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다 착하다 착하다

나의 아저씨 #2 진실을 본 사람의 표현

by 낭만민네이션


착하다



할머니가 달을 보고 싶다고 했던 말에 할머니를 마트 카트에 싣고서 언덕을 오르는 사이, 동훈이 이를 보고 도와준다. 뒷모습. 사람은 뒷모습에서 무엇인가 인간의 실존을 느끼나보다. 동훈이 할머니를 업고 언덕 계단을 오르는 뒷모습에서 지안은 묘한 감정을 느낀다. 무엇인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오랫동안 기다리고 희망하면서도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동훈의 도움으로 할머니를 다시 방으로 잘 모셔다 드리고서 동훈은 겸연적게 돌아가는 길. 지안에게 말을 건넨다. "착하다" 회사에서 싸가지 없는 파견직으로 21살이 버릇없는 어린아이인줄 알았는데 동훈은 지안이 왜 이렇게 자신의 과거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다 아는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순수함이 나올 때가 있다. 막상 그 모습이 나오면 그 어느 것 하나 걸치지 않은 것 같이 챙피한 마음도 들지만, 사실은 이게 나의 본모습이야.라고 생각하는 그런 모습. 누군가 그 모습을 보았다면 그 때는 정말 나의 본모습을 본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이 인생의 가장 큰 상처를 줄 수도, 가장 깊은 언어가 될 수도 있다. 지안에게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결과만으로 사람들은 살인자라는 죄명을 씌웠지만, 사실은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서 했던 선한 행동이 결국은 악한 행동이 되어 버렸다. 그 때부터 지안이 숨겨놓았던 자신의 진실한 언어, 진정성이 담긴 마음은 자신을 굴레씌우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난다. 그 문의 열쇠를 열어 버렸던 순간, '착하다'라는 말은 지안의 본질이었다. 지안이 원래 가지고 있던 순수한 언어였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는 자신을 지탱해줄 언어였다.


스크린샷 2020-06-13 오후 4.18.57.png "착하다" 마음이 편해지는 이야기였던 걸까?




이를 지, 편안한 안이요.
좋다. 이름 잘 지었다.


이름을 묻는 동훈. 그 또래의 대부분의 아저씨들처럼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본다. 자신도 궁금하지 않고 남들도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그런. 그렇지만 동훈의 선함에 의도가 담기지 않음을 알아챈 지안은 이야기를 해 준다. 그 이름처럼 '편안함에 이를 때까지' 지안. 좋다~이름 잘 지었다는 동훈의 말에 더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 인간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때는 사실 그 사람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볼 때이다. 다른 것들 말고, 그 사람이 존재로서 그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은 인간이 된다. 편안함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운명의 목적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듯한 지안에게, 동훈의 기본적인 대화는 무엇인가를 점점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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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우발적으로 살해한 일수업자의 아들 광일은 매번 찾아온다. 피할 수 없는 폭행을 운명의 시련처럼 받아들이는 지안은 죄값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점점 참을 수 없는 위기를 맞는다. 광일의 아버지가 죽은 날, 태평하게 이어폰을 끼고 있는 지안에게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광일. 어느정도의 죄값을 치르고 난 지안을 그나마 지탱해 주는 말.


착하다 착하다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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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훈의 핸드폰을 도청하면서 저장해 둔 말. 착하다를 연신 듣는 지안의 모습. 그랬을까?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은 사실 그 어떤 화려한 말도 아닌 걸까? 그 순간 내가 진실하게 행동했던 그 모습을 표현해 줄 수 있는 언어였을까? 언어의 온도가 없이도, 차갑던 뜨겁던 중요한게 아니었을까? 지안에게 편안함에 이르는 길을 마련해준 언어 '착하다' 그 것 때문에 지안은 편안함에 이르는 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의 진심이 담긴 행동을 보았을 때만 나오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을 표현하는 나의 마음은 진짜이다. 문제는 내가 그 동안 어떤 마음을 품어왔느냐를 보는 시험대라는 것. 그러니 그 순간까지 내가 착하게 살아왔다면 '착한 모습' 앞에서 '착하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반대로 무심하게, 악하게, 누군가를 이용해 먹고 살아왔다면 그 순간에 '지랄이야'라는 말이나 '왜 이래 촌스럽게'이런식이겠지. 인간의 본 모습과 대면해 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대면해 보기를 두려워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본질의 언어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오면 좋겠다. 그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표면에 둥둥 떠 다니는 언어가 아니라 심연 가득 깊이에서 그 사람이 정박해서 흔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 그렇게 그 사람의 진실을 볼 수 있는 사람. 착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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