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_기형도
시간으로 지은 모래 위의 집
점점 허물어져 가는 육체에
피의 파도가 들이 닥치고
탄소의 바람이 몰아붙인다
완전한 1이었다면 몇만번이라도
반갑게 맞이하겠지만
금이 간 육체의 틈사이로
시간이 마구 빠져나간다
늙는 것이다
시간이 다 지나가고 난 자리에
남겨진 것은 그리 당당했던
고른치열이 아니라
치열을 유지하느라 몰아치는 두손 꼭 잡고
지켜낸 잇몸의 설움.
청춘이라는 것은 중력하고 겨루어
점점 고개를 숙이는 사이에
우리의 피도 위로 올라가지 못해
머리카락이 다 새었다
검은 머리카락의 당당함이
백기를 들듯 부끄러움처럼 번저가는 사이에
비로소 인간은 질문을 던진다
왜 살아왔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한지 몇년이 지나지 않아서.
돌아온 길을 곱씹어 보는 사이에
남아 있는 것이 있더라
남의 기억 속에도 나의 기억 속에도
사랑했던 기억은 잇몸처럼.
젊음을 질투하는 나이가 돌아오는 이들이
오히려 익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구나
그래서 다시 젊음을 찾는다면
사랑하겠노라고 말하는구나
그럼 나는 확실해졌겠지
죽을 힘을 다해 중력의 무게를 뚫고
사랑으로 달려가는 사이에
잠잠한 바닷가 가장자리에
파도가 잘 닿지 않는 모래성 하나 남겠지
사랑하라 한번도
질문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질문하지 않았던 것처럼_민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