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랑하는 것을 선택한다
히나님과 고립되지 않는 것은
세상의 방식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밀어냅니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모든 것 -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하고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려고
잘난체 하는 욕망은 -
아버지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여러분을 그분께로부터 고립시킬 뿐입니다
세상과 세상의 멈출 줄 모르는
욕망도 다 사라지지만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요한일서 1장_메시지 성경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어릴 적에는
세상과 하나님을 분리시키고
나를 지키려는 욕심에
세상과 고립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어느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세상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순간
신성모독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하심과 다스리심이
세상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내 의식은 모르게 진행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비판, 평가, 비난, 분석하고
그들과 다르게 어떻게 살아야하지를 고민하고
나를 지키려는 두려움으로 하루를 살아갔다
기쁨도 없고 모두가 적으로 보이는
말그대로 '전쟁터'였다
세월이 지나고 신앙의 나이가
20년을 넘어가면서
육체의 나이처럼
누군가의 규정으로 살지 않고
내면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들과
살깣으로 경험한 생상한 삶의 현장들이 만나서
드디어 바깥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생생한 하나님의 현현과
예수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악함에 분노를 터트리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
사람은 언제나 더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은 처음에는 두려움 때문에
삶을 살아가거나 선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사랑하는 것 때문에
삶을 살아가고 미지의 선택을 한다
무엇인가가 두려운 것은
사실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도 신앙이라면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사랑하는 것도
자기의 율법이 되어서
자신을 지배할 하고 통치하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은 경험의 측면인데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돈을 사랑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온다
물론 반대가 먼저지만 자본주의는
이 신앙의 방식을 따라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아래에서 평등해진다
돈이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나이가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죄인이든 의인이든
꿈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인든.
하나님으로 부터 고립된 인생은,
이것도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야 비교가 가능하지만
자기 고립에서 오는
소외감과 무력감 그리고 언젠간 불현듯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로 부터
자기 자신에 대한 의와 믿음으로 나아간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경험의 종교이고
전도라는 것은 완전하게 증언에 의한 것임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깊이 만큼
그 기쁨과 사랑을 전달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하나님과 연결되는 삶
그것은 굳이 세상과 분리하려고 해서
자기를 지키는 삶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어서
이웃을 섬기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간다
깊은 관계와 친절한 배려
사랑의 헌신과 끝도 없는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과 연결된,
세상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이 된다
세상을 굳이 구분하기보다는
위조지폐감정사들이 하는 것처럼
질 좋은 진짜 지폐만 보면
가짜가 한 눈에 보이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묵상하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이 보이고
남들과 비교에 의해서 내가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연결에 의해서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이런 사람은 굳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서
생색을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여기서부터 시작이고
이것이 마지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