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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ug 27. 2019

거대한 전환 19장

인민 정부와 시장경제

20190806_칼폴라니 스터디

거대한 전환_19장 인민 정부와 시장경제


http://www.podbbang.com/ch/11295 여기에서 팟캐스트를 들을 수 있다.


인민정부, 시장경제  

    1920년대 마침내 국제 체제가 무너지게 되자, 거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초기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들이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처음으로 전면에 두드러진 것이 정부가 인민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파시스트들은 인민들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퍼부었지만, 그 내용은 결국 시장 경제의 역사 전체에 유령처럼 떠돌던 정치적 개입주의의 논쟁을 재탕한 것에 불과했다. 개입주의란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의 분리라는 문제를 달리 이름 붙인 것과 다름 없었으니까.   

    이 개입주의 문제가 처음으로 전면에 드러난 것은 한편으로는 스피넘랜드 법과 신구빈법, 다른 한편으로는 의회 개혁과 차티스트 운동과 같은 노동문제와 관련된 사건들이다. 토지나 화폐에 관한 경제 개입도 노동문제에서 만큼 눈에 띄는 충돌은 없었어도 그 중요성은 덜하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어디서나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것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였고 그 결과를 영국을 위시해서 경쟁적 노동시장과 정치적 국가의 민주화로 나누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통화주의자들과 케인즈주의자들은 싸운다


스피넘랜드법, 개입주의  

    스피넘랜드법은 경제에 대한 개입주의에서 나온 예방 조치로서 노동 시장의 창출을 막는 것이었다는 평가를 듣게 되고, 산업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이 투쟁 속에서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개입주의라는 용어를 창안해 내어 스피넘랜드 법이 인위적 수단을 통한 시장 질서의 훼방이라고 낙인찍어 버렸다.   

    당시 그러한 시장질서라는 것이 아예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타운센드, 멜서스, 리카도 등은 구빈법으로 생겨났던 당시의 독특한 조건을 마치 인간세상을 지배한느 영구불변의 자연질서인 것처럼 여겼다. 이것은 낡은 질서를 파괴하기에는 빈약한 논리였지만 개념적도구로서는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사회질서는 1820년대를 지나면서 로버트 필과 윌리엄 허킨슨이 대외무역을 넓힌 탓으로 기계류 수출도 허용되었고, 양모 수출금지도 철폐되었으며, 선적 제한도 폐지되고 해외 이민도 쉬워졌다. 단결금지법도 철폐되었지만 스피넘랜드법은 남았다.   

    그리고 이러한 스피넘랜드법은 여전히 이 지역, 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이 정직하게 노동하는 것을 막고 또 독립적인 노동자라는 말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노동 시장이 나타날 때가 무르익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골지주들의 ‘법’이 그 출생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스피넘랜드법 폐지, 정치적 의도  

    개혁 의회가 들어서게 되자, 즉시 이 스피넘랜드 법의 수당 체계를 폐지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를 달성했던 신구빈법은 역사상 영국 하원이 통과 시켰던 가장 중요한 사회 입법이라고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의 핵심은 단순히 스피넘랜드 법을 철회한다는 것 뿐이었다.   

    이 시기가 되면 노동 시장에는 어떤 개입도 일절 없도록 만드는 것이  미래 사회의 전체 구조를 형성하는 데에 핵심적 중요성을 가진 사실이라고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사람들이 신구빈법을 통해 스피넘랜드 법을 철폐해버렸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것이다. 문명의 붕괴를 가져온 긴장 가운데에 경제적 원천에 대한 지적인 이정도로 해두자.   


근로장려금과 저임금 장려법 사이에 스피넘랜드법의 의도가 들어 있다


정치적 원천, 긴장의 연속  

    이제 긴장의 정치적 원천에 대해서 알아보자. 1832년의 의회 개혁을 통해서 평화로운 혁명이 달성되었다. 1834년의 구빈법 개정은 농촌에서의 사회적 계층 분류를 바꾸어 버렸고 이에 따라 영국적 삶의 가장 기초적인 사실들 몇 가지 또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노선에 입각하여 재해석되었다.   

    신구빈법은 일반적인 범주로서의 빈민poor 즉 ‘정직한 빈민’ 혹은 ‘일하는 빈민’이라는 말을 아예 없애 버렸다. 옛날의 빈민들은 이제 육체적으로 무능력하여 노역소로 보내져야 할 구호 대상 극빈자들과 임금을 위해 노동하여 스스로의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독립적 노동자들로 나뉘었다.   

    여기에서 완전히 새로운 빈민 범주가 생겨났으니, 실업자라는 존재가 드디어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구호 대상 극빈자들은 박애정신에 입극하여 구제해주어야 할 대상이었지만, 실업자들은 산업의 안녕을 위해서는 구제해주지 말아야 할 대상이었다. 실업을 당한 노동자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그러한 운명에 처한 게 아니라는 사실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노동자가 노력하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지가 아니라 노동자를 소름 끼치는 노역소로 들어가든가 꼼짝없이 굶어죽든가 궁지로 몰아 넣지 않으면 임극체제라는 것이 붕괴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전 사회가 혼란과 비참 상태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무 죄도 없는 사람에게 처벌을 가하는 짓이라는 점 또한 똑똑히 인식되었다. 이러한 변태적 잔인성이 정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있다. 노동자들이 이제 모든 인격적 예속에서 해방되었지만, 그 진정한 목적은 이제 아무도 그를 먹여 살려주는 사람이 없게 만들어서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셋팅한 사람들이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실업자들이 극빈자처럼 구호를 제공받게 되면 산업기강이 헤이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해리엇 마티노의 표현처럼 엄격하게 법으로 ‘실업자 구호는 금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차티스트 운동, 헌정  

    이런 상황에서 차티스트 운동의 결과로 상속재산이 없는 사람들도 국가 영역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커지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현상이 실제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이를 대처하기 위해서 많은 학자들은 자유주의적 견지에서 차티스트 운동의 요청이 국가의 기강을 흔들어 버린다고 비판했다.   

    로버트 필은 차티스트들이 요구하는 헌정이란 헌법에 대한 탄핵행위라고 부른 바 있다. 노동시장이 노동자들에게 더욱 삶을 치열하게 몰아 붙일 수록 노동자들은 점점 더 거세게 투표권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임민정부의 요구가 이후에 혁명들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 이전까지 헌정주의는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의 재산권을 왕이나 교황으로 부터 독립해서 축정하려는 의도로 의회에서 거론이 되었는데 이제는 빈민들이나 인민들, 실업자들로 부터 자신들의 재산을 지켜야 하는 양상에 처하게 되었고, 이것을 헌정주의를 통해서 이용 해결하려고 하였다.   

    왕권과의 치열한 대치, 그 후 100년이 지나고 보호되는 것은 상업자본이 아니라 산업자본이 되었다. 왕권에 대한 상업권의 보호는 인민에 대한 산업권의 보호로 이어지게 되었다.   


차티스트 운동의 서막


권력분립, 의도  

    왕권이 아닌 인민과의 대치는 19세기의 상황에다가 17세기의 헌법을 갖다가 쓰는 꼴이 되어 버렸다. 큰 덩어리로 권력을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시대적 배경 하에 몽테스키외는 1748년 위기감을 ‘삼권분립’으로 해소하려는 시도를 했다.   


    역사적으로 경험했던 인민의 재산권에 대한 헌정주의적 도전을 미리 숙지한 미국의 지도자들은 경제의 영역을 헌법의 관할에서 완전히 떼어 냈다. 사적 소유를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보호 아래 두어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법적 기초를 갖춘 시장 사회를 창조했다.   



나눔  

    노동이 상품이 되면 상품으로서의 노동은 ‘자원의 희소성’과 ‘가치’의 관계를 가지고 값어치를 높이게 된다. 이것은 현대성의 특성이다. 이러한 거대한 전환의 결과는 지금 우리가 ‘이건 원래 그랬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노동이 상품인가? 그럼 사람이 상품인가?   

    지그문트바우만은 말했다. 홀로코스트는 현대성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다. 노동이 상품이 되고, 상품이 된 인간을 다루는 방식은 나치가 했던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국가 대 노동’이라는 바운더리로 싸우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시장 대 노동’의 싸움으로 가야 하고, 정부의 성격에 대해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문제는 국가와 노동의 싸움도, 시장 대 노동의 싸움도 모두 문제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정치를 본다는 것은 폴라니의 관점이다. 그러나 언제나 보수 혹은 공화주의자들은 이런식으로 국가를 보았다. 민주주의자들은 경제적 가치가 종속변수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경제적 변수가 독립변수일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적인 대안부터 만들어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민네이션, 생각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이 오히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보다 더 치열할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한 법적 접근 방법론은 계속해서 광장의 인민들을 법정의 판결로 밀어내려고 할 것이다.   

    공공정책은 경제와 법 그리고 사회문제라는 기반에서 ‘정치적인 결정’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의 편파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정책을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다시 물어보자. 나는 공화주의자인가 민주주의자인가? 대중에 대한 가혹한 비판을 하면서도 엘리트들에 대해서는 어떤 부분은 동경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이것을 엘리트주의라고 하지 않는가?   

    자본과 자산, 공유와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은 ‘소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답을 내리는 과정에서 ‘소유의 불평등한 분배’에 이미 나누어가진 소유의 ‘공정한 재분배’에 대한 고민도 뒤따라야 한다.   

    다음 세대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평평하면서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초원의 풀밭을 선물하려면 대안도 필요하고 그 대안을 성공시켜야 하는 정치력도 필요하고, 대안이 가지게 될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예상과 준비도 필요하다.   

철저한 공화주의자였던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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