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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낭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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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Dec 05. 2019

걸어가다가 만날 것 같은

오래된 미래에서 당신에게

걸어가다가 만날 것 같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날이면


가을의 여름이

시작되는 것만 같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에

다시 뜨겁고 열정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이


내 마음은 다시 6살짜리 아이들처럼

펄떡펄떡 뛰어다닐 것만 같고


82년 김지영을 다시 몇권을 쓰고도

인생을 자주 되감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사랑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겠지

아프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마음은 쉽게 부서지고

감정은 아주 빠르게 요동하니까


나는 나 스스로도 예측할수 없고

당신의 작은 떨림에도 거대한 폭풍우를 만난 듯해


점점 더 나를 지키려고 하는

노인들의 천국이 다가오는 것이 불안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라에는

노인을 위한 공간은 없을 거야


인생의 시간이 너무 쌓여서

감정의 울타리가 너무 높아서


마음의 벽이 너무 차갑게

겹겹히 쌓여서


당신이 오는 길을 보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씩씩거리지 않으면 좋겠어


오래된 미래처럼

도래하는 공동체처럼


당신의 입김이 서리운 창문 밖에

그리움보다는 아픔이라도 써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날이 있어

내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가 나를 쓰는 날

그리고 곧 당신을 쓰게 되지


그런날은 당신이

바람처럼 불어와서


모든 창물을 열어재끼고서

자연의 어머니들을 초청하고선


옛날이야기를 꺼내들고

어린시절의 추억부터 하나하나


하나하나 열리기 시작하지

얼굴에 꽃이 피고


손가락에 빠르게 온기가 전해지고

인생은 봄을 맞은 것처럼


여기저기 꽃이 피어나서

당신으로 푸르른 계절이 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시리면서

가뿐하게 지금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눈이 오는 지금

걸어가다가 당신을 만날 것 같아


내 마음은 당신이 오고 있다고

가을 벗어 던지고선 여름옷을 입고 있나봐


나는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어

인생은 때론 씁쓸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아무도 없는 것 같은 황량한 들판 위의


허수아비 같은

허무함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야


그 길에 당신이 함께 걷는다면,

너른 들판이 지나쳐야 하는 지루함이 아니라


하나하나 새겨 돋으면서

즐겨밟는 솜사탕 같은 산책길이라는 것을 말야


당신이 올 길

당신이 오고 있는 길


얼른 나가서 기쁨가득

당신을 맞이해야 겠어


그 날이니까, 말했듯이.

시가 나를 쓰고, 당신을 쓰고 있는 밤.



김동률_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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