

사회를 혁신하고자 하는 친구들과 함께 철학스터디를 시작한지도 1년이 넘었다. 철학아카데미에서 발행한 '처음읽는 현대 철학'시리즈를 프랑스철학에서 시작해서 독일철학과 영미철학까지 왔다. 중간에 아이펜슬이 생기면서부터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손으로 이해한 것들을 설명하고 공유하는 시간이 왔다. 





#1. 이분법은 어디서 부터 온 걸까? 


인간은 나누고 쪼개고, 분리하고 분류해서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러한 분류가 완벽주의를 뜻하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러한 분석은 사실 두려움의 표현이 된다. 자신이 모든 것들을 알아야만, 자신의 손아귀에 놓고 자유도를 떨어뜨려야만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게서만 안정감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로티가 집중한 것은 플라톤 이래로 분석철학이 가지고 있던 명제가 과연 진리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언어를 규정하는데 있어서 논리는 항상 '정답'인 명제가 있고 그것을 벗어났을 때, 반대로 말했을 때는 역, 이, 대우로 표현한다. 그러니깐 분석철학이 가지고 있는 언어학적 특징은 다분히 플라톤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완전한 삼각형이 이데아의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듯이,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의 정확한 표현이, 명확한 언어와 대상의 연결이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인간도, 자연도, 동물도 모두 이분법 안에서 정답을 위해서 존재하거나 혹은 정답에 미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플라톤으로 부터 이어받은 이분법적 영감을 로티는 그 당시의 자신의 친구들과도 결별하고선, 당당하게 그런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연의 거울'을 보라고 말한다. 자연이 어떻게 이분법이 있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 있으며 나눔과 분할이 있느냐고? 오히려 자연의 거울로 보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들은 삶이라는 동시간대에 여러개의 나열로 엮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일상'ordinary라고 말하고 이러한 일상을 폄하하는 철학자들과 자신은 어울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존듀이, 비트센슈타인, 플라톤, 니체, 데카르트를 간접적이나 직접적으로 주차장에 넣어 놓고서는 자신의 길을 가는 리처드 로티를 만났다. 



#2. 자유주의적 아이러니스트


도대체 무슨 말이지? 자유주의적이면서 무엇이 아이러니를 추구한다는 것인가? 로티에 의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를 근본적으로 추구하게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자유를 추구할 권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또한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 타자를 향한 어떤 두렵고 떨림과 배려를 가진 아이러니스트라는것이다.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프래그머티즘의 윤리와 철학을 따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이러니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언어와 불안, 예술의 영역에서의 존재감을 가지게 되는 인간을 본래적 인간이라고 상정한다. 


우리 모두는 자유주의적인 이상과 미래를 추구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불안하게 타자와의 교우를 원하고 무엇인가 사회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래서 로티에게서는 불안은 자연스러운것이 되고 그러는 가운데서도 실용적인 문제해결이 되는 일상을 꿈꾸게 된다. 


낭만주의자들은 초기 17세기 독일에서 처음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쉘링, 노발리스, 피히테, 헤겔은 초기에 사회 자체를 낭만화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 삶 속의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 삶에서 추구되는 이성과 실재로 인간들이 살아가는 장에서의 역동성을 연결하려고 했다. 그래서 낭만주의자들은 이상과 실재를 연결하려는 작업 때문에 기회주의자 혹은 지나친 이상주의자, 혹은 일부에서는 사기꾼이라는 단어도 듣게 된다. 오늘날 이러한 양가감정은 지그문트 바우만에 와서는 액체근대라는 용어로 사용된다. 낭만주의는 철학 뿐 아니라 회화, 건축, 도시, 신분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오히려 나는 체게바라로부터 이어 받은 '이상주의적 현실주의'를 지향한다. 현실을 살아가지만 낭만을 잃고 않고 현실에서 이상을 계속 꿈꾸는 것 말이다. 이상이 없으면 현실은 의미가 없고, 현실이 없으면 이상은 허무하다. 플라톤도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아닌, 헤라클레이토스도 아니고 파르메니데스도 아닌 현실을 계속해서 바꾸어 가면서 그 현실이 이상의 가능성을 조망해 가는 그런 낭만주의 말이다. 그래서 이상을 가지고 계속 현실을 낭만화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계속 낭만을 찾기도 한다. 


#3 로티와 플라톤 사이


이데아를 볼 수 있는 눈이 nous라면 계몽주의 이후에 진리를 보는 눈이 ration이겠다. 합리성의 축적에서 이성을 넘어 진리차원까지 발전하는 것들을 보는 시대를 지나왔다. 로티가 보기에는 플라톤이 만들어 놓은 이데아의 도식은 현실에 재현될 뿐이다. 그러나 로티는 이데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한 현현present하는 현실에서 계속해서 재현represent되는 것은 일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일상ordinary은 진리와 이성이, 역사와 미래가 만나는 장이면서 계속해서 재현되는 장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진실에 가깝다. 


로티에게서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나아렌트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라는 주제에서 '사람들은 미래와 과거 사이에 현재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현재라는 개념은 이념으로만 존재할 뿐 존재자체를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정의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 우리가 있다.라고' 그렇다. 정말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나와 너가 있고, 우리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연대하고 공감하면서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고 과거를 함께 해석할 수 있다. 


#4 감수성과 인식 사이에서


감수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개념은 스피노자와 들뢰즈의 개념에서 볼 수 있다. 정동affect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마음에 어떤 사건들이 만들어낸 상처 혹은 기억 혹은 인상들이다. 이러한 인상들이, 상처들이 어떤 감정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의 정서로 차곡 차곡 쌓인다. 그럼 우리 내면의 공간들은 거대한 영혼의 저장고 같아서 여러가지 감정의 뿌리들을 내리고 자라나게 된다. 우리의 내면은 점점 자라나고 그 안에서 여러가지 감정들이 성인처럼 장성해서 어느순간 발현되는데, 이것이 바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들뢰즈에 의하면 기억의 재료는 감정과 이미지라고 한다. 여기서 이미지가 우리에게 정동을 일으키는 1차 자료라면 2차로 그 이미지에 대한 우리 내면의 깊은 정서와 만나서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보는 것이다. 어느정도 베르그송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으나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정동으로 만들어진 정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고, 매순간 '기분, 흥분, 감정'은 수준에 따라서 화, 기쁨, 즐거움, 행복으로 우리의 몸에 현현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들뢰즈가 말한 '천개의 고원'은 이러한 감정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사이즈를 크게 보면 개인들이 여러가지 감정과 정서를 가지고 사회에 드러나는 것이다. 


로티 역시 감수성을 매우 강조했다. 자유주의적 아이러니스트의 여러가지 모습 중에서 '시인'의 모습은 매번 현실과 불안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불안을 왔다 갔다가 하면서 시인은 시적언어의 혁명을 만들어내고, 마침내 자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5 시대마다 시대에 맞는 옷을


결론적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보편은 시대마다 새로운 옷을 갈아 입는다. 

- 그들의 미래는 항상 그들의 시간이다. 

- 이론과 실천은 매번 재현되지만은 않는다.

- 우리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매번 아이러니 속에서 결정해야 한다. 

- 우연을 인정하는 것에서 타자의 얼굴을 비로소 볼 수 있다. 

- 그 시대의 맞는 인식 방법을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자.

- 감성과 정서는 우리를 이르는 근본적인 것들이다. 그러니 소중히 하자. 


#6 영미철학에 대한 단상


영미철학을 절반정도 공부하면서 다른 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는 진리의 존재가 어디에 있는가인데 독일 철학은 진리는 우리 내면에 있다고 생각했고, 프랑스철학은 진리는 지금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와 나 사이에 진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영미철학은 진리는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 조건을 통과process하는 가운데 진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그 통과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미쪽에서는 그렇게 많은 메뉴얼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이라던지, 유쾌한 공동체를 작당하는 메뉴얼 같은 것들이 모두 그런 부분을 드러낸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조건을 수행하는 가운데 주체화가 진행되어서, 비로소 주체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에서 무엇을 깨달았다고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너와 내가 있는다고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절차를 밟아가면서 진리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영미철학에서 가지고 있는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를 건축과 경영, 교육에서 많은 부분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머랄까?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라고나 할까? 보고 경험하는 것들이 모두 이런 방식이니 말이다. 


나는 어느정도 과정철학, 그러니까 어떤 단계를 거처셔 사람이 변화된다고 믿기는 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 그사람이 가지고 있는 조건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또한 타자의 조건들도 있다. 너와 내가 만나서 즐겁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인간은 선함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 선함을 이끌어내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내면에 빛이 있고 그 빛이 발현되기까지 밝게 타오르기까지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명확하게 반대하는 것은 '과정에서 주체가 만들어지는 것만이 진리'라고 하는 입장이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과정을 다 밟아도 사람은 변하지 않을 수도 있고 예상했던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다. 그게 더욱 합리적으로 그 과정을 설계해야한다기 보다는 로티가 말한 것처럼 '우연성'이 많은 부분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도 지금 현재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현현하며, 그리고 다시 재현하면서 살아가고 있겠다. 재현되는 것은 절대로 정동affect일 수 없고, 다만 인식과 인지, 이론은 가능하겠다. 그러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삶에서는 매번의 우연성과 선함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어떤 선택과 행동을 요구하고 있겠다. 우리는 더 사랑하는 것을 선택한다. 선택한 것들이 재현되는 과정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겠지.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잘못살았다면 나는 지금 다른선택을 해야 한다. 


이런정도로 생각이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계속해서 가능성과 우연성을 열어 놓고, 일상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나도 초대를 받고 그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간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 겠다. 






리처드 매케이 로티(Richard McKay Rorty: 1931년 10월 4일 – 2007년 6월 8일)는 미국의 철학자이다. 그는 길고 다양한 학자로서의 경력을 지녔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가르쳤으며, 스탠포드 대학교의 비교 문학 교수였다. 그는 이러한 복잡한 지적 배경을 지닌 덕분에 그가 나중에 자신에게 그 이름으로 딱지 붙이는 것을 거부했던 그 실용주의 철학에서 분석 철학의 전통을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시카고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철학사와 현대 분석 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였다. 후자는 1960년대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그의 연구의 주된 관심을 차지하였다.[1] 로티는 지식이 표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세계의 올바른 표상 즉, 자연의 거울을 포함한다는 철학적 전통을 거부하였다. 로티는 지식을 자연의 거울로 보는 생각이 서양 철학 전반에 만연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접근에 반하여 로티는 때로는 신실용주의 또는 네오프래그머티즘이라고 불리는 실용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지지하였다. 이러한 과학적, 철학적 방법은 사회적 유용성에 의하여 사람들이 폐기하거나 적용하는 우연의 어휘들을 형성한다. 로티는 표상주의자의 설명을 거부하는 것이 그가 아이러니즘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상태로 이끈다고 믿었다. 아이러니즘으로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의 위치 또는 철학적 어휘의 우연성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다.


로티는 가장 폭넓게 논의되는 현대 철학자이자, 가장 논쟁적인 철학자 중의 한 명으로, 그의 저작은 존경받는 철학자 다수의 사상적 대응을 촉발시켰다. 예를 들어, 로버트 브랜덤의 선집, 《로티 앤드 히스 크리틱스》(Rorty and His Critics)에서 로티의 철학은 도널드 데이빗슨위르겐 하버마스힐러리 퍼트넘존 맥도웰데니얼 데닛에 의해 논의된다.

존 맥도웰은 로티, 특히 로티의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대륙 철학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자크 데리다 등이 또 다른 방식으로 로티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자신의 선집에 실린 단편 하나에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며, 비평가들은 월리스의 아이러니에 대한 몇 개의 저술이 로티의 영향이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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