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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Oct 26. 2019

감정과 이미지

아트렉쳐 연재시리즈

-1. 지금까지


관념론으로 대표되는 철학에서 파생될 수 있는 인식방법들은 분할에 따른 모듈화가 가능하고, 모듈화로 나눈 이후에는 다시 모델로 합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것은 관념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관념을 현실화하는 질서를 만들어가면서 자신들의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 갔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재 기획과 상상, 창의와 구상과 같은 주제들은 특별히 '영감'이 엄청나게 넘치는 사람이 아니면, 배워야만 알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https://artlecture.com/Project/view/id/2626?_lang=ko


그러나 오늘부터는 추상과 구상에 있어서 '상징'이나 '언어'가 없이도 '이미지'와 '감정'을 기반으로 현실을 구성해 가는 방식을 알아볼 것이다.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부터 시작해서 세계화로 발전한 부분까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관념철학이 가지고 있는 방법론과는 사뭇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베르그송에서 들뢰즈로 갔다가 스피노자로 완성하는 그림이며 '아브젝시옹'이라는 개념에 와서는 줄리아크리스테바의 이론들을 살펴볼 것이다. 



0. 들어가기


베르그송에서 부터 시작해 보자. 존재를 생각할 때 실존주의 이전에, 아주 이전에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우리의 실존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의식에 '언어'가 아닌 것이 도달하는 것이 있을까?' 구조주의 언어학을 말하는 소쉬르나 언어의 천재 비트겐슈타인이나 무의식의 구조화를 말하는 라캉은 '언어' 자체가 모든 것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상징'으로서의 '언어'가 우리의 가장 큰 근본 전제라는 것이다. 정신의 상승은 이러한 상징체계를 통해서 상승한다고 보는 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보았던 독일철학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베르그송이다. 인지적인 상상의 공간에서는 분할하고 나누고 결합하고 붙이는 모든 것들이 가능했다. 그러나 실재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공간자체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공간 속에 있는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지적인 방식으로 상상의 공간을 구조화하고 그 구조화된 것들을 표현하는 상징으로서의 철학은 베르그송에게는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면서 엘리트주의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생명이란 무엇인가? 지속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지각 중심의 인식론 체계에 반기를 들며 ‘상징’ 이전에 이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 베르그송


1. 의식과 매개


의식에 대해서 베르그송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정말로 의식에서는 '언어'는 빠질 수 없는 필요조건이면서도 충분조건인가? 만약 언어가 없이도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 동안의 인식론의 구조를 깰 수 있을 것인데 말이다. 그리고 곧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로서의 이미지'를 증명해 나가기 시작한다. 인간의 기원이 정신에서부터 현상에까지 이른다는 헤겔의 철학에서는 항상 '법'이 최고의 가치를 가지게 되며, 언어놀이로 의식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는 언어와 형식과 내용의 논리적 구조가 최고의 분석툴이 되었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언어도, 법도 아닌 우리에게 직접, 더욱 직접 주어지는 것들을 밝혀낸다. 매개되어야 하는 것이 항상 '언어'라고 하거나 '법'이라고 하는 이들에게 전혀 그럴것 같지 않았지만 사실은 메타포의 메타포가 되고 있는 매개의 기원을 찾아낸 것이다. 


베르그송의 위대한 저서


2. 이미지-감각-감정


우리의 삶 속에서 역순으로 생각해 보면, '이해와 깨달음 이전에, 분석과 판단 이전에, 레코딩과 디코딩 이전에, 상징과 이미지 이전에' 어떤 인상이 있다. 직접적으로 우리에게는 하나의 인상이 계속해서 전두엽 전면에 투사projection되면서 이미지가 된다. 인간의 뇌 구조 안에서 보면 전두엽은 하나의 스크린과 같다. 직접 지각된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갖기 전에 이미지를 먼저 뇌의 극장에 쏘아 놓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보통 모든 것들의 시작을 ‘상징’으로 삼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상징이 상징으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상징의 재료인 실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재는 보통 우리가 파악할 때는 어떤 상에 대한 보는 사람의 관점이 투영되고 이것을 인상이라고 부른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우리의 뇌리에 직접적으로 각인되는 이유는 바로 이 타이밍에서 자신들이 받았던 인상을 그대로 화폭에 풀어 놓았기 때문이다. 상징으로 아직 뻗어나가기 전, 인상이 자신들의 전두엽에 박히는 그 순간을 캔버스에 펼쳐 내 보이는 것이다. 

 

실재에 대한 우리의 인상은 곧 어떤 감각을 유발시킨다. 그 감각은 자신의 무의식에 깊숙히 밖혀 있던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태초의 각각으로 깊숙히 들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의 작용이 얼마간 있은 후에 비로소 감정emotion이라는 것이 생긴다. 새로운 조합은 새로운 감정으로 떠오르고, 이전에 있던 조합은 자신이 친숙한 우울감, 자신감, 성취감과 같은 것들로 나타난다. 


스피노자가 분석한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는 들뢰지를 지나서 이번 시즌의 마지막 지점에서 알아볼 것이다.




원초적 감각들을 증폭시키면 야수파와 같은 원색의 화려한 시원성으로 복귀하게 된다. 인상으로 다가왔던 것들이 증폭되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감각 중에 하나가 증폭되어 캔버스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관념론의 방식으로 캔버스를 구성하는 것은 큐비즘과 같은 작품들일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상징 이후에 등장하는 모듈과 모델, 분할과 통합과 같은 규칙들은 실재의 인상을 감각하고 감정으로 소화시킨 후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한 가지 염두해 줄 점은 실재에 속하는 인상-감각-감정은 축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번에 있다가 사라져 버리고, 그 감정이, 그 감각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현현’presentation은 가능하지만 ‘재현’representation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후에 살펴볼 상층부인 상상계에서는 재현이 무한대로 가능하지만 상상 자체로만은 현현은 불가능하게 된다. 

 

우리의 사유는 순수하게 논리적인 형태 아래서는 생명의 참된 본성과 진화운동의 심층적 의미를 표상할 수 없다
_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3. 이미지-기억-인지

 

실재계에서 일어나는 물질구조의 반응에서 이제 다시 상층부인 정신구조 즉, 상상계로 올라가보자. 베르그송은 진화론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실재계가 먼저 있은 후에 상상계인 정신구조는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물질구조의 작용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신구조에서 그것을 형상화하는 작용과 유지하고 되살리는 작용, 그리고 확실하게 고정시켜서 사물과 상황을 스스로 ‘인지’했다라고 보는 과정까지 설명한다. 


 마치 파도가 일어나는 수면 아래 지점에 큰 바위가 있듯이 심리적인 작용으로 감정이 파도처럼 튀어 오르면서 이미지와 연결된다. 인상을 하는 당신에는 인상 자체가 단순히 감각되고 감정으로 뻗어서 깊숙히 우리의 심연으로 들어가지만, 정신구조의 차원에서는 그 중에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를 포섭한다. 들뢰즈도 우리의 기억은 항상 ‘감정과 이미지’의 결합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지와 함께 반드시 감정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감정만 있고 이미지만 있으면 우리는 어떤 느낌적인 느낌의 상황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이미지만 있고 감정이 없으면 다시 우리 눈 앞에 수 없이 쏟아지는 이미지들 사이로 기억하고 싶은 이미지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과 결합된 이미지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의 공간은 무한대로 펼쳐지는데 여기서는 온갖 상상의 재료들이 이미지와 결합된 감정들에서 서로를 쪼개기도 하고 통합시키기도 하면서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기도 하고 상상의 구조물인 ‘시뮬라크르’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부분의 합은 전체의 합보다 언제나 크다’라는 말은 상상계의 구조 안에서는 언제나 정답이 된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는 ‘재현이 가능한 형태’로 구성된 논리학과 철학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기억이 상상계를 구성하면서 일정한 규격의 자기가 도달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프레임’이 정해지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가중치를 두는 ‘포지셔닝’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우리는 ‘인지’cognition이라고 부른다. 내가 무엇을 인지했다고 했을 때는 앞에서 살펴본 이 모든 과정을 포함한다. 인상에서 감각으로, 감각에서 감정으로, 감정은 이미지와 결합하여 기억을 만들어내고 기억의 어떤 부분에서 앞에 있는 실재에 대한 인지가 가능하게 되는 과정이다. 


0. 나오기


베르그송의 생철학의 특징은 다시 요약하자면 인상에서부터 시작된 실재계에서의 반응은 감각과 감정을 향해서 존재의 깊숙한 부분까지 내려갔다가 상상계에서 특정한 이미지로 승화해서 기억과 인지의 과정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을 창조적 진화라고 부르기도 하고, 인간을 정의하는 방법에서도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여기기도 한다. 서술하면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이 지점 어딘가에서 인상파나 야수파나 입체파가 등장하기도 하며 이 과정이 증가할수록 표현예술의 세계는 점점 더 인지의 중층구조를 만들어내면서 초현실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일단은 작품들을 예시로 들어보는 작업들보다는 들뢰즈와 스피노자까지 갔다가 와보자. 들뢰즈에서 베르그송의 생명과 지속 개념이 더욱 발전하게 되고, 들뢰즈에게서 베르그송도 참조한 스피노자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나온다. 스피노자가 분석했던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일단 오늘은 베르그송이 제시한 개념을 도식화하는 데서 큰 의미를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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