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심연과 깊이
어딘가에 있을 당신에게 쓰는 편지
인간정신의 깊이가 있다면
그 때나는 당신의 깊이에 한 없이
못 미치고, 아니 아예
당신을 이해하지도 못했을꺼야
인간이 살면서 느낄 수 밖에 없는
심연의 고통을
낄낄거리는 방어기제 정도로
웃어 넘기는 내 모습에
당신은 진절머리가 났을거란
생각에 두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해
낭만도 좋고 은유도 좋지만
인간이라서 경험하는 깊은 수렁끝에서
당신이 울고 있는 모습을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넘겼나봐
그래서 당신은 나를 가볍게 넘기고선
사물을 대하듯이 나를 대했을꺼야
이제와서 다시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나의 의식을 돌이켜 봐
허무와 쾌락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나는 당신을 쾌락으로 보았는지도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부지런히
반대로 올라가려고 했는지도 몰라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죠
모든 것이 역사의 중심에서 허무로 돌아감을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하더라고 결국에는
허무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겠지
그럼에도 나는 아니라고,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함에
당신은 몸서리치게 싫었겠지
인생의 깊이가 있다면,
심연의 정도가 있다면
당신의 깊이는 우주의
그 어느 블랙홀보다 깊고
저 바다의 해저 2만리보다
오묘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아
인간에게 낭만이 필요하고
우리에게는 누군가의 응원이 필요하듯
당신에게도 당신의 깊이를 이해하고
당신의 고뇌를 응원하는 것이 필요하겠지
인생은 왜 그럴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답이 없는 깊음으로 들어가니.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어, 물론 지금 알았지만.
어떤 철학자의 말을 기억하며
당신을 보내
"한번 진리를 맛본 사람은
진리의 투사가 될 수 밖에 없다"
당신의 깊이와 넓이와
헤아림의 범위를 이제서야 경험하고서
내 마음속에 가만히 묻어둔
아쉬움도 함께 흘려 보내
나도 언젠가 당신의 깊이 만큼
인생과 영혼과 우울함의 심연을 알게되길.
그럼에도 당신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해제_영혼의 깊이를 더할 나위없이
드러내준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