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2_기아대책
기대봉사단 훈련
성경적 세계관과 변혁적 실천_신국원 교수(총신대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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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수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빈곤의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수 많은 문제 가운데 우리는 어떤 대안을 낼 수 있을까? 심지어 대안을 내거나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들 사이의 문제와 빈곤과 GDP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바꾸려고 한다면 어디서부터 바꾸어야 할까?
https://www.gapminder.org/downloads/updated-gapminder-world-poster-2015/
세계관의 문제를 다룬다. 세계관의 변화가 변혁적인 실천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으며 어떻게 세계관을 가지고있는지,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 성경적 세계관이 어떻게 현장에서 변혁적인 실천을 이루어가는지 오늘 자세하게 이야기 해 보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시믕로 너희를 권하노니 네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을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_로마서 12장 1절~2절
1. 성경적 세계관과 삶의 변혁
거룩한 문화와 그리소딘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정체성은 공동체 안에서 거룩한 무리 혹은 성도라고 표현된다. 사도바울의 편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독교 문화와 윤리의 대원칙은 '그러므로'에서 드러난다. 거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윤리, 거룩하게 구별된 삶으로의 초대'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의 것은 아니다. Christian,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문화를 만든다. 기독교 문화는 '거룩한 삶의 양식, 산 제사로 드리는 일상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제대로 기독교 문화를 만들고 있는가? 다르긴 한데 거룩하지는 않지 않은가?
삶을 본 받지 말라라는 로마서의 말씀은 '삶이 종교(예배)다'라는 것이다. life is Religion. 우리는 인간의 삶, 문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란 물과 공기와 같이 피할 수 없는 제2의 자연환경이다. 그러므로 현실문화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모르는 것은 미덕이 아니며, 더 영향받기 쉽다.
영적분별력을 갖추라'라는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 후반절에서 문화는 자연과 달리 인간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의 일꾼으로서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면서 '거룩한 청지기'로서 가져야할 본분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적 분별력이holy discernment이 중요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삶이다.
영화 '미션'에서는 역사와 문화가 두개의 다른 비전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누가 세상을 생 지옥으로 만드는가? 세상이 본래 그런 것인가?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결론은 '우리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라는선언을 한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무력이 옳다면 사랑이 설 자리는 없어지게 될 것이다.
악의 구조화
악의 구조화라는 것은 악의 원인을 세상과 문화의 구조적인 면에서 찾는 것이다. 죄악에 대해 인간이 고안해 낸 최고의 변명은 구조화된 현실이다. 구조 자체를 악의 근원으로 보게 되면 인간 내면의 죄의 문제를 간과하게 된다.
기독교세계관에서 볼 때, '구조와 방향'의 문제가 등장할수 밖에 없다. 리차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5가지의 관점 중에 마지막 변혁관점transformational perspective은 구조는 선하게 만들어졌지만 방향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고 말한다.
피조세계의 구조structure는 창조와 섭리의 원리와 그에 따라 만물이 존재하는 바익이나 창조질서를 말한다. 피조 세계의 방향direction은 피조계를 맡아 발전시키는 인간의 문화적 노력에 의해 개발는 방식이다.
악의 구조화의 예는 선과 악의 구분,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이원론이다. 루소나 맑스는 경제-사회구조적 죄악론과 빈/부의 구조화, 사회적 계급의 구조화이다.
게티스버그 전투를 기억해보자. 누구의 잘못인가? 그리고 누가 해결해야 하는가?
2. 성경적 세계관과 변혁적 실천의 기초_하나님의 나라의 삶
세상과 인생에 대한 종합적 이해에서 문화의 방향이 정해진다.
세계에 대한 조망은 지식과 이해라는 측면에서 view of the world라고 한다면, 세계를 위한 조망은 문화의 전략이기 때문에 view for the world라고 부른다.
성경적 세계관을 정리해보면 '성경의 진리인 창조-타락-구속을 통해 세상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인다'는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현실적 필요
다원주의 세계관이 팽배한 시기에 기독교인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것인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기독교인들의 관점에서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forming해 가야한다.
궁극적인 비전은 하나님나라, 기독교 세계관과 하나님 나라,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창조-타락-구속의 비전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 혹은 하나님이 나라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안목이 열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도래
창조계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동일하다. 구원은 창조 세계가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와 '천국'을 비교해보면 하나님나라는 '지역' 장소 또는 '영역'을 뜻하지 않는다.
천국은 하늘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나라/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다.
하나님나라/천국은 구속의 원리가 삶으로 나타나는 곳에 임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대망과 계시록의 찬양과 화답으로 볼 때 '나라가 임하옵시며(마 6:10)', '만국이 와서 주를 경배(계15:4)'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와 아직의 이중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already 임하였다.(마12:28)
초림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재림과 더불어 완성된다. 아직not yet 온전히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
천국 비유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누룩비유(13:33) 전체에 퍼지는 천국을 이야기하고 있고 겨자씨 비유(13:31)는 자라가는 천국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열처녀 비유(마 25:1~13)는 기다림을 말하고 있다. 달란트비유는(마 25:14~30)에서 기다림과 임함을 이야기하고 있고, 가라지비유는(마 13:24~30)에서는 오래참음을, 37절에는 현 시대의 과도기적 특수성은 믿음과 소망의 삶을 요청한다.
이중론은 이원론이 아니라 이중론이다.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삶이 아브라함의 소돔 거부와 같은 것이다. 구약 성도들 보다 훨씬 가깝고 훨씬 많은 증거들이 있다. 구름과 같이 둘러싼 증인들, 이루신 약속이 있다.
결국 이미와 아직의 사이에서 우리는 과도기적인 사역을 할 수 밖에 없다.
천국은 가는 곳이 아니라 오는 곳이다. 우리가 만나고 사역하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천국은 가는 곳looking upward이 아니라 오는 곳looking forward이다.
3. 구속 역사의 동참_문화의 변혁과 회복
우리는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의 동참에 있어서 문화의 변혁과 회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변혁을 이야기할 때 세계형성적world formative 신앙으로 회피적이나 명상적이 아닌 형성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 받은 복만 세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의 회복을 위해 일하는 사명자의 삶이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마 6:33)
구속역사에 동참은 문화를 변혁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자세로 나타난다. 문화와 사회는 자연이 아니며 우리의 의지와 결정, 행위의 결과이다. 타락한 문화와 사회는 변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세상으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최선의 방법은 그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명상이 아닌 순종과 응답으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샬롬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는 성경말씀을 기억하라.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1~12) 평강과 공의가 증진되는 여부는 하나님, 이웃, 자연에게 '평화의 도구'가 되는 실천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어떠이의 기도는 '굶주린 자에게는 빵을 주시고, 빵이 있는 자에게는 공의로 굶주리게 하소서'라고 하고 있으며, 성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고 한다.
선교적 삶이란 기독교적 문화를 만들어가면서 사람들이 세계관을 체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문화적으로 표출되는 정치, 경제, 사회 권력의 충돌, 이면의 세계관 전쟁을 파악하고 문화전쟁의 이론과 실제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나 알튀세르의 억압적 국가기구(Repressive State Apparatus),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deological State Apparatus)를 이야기한다.
19~20세기 네덜란드에서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사회문화의 변혁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자본과 인본주의의 대립이나 모든 식물이 다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인생의 모든 표현 속에는 원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 근본원리로부터 우리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구성해가는 지도적 관념과 개념의 총체가 체계저으로 발전되어왔다. 현대주의modernisim/post-modernism는 이제 기독교와 대치하고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나 기독교 세계관 자료들을 파악해 보라.
참고 1. 영화 미션
롤랑 조페 감독의 불후의 명작《미션Mission》을 보셨는지요?
로버트 드니로, 제레미 아이언스, 니암 리슨 등 쟁쟁한 배우들의 살아있는 눈빛 연기 뒤에 포르투갈 제국의 아마존 정복의 역사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여기 영화《미션》의 장대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영화《미션》과 아마존의 역사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_요한복음 1장5절
-영화 《미션》의 엔딩 크레딧 中
롤랑 조페 감독의 1986년 작인 《미션》은 18세기 중반 남아메리카의 브라질과 파라과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접경 지역에서 선교 마을들이 세속 통치 권력에 의해 일제히 퇴거당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전반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상당히 치밀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워낙 변방의 역사이기도 하고 거두절미 1750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자연스레 세세한 역사에 주목할 것 없이 이야기의 큰 흐름을 감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자세히 그 서사 이면을 보면, 이 영화에는 이전 시대부터 남아메리카에 깔려온 중층적인 역사적 맥락이 잘 드러나 있고, 또 군데군데 그러한 맥락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미션》의 군데군데 숨어 있는 그러한 이야기들과와 남아메리카, 정확히는 '아마존'의 역사를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본 이야기에 앞서 오래된 작품이기도 하고, 먼저 영화의 내용을 공유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미션》의 줄거리
가톨릭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은 그의 선임자를 이어 과라니족 개종 사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한다. 과라니족의 땅에서 가브리엘 신부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해 과라니족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족의 일원이 된다. 그의 가르침 아래 과라니족은 점차 개종해 숲에서 나와 산 카를로스라는 선교 마을을 건설한다.
아순시온1은 이베리아 출신 정착민들의 마을로 원주민 노예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원주민들을 붙잡아 포르투갈 업자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동생과 애인의 불륜을 목격하고 결투 끝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멘도자는 죄책감에 시달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가브리엘 신부가 그에게 선교 마을에서 봉사하며 죄를 씻기를 권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멘도자는 가브리엘을 따라 과라니족이 사는 산 카를로스로 들어간다. 과라니족은 동족을 죽이고 팔아넘기던 멘도자를 용서하고, 그는 선교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한편 1750년 머나먼 유럽 땅에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은 남아메리카 땅에서 두 나라의 국경을 새로 규정했는데, 이 때문에 그동안 에스파냐와 교황청 관할에 속했던 지역들이 일거에 포르투갈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것은 원주민 노예화를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해온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영향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고, 더 나아가 선교 마을의 안전이 더 이상 지켜질 수 없음을 뜻했다.
중앙에서는 조약의 내용을 관철하기 위해 주교 알타미라노를 아순시온에 파견한다. 그는 실상을 조사한 후, 중앙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파국이 근처의 선교 마을들에서 벌어질 것을 직감한다. 그의 임무는 분쟁의 조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선교 마을을 해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산 미겔과 산 카를로스를 방문하지만, 설득은커녕 오히려 지상의 신정 낙원을 목도하고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감화된다. 그러나 세속 권력의 결정은 결코 뒤집힐 수 없는 것이었고, 비정한 결정을 방관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한편 원주민들은 주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들이 건설한 도시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멘도자는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고, 가브리엘은 "사랑"이라는 보다 큰 교리에 충실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결국 산 카를로스는 포르투갈 군대 앞에 함락된다.
유럽인이 오기 전 원주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지리 역사적 배경
우선 영화《미션》에 등장하는 과라니족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유럽인이 도래하기 훨씬 전부터 남아메리카에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원주민 사회는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안데스의 잉카 제국이나 콜롬비아 지역에 있던 무이스카 연합 등 왕국 내지 왕국에 준하는 사회 발전을 이뤘던 고지대의 인디오들과 여타 그렇지 못했던 아마존과 주변 저지대의 인디오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구분은 단순히 높은 곳에 사느냐 낮은 곳에 사느냐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안데스에서 도망친 잉카 제국의 후예들은 아마존 숲속에서 최후를 맞게 되는데, 이에 관해 한 에스파냐 콘키스타도르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잉카 귀족들은 아마존 숲속의 다른 부족들에게 달아났다. 그러나 에스파냐인들은 모든 잉카인을 붙잡아 빌카밤바 제국을 끝장내려고 단단히 작심했다. 그들은 일단의 그룹으로 나뉘어 불타는 정글의 도시에서 그들이 빠져나간 흔적을 추적했다. 그들의 지휘관은 이 무성한 정글이 산악 지대 사람인 잉카인들에게 낯설다는 것을, ‘이 고장은 그들에게 맞지 않으며 거기서 생존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즉, 고지대의 잉카인들은 아마존 숲에서 따로 "적응"해야 할 정도로 그 숲을 낯설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존 저지대의 인디오들은 유럽인 도래 이전까지, 학자마다 조금씩 의견이 다르긴 하지만 족장사회(chiefdom) 이상의 발전 단계, 즉 국가(state) 수립 단계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남미 대륙의 원주민들은 크게 안데스 고원 지대 주민과 아마존 분지의 저지대 주민으로 나뉜다. 고원 지대 주민은 문명 사회를 발달시켰지만 저지대 주민은 그렇지 못했다. 위 지도에서는 파란색 계열이 고지대, 초록색 계열이 저지대로 나타난다. 거대한 초록색 부분이 아마존 분지이다.
저지대 원주민들은 다시 크게 강둑사람과 숲속사람으로 나뉩니다. 강둑사람은 상대적으로 풍족한 강이나 침수 지대에 사는 부족을 일컫는 말로, 농경과 양식(물론 사냥도 포함)을 통해 인구가 꽤 밀집한 정주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숲속사람은 테라 피르메(terra firme 단단한 땅)라는 비침수 지대에 살면서 반유목 상태로 수렵채취 생활을 했습니다.
숲천장으로 뒤덮인 그 아래에 수많은 부족들이 살았습니다. 단일 부족 차원에서는 식량 수급을 기준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인구가 되면 새로운 곳으로 분리해 나갔습니다. 또 부족 간 차원에서는 서로 끊임없이 전쟁 중이었습니다. 어느 초창기 유럽인은 이 부족 간 전쟁에 대해 "그곳에는 사람이 매우 많고 땅도 아주 넓지만 그들의 수가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만약 지속적으로 전쟁 상태에 있지 않다면 그들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2 이 두 가지가 아마존 숲속 부족들의 분포를 결정 짓는 원칙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후일 유럽인들은 '부족 간 적대'를 교묘히 활용해서, 차근차근 원주민 부족들을 정복하게 됩니다. 주의 깊게 《미션》을 보신 분들은, 과라니족 정벌에 나서는 포르투갈 군대에 다른 원주민 부족이 합류해 있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미션》의 한 장면. 포르투갈 군대와 함께 한 원주민들. 서구인들의 정복의 역사에서 흔한 분할 통치 전략의 한 단면.
《미션》의 주인공 부족인 과라니족은 아마존의 최남단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부족입니다. 과라니족이 쓰는 투피-과라니어는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공용어로 채택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에서는 마치 개종을 거부하다가 가브리엘 신부를 만나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 과라니족은 아마존 부족 중에서도 가장 먼저 유럽인들과 교류를 시작하고 또 기독교를 받아들인 부족 중 하나입니다.
사료에는, 16세기 중반 에스파냐인 뉴플로 데 차베스라는 대장이 과라니족을 데리고 아순시온에 정착지를 건설했는데, "신께서 그들에게 큰 비를 보내주셨고 이는 그 인디오들이 개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십자가를 깊이 숭배하고 필요한 것이 있거나 힘든 일을 겪을 때면 언제나 십자가에 도움을 구했다."3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지역은 《미션》이 다루는 18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다른 지역 선교사들의 부러움을 받는 신정 지역이 됩니다.
▲《미션》의 무대. 국경선은 오늘날의 것.
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그곳에 있었을까 - 토르데시야스 조약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대항해 시대가 열린 후 가장 먼저 전 세계로 팽창했던 해양 세력입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2년 후인 1494년, 교황의 주재 아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사이에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체결됩니다. 조약은 지구를 두 나라가 어떻게 나눠 먹을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따르면, 케이프베르데 군도에서 서쪽으로 약 360해리(2,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경도 분할선으로 하여 지구를 반으로 쪼갠 다음, 그 서쪽의 중국과 인도(가 있으리라 여겨진) 땅은 에스파냐가 갖고, 나머지 아프리카 등을 포르투갈이 갖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서 그곳을 인도로 착각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입니다. 이 조약의 당사자들 역시 지구에 태평양과 아메리카라는 거대한 지평이 추가돼야 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이 때문에 경도 분할선은 원래 의도와 달리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 동쪽 바다에 그어졌고, 또 다른 분할의 기준인 동방 분할선 역시 아프리카와 인도 사이가 아니라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사이에 그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비록 의도했던 바로 그곳(인도)은 아니지만 아메리카는 에스파냐의 것이 되었습니다.
▲ 신대륙 발견 이후 포르투갈 에스파냐 양국은 1493년 교황 칙령(파란색 점선)에 의해 세계를 분할했지만 포르투갈의 항의로 1년후 다시 경계선을 재설정했는데 그것이 바로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이다. (파란색 실선). 이 조약에 의해 브라질 해안 지대가 포르투갈 영토로 편입되었다. 붉은색 실선은 조약 당사자들이 기대했던 지구반대편 조약선인데, 당시에는 이 경계선이 인도 근처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훨씬 동쪽에 걸쳐 있다.
그로부터 무려 6년이나 지난 1500년, 에스파냐의 비센테 야네스 핀손이란 사람이 최초로 아마존에 상륙합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남아메리카를 발견하기도 전에 이미 그 땅의 소유자가 정해진 황당한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이 시기에, 토르데시야스 조약에서 명시한 "케이프베르데 군도에서 서쪽으로 360해리"에 기준한 분할선이 교묘하게 남아메리카 동쪽의 튀어나온 부분을 관통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아마존 하구는 졸지에 포르투갈의 영역에 속하게 됩니다. 또, 이때는 아직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 라플라타 강에 닿지 못했지만, 나중에 포르투갈은 이 지역들에 대해서도 권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남아메리카 대륙에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공존하게 됩니다. 오늘날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쓰고, 주변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등은 모두 에스파냐어를 쓰는데, 다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오늘날 브라질의 영토가 남아메리카의 툭 튀어나온 부분만 활꼴로 잘라 가진 게 아니라 어떻게 안데스 산자락 바로 아래까지 닿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답하자면, 아마존은 페루 안데스 지역에 자리 잡은 에스파냐인들이 감히 "정복"하기에는 벅찬 영역이자 결정적으로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고, 그사이 일찌감치 아마존 하구를 지배하게 된 포르투갈인들은 아마존 강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렇게 서로 간의 영역이 결정될 무렵,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서로 군주를 공유하던 체제가 무너지면서, 장차 미래의 국경의 대강이 정해지기에 이릅니다. 일종의 아마존 개척 시대였고, 포르투갈이 레이스의 승자였던 셈입니다. 영화《미션》의 시대적 배경은 바로 이 국경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시점입니다.
아마존에서 "상업적 전망"을 실현하는 문제 - 엘도라도
『아마존』에서 존 헤밍이 지적했지만, 아마존에서 "상업적 전망"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곳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유럽인이 도래하던 최초 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상업적 전망과 그로 인한 정복과 착취, 파괴와 야만의 역사라는 관점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아마존 삼림은 목재, 콩, 소고기 생산을 위해 대규모로 파괴된다고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역시 그런 맥락인 셈입니다.
가장 최초의 상업적 전망 중 하나는 "엘도라도" 신화였습니다. 아직 아마존이 미지의 영역이던 시절, 유럽인들은 아마존 외곽 지역 정복을 마치고서 점차 아마존에 주목하게 됩니다. 남아메리카 정복 초기에 여러 정복자들이 영웅담을 남기며 전설적인 부자가 되는데, 오늘날 멕시코의 아스테카 제국와 마야 제국, 그리고 페루 안데스의 잉카 제국, 콜롬비아의 무이스카 연합이 그 희생양이었습니다. 지도를 떠올려 보면, 당시 미개척지는 아마존과 그 이남이었음을 헤아릴 수 있는데, 실제로 역사는 그 지역들을 개척하는 수순으로 진행됩니다.
16세기 중반 이래, 황금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은 새로운 정복의 대상을 원했고, 공교롭게도 이따금 동쪽에 펼쳐진 숲으로부터 온 사람들은 그런 땅이 있노라고, 그들의 구미를 당기는 제보를 흘렸습니다. 무직의 부랑자와 탐험욕에 불타오르는 탐험가는 어쩌면 아주 작은 차이일 수 있습니다. 소문들은 아마존 숲속에 엘도라도가 있다는 심증을 점점 확신으로 바꾸었고, 마침내 탐험가들은 불나방처럼 숲으로 쏟아져 들어갑니다. 온몸에 황금을 바른 왕의 나라, 엘도라도가 있으리라!
1590년대 월터 롤리와 그의 부하들은 브랑쿠 강의 어귀에 있을 때 계절에 따라 범람하는 그 수원지 인근의 황금과 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은 2세기 동안 [유럽인들의] 지도에 등장하며, 기슭에 엘도라도와 마나오(마나우)라는 빛나는 도시가 있는 거대한 호수에 관한 신화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 Hessel Gerritsz라는 사람이 1625년에 그린 지도. Parime Lacus라는 호수 서쪽의 노란 박스 안에 마노아 또는 엘도라도(Manoa o' el Dorado)라고 표시한 지명과 약물이 보인다.
그러나 아마존은 오늘날 사하라 사막의 열대우림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광활합니다. 더구나 탁 트인 사막이 아니라 수십 미터씩 자라는 나무들 때문에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밀림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아마존 탐험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당시 사람들이 제대로 파악했을까 생각해보면, 회의적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존』은 그 대표적인 예로, 곤살로 피사로4 원정대와 곤살로 히메네스 데 케사다 원정대, 그리고 우르수아-아기레 원정대 등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아마존 숲에는 황금의 제국은커녕 그 어떤 왕국이나 제국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곳에는 원주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눈에 띈 벌거벗은 수렵채집인들은 고원 지대의 잉카 제국의 주민들에 비하면 원시적인 듯했다. 곤살로 피사로는 이 인디오들에게 얼마나 가면 탁 트인 대지와 부유한 엘도라도 왕국이 나오느냐고 계속 다그쳤다. 원주민들은 자신들과 같은, 숲에 사는 다른 부족들을 알 뿐이라고 대답했다.
- 존 헤밍,『아마존』 中
그들은 아마존에서 '돈 되는'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잉카 제국을 간단히 멸망시킨 세계 최고의 전사 집단이었지만, 그들은 숲속에서 원주민들을 들볶는 것 외에 아무런 수단도 없는 철저히 무능한 집단으로 전락했고, 그러한 내용을 증명하는 고생스러운 탐험 기록을 남겼을 뿐이었습니다. 요컨대, 숲속에는 황금의 나라 같은 건 없었습니다. 간혹 원주민들의 제보가 있었지만, 마체테 칼날을 치켜 든 정복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거짓말이거나 실제로 밀림에서 수렵채취 생활을 하는 그들 입장에선 지극히 정직한 평가, 즉 굉장히 풍족한 (먹거리를 가진) 부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상시적인 굶주림에 시달리던 원정대들은 그때그때 조우한 원주민 부족들을 약탈하고 학살한 수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그 어느 곳도 엘도라도 왕국은 아니었습니다.
이 수많은 탐험에는 많은 경우 선교사들이 동행했습니다. 이 탐험의 시대에 씌어진 그들의 기록들은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그중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주교는 이미 16세기 초에, 자신의 동포들이 원주민 부족을 정복해 몰살하고 탄압하고 노예로 삼는 것을 강력히 규탄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는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에스파냐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독실한 카를 5세(카를로스 1세)는 대서양 건너에서 그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만행 탓에 자신의 영혼이 더럽혀지는 것을 걱정하여 한시적이나마 남아메리카 땅에서의 정복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미션》에서 영화적 긴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종교적 휴머니즘 역시 최초 시기부터 존재했던 것입니다.
탐험 시대의 종결과 식민 시대의 도래 - 대농장과 원주민 노예제
엘도라도 신화가 허구로 판명나고 탐험의 시대가 끝났지만, 이후의 역사를 준비할 문법은 상당히 정립된 상태였습니다. 뜨거운 탐험 열기 속에 정복자들은 아마존 본류를 포함에 그동안 미지의 세계였던 곳을 열어젖히게 됩니다. 그리고 초창기 콘키스타도르, 즉 정복자들과는 분명히 다른 목적을 가진 집단들이 형성됩니다. 정착민들은 강을 따라서 아마존 숲 곳곳에 점점이 분포하는 정착촌을 건설하고, 정착촌들은 제국주의적 경쟁 속에 점점 탄탄한 기반을 가진 도시로 성장해갑니다. 요새를 건설하고, 대포를 설치하고, 농장을 만들고, 주변 원주민들을 회유하거나 정복합니다. 유럽 문명을 이식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 도시들은 "상업적 전망"을 대농장 경영과 노예 노동력에서 찾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탕수수와 목화, 나중에는 담배와 카카오, 커피, 쌀 등을 재배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담배 외의 거의 모든 작물이 아프리카나 인도 등지의 작물에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비록 18세기 중반 유럽의 초콜릿 붐에 힘입은 카카오 수출이나 금 채굴, 19세기 말에 고무 붐 등에 힘입어 한시적으로 수익을 냈지만, 전체 시기를 조망해보면 유럽인들은 아마존, 남아메리카 북부와 중부에서 그들의 "상업적 전망"을 실현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것은 유럽과 같은 수준의 경제적 윤택함을 원했던 정착민들의 바람이 점점 달성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였고, 이윤을 내기 위해 더 많은 원주민 노예와 그들의 희생을 요구하게 됨을 뜻했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태가 빚어지곤 했습니다.
‘이 나라는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고 가치가 있는 것은 전혀 나지 않는다. 노예 1백 명을 소유한 사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중 여섯 명도 안 남게 된다. 팔팔한 것과 거리가 먼 원주민들은 사망률이 굉장히 높다. 이질만 걸려도 모조리 죽는다. 또 흙이나 소금을 먹는 것 같은 사소한 골칫거리에도 죽고 만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16세기만 해도 수많은 탐험가들은 아마존 강둑을 따라 한없이 펼쳐진 원주민 부족 마을들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풍경은, 유럽인들의 정착 이래 불과 한 세기 남짓 만에 '텅 빈 강'이라는 묘사로 뒤바뀌게 됩니다. 강을 따라 정복이 이뤄졌고, 거의 모든 강둑의 부족들이 흩어지고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오면 원주민들의 삶은 세 갈래로 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직 미탐험 상태인 강 주변에 살던 원주민들로, 그들 대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세상 모르고 은폐된 상태의 원주민들이나 숲속 깊은 곳으로 피신한 원주민들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선교 마을의 원주민들로, 특히 아마존 마라냥과 파라 주 지역와 파라과이 일대(《미션》의 원주민들)에 수용된 원주민들은 숲에서 나와 선교 마을에 정착하며 이전 세대와는 다른 삶의 방식에 점차 적응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착민들의 소유물로 전락한 노예 상태의 원주민들이 있었습니다.
▲ 19세기 초 프란체스코회 선교사와 그의 인디오들. 선교사들은 그들의 신자들에게 일정한 안정과 보호를 제공했지만, 그 대신 원주민 문화와 신앙, 유산과 정체성이 희생당했다.
선교사의 시대 - 원주민 기독교 공동체의 건립과 종교적 휴머
《미션》의 첫 장면은 주교 알타미라노의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교황님의 영토 끝에서 발생한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인디오들은 다시 방임 상태가 되어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군. 다시 하지.) 교황님, 1758년, 지금 저는 아메리카 남쪽 라플라타의 아순시온이라는 마을, 커다란 산 미겔 선교회에서 도보로 2주 걸리는 곳에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 선교회는 정착민들로부터 인디오를 보호해왔으나 그 때문에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이곳 인디오들은 음악적 재능이 풍부하여 로마에서 연주되는 바이올린도 그들이 만든 것이 많습니다. 이곳으로 파견된 예수회 신부들은 여전히 미개 상태로 있는 인디오들을 상대로 복음을 들려줬지만, 도리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
- 영화 《미션》 中
앞서 언급한 원주민들의 세 갈래 삶의 양태에 대해 선교사들은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 여전히 미발견 내지 숲에 사는 부족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선교 공동체로 데려오는 사업을 하는 한편, 기존 선교 공동체를 지키고 발전시키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정착민들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에 의해 숲에서 내려온 원주민들이 무조건 선교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일랜드인 예수회 신부 리처드 캐루를 비롯한 두 신부는 1658년 포키과라족 1천 명을 토칸칭스 강 중류 근처 숲속에서 데려왔다. ...... 그해에 벨렝 시의 인구는 자유 인디오와 인디오 노예들로 2천 명이 넘게 늘어났다. 그러나 정착민들은 이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이 땅의 여러 강은 세계에서 가장 컸지만 [정착민들의] 탐욕은 그 강물들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위의 사례는 원주민을 숲 밖으로 끌어낸다는 의미가 단순히 선교 공동체에서 안온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정착민들은 선교사들이 선한 의지로 데려온 원주민들을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환영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영화 《미션》에서도 계속 관찰되는 긴장감입니다. 당장 영화의 주인공인 로드리고 멘도자는 원주민을 노예로 붙잡아 정착민들에게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았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에스파냐에 비해 포르투갈인들의 착취가 특히 심했습니다. 이 점을 지적한 기록이 있습니다. 에스파냐가 상대적으로 노예제에 있어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한 상태로 주로 비판자의 위치에 섰음을 알 수 있는데, 가브리엘 신부를 연상시키는 한 신부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에스파냐 사람인 아쿠냐는 테이셰이라의 포르투갈인들에게 눈을 떼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에 따라 그는 포르투갈인들이 에스파냐령 페루로 가는 경로를 통해 아마존을 장악하는 계획을 논의하는 것을 종종 듣는 대로 보고했다. 그는 국왕에게 에스파냐 사람들로 아마존 지역을 식민화할 것을 촉구했다. ‘아마존 강 어귀의 포르투갈인들이 그들의 뜻을 따르는 호전적 부족의 지원을 받아 강을 따라 올라와 페루나 뉴그라나다 왕국(오늘날의 콜롬비아)까지 침투하려고 한다면―그들이 기독교도로서 신심과 충성심이 별로 없는 것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폐하의 이 불충한 신민들은 그 땅을 약탈하고 큰 해를 끼칠 것입니다.’ 예수회원의 예상은 이보다 더 정확할 수도 없었다. 경쟁자들을 제거하자 포르투갈인들은 수세기에 걸쳐 아마존 주민들을 잔혹하게 착취하는 일에 착수했다. ...... 몇천 명의 식민지인들이 아마존 강 본류와 그 지류 주변으로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인간들을 점진적으로 말살했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물론 아마존의 지배층이 세속적인 포르투갈 정착민들이고, 아마존에서 자유롭게 활동한 에스파냐인들은 주로 선교사들이었을 거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 대 국가의 갈등 축이 얕게나마 존재했고, 이 문제를 더 파고들면, 그 갈등은 선교사 대 정착민의 갈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선교 공동체가 있음으로 해서 정착민들은 그들 도시의 원주민 노예제가 위협받는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미션》의 축제 장면을 보면, 꼼꼼하게 인종 비율을 맞췄음을 알 수 있는데, 주요 인물이나 관직을 가진 사람, 총을 든 군인을 맡은 배우들은 모두 백인이고, 여타 허드렛일을 하거나 거리와 광장을 메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주민이나 혼혈 인종임을 볼 수 있습니다. 지역 경제에서, 아니 일상생활에서 유럽인들에게 원주민 노동력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습니다.
열대 지방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비록 그들이 고국에서는 농장 일꾼이었다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육체노동을 전혀 하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아마존 지역에서 유럽식 삶을 재현하는 데는 많은 노동력이 들어갔다. 소수의 플랜테이션 작물, 즉 담배와 목화, (나중에는) 쌀은 등골이 휘는 노역을 요구했고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우림 지대에서 잘 자라지 않았다. 식민지인들은 또한 자신들을 먹이고 도시와 집을 짓고 끝없는 여행길에서 대신 노를 저어줄 인디오들이 필요했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 다소 후줄근하지만, 기어코 복식을 갖춰 입은 서구인들. 정착민들 입장에서 유럽식 생활을 영위하려면 더 많은 노예가 필요했다.
엄연한 사업으로서의 선교 사업
《미션》은 종종 서구 중심적인 영화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필자는 그에 동의하지 않지만) 실제로 미션에 등장하는 선교사들은 지고지순한 인도주의자로 그려집니다. 심지어 노예사냥꾼에서 선교사로 전직한 멘도자마저도 그런 인품으로 탈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모두 선했다든가 혹은 선교 공동체가 진정으로 신의 품을 대행하며 원주민들을 포용했다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온갖 노력과 재산을 동원해 원주민들을 숲에서 끌어내야 했습니다.
어느 메르세다리오회 선교사는 검은 옷을 입은 예수회원들의 열성을 칭송했다. ‘나는 그들이 선교(공동체)를 위해 정글 한복판에서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원주민들을 방문하는 것을 보았다. …… 그들은 이 사업에 모든 재산을 쏟아 부었다. 카누, 면직물, 도구, 나이프, 그릇, 구슬, 옷, 거창한 선물들, 그러한 선물이 없으면 인디오들이 자신들의 땅을 떠나 교회의 품안에 들어오도록 설득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상류에서 내려와 [마을에 정착하면] 신부들은 그들을 두 해 동안 먹이고 입힌다.’ 그렇지만 이 성직자는 원주민과 접촉하기 위한 원정에 들어가는 카누와 인력, 옷감은 모두 선교 공동체의 인디오들이 공급한다는 사실은 간과했다. 그리고 2년간의 시혜가 끝나면 하류로 내려온 부족민들은 인력 집단에 합류하여 예수회원이나 정착민, 정부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도 헤아리지 못했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위의 인용에서 보듯이 선교 공동체 역시 정착민 경제와는 조금 다를지언정 결국 원주민 노동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또 원주민에게 일정 기간 시혜를 베풀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원주민들은 생산 활동에 투입되었습니다. 《미션》에서 선교사들이 자랑했던 공동 소유 농장과 같은,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 즉 성서가 예언한 최초의 천국에 등장했다는 그러한 경제 체제를 실현한 곳은 굉장히 드물었을 것입니다.
정착민들의 대농장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원주민들은 선교 공동체의 노역도 거부하곤 했습니다. 신념에 찬 한 선교사의 다음 기록은 종종 선교사와 원주민 간에 지배-피지배 관계가 성립했음을 보여줍니다.
다니엘 신부는 가혹한 규율가였다. 그는 인디오들이 새로 도착한 선교사들에게 생선을 덜 가져다줌으로써 그들을 ‘속인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신입자를 흔히 단식하게 했는데 신입자들은 매질이 [그러한 나태에 대한] 치료약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적당한 매질을 하면 그다음부터 생선의 양이 많아진다.’ …… ‘그들은 자신들의 비법을 매우 고집스럽게 지키고 비밀스럽게 군다. 아무리 많은 선물을 주고 여러 약속으로 구슬리더라도 소용이 없다. 오로지 회초리로만 정보를 뜯어낼 수 있다. 심지어 그 방법조차도 일반적으로 실패한다. 비록 그들을 죽인다 해도 소용이 없다.’ ……
다니엘은 ‘그들에게는 존경보다는 두려움이, 수사修辭보다는 막대기가, 눈감아주기보다는 처벌이 더 많은 것을 이끌어낸다’고 믿었다. ‘그들은 두려움에서가 아니라면 아무런 선행이나 일을 하지 않는다. …… 매질은 인디오들에게 가장 편리하고 적절한 처벌이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들이 내리는 40대가 적당하다. 만약 범죄가 더 흉악하다면 감금과 더불어 매질을 여러 날 더 반복할 수 있다. 그들은 이 처벌을 매우 두려워하는데 사냥을 나가고 숲속을 쏘다니는 것과 그 밖의 여러 즐거움, 특히 매일 목욕하는 즐거움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사실 발에 성능 좋은 족쇄를 채워 감옥에 오래 가두는 것보다 그들을 더 온순하게 길들이는 처벌도 없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 (위) 《미션》에 나오는 선교회의 대농장. (아래) 멘도자가 주교에게 많은 원주민들이 정착민들의 매질을 피해 선교회로 흘러 들어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
하지만 원주민들 역시 개종했든 아니든 시종일관 순종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예수회는 아마존 인디오의 개종이 피상적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개종자 가운데 거의 누구도 기독교의 의미를 이해하거나 그것을 온전히 믿는 것 같지 않았다. 이들은 고해성사를 받아주는 선교사들을 흡족하게 하는 것은 뭐든 암송했고 신앙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형식적이거나 경망스러웠다. ‘그들은 대체로 미사에 참석했지만 영적인 이로움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처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 그들은 성안과 메달, 성상을 크게 떠받들었다. 그러나 그런 성물들이 불러일으키는 존경심과 신앙심에서라기보다는 그저 그것들이 예쁘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흔히 원숭이나 강아지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며 그 짐승들을 성물로 치장했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선교사들의 딜레마 - 원주민을 향한 정당한 전쟁, 합법적 노예화의 들러리
이 영화에는 등장하는 주요 딜레마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도덕적인 것으로, 선교 마을을 지키기 위해 로드리고 멘도자처럼 칼을 들 것인가 아니면 가브리엘 신부처럼 평화적인 방법으로 저항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글 상단의 포스터도 그런 딜레마를 홍보 문구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의 플롯에서 기인한 것에 가깝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딜레마는 역사적인 것으로, 앞서 언급했듯이 정착민들과 대립해야 하는 선교 공동체의 운명이었습니다.
▲ 그들 부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자리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원주민 소년. 아직 서구인들의 권력에 맞설 만큼 성장하지 못한 원주민 사회를 상징한다.
존 헤밍은 선교사들이 처한 애매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시기 아마존 지역의 소수의 성직자들은 애매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 선교사들은 스스로를 인디오의 옹호자라고 여겼다. 이 때문에 선교사들과 식민지인들은 곧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
1639년 페드루 테이셰이라와 함께 아마존을 일주했을 때 에스파냐 예수회 신부 아쿠냐는 포르투갈인의 노예사냥을 저지하려고 했다. 그는 강기슭의 마을들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러한 기독교의 상징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인디오들을 비난하고 이를 구실로 삼아 그들을 노예로 잡아들이는 것이 노예상인들의 꼼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원정대는 타파조스 강 어귀에서 그 강의 이름을 딴 커다란 부족으로, 아직까지 정복되지 않고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부족 중의 하나인 족장사회의 환대를 받았다. 따라서 아쿠냐 신부는 마시엘 파렌테 총독의 아들이 그곳에 대한 공격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내가 거기로부터 등을 돌리기가 무섭게 [그는] 포를 탑재한 소형정과 다른 소형 보트에 병사들을 최대한 태워서 출항했다. 인디오들은 평화를 원했지만 그들은 인디오를 상대로 참혹한 전쟁을 벌였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패턴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정복자들의 가혹한 정벌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복자들과 동행합니다. 그들은 원주민 마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곧 원주민들의 신망을 얻습니다. 원주민들은 선교사를 유럽인들의 선한 의지로 이해하고 평화롭게 공존하기로, 심지어는 선교 마을 내지 정착민 마을로 가기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아쿠냐 신부가 개탄한 것처럼 선교사의 얼굴마담 역할이 끝나자마자 정착민 군대는 총과 칼을 들고 정복에 나섭니다. 노예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면서부터는, 합법적인 절차는 정당한 전쟁으로 사로잡은 포로를 노예로 하라고 정하고 있었습니다. 정당한 전쟁이란 왕국과 신성을 거부하고 공격을 해오는 이교도를 무력으로 진압한다는 것이 주요 명분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교사들은 원주민 노예화를 공증하는 들러리가 돼야 했습니다.
또 다른 패턴은 아예 몇 개의 주요 원주민 부족을 인신 매매 중개업자로 삼아서, 원주민들을 사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래 인용에는 두 가지 패턴이 잘 나와 있습니다.
원주민 노동의 다른 형태는 ‘합법적’ 노예였다. 포르투갈의 지배나 기독교로의 개종에 반발한 부족들은 칙령에 따라 공식적으로 적으로 간주될 수 있었고 뒤따른 ‘정당한 전쟁’에서 붙잡힌 사람은 합법적으로 노예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와 무관한 원주민의 경우에는 ‘몸값이 치러진ransomed’ 후 합법적으로 노예가 될 수 있었다. ‘몸값을 지불하는 것ransoming’은 원래 부족 간 충돌에서 생포한 전사 포로들을 처형하고 의례에 따라 포로의 살을 먹는 해안의 투피어 사용 부족들의 풍습에서 유래한 완곡어법이었다. 마치 기독교도 유럽인들이 해적이나 북아프리카 무슬림의 손아귀에 떨어진 사람들의 몸값을 지불하는 것처럼, 처형당하거나 먹힐 위기였던 포로를 구조한 포르투갈인은 포로의 ‘몸값을 지불’했다고 표현되었다. 몸값이 치러진 포로는 죽을 때까지 그를 구해준 사람의 노예가 되었다. 이 이상한 시스템은 아주 광범위하게 오용되기 쉬웠기에 ‘노예로 만들기slaving’와 ‘몸값 지불ransoming’은 동의어가 되었다. 아마존의 부족 대부분은 식인 풍습을 따르지 않으며 따라서 포로가 그러한 운명에서 구조될 일도 없다는 사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미션》의 무대였던 파라과이 지역은 그나마 나았지만, 아마존 하구 등 곳곳에서는 이런 양태가 반복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기 원주민들의 희생은 어느 정도였을까?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그 규모를 짐작케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복자이자 탐험가인 페드루 테이셰이라의 형제이자 성당 참사원인 마누엘 테이셰이라는 마라냥과 파라의 주교 총대리였다. 그는 아마존 어귀에 도착하고 몇십 년 사이에 그의 동포들이 ‘혹독한 노동과 고단한 탐험 여행, 불의한 전쟁’을 통해서 2백만 명의 인디오를 말살했다고 추정했다. 2백만이란 숫자는 너무 높게 잡은 것이지만, 그들이 겪은 죽음과 고통은 비극적이게도 사실이었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 정착민들에게 등 떠밀리는 선교사의 모습. 예수회와 다른 선교회들은 노예제의 만행으로부터 인디오들을 보호하려고 했다. 원주민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정착민들은 여기에 화가 나 브라질 아마존에서 두 차례 반란을 일으켜 예수회를 축출했다.
감독관 체제 - 아마존에 관철되는 세속 통치 권력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영화 《미션》의 전사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까지 이 지역의 역사를 추동한 강력한 두 세력이 정착민과 선교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1750년쯤이 되면, 이 아마존에 강력한 직할 통치 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이뤄집니다.
18세기 중반 남아메리카, 특히 아마존 지역의 정치적 지형은 이전까지의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정한 체제를 완전히 갱신하는 새로운 체제로 뒤바뀌게 됩니다. 바로 1750년 마드리드 조약 때문입니다. 마드리드 조약에 따르면, '첫 번째 핵심 원칙에 따라 경계선은 강의 수원이나 경로, 가장 눈에 잘 들어오는 산맥처럼 가장 잘 알려진 지리적 특징을 지표 삼아 설정되리 것이다. 둘째, 각자는 현재 점유하고 있는 곳에 그대로 남을 것이다.'라고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협상 지역이 바로 브라질의 최남단, 《미션》의 무대였던 지역이었습니다.
▲ 오늘날 국경 위에 표시한 당시 선교 공동체 지역들. 8이 산 미겔이고, 17이 산 카를로스이다.
1750년은 브라질이 마드리드 조약으로 아마존 분지의 가장 큰 몫을 확보한 해이자 포르투갈에 새로운 국왕 주제 1세가 즉위한 해이기도 합니다. 주제 1세의 27년에 걸치 제위 동안 포르투갈 국정은 그의 국무대신 주제 데 카르발류 이 멜루, 역사에는 훗날 그의 작위인 퐁발 후작으로 알려진 실력자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또 이 시기는 브라질에서 발견된 금이 유입된 덕분에 포르투갈이 거대한 부를 향유한 시기였습니다. 퐁발은 브라질의 행정을 미나스 제라이스 금광 지대와 북동부의 사탕수수 재배 지역(아마도 아마파 주), 새롭게 법제화된 브라질 아마존 지역으로 개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동생 프란시스쿠 자비에르 데 멘돈사 푸르타두를 보내 북부의 마라냥과 대파라(아마존 하구 지역)의 사령관령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각각 포르투갈 본국과 브라질의 실세가 된 두 형제는 브라질에 그들의 통치 권력을 구축함에 있어 선교사들을 눈엣가시로 여겼습니다.
퐁발은 예수회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검은 옷을 입은 신부들을 정의하기는 쉬웠다. 그들은 독특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고 비밀스러운 규칙을 따르는 소수 집단이었고, 똑똑하지만 거만하며, 곧잘 식민지인들의 탐욕을 비난해 미운털이 박힌 상태였으며, 또 매우 부유한 집단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아주 눈에 잘 띄는 표적이었고, 시기심이 그들에 대한 박해에 기름을 부었다.
멘돈사 푸르타두 총독은 형 퐁발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썼다. 헌신적인 행정가였지만 경건하고 점잔 빼는 사람인 푸르타두는 정착민들과 성직자들의 도덕적 방만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한 선교 공동체에서 벌거벗은 여자들이 신부들이 다 보는 앞에서 몸을 씻고 다른 여자들은 ‘수치스럽고 음란한’ 모양새로 나돌아 다니는 한편 어느 젊은 선교사가 여자들만이 노를 젓는 카누를 타고 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선교사들이 마을을 노예로 채워 놓고서 그들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리고 강제 노역에 내보내고 무지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선교사들끼리 서로 다투고 국왕에게 불충하고 더 나아가 종교적 사명 의식을 잃어버렸다며 맹비난했다. 그의 눈에 예수회원들은 가장 악질 범죄자들이자 탐욕스러운 자들이었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그들이 취한 방법은, 선교 공동체의 선한 기능, 즉 원주민 보호처로서의 기능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선교 공동체를 건설하고 운영할 권리를 빼앗는 선교사들로부터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원주민들은 노예제로부터 해방되고, 스스로 선교 마을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며, 그들의 마을 이름은 세속적인 포르투갈 이름으로 바꾸도록 합니다. 공히 선교사들의 할 일을 없애는 것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차지해온 자리에, 정착민들 중에서 뽑은 감독관을 앉히는 소위 '감독관 체제'를 구축합니다. '명분'이 선교 공동체를 압도했고, 기층에서 정착민들의 환영을 받았음은 물론입니다. 브라질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은 일거에 범죄자 집단으로 전락합니다.]
6백 명의 예수회 신부들은 (대부분 브라질에서 붙잡혀 왔고 남쪽으로 보내져) 감옥선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재산은 퐁발이 기대한 것보다는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22군데 방목장의 소 13만 5천 두와 말 1천5백 마리, 카카오와 다른 작물 플랜테이션, 도시의 건물들이 전부였다. 모두 매각되었다. 8년 후 1767년 에스파냐의 국왕은 그의 제국에서 예수회를 축출하였다. 그리고 1773년 교황은 교단의 해산을 명령했다.
- 존 헤밍, 『아마존』 中
물론 영화에서 보듯이, 실제 역사는 원주민 해방과 거의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들의 신정 체제가 막을 내리고 그 자리에 세속권력의 더 악날하고 더 발가벗은 착취 체제가 들어서는 역사의 서막이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션》이 다룬 작은 공간을 둘러싸고 일어난 역사적 배경, 초기 아마존 역사의 큰 맥락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실제로 과라니 전쟁은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또 영화 《미션》을 보신 분이라면 그것이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충분히 짐작하시라 생각합니다. 아래 사진은 한때 신정 왕국이라 불렸던 선교 공동체들의 규모를 웅변합니다.
▲ 과거 선교 공동체 산 미겔이 있던 곳. 영화에도 등장한다.
참고 2. 천국 때문에_최성호
『천국 때문에』의 저자는 수십 년간의 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이 책은 저자가 이러한 경험과, 외국의 임사체험의 사례와 연구를 성경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책은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시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망을 제시하고 실천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여유가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소망을 제시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신앙적인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며, 더불어 독자들이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지은이는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후 197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외과 수련을 받은 후 1982년도에 외과전문의 자격을 얻었고, 1992년도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시절에 세례를 받은 후 신앙적 열정 속에 살았던 그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 기독실업인회(CBMC) 국내외 여러 지회들을 방문하여 실업인과 전문직업인을 대상으로 한 제자 양육 전문 강사로 활동하는 등, 평신도로서의 선교 활동에 힘썼다. 더 전문적인 말씀 사역에 뜻을 두고 신학의 길에 들어선 후 1999년도에 장로회 신학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였고, 그의 졸업 논문 “복제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신학적 전망”은 주목할 동문논문으로 선정되어 그해 동창회지에 게재되기도 하였다.
2001년도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목사 임직을 받은 후 응암교회 청년부 교육목사를 역임하였고 현재는 경기도 구리시에서 예평교회 담임목사, 구리 기독실업인회 지도목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요양재활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하나님의 나라 삶의 원리 연구’, ‘매바우 특강’이 있다.
참고 3. 레슬리뉴비긴_오픈 시크릿
오픈 시크릿(Open Secret·복있는사람)>은 ‘선교사들의 선교사’로 불리는 영국의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1909-1998)이 쓴 ‘선교학 입문서’로, 4년간 예비 선교사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레슬리 뉴비긴은 국제선교협의회(IMC) 총무직을 역임하고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1961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제3차 뉴델리총회에서 IMC와 WCC의 통합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WCC 부총무와 전도위원회 책임자로 섬겼다. 뉴비긴은 WCC를 이끌었을 뿐 아니라 인도에서 실제로 선교사로 사역했기 때문에, 그의 선교관을 살펴보는 일은 WCC 찬반 양측 모두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는 책에서 선교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경적인 관점으로 폭넓게 조망하고, 이를 통해 현대 선교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선교는 성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성자 하나님의 삶에 동참하며 성령 하나님의 증언을 전한다는 점에서 삼위일체적이다. 그에 따르면 선교는 ‘오픈 시크릿’, 즉 공공연한 비밀로,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복음 안에서 선포됐다는 점에서는 공공연하게 열려 있지만, 오직 믿음의 눈에만 밝히 보인다는 점에서 하나의 비밀이라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십자가의 약함과 어리석음이 곧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인 것을 알게 된 자들에게 위탁되었다. 그것은 그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해 위탁된 것이다. 그것은 곧 그들 속에 계신,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책에서 그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선교’ 논란에 대해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뉴비긴은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일은 꼭 필요하지만, 오해의 소지도 있다”며 “1952년 빌링엔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는 이 점을 크게 강조해 그 이후에 나온 선교에 관한 글들은 ‘하나님의 선교’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지만, 이 용어는 때때로 교회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기 위한 의도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하나님이 진정한 선교사라면, 우리의 본분은 교회의 선교를 촉진시키는 일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고 계신 일’을 파악하고 그분과 힘을 합치는 일로 보았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이들은 종교적인 부문이 아니라 세속적 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뉴비긴은 이에 대해 “그리하여 현재 한창 떠오르는 세력을 찾아 그러한 정치발전과 문화발달을 지지하는 일과 선교활동을 동일시하기에 이르렀다”며 “이로 말미암아 마오쩌둥의 어록이 ‘새로운 경전’이 되다시피 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선교사역은 복음선포를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행동에서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고 그는 덧붙인다. ‘사회봉사’ 없이 순수한 복음전도자가 되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선교사들을 향해, “굶주린 사람이 양식을 달라고 하면 선교사가 복음의 이름으로 거부할 것인가? 병든 아이를 데리고 와서 도움을 요청하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되묻는다.
특히 다원주의 사회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세에 대해 “교회는 성도들에게 전해진 믿음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조금도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구두적인 전통이 최고의 미덕이 되고 혼합주의는 가장 두려운 적이 되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는 진정한 대화가 불가능하고 진정한 선교 역시 불가능하다”며 “만일 교회가 이렇게 강하게 버티고 있으면 개종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성령께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을 취하여 교회에 보여줌으로써 교회를 새로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것을 진지하게 기대하는 참된 선교는 있을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뉴비긴은 이외에도 해방신학과 이데올로기, 교회성장 선교학파, 복음과 타종교 등 다양한 논의를 통해 바람직한 선교의 방향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그는 “복음의 비밀은 땅에 묻어두라고 교회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인류의 영적 교류를 통해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교회에 맡겨진 그 비밀, 오래도록 감춰져 있던 그 목적이 마침내 성취돼 모든 민족에게 밝히 드러나는 진리가 되도록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교회에 속해 있지 않고 교회의 머리인 동시에 우주의 머리가 되시는 그분의 권한과 은혜에 달려 있다”고 논의를 마무리한다.
◈레슬리 뉴비긴은
1909년 영국 뉴캐슬에서 태어나 불신자로 케임브리지대 퀸즈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기독교 학생운동(SCM)에 참여하면서 회심했다. 졸업 후 스코틀랜드 SCM 총무로 2년간 일한 후, 신학 수업을 위해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웨스트민스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1936년 인도에 선교사로 가기 위해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그 해 말부터 인도에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많은 반대와 염려에도 인도에서 장로교, 회중교회, 영국 감리교, 성공회가 연합한 남인도 교회를 형성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으며, 1947년 37세의 나이에 이 연합 교회의 초대 감독들 중 하나로 임명되었다.
1965년 WCC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인도로 돌아온 그는 첸나이의 감독으로 사역하며 교회 연합과 교회의 본질, 그리고 선교의 삼위일체적 근거를 다룬 여섯 권의 책을 저술했다. 1974년 35년간의 인도 사역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영국이 선교지보다 더 이교적임을 발견하고 1998년 소천할 때까지 영국 버밍엄에서 저술과 강연, 목회 사역으로 왕성한 노년을 보냈다. 주요 저서로는 <교회란 무엇인가?>,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 <누가 그 진리를 죽였는가>,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이상 IVP)>, <죄와 구원>, <성경 한 걸음(이상 복있는사람)>, <타당한 확신(SFC)> 등이 있다.
‘하나님의 선교’ 논란 넘어… ‘성경 전체 선교학적 해석’
“기독교는 ‘영혼의 우아한 일부다처제’와 관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