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예술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민네이션 Mar 15. 2020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지나가는 사람들은 의레 나무를

못생겼다고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_브르톨트 브레히트




이 얼마나 좋은 봄인가!

산천에 꽃이 피고 아지랑이가 올라올 무렵


여름에 대한 부푼 희망을 품고

개구리들은 산란을 하고


이제 막 6년을 넘긴 매미의 유충은

선배들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는데.


연인들은 서로의 눈에다가

초콜렛이며 사탕을 잔뜩 넣어주고선


매년 되돌아오는 마케팅의 상술에도

기꺼이 속아주는 날들이지 않은가?


사랑은 이렇게 달콤하고

인생은 이렇게 여유가 넘치는지!


넘나 멋진 인생

넘나 행복한 것!


그러다가 널판지 깊숙한

때꿍물 자국에 썩어들어 가는 발가락이 보이고


쓰레기를 마구 눈에 넣어 치우던

어떤 길거리의 사람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아니 이 좋은 봄에,

누구나 사랑하는 계절에


무슨 홍상수 감독이

다정한 연인에게 갑짜기 따귀맞는 소리이며


이제 막 뽑은 BMW 전기차에

200만원짜리 퓨즈 나가는 소리인가?


나의 시에 낭만을 즐기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환상이겠지.


내게는 지하철 계단을 청소하시는

어머니들 등어리 정어리 같은 땀과


새벽 3시 정성스레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 머릿수 세는 알바생의 한숨이 들리는 걸.


마음 속에 인간이라서 할 수 있는 일과

인간이라면 이럴 수 없는 일이 서로 투쟁한다.


나는 오히려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시를 쓴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_민네이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