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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17. 2016

기독교와 정신

초대기독 사상의 정신_로버트 루이스 월켄_배덕만교수

20141216_초대 기독교 사상의 정신

배덕만(복음신학대)_기독연구원느헤미야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 에버노트에 끄적이던 필기장을 브런치로 가지고 왔다. 지금으로 보면 아주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긴하다. 어찌되었든 한국교회가 '초대교회'를 그렇게 이야기 많이 하는데, 출처가 애매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기본적인 '사상과 정신'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들어가기

잠시 샤르트르의 말을 가지고 와보자 "신이 무한하다면, 유한한존재에 의해서 파악되지 않는다 - 만약 무한한 존재가 유한한 존재에게 파악된다면 그 때의 무한한 존재는 유한한 존재가 파악하기 위한 차원으로 하강한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가 다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분은 우리에게 이해를 주는 것은 어떻게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존재를 이해할수 있을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맞는 이해인가?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대해서 이해하는것을, 아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Negative Thoerogy'의 의하면 하나님은 명제로 정의내릴 수 없다. 

Positive Theorogy는 스콜라 철학으로 발전하여 지적인 흐름에서 유한한 존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식은 명제적인 방식이 있고, 경험한 것을 귀납법적으로 이야기하는것이 있다.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예수님은 그래서 모든 부분을 메타포로 말씀하신다.

intuition과 insight로 봐야하는데 Logic으로만 보게 될 때 유한은 유한의 장벽을 만든다.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에 대한, 세계와 역사에 대한 하나의 사유방식이다.

민네이션 :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은 계몽주의 혹은 과학주의 혹은 이신론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독론으로 성경을 봐야 한다. 





4장, 삼위일체 


항상 그의 얼굴을 구하라.

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삼위일체를

뜻하는 구절은 없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에서는 예배의 형식 안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풍부한 텍스트가 있다.

"항상 그의 얼굴을 구하라" 말씀의 대상인 그 분을 향해 우리 함께 사랑의 길로 나아갑시다. -


어거스틴

기독교를 공인하고 제국분열의 통합의 기제로 사용하려 했던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내부의 분열상을 보고 놀라게 된다.

언어의 분열, 교리의 분열, 삼위일체 개념에 대한 분열 및 인식론의 분열로 인해서 새로운 통치 이념으로 끌어가기에는 너무 많은 문제들이 응집해있던 기독교의 파열을 해결하기 위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소집하게 된다.

이 떄 문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가?라는 기독론과 성령님이 하나인가?라는 삼위일체에 대한 막연한 그림자를 드러내기 위해서 황제는 강제적으로 신학적인 교리를 확정해버린다.

그래서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삼위일체가 결정되어 버렸다..

사실 이후부터 교회사, 특히 중세 교회사는 대부분 정치적인 요소가 세부적인 교리까지도 정해버리는 꼴이 났다.

관련해서 종교법, 교회법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삼위일체, 부활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의 시작은 예수님의 부활'이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계가있다고 주장한다.

부활한 주님을 직접 만났던 1차 증인들은 이전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랍비'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인간을 초월하여 신적인 요소가 가능한 예수님을 이해하는 방식은 새로운 이해방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연결하는 방식은 동일시까지 가지 못했고 그저 선지자의 한명 정도로 이해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고나서는 완전히 그 전제를 바꾸었다.

예수님의 설교만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인간으로 이해했지만, 인간 이상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 이상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설교를 듣고, 부활한 예수니을 만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인식의 변화가 필요했다. 인간예수를 넘어 하나님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초대교회의 유일신 사상 안에서의 분할이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경험, 예수님경험, 성령경험이 내부에게 계속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역사하는 힘들이 어떻게 계층지어지는지, 어떻게 구조화되는지에 대해서 많은 방법론적 시도가 있었다.


힐라리우스, 삼위일체 논란

힐라리우스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경륜이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읠 경험했던 유대인들 안에서 실제로 성자를 경험한 제자들이 나오고, 그 제자들 가운데 부활한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나오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성이 이해되었고, 그 후에 역사속에서 성령을 경험하면서 성부, 성자, 성령의 트리니티trinity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다음은 그 삼위일체 안에서 삼위의 관계였다. 이 때부터 논쟁은 시작된다. 성령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 역사적인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 성부를 문자적으로만 알아았던 사람들, 모든 것을 경험했거나, 모든 것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들이 발생한다.

"하나님은 고독하지 않다"라고 했던 힐라리우스는 적절했는가?

단지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자로서의 그리스도, 단지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로서의 하나님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포괄적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어거스틴, 사랑

어거스틴의 사랑의 개념은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은 사랑하는 관계이다. 그 사랑이 바로 성령이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역주이지만 한나아렌트는 바로 이 부분을 학위논문으로 쓴다 "어거스틴에게서 나타난 '사랑'의 개념")

어거스틴은 우리의 이해가 증진되면서 탐색에 종착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마침내 삼위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논리로 설명하게 될 경우에 삼위일체는 사랑의 관계에서 멀어져서 유한속에 파묻히게 된다.라고 어거스틴은 말한다.

우리는 삼위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고 보게 되고 보게 되면 알게 되나니 그 때 알게되는 것은 이전것과 같지 않다.

사랑이라는 것은 사귐이고, 친밀함이다.

이 책의 저자 윌켄도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윌켄이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사랑의 관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초기 기독교 사상 안에 나타난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러게 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사랑의 관계가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삼위, 동과 서

서양에서는 유일신으로 부터 삼위일체로 가게 되는 경험이라면 동양은 삼위일체로 부터 유일신 사상으로 간다.

삼위의 경험이 먼저 왔는가? 유일신 개념이 먼저 왔는가에 따라서 기독교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후 논쟁의 방식

펠라기우스와 어거스틴의 싸움

키를로와 네스토리우스의 싸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호모 오시오스와 이오시오스

동질과 비동실의 싸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싸움


바르트, 예수

하나님을 가장 완벽하게 계시하는 존재이면서 인간의 가장 완벽한 원형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격적인 예수를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을 이해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5장 그리스도 인성의 비밀


451년 칼케돈 공의회

아타나시우스의 신성론, 키릴로스, 마리아 신성화, 보수주의, 루터, 칼빈

네스토리우스의 인성론, 마리아 인성화, 진보주의,

재세례파

성령론의 완성

갑파도키아의 그레고리우스를 비롯한 2인이었다.

서방교회는 삼위일체에 대한 기여를 하지 못한다. 삼위일체는 예수그리스도로 부터 시작해서 삼위를 이해했다.

동방교회의 역사적인 고민은 삼위일체의 조화와 구조를 밝혀내고 그 가운에 그리스도의 위상은 어디인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입장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위를 이해하려는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고, 특히 성령에 대한 입장은 더더욱 그랬다. 성령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것들이 이단이라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6장 천지창조


하나님의 형상, 그레고리우스

이성

그리스도의 마음

사랑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의해서 만들어졌고,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마음과 사랑을 통해서 완전한

형상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가죽옷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실존의 모습에서는 이렇게 다른가?

그 원인은 악, 죄이다. 우리를 망가트렸다고 생각했다.

죄로 인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기는 하지만,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레고리우스의 판단이었다.


몸, 영혼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적 삶의 물리적 측면과 영적 측면, 몸과 영의 관계를 다룬다.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만 보지 않고, 영과 육이 결합되었을 때 생명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 당시 그레고리우스의 이해는 영으로만 생명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활의 생명도 예수님은 몸으로 오셨고, 성도들도 마침내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채택된 니케아 신겨의 마지막 조항은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고대한다"라고 한다.

기독교의 인간관은 처음과 끝 사이를, 기원과 목적으로 왕복한다.





민네이션, 생각


느헤미야에서의 특징은 바르트가 성경을 이해하고 1차 증인, 2차 증인을 이해하는 방식처럼 계층을 정하는것 같다.

예수님의 한마디가 - 바울에게는 몇권의 책이 나오고 - 어거스틴은 몇십권의 책이 나오고 - 루터는 몇백권의 책을 쓴다. 이렇게 1차 증인들과 2차 증인들은 다른 방식으로 무한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초대 교회에서는 유일신 사상과 삼위일체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유한의 존재가 무한의 존재를 이해하기에는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전체 구조를 짜고, 그 안에 요소들을 포섭하고, 그 요소들을 서로 포지셔닝에 의해서 프레임 안으로 넣는 작업들이 해석학이다.

개인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험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마침내 성령을 경험하게 될 때, 어떤 변화가 있는가? 이러한 개인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로 확장되어서 인식될 때, 나라의 개념은 완성되는 것은 아닌가?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하는것, 아니 이해한다기보다는 행하는 것, 그 가운에 일어나는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의 발생, 존재의 재탄생은 초기교회부터 지금까지 교회를 지탱해 온 힘이었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교회는교회가 되었고 성도는 성도가 되었고, 삼위일체는 한 개인의 역사에서 부터 시작해서 세계의 역사로 확장되었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아버지에 대해서 성령에 대해서 하나의 구조를 이해시키시고, 실제로 사람들 안에서 사랑을 발견해내시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사랑의 관계를 확증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부활함으로써 이 모든 것들이 완성되었다.

역사 안에서 사라진 고민들을 이제는 꺼내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의 이러한 문제가 되는 초기 기독교 사상들안에서는 모두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삼위일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성령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성령이 강조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더 크게 삼위일체에 대한우리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거을 드러낸다. 너무 집중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균형을 이루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참고


1. 책소개

초대교회는 어떻게 기독 신앙을 변증하고 형성했는가?

오리게네스부터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와 고백자 막시무스까지...

“이 아름다운 책은, 초기 기독교 사상과 변증에 대한

완벽한 안내서이자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다!”

- 마크 A. 놀, 야로슬라브 펠리칸, 루크 티모시 존슨, 유해무 외 추천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에 대한, 세계와 역사에 대한 하나의 사유방식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생각하는 것은 믿는 것의 일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썼듯이 “사람은 먼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믿어지는 모든 것은 생각이 먼저 진행된 후에 믿어지는 것이다.······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으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누구나 생각한다. 믿음 안에서 생각하고, 생각 안에서 믿는다.” 처음부터 교회는 생기 있는 지적 생활에 양분을 공급했다.

   이 책의 목적은 교회사 형성기, 곧 교회가 모양을 갖추어 갈 때의 기독교 사상의 유형을 서술하는 것이다. 나는 이 주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여, 특정한 역사적 기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공통된 전통의 일부로서 개인과 사상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교부들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그들의 토대는 유지되고 있다. 나의 목적은 특정한 가르침들이 어떻게 출현하고 발전했는지를 기술하기보다는, 어떻게 기독교의 지성적 전통이 존재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해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시작된 지적 전통은 중세 사상의 철학적 폭과 엄밀성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의 각 시대마다 기독교적 삶에 독특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교부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판명된 토대를 놓았다. 그들의 저서는 기독교 사상의 발전 과정에서 하나의 무대나, 성경해석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한 장면 정도가 아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신실하고 참된 그 작품들은 신앙의 성경적이고 영적인 원천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기독교의 상상력에 공급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에도 여전히 우리의 스승이다.



차례

옮긴이의 글

0. 서문

1.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세워진: 기독교 사상의 토대

2. 놀랍고 피 없는 희생제물: 기독교의 예배

3. 현재를 위한 하나님의 얼굴: 성경

4. 항상 그의 얼굴을 구하라: 삼위일체

5.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그리스도 인성의 비밀

6. 처음에 주어진 끝: 천지창조 이야기

7. 믿음의 합리성: 인식의 길

8. 하나님이 주님인 백성은 복이 있도다: 지상과 천상의 나라

9.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행동: 초기 기독교 문학

10. 이것을 다르게 만들다: 초기 기독교 미술

11. 하나님 닮기: 윤리의 삶

12. 감각적 지성의 지식: 영의 삶

추천사



쇠퇴하고 있는 한국 교회를 다시 일으킬 수 없을까? 초기 기독교는 이교 철학자와 권력자들에게 박해를 받을수록 겸손하게 자기를 변증하면서 힘차게 뻗어 나갔다. 본서는 이러한 투쟁 속에서 초기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경을 통하여 깨달은 삼위일체 하나님, 믿음의 합리성, 사랑과 선한 욕심, 신격화의 삶과 종말의 대망 등을 주로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자 막시무스의 입을 빌어 서술한다. 저자는 신앙의 선배들이 그들에게 적대적인 세상을 변화시킨 역동적인 신학과 삶을 열정적으로 묘사하고 변호한다. 동시에 생소한 초기 기독교와 친숙해지도록 도와준다. 한국 교회의 떠들썩한 시절은 지났다 하여도, 우리 신앙을 합리적으로 변증하고 삶으로 승화시키면서 교회를 다시 일으키기를 원하는 신자라면 이 책 곳곳에서 번쩍이는 통찰력을 얻을 것이다.

―유해무 (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


초대교회를 사랑하는 한 탁월한 저자의 책이, 역시 초대교회를 사랑하는 한 역자에 의해 한국 교회에 소개되어 기쁘다. 윌켄은 한때 교부학 연구 과정에서 있었던 “기독교의 헬라화” 관점의 역사 구성에서 “헬레니즘의 기독교화”라는 구성으로 역사 기술 관점의 변화를 가져와 흥미를 끈다. 많은 교부들을 다루면서도 각 시대를 대표했던 자들로 선정된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자 막시무스를 집중하여 다룬 것도 바람직하다. 초기 기독교 사상의 탐구를 위한 주제를 예배, 성경,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인성의 비밀, 문학, 미술, 윤리 등으로 나눠 그 내용을 같은 비중으로 다룬 것 역시 관심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교부들의 글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한 점은 이 책의 가치를 입증한다.

―조병하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역사신학 교수)


교부학 전문가 윌켄의 역작이 한국에 소개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비록 로마가톨릭의 신학적 흔적도 있지만 일독의 가치는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저자가 밝히듯이 이 책의 특징은 첫째, 무엇보다 교회사의 초창기에 이루어진 기독교 사상의 유형을 주제별로 서술한다. 둘째, 신학적 이념에의 집착이 초대교회 연구의 문제라고 밝히면서, 교리의 시간적인 변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얻고 그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기독교의 지성사적 전통을 기술한다. 셋째, 그리스 사상에 대한 기독교의 현저한 독립성에 근거하여 하르낙의 “기독교의 그리스화” 테제를 거절하고 “그리스 사상의 기독교화” 역테제가 책 전체를 관통하게 했다. 나아가 그의 탁월한 학자성과 대중과의 원활한 소통력의 균형 또한 이 책의 중요한 장점이다.

―한병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로버트 윌켄이 권위 있는 역사 연구를 통해 걸작을 내놓았다. 그의 제안은 학문적이고 철저할 뿐 아니라, 초기 기독교 사상의 다양한 측면을 쉽게 이해하게 해준다.

―마크 A. 놀 (노트르담 대학교 역사학 교수)


학문적이고 사색적인, 그리고 논쟁적인 하나의 해설서로서, 이 책을 통해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는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

―야로슬라브 펠리칸 (예일 대학교 명예교수)


열정적이고 광범위하며, 풍부하고 생생한 이야기가 매력적인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여 기쁘다. 윌켄의 연구는 세계사적 조망을 아우르는 인상 깊은 결과물이다.

―필립 젠킨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명예교수)


이것은 단순한 학술서가 아니라 모든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윌켄은 우리 새로운 세대에게 초대교회의 놀라운 교사들을 발견하게 해준다.

―루크 티모시 존슨 (에모리 대학교 신약학 교수)


이 책을 반드시 읽어 보라. 윌켄이 이끄는 탁월한 길을 따라 천천히 읽어 보라.

―리처드 존 뉴하우스 (「퍼스트 띵스」 발행인)


놀랍고도 독특한 연구서이자 학문적이며 권위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 대한 완벽한 소개서다. 로버트 윌켄은 정교한 솜씨로 기독교 사상의 경계를 변경하고 확장하며, 요약하고 분석한다. 이 아름다운 책은 새로운 표준이며, 오랫동안 인용될 것이다.

―카를로스 에이어 (예일 대학교 역사종교학 교수)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이 책을 주의 깊게 읽는 독자들은 기독교 지성의 삶을 연구한 이 명저에 감동을 받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눈부시도록 매력적인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일반 독자들을 지향한 놀라운 성취, 학문성과 통찰 면에서 풍요로운 이 책은 지금까지 읽은 기독교 서적들 중에서 최고이자 가장 의미 있는 것이다.

―「리빙 처치」


중세 이전의 기독교가 사람들의 삶과 마음에서 어떻게 확장되었고, 기독교 지성과 예배에서 교부들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세심한 안내서다. 우리를 풍부한 지적 유산으로 인도하는 훌륭한 책이다.

―「내셔널 리뷰」


초기 기독교 연구에서 저명한 학자에게 또 한 번 빚을 졌다. 모든 대학교, 신학교, 교회 도서관에 비치되어야 한다.

―「성 블라디미르」


책 속으로

초기 기독교 사상의 발전이 ‘기독교의 그리스화’라는 개념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19세기 교리사 아돌프 폰 하르낙의 사상과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 그의 생각이 1세기 이상 동안 초기 기독교 사상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끼쳐 왔던 것이다. 이제 이 책을 읽어 가면서, ‘헬레니즘의 기독교화’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질 것이다. 물론 그러한 표현이 기독교 사상의 독창성이나 유대인의 사고방식과 유대인 성경에 진 빚을 온전히 포착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그리스 사상의 좋고 훌륭한 특성들, 예를 들어 덕성의 관점에서 이해된 도덕 생활을 충분히 인정하지 못한다. 동시에 우리는 기독교 사상이 그리스-로마 문화에 뿌리를 둔 사상과 개념의 틀 속에서 작동하지만, 그것들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와서 결국에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거듭 발견한다. _‘서문’ 중에서(22쪽)

초기의 한 가혹한 비판자는 기독교가 “매우 지혜로운 사람들, 도시들, 현인들”이 가르쳤던 “고대의 교리”를 포기했다고 꾸짖었다. 처음 몇 세기 동안, 이런 비난은 모든 그리스와 로마 관찰자들에 의해 다른 모습으로 기독교를 향해 제기되었다. 기독교 사상가들은 비판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대 세계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들의 비난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더욱이 그들은 그러한 과거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비평가들의 유산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유산이기도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사회적 사실이든 지적 도전이든, 타인들의 주장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기독교 사상은 자신의 형성기에 고전적인 지적 전통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_‘2.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 세워진’ 중에서(30쪽)

믿음은 확신이나 신뢰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깊이 알도록 이끄는 지식과 관계가 있다. 그것은 빛을 보는 것과 같다. 빛을 공유하지 않으면, 사람은 결코 빛을 볼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지 어떤 사실의 존재여부를 믿는 것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의미한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음으로써 우리는 그분을 존경하고, 믿음으로써 우리는 그분 속으로 들어가고 그의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이유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인도하는 문을 활짝 열어 준다. _‘7. 믿음의 합리성’ 중에서(210쪽)


지은이, 옮긴이 소개

로버트 루이스 윌켄 (Robert Louis Wilken)

탁월한 종교사학자 로버트 루이스 윌켄은 시카고 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이후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와 포드햄 대학교의 교수직을 거쳐 1985년부터 2009년까지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가르쳤고, 현재는 버지니아 대학교 종교학부의 명예교수이다. 기독교 역사, 특히 초대교회사와 교부학의 권위자인 그는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교와 아우구스티누스 교부학 연구소의 초빙교수, 북미교부학회 학회장, 미국종교학회 회장, 가톨릭신학아카데미 대표를 역임해 왔다. 초기 기독교와 관련된 연구와 강의,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그는 앞서 The Christians as the Romans Saw Them을 통해, 당시 로마인들의 눈에 비친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했다. 그리고 같은 문제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접근한 이 책 『초기 기독교 사상의 정신』은 초대교회의 실체를 기독교 안팎에서 차례로 관찰·분석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기독교의 초기 역사를 포괄적이고 설득력 있게 들려주는 역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 밖의 저서로는 Judaism and the Early Christian Mind, The Land Called Holy, The First Thousand Years 등이 있다. 그는 또한 초대교회 교부들의 저술을 기반으로 한 주석 시리즈 The Church’s Bible의 책임 편집자이기도 하다.


배덕만

서울대학교 종교학과(BA)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 신학대학원(STM)과 드류 대학교(PhD)에서 수학했다. 현재는 복음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사랑교회의 담임목사로 목회를 겸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세상을 바꾸는 도전』『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소명』(대장간), 『미국 기독교 우파의 정치 운동』(넷북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지성의 회심』(새물결플러스), 『레드레터 크리스천』『기독교 정치학』(대장간), 『3천년 기독교 역사 2』(CLC) 등이 있다.




2. 오리게네스

오리게네스 (?ριγενε?, 185년 경 - 254년 경)또는 오리겐(Origen)은 알렉산드리아파를 대표하는 그리스도교의 교부이다. 매우 독창적인 신학 체계를 세웠기 때문에 이단과 논쟁하였고 교회와도 마찰을 일으켰다. 그는 금욕주의에 따라 스스로 고환을 자른 것으로 유명하다.



로마 치하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185년 경에 태어나 10대 후반 아버지가 순교하였고 학업을 계속해 알렉산드리아에서 신도들을 가르치고, 문법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다양한 여행과 신학적 주제의 저술을 폈고, 40대 즈음에 성직자로 활동하였다. 스스로 거세한 것이 문제되어 알렉산드리아 주교 성직 서품/안수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오리겐은 팔레스타인 가이사랴 주교에게 서품/안수를 받게 되어 후에 교회 정치적, 신학적 정체성에 대한 질타를 얻게 된다. 서신과 연구를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와 고대 사상의 조화를 이룬 신학적 바탕을 이룬다.


오리게네스는 오늘날의 성경신학, 조직신학, 변증적 그리스도교 사상가로 볼 수 있다. 그는 먼저 성경해석자로서 성경에 대한 문자적 의미의 불충분성을 지적하였다. 그의 성경해석은 문자적, 영적인 해석을 주로 다루고 있다. 오리게네스의 조직신학적 사상은 그의 저서인 『de principiis(원리에 관하여)』을 살펴보면 그의 신학은 교리화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오리게네스가 살았던 당시의 이단들 즉, 마르시온주의자들과 가현설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창조주 하느님의 자비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증언한다. 그런데 그의 이론 중 '만물의 복귀'라는 개념은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사람뿐만 아니라 사탄과 마귀까지 구원할 것이라는 입장이어서 교회사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끝으로 그의 저서 『Contra Celsum』에서 그의 변증적 그리스도교 사상을 살펴보면, 그는 그의 저작에서 하느님의 계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성경의 해석에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리게네스는 그리스 문학과 철학, 원어에 대한 학문적인 관찰로써 성경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첫 성경 학자가 되었다. 그의 성경 해석 방법에는 신플라톤주의를 통한 필론의 알레고리 방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오리게네스는 그의 책 De Principiis IV.2.4에서 LXX의 잠언 22,20.21의 본문을 자기의 해석 원리로 채택하여 성경을 세 가지 방법(tripliciter, LXX)으로 해석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세가지 방법이란 테살로니카 1서 5장 23절에 있는 인간의 세 가지 요소인 영과 혼과 몸을 각각 세 의미로 보는데, 몸은 문자적 의미를, 혼은 도덕적 의미를, 영은 알레고리적인 의미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비록 오리게네스는 문자적 의미를 무시하지 않았지만 영적 의미와 문자적 의미를 균형있게 해석하지는 못했다. 오리게네스의 3 중적 의미의 성경 해석 방법은 후대에 4중적 의미의 해석 방법으로 변형되었고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 해석자들에 의해 절대적으로 사용되었다.



3 .힐라리우스

푸아티에의 힐라리오(300년 - 368년)는 푸아티에의 주교이자 교회학자이다. 생전에 아리우스파에 맹렬하게 싸운 전력으로 인하여 ‘아리우스파 망치(Malleus Arianorum)’ 또는 ‘서방의 아타나시오’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그의 이름 힐라리오는 라틴어로 ‘행복’ 또는 ‘명랑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1월 13일이다.




힐라리오는 기원후 3세기 말엽 픽타비움(오늘날의 푸아티에)에서 이교도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힐라리오는 그 당시 서방 세계에서는 다소 생소하다고 할 수 있는 그리스 철학을 포함해서 좋은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는 나중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그 결과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신플라톤주의적 생각을 포기하고 아내와 딸(성녀 아브라)과 함께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힐라리오는 비록 기혼자이긴 했지만, 약 353명에 이르는 푸아티에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만장일치로 주교로 선출되었다. 당시에는 아리우스주의가 서방 교회를 전복하려는 위협적인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힐라리오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교회의 분열을 막는 일이었다. 그의 첫 번째 행보 가운데 하나는 아직 정통 신앙을 고수하고 있는 갈리아 교회가 아리우스파인 아를의 주교 사투르니누스와 우르사키우스, 발렌스에게 내린 파문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한 것이었다.

힐라리오는 또한 아리우스파에게 동조한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에게 그릇된 이단의 사설을 물리칠 것을 간언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교회 안에 일어난 분열을 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콘스탄티우스 황제가 356년 비테래(오늘날의 베지에)에 소집한 시노드에서 힐라리오는 황제의 칙령에 따라 툴루즈의 로다누스와 더불어 프리기아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4년 동안 유배 생활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힐라리오는 유배기간 중에도 자신의 교구를 관리 감독하는 일은 계속하였으며, 유배지에서 당시 논쟁거리였던 신학이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을 집필하였다. 동방 교회의 신학을 접한 그는 자신의 신학을 보다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였으며, 358년 아리우스파의 주장에 어느 정도 기울었던 갈리아와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의 주교들을 위해 《교회회의(De synodis)》 등의 서간을 보내 애매모호한 성경 구절에 대한 동방 주교들의 가르침과 니케아 공의회의 결의문을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정통 신앙에 충실하기를 권면하였다. 여기에 더해 아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삼위일체론(De Trinitate)》을 저술하여 후대 삼위일체 신학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열두 권의 분량에 이르는 삼위일체론은 ‘신앙에 관한 연구’와 ‘아리우스의 이론과 주장, 아리우스가 사용한 성경 구절들에 대한 체계적 논박’ 등의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그는 전교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시를 이용하던 동방 교회를 모범 삼아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 음률을 붙인 찬미가를 활용토록 하는 등 서방 최초로 찬미가를 전교 도구로 사용하는 시도를 하였다.

한편 힐라리오의 적대자였던 우르사키우스와 발렌스는 힐라리오가 계속해서 아리우스파의 주장에 대하여 공개토론을 열자고 요청하자 부담을 가졌으며, 마침내 할 수 없이 힐라리오를 빨리 그의 교구로 돌려보내줄 것을 황제에게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밀라노에서의 추방과 죽음

자신의 교구로 돌아온 힐라리오는 이후에도 아리우스주의에 대한 공세를 계속 이어갔다. 364년에는 갈리아 지역을 넘어서 발렌티니아누스 1세 황제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던 아리우스파의 대표자인 밀라노의 아욱센티우스 주교를 이단자라고 비판하였다.

이에 아욱센티우스의 고발로 밀라노로 소환당한 힐라리오는 그곳에서 황제를 알현하고 자신과 정통 신앙에 대해 제기된 모든 공격적인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함으로써 굴욕감을 안겨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라리오는 밀라노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

365년 힐라리오는 이 당시 논쟁과 관련해서 자서전인 《Contra Arianos vel Auxentium Mediolanensem liber》를 집필하였다. 그리고 《Contra Constantium Augustum liber》에서 근래에 사망한 로마 황제를 “하느님에게 반기를 든 반역자”, “그리스도의 적”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하였다.

교구장으로서의 재임 기간이 끝나갈 무렵, 힐라리오는 자신의 제자이자 나중에 투르의 주교가 되는 성 마르티노가 자신의 교구에 속한 리귀제에 수도원을 설립한 것을 격려하였다.

힐라리오는 368년에 선종하였다.


사후 평판과 공경

힐라리오는 4세기 중반 암브로시오 이전까지 라틴계 작가들의 명단 첫머리에 이름이 올라왔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노는 힐라리오를 가리켜 ‘교회의 뛰어난 학자’라고 칭송하였으며, 힐라리오의 저술들은 이후 수세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높은 영향을 끼쳤다. 교황 비오 9세는 1851년 힐라리오를 교회학자로 선언하였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 힐라리오의 축일을 1월 13일로 지내고 있으며, 1970년대 전례개혁 이전에는 1월 14일로 지냈었다.




4. 한나아렌트 박사논문


[스크랩]한나 아렌트 1

인문학 n 사회과학 2008/02/23 12:41   http://blog.hani.co.kr/lifefree/12601

출처 : 겨레의 노래

아렌트의 학위 논문 : 개요


한나 아렌트의 박사학위 논문인 <아우구스티누스에서의 사랑개념Der Liebesbegriffe bei Augustin>은  고딕체로 인쇄됐고,  하이데거 스타일의 산문으로 쓰였으며, 번역되지 않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인용구들이 가득 실려 있다. 아렌트 학위논문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저작은 아니다.  애쉬튼 E, B. Ashton은 1960년대 초 학위논문 번역초고를 마쳤다. 그렇지만 그녀는 출판을 위해 그 번역초고를 수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논문에 뭔가 새로운 자료를 추가하여 낡은 소재들을 보다 명료하게 하려 했다. 1965년 그녀는 다른 작업에 몰두해야 했고 거기에 따르는 일거리로 인해 감히 엄두를 못 내고 그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아래에서 예정된 논문의 시놉시스에서 마음에 두고 있는  세 가지 사안들을 제시할 것이다. 첫째, 논문의 기본 구조와 의도를 보여줄 것이다.  둘째, 아렌트가 그녀의 스승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로부터 배웠던 사유방식이 그녀의 논문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지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가 아렌트 후기의 철학적, 정치적 관심사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상기시킬 것이다.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스칼라쉽에 대한 아렌트의 기여에 대해서는 별 다른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야스퍼스와 제자 아렌트 두 사람은 여태껏 공간에 대한 천착 없이 어떤 현상이나 개념에 대한 탐구를 개시한 적이 없었다. 그 둘은 학문적으로 탐구가능한 세계 안에서 어떤 현상이나 개념의 장소적인 측면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현상이나 개념이 정의하고 정의되어지는 존재론적  조건에 관해서 물었고 아울러 현상 혹은 개념과  인접한 불가해하고, 초월적이며, 궁극적으로 신비스런 영역이 어떻게 접근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하이데거와 아렌트 두 사람은 여태껏 시간에 대한 천착없이 어떤 현상이나 개념에 대한 탐구를 개시한 적이 없었다. 그 둘은 단순히 역사적 발전이나 개념들과 현상들의 역사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현상들이나 개념들의 근원이 되는 시간 안에서 그리고 그 시간의  경험을 문제 삼았다. “시제들”로서가 아니라 경험으로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최후의 저서인 <<정신의 삶>>까지 아렌트의 전 저작의 틀이 된다. <<정신의 삶>>은 미래 지향적인 의지, 과거 지향적인 판단, 그리고 ‘지금’이라는 경험으로서 사유를 위한 관심이라는 구도로 되어 있다.

야스퍼스의 공간적 체계화와 하이데거의 시간적 틀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에 대한 아렌트의 연구 안에서 서로 맞물린다. 그렇지만 연구를 시작한 명제들은 아주 단순하다. 사랑의 한 형태인 “욕망/충동(Appetitus)” 혹은 갈망이 분명한 대상 즉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추구되는 어떤 알려진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물들과 관련해서 또는 그 사물들에 대한 수단으로서가 아닌 스스로 목적이 되는 대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선(Bonum)이라고 한다.  일단 갈망은 충족이 되면 그걸로  끝이다. 즉 만약 갈망에 상실의 위협이 없어지고, 갈망이 공포 내지는 일련의 악(malum)에 대한 불안과 뒤섞이지 않는다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선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선은 욕망을 악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선으로 인도함으로써 행복해지려는 의지이다. 사람이 다르기에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에 대해 상이한 의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인간은 모두 행복하게 살려고 바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때 삶 자체는 모두에게 선이며 누구나 필연적으로 자신의 생을 상실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그들은 행복해질 것이다. 만약 인간들이 죽음으로 위협받지 않는다면, 인간은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 갈 것이다. 두려움이 없는 삶(metu carere)은 갈망으로서 사랑의  궁극적 목표이다.

논문에 나타난 아우구스티누스 사유의 첫 번째 긴장은 이와 같이 함축적인 명제들 가운데에 이미 나타난다. 죽음 없는 삶, 혹은 두려움 없이 미래가 예견되는 현재란 불가능하다. 이 지구상에서 어떤 것을 갈망하고  어떤 것에 대한 소유를 확고히 하고자 하는 살아있는 인간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왜냐하면 인간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협으로 다가오는 미래가 없는 현재 바로 그 안에 본질적으로 최고의 선(summum bonum), 즉 영원이 있다. 갈망으로서 사랑은 지구와 만물이 변할 수 있음, 다시 말해, 단지 상대적인 모든 선을 꼭 비켜가려 한다. 갈망으로서의 사랑 개념이 아우구스티누스를 모순으로 빠트리게 했다고 아렌트는 주장했다. 영원은 미래 대상으로서 욕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원을 ‘지금’으로서, 즉 과거와 미래가 만나고 사라지는 신플라톤주의적인 ‘서있는 지금(nunc stans)’이라는 무시간적 현재로 생각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생하려는 욕망, 즉 욕망의 올바른 대상을 “자비(caritas)”라 부르고,  그에 반해 명멸할 수밖에 없는 대상에 대한 나쁜 욕망을 “cupiditas”라고 불렀다. 그러나 자비는 인간들을 위한 이 세상과 거기 있는 사물들을 사막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인간은 그들의 정당한 욕망과 자유를 위해 “세상의 집에 있는 것과 같은 존재성”을 희생해야만 한다. (금욕주의적인) 스토아학파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를 자기-충족, 즉 명멸할 수밖에 물질계와 독립된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금 이번에는, 신플라톤주의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스토아학파적인 그리스적인 경향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유를 관류하고 있다.  실제로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유는 밖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자체와 관련하여 오직 마음만이 자유로움을 암시하고 있는 욕망의 멈춤이라는 플로티누스의 개념을 명백히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욕망(cupiditas)과 자비(caritas) 사이를 구별하고 자비와 그 자유를 고양시키는 일은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게 했다. 자유나 자기-충족은 이 세상에서는 얻어질 수 없다. 그렇지만 더 큰 어려움은 누군가 세상으로부터 자기 안으로 물러설 때, 그(녀)는 결정적으로 자기-충족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이 된다. 스스로 묻는 질문, 즉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오직 신에 의해서만 주어질 수 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자기사랑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존재가 아닌 것, 유한한 존재인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알게 하는 신, 즉 영원한 본질에 우리가 근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올바른 자기사랑, 즉 자비 형태의 자기사랑은 변할 수 있는 현재의 자신이 아니라, 영생하게 되는 자신을 목표로 한다. 시간성의 지배를 받는 자신은 절대적인 미래를 향하는 참된 자아를 투사하는 경우 반드시 부정되어야만 한다.

현재의 삶을 미래를 향한 욕망으로 채워감으로써, 인간은 무시간적 현재, 즉 영원성을 예견한다. 로마인들의 시간 이해를 채택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미래를 현재로 들어가고 과거로 “뒷걸음질”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시간의 운동 이미지는 ‘진보’라는 단어가 대동하는 단선형적 이미지와 반대다. 소위, 미래가 밀려들어올 때, 현재의 자아는 부정되며 세계는 잊혀진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에 있어, 시간성과 존재는 상반적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했다. 인간이 존재(Be)하기 위해서 시간성은 극복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긴장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유, 그리고 하이데거의 사유에서도 근본적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을 자유롭고 자기충족적인 존재로 생각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을 행하고 계속해서 사랑을 갈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그는 자기 자아가 변해야 하는 즉 시간적 자신이 잊혀져야만 한다는 사유의 긴장을 감수해야 했다. 다른 용어로 표현하면, 인간이 자비, 즉 초시간성의 즐거움을 통해 이르고자 하는 세계를 원용할 때, 그들은 사물들과 인간, 즉 신의 창조물과의 유대를 끊는다. 그런데 이러한 단절은 사랑의 다른 형태인 이웃의 사랑, 즉  매우 복잡한 사랑을 낳는다.

두개의 범주, 유용함(uti)과 즐거움(frui)--혹은, 단순히 수단과 목적--은 갈망으로서 사랑으로부터 기인한다.  세상은 궁극적으로 신의 경지의 즐거움(Deo frui)을 얻기 위해 원용된다.  그 위에 다른 두 범주가 이러한 즐거움과 관련 있다.  우리와 나란히(우리 자신들과 우리 이웃들) 있는 선(iuxta nos)과 또한 우리 밑에(신체들) 있는 선(infra nos)이라는 양자의 선과 반대되는 최고선(supra nos)을 우리는 사랑한다. 우리 자신, 우리 이웃, 그리고  우리 몸은 최고선을 위해 사랑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이웃사랑 자체로만은 불가능하고 우리가 올바르게 욕망할 때면 우리 이웃은 이용되고(즐기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욕망으로서 사랑, 즉 그 대상이 미래에 있는 사랑은 “이웃을 당신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아렌트 논문의 첫 부분은 이러한 난국을 떠안고 끝난다. 욕망이 실린 “행복한 삶이" 절대적인 미래로 투사되거나 현재의 자아가 그러한 삶의 달성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즉 극복되어야 할 방해물로 보일 때, 욕망으로서의 사랑개념은 허걱거린다. 그래서 아렌트는 맨 처음으로 되돌아가 그녀의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모든 욕망이 분명한 대상에 얽매인다는 명제는 재검토되었다. 만약 행복한 삶이 욕망의 대상이 된다면, 행복한 삶은 알려져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앎이 욕망을 선행해야만  한다. 앎은 욕망의 대상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과거의 지식은 미래로의 기투(project)를 위한 근거이다. 욕망은 미래를 향해서 현재를 초월하지만, 이처럼 욕망이 현재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억이 과거를 보호하며 현재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물질적인 상,“ 즉 세간의 경험을 갖는 지각가능한 대상에 대한 지식과 달리 “행복한 삶“에 대한 지식은 인식가능한 기억과는 다른 종류의 기억을 함축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 일반의 작용에 관한 분석에 근거해 초세간적 기억에 대한 가능성을 구축한다.

가령, 슬플 때,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희망하며 기억한다, 기쁠 때 두려움에 떨며 슬픔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는 현재의 일부분으로서 기억되는데,  이는 어떤 영감을 가지고서 기억된다. 과거가 현재화할 때 과거는 미래 가능성으로, 즉 있어 왔던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다시 존재할 수 있다, 즉 재현될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욕망은 “어느 기점으로부터 성스러운 영혼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포함한다. 이 질문은 궁극적으로 “누가 나를 창조했나?”라는 질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창조물은 “광대무변의 기억 공간”에서 그의 창조자를 찾는다.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 그의 존재 이유인 존재의 결정자로서 창조자를 발견한다.

그녀의 해석의 이러한 전환점에서, 아렌트의 후기 작업의 기초가 된 대비가 나타났다. 그 대비는 <<인간 조건>>의 가장 강력한 개념적인 구조를 제공한다. 친숙함과 심사숙고의 나날들로부터 온 명쾌함으로 무장한 아렌트는 1963년 논문 수정을 위한 노트에서 그 대비에 대해 말했다.  “인간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존재로 결정하는 것은 탄생, 혹은 탄생성(natality)이며, 우리는 그 탄생을 통해 세상으로 들어갔다는 결정적인 사실이다. 그에 반해 인간을 욕망하는 존재로 결정하는 것은 죽음, 혹은 필멸성(mortality)이며 우리는 이 죽음을 맞아 세상을 떠나야만 한다는 결정적인 사실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삶에 대한 불충분함이 욕망의 원천이다. 그에 반해, 여태껏 전적으로 주어진 삶 -- 비참에서조차도 소중해진 삶 -- 에 대한 감사는 . . . 기억의 원천이다. 궁극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잠재우는 것은 희망이나 욕망이 아니라 기억 혹은 감사이다. ‘당신은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치 않은 것을 전해 받을지 모르는 존재인 것처럼, 존재하기를 원하는 것에 감사하라. 왜냐하면 당신은 비참해지려거나 비참해지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1)

아렌트의 후기 정치적 사유에서 탄생성과 필멸성은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한 시작으로서 행위의 원천이 되었고 불멸의 말과 행동은 갈구로서 행위의 원천이 되었다. 행위는 인간의 삶을 새롭게 하고 또한 필멸적 존재자인 인간들이 불멸성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을 빌려준다. 행위는 인간의 기억 안에 살아 있다.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학위논문의 맥락에서 이러한 지배적인 존재론적 결정인자들에 대한 신학적 측면으로부터 정치적 측면으로부터 그 강조점을 전환하였다. 그 문제를 달리 표현하면, 아렌트는 정치적 삶을 우리가 감사히 여겨야만 하는 것으로서 생각했다.

갈망으로서 사랑으로부터 신의 창조물인 우리의 본성인 기억으로서 사랑으로 전환한 아렌트의 논문은 아렌트의 후기 연구에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혼란스럽게도,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행위는 제작과 달리  수단과 목적이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행위가 계획 혹은 정책-수립하기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 생각에 아렌트가 의미하는 것은 계획만으로 생각되는 행위는 “갈망”만으로 생각되는 사랑만큼이나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유용함-즐거움(uti-frui) 범주들과 같이 수단-목적의 범주들은 --미래를 위해서--현재의 이웃사랑 내지는 타자와 함께 존재에 태만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거 내지는 행위 또는 사랑의 근원 -- 탄생성 혹은 창조성 --을 기억하는 것은 인간들이 정향하는 목적이라기보다는 원칙이다. 우리는 행위가 가능한 경우 그리 행동하는데, 이는 곧 자유가 행위의 원리임을 뜻한다. 계획이 미리 배제되었음이 아니다, 그렇지만 목적을 완수하는데 실패한 행위조차도 의미있거나 위대할 수 있다 ( “위대함“은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가 취한 범주이다). 다른 한편, 목적만이 개입된 행위는 어떤 수단을 채택하거나 인간관계들을 수단화(인간들이 신의 즐거움Deo frui을 위해 유용함uti이 되는 것처럼)함으로써 그 관계들을 곡해한다.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인간의 본성 혹은 본질의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  오직 인간 “외부”의 관점으로부터 인간의 본성이 고려될 수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신학적 구조물이 등장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적이거나 신학적 차원의 질문을 건드리지 않고 인간존재의 조건들, 삶 자체, 탄생성과 필멸성, 세계성, 다원성 그리고 (천국이 아닌) 지상을 주목했다. 그러나 아렌트는 "이러한 인간존재의 조건들은 이들이 우리를 절대적으로 조건지우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우리가 무엇인지를 결코 '설명하지' 못하거나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는 것"2) 역시 인정하면서, 응당 신학적인 접근에도 주목하였다. 아렌트는 인간이 인간적으로 알 수 있는 본성을 가졌다고 가정하지는 않았고, 더불어 그녀는 인간이나 자연이 인간의 본성을 크게 결정하는 조건에 의해서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거나 그 조건들로 환원될 수 있다고도 가정하지는 않았다.  철학은 인간 맥락에 대한 연구로부터 혹은 인간외적인 전망으로부터 인간을 알려고 한다기보다는 인간에 대해 사유함이라는 중용의 과정을 택한다. 사유와 앎, 철학과 학문 사이의 이러한 구별은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양자가 만든 것이었다.

필멸성에 대한 관심과 비슷하게 가끔씩 그보다 훨씬 더한 탄생성에 대한 아렌트의 관심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연구에서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후일 여러 정치적 경험들을 통해 그녀의 사유 중심으로 긴박하게 다가 왔다.  새로운 어떤 것에 대한 출발, 즉 행위는 자칫 엄청난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는 정치적 상황에서 희망이라는 희미한 빛을 제공하는 인간의 가능성이다. 인간사의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폐허로부터  인간지사의 영역인 세상을 구하는 기적은 긍극적으로 탄생성의 실제다, 그 탄생성 안에서 행위 능력은 존재론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달리 표현하자면,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시작에 관한 탄생, 즉 그들이 태어난 존재라는 미덕에 의해 가능한 행위이다. 이러한 능력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통해서 만이 인간이 하는 일에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주 무시했던 인간존재에 관한 두 가지의 본질적인 특성인 믿음과 희망이 부여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주 공통적이면서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덕으로서 믿음을 간직하는 것을 폄하하고, 판도라 상자 속에 들어 있는 미망의 악령들 가운데서 희망을 높이 샀다. 바로 이러한 세계를 위한 희망과 세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복음 가운데에 그 ‘즐거운 소식들’을 전했던 몇몇 단어, 즉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다“3)에서 아마도 그 믿음과 희망에 대한 가장 영광스럽고도 간명한 표현을 발견했다.  아렌트의 경우, 시간성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재가 강화되는 행위를 위한 그의 가능성의 근원이다. 아렌트가 아우구스티누스(와 하이데거)로부터 인용했던 것이긴 하지만, 이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핀다로스(Pindar, BC 518/522~BC 446, 그리스의 서정시인) 시구 중의 하나인 ”있는 그대로의 본래적인 당신이 되어라“이다. 이 시구는 태어났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부여하는 것을 감사히 인정하고 있다.

아렌트는 후기 작업에서 “탄생성”을 개념적으로 조명하여 철학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졌던 탄생성을 되찾았다. 이를 통해서 아렌트는 하이데거로부터 벗어났다. 하이데거의 경우, 탄생성보다는 필멸성이 결정적인 존재조건이었다. 하이데거는 스스로 행위 내지는 대체적으로 정치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렌트는 <<존재와 시간>>에서의 일상적 삶에 관한 기술에서 아주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러한 기술들이 충분히 파고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향하는 인간의 “피투성(thrownness),”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로의 치달음을 소개했다. 그러나 그는 시작들(beginnings)의 실재와 과거의 힘을 소개하지 못했다.

탄생성과 필멸성 간의 대비는 그녀의 학위논문에서 아렌트가 갈망으로서의 사랑으로부터 신에 대한 관계로서 사랑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환했을 때 드러났다. “광대무변의 기억 공간” 안에서 창조물은 “누가 나를 창조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으로,  자신의 창조자를 발견한다.  인간의 긍극적인 기원인 창조자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또한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신은 이 이중적인 의미로 인간 '밖에'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스스로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상함으로써 이 “외부”성에 집중할 수 있고, 인간은 시간과 그에 대한 인간의 종속을 무력화할 수 있다. 자비는 이처럼 초세간적인 바른 욕망의 형식이다. 그러나 자비가 실현된 곳에서 - 그러기 위해서는 신의 은총이 요구된다 - 인간은 그의 개별성인 자신의 개별적 과거를 내던져 버린다. 의지는 가지고 있으나 자신과 세계에  대한 그의 구속을 극복할 힘을 갖지 못한 비루한 인간을 도우면서 신은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준다. 신은 그를 다시 창조하고 그를 신창조물(nova creatura)로 삼는다,  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창조물은 신이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을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신의 창조물로서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이웃이나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의 이웃(das Nächste)을 사랑한다. 즉 인간은 그의 자신과 다른 자신을 부정하면서, 고립된 가운데에 사랑한다. 인간은 그 자신과 타자들 속에서 영원을 사랑하며, 말하자면, 모든 인간들이 똑같이 사랑을 위한 이유인 것처럼, 그들 모두 똑같이 사랑받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분명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만약 이웃에 대한 사랑이 단순히 초세계적인 관계의 한 양식이라면, 왜 이웃에 대한 사랑이 아우구스티누스 사유에서 그처럼 큰 역할을 차지하는가?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웃을 만들게 하는가, 즉 특별히 그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과 엮이게 하는가?  아렌트는 일련의 또 다른 사유를 소개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연구에 이러한 긴박한 문제들을 다뤘다. 모든 인간들은 공히 아담의 자손이라는 미덕 하에 서로 가까운 인척이 된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장했다.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어떤 사회적 관계들은 새로운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의 법” 하에 규제를 받는다. 인간의 역사적 기원은 “최초의 인간(the Frist Man)”이며,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인간은 이러한 과거와 관계한다.  인간이 창조자 자체보다는 이러한 과거와 관계할 때, 인간은 사랑이 모든 인간들에게 기인함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은 세계 내의 친척이고, 그들 모두 공통적인 본성을 소유하고 공통적으로 죄를 진 존재들이다.  나아가 새로운 아담, 즉 예수의 세상에서의 출현(재림)은 오직 공과에 준해서 가려진 개개인들이 아니라 똑 같이 죄에 가담한 모든 인간들에게 구원을 주게 된다.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자손의식과 구원은 인간을 서로 묶어 준다. 세계 안에서 기독교인의 삶은 과거에 대한 꾸준한 유대, 원래의 동족성을 구체화하고, 예수의 죽음을 설명하는 원죄를 똑같이 공유하는 것을 구체화하고 있다 (즉, 죽음은 단순히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죄의 대가로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자비를 통한 세계에서의 격리는 새로운 연대감을 생성시킬 수 있는 데, 이러한 연대감은 역사적 혈족사회와 맞서고 이와 병행하는 사회를 가리키는 데 이게 바로 신국(City of God)이다. 우리 인간들은 공통적인 위험과 공통적인 죽음을 공유하고, 이러한 위험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을 가지고서 서로 사랑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랑에 대한 일체감속에서조차도 거기에는 거리감 혹은 간접성이 남는다. 신앙을 가진 각자 홀로 죽음에 직면하며, 어떤 다른 사람도 그를 구원해줄 수는 없다. 이웃사랑 안에서 인간들은 서로를 사랑한다. 그 까닭은 그렇게 사랑하면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웃사랑이란 세계에 대해서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의 비속세적이고 초월적인 사랑이다.

아렌트의 논문은 타자와 함께하는 세계적 존재 그리고 자기부정과 세계부정의 초세계적 입장 사이에서의 이중 관계를 요약하는 명제로 끝을 맺는다. 첫 번째 관계를 고려해볼 때, 우리가 인간 종의 구성원으로서 타자를 만나지만, 우리는 단지 신에 대한 단독적인 관계안에서 고립될 때 타자에게 이웃이 된 것뿐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모든 인간이 타자들 가운데에 살아가는 필연적인 의존의 문제로부터  벗어나 개인이 들어 올려졌을 때, 그 개인과 타자들과의 협력은 타자들과의 근원적인 혈족의식이라는 명백한 의무에 종속된다.  두 번째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아렌트는 고립의 가능성 또한 인류의 역사 내에 사실로서 들어온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고립은 스스로 역사적이 된다. 비록 고립이야말로 우리에게 인류사나 세대간의 연속성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이중관계에서만 우리는 이웃의 타당성을 이해할 수 있다. 개인적인 고립에서, 우리는 타자는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이웃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 종에서의 우리의 기원이 신의 사랑안에서 우리의 기원, 즉 구원으로서의 부활에 의한 우리의 탄생성이 보완된다고 우리기 깨달았을 때, 같은 신에서의 이러한 단순한 신자의 공존은 공통 신념, 즉 모든 신의의 일체로 전환된다.

아렌트는 창조물과 창조자의 과거-지향적 관계를 다룬 두 번째 부분 시작까지만 그녀의 논문을 수정했다. 지금까지 요약된 강도 높은 일련의 사유과정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이웃사랑을 다룬 제 3장은 가장 집약적이고 어려운 장인만큼 아마도 가장 많은 설명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제 3부의 관심사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인간 조건>>에서 훨씬 느슨한 산문 형식으로, 그리고 보다 더 명쾌하게 다시 언급되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후기 주장의 일별만으로도 아렌트가 궁극적으로 도달했던 비판적인 태도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날 것이다.  “세상을 바꾸어 놓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발견하는 것이 원시 기독교 철학의 주된 정치적 과제였다. 바로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적 ‘형제애’뿐만 아니라 자비(charity) 위에 모든 인간관계를 정초하기를 제안하였다. . . . 사람들 사이의 자비의 연대는 스스로 공공영역을 정초할 수 없는 반면에, 그 연대는 무세계성이라는 주된 기독교적 원리에 아주 적절하며 세계 자체가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되고, 모든 활동이 "세계가 지속되는한"(puandiu mundus durat)이라는 단서와 더불어 취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조건하에서만 본질적으로 세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일단의 사람들을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놀라우리만치 적합하다.”4) 아렌트가 논문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정말로 어떻게 해서 무세계성의 기독교 원리가 세계와 무관한 사람들을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적합한가였다. 그녀의 관심은 세계와 무관한 자비의 경험이 어떻게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지에 있었다. 공적 영역의 토대에 대한 그녀의 후기 관심은 어떤 기독교 철학보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식의 사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만인의 공통 관심사로서 인간 영혼의 구원과 같이 기독교가 이해했던 공동선과 달리, 공공 세계는 우리가 태어날 때 시작하는 것이고, 우리가 죽을 때 떠나는 것이다. . . . 그러나 그러한 공공 세계는 공적으로 나타나는 정도에 한해서만 오고 가는 세대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자연스런 시간의 파멸로부터 구원하고 싶어 하는 무엇이나 수세기를 통해 흡수하고 빛을 발하게 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의 공공성인 것이다.”5) 인간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인 공공 세계는 인간이 그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구할 수 있는 한 지속한다. 예를 들면, 행위는 이야기를 통해 행위에 관해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한 계속된다. 행위는 시작함, 즉 어떤 새로운 것을 시작함으로써 인간의 탄생성을 반영하며, 여러 행위들이 인간의 기억 속에서 지나가버린 행위자의 죽음을 살아있게 함으로써 인간의 필멸성을 극복한다. 아렌트의 공공 세계에 대한 완전히 비기독교적인 이해는 근대시대에서 공적 영역의 상실을 판단하게 하는 척도를 그녀에게 가져다준다. “아마도 진정한 불멸성과 연관된 거의 완벽한 상실보다 더 분명하게 근대의 공적 영역 상실을 증거하지는 못할 것이다.”6)  진정한 즉 현세의 불멸 내지는 명예를 갈구하는 것은 일련의 무상함, 사적인 악이라 생각된다. 그녀는 근대의 “어두운 시대”를 공적 영역이 위축되고 공공성이 인간의 노력들을 진작시키는 것과는 딴판으로 그 노력들을 사소하게 만들어버리는 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공공성의 빛은 모든 것을 애매하게 한다”라고 하이데거가 쓴 것처럼 말이다.

논문에서 아렌트의 비판적 입장도 거기서 그녀가 끌어냈던 결론도 분명하지 않다.  그녀에게 있어 탐구란 “전적으로 분석적”일 거라는 서론에서의 약속을 지켰다. 아렌트는 “순수하게 철학적”으로서 그녀의 접근을 기술했는데, 그로인해 그녀는 성서적이고 성직적인 권위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교의적인 편중을 고려하지 않으려했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독교도로의 개종을 갈망으로서의 사랑에 대한 "선신학적"  개념으로부터 창조물과 창조자의 관계로서의 사랑의 개념으로 그의 사유에서 운동개념에서만 다뤘다. 아우구스티누스 삶 안에서 그의 사유의 교의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건들은 그것 자체로는 논문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 논문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비신학적인 만큼 절대적으로 추상적이다.

아렌트는 그녀의 논문을 수정하며 이러한 추상성을 약점으로 느껴야만 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참고문헌의 각주들을 본문으로 바꾸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에 대해 몇몇 참고문헌을 추가했다. 그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으로부터, 가까운 친구의 상실, "그로 하여금 육체적 쾌락을 상기시키고" 개종을 준비하게 했던 죽음에 대한 그의 두려움, 그리고 사도 바울(오랜 여생동안 기독교인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인이 되면 될수록, 그는 더욱 더 바울인이 된다)의 저작들에 관한 그의 의존에 관한 인용구들을 포함시켰다.  아렌트는 또한 그녀의 각주에 나타났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으로부터 다수의 인용문과 부록으로 제껴두었던 자료를 첫 번째 장으로 편입시켜 텍스트를 더욱 풍요롭고, 덜 집약적이며 덜 추상적이도록 했다. 이러한 수정 전체는 그녀가 따랐던 일련의 “순수 철학적인” 접근을 통해 교의적인 관심을 피할 수 있었고, 철학적 사유가 발생하는 시간적 경험 즉 존재론적 경험에 도달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근본적인 통찰을 반영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접근은 일반적인 용어로 즉 비역사적이고 비개인적으로만 가능할 수 있었다. 아렌트는 보편, 즉 인간 사이의 보편적인 결속,  존재론적 토대, 즉 세계에 대해서가 아니라 세계 안에 있는 인간을 안내하는 초월적 원리를 갈망했다. 그녀의 경험을 통해 철학, 즉 순수철학이 위험할 정도로 역사나 정치영역에 어둡다는 것을 배울 때까지, 유대주의와의 연합을 통해서 그녀가 정치적인 용어로 “이웃사랑”에 대한 토대를 의문하는 것을 배울 때까지, 계속해서 그녀는 보편적이거나 초월적 원리를 추구하고 철학의 자율을 옹호했다.

하이데거와 함께 아렌트는 시간을 “그때“ 그리고 ”지금“으로 나누는 것으로 보였던 “특별하고 놀라운” 것에 관한 경험, 즉 갈망에 대한 두려움과 좌절의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초월된 그러한 구분의 이미지, 초월론적 사랑으로 번역된 그러한 사랑의 양식을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나중에는 시인 릴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렌트를 정치적 행위로 투신하게 한 역사적인 사건들은 그러한 “순수하게 철학적” 해결에 굽히지 않을 질문들을 제기했다.

copied from Critical Plata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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