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3 비밀을 간직하는 친구
더러운 새끼
술취한 동훈의 직장부하는 동훈이 없는 자리에서 동훈이를 나무란다. 동훈이가 못났으니까 만년부장이고 상무가 우리 팀까지도 못살게 구는 것 아니냐고. 동훈의 선심에 문뜩 끌려가 회식 자리에 앉은 지안은 우둑커니 보고 있다가 "더러운새끼~"라며 그 직원의 따귀를 한대 때린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난다. 따귀를 맞은 부하직원은 다음날 술이 깨어나 지안의 행위를 분해하면서 어떻게 내 쫓을까 벼르고 있다. 더러웠던게 직원이 침을 뱉을려고 해서인지, 아니면 그 마음이 더러운 건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어쨌든 더러운 건 더러운 거다. 앞에 있는 사람과 자리를 비운사람의 간격에 나의 언어를 마구 끄집어 넣고선, 내 감정을 투사해서 이리저리 물들여 버리는 것은 더러운 것이다. 한사람의 실존을 무시해버리는 투사의 창을 넘어서지 않으면 곧 그것이 자신을 비추는거울로 다가올 것이다. 내가 원하는대로 상대방을 투사해버리는 행위에서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면 이러지 말아야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고마워 때려줘서
따귀를 날린 지안에게 동훈은 말한다. 다른 사람은 다 나 없을 때 욕하는데, "고마워 때려줘서" 동훈은 쓸쓸한 자신의 인생에 누구하나는 자기 편이 되어 준다는 잠깐의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나서 둘은 잠깐이나마 이야기를 나누러 들어간다. 지안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동훈의 표정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누군가를 위한 선의의 행동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문제는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이었는가?이다. 방법과 수단 사이에서 인간은 고민하고 고뇌하고 그 격차에서 오는 상처들이 많으니까.
지안은 얼마나 오랜만에 '고맙다'라는 말을 들었을까? 훌륭해요가 아니라 고마워라는 말은 인격과 인격이 나눌 수 있는 최고의 말 중에 하나이니까. 얼어 붙은 지안의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말.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항상 봄이 찾아오니까. 무시와 경쟁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선뜻 다른 사람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은 힘든 일이니까. 고맙다는 말을 꺼낼 수 있기 까지 고마울 수 있는 행동을 누군가는 한거니까. 둘의 관계는 쓸쓸한 인간과 불쌍한 인간이 아니라 고마움을 느끼는 존재와 고마운행위를 한 존재가 된다. 이렇게 한 끝 차이로 인간은 다른 방식으로 만나게 된다. 다른 형식으로 엮이게 된다.
모른척해줄께, 그러니깐 너도 모른척해주라.
넌 말안해도 다알 것 같아서. 겁나!
숨죽여 듣고 있는 지안에게 동훈은 말한다. 너희 또래들이야 말해주는게 미덕이겠지만, 우리 때는 그냥 모른척하는 게 더 좋다고. 이야기는 결국 지안이 살인을 저질렀을 때의 불안과 두려움으로 넘어간다. 동훈에게는 모른척하기로 했던 것처럼, 지안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실수와 상처들이 난무한다. "그럼 불안하지 않나? 누군가 내가 저지른 문제를 알게 되면, 말하지 않을까?하고, 그럴꺼면 차라리 광화문 한 복판에 다 까발리고 속편하게 살면 좋지 않나?"라고 말하는 지안에게 동훈은 모른척해준다고 말한다. 그러니 너도 모른척해 달라고. 자신도 모른척할테니 너도 모른척해달라고.
사실보다 진실이 훨씬 크다. 사실은 한 시점에서 한 방향을 보고 표현한 평면이라면 진실은 위에서, 아래에서 모두 바라본 것이다. 그러니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노력을 할 수 있지만. 모른 척하는 것은 사실을 알았지만 진실을 다 알 수 없기에 취하는 행동일 수도.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말할 수 없는 진실을 쌓아둔 영혼의 무덤에는 얼마나 많은 말들이 쌓여 있을까? 그 사람이 발결할 수 있는 진실을 위해서 내가 본 사실을 모른척 하는 것. 어쩌면 이게 우정이리라. 한 시점을 살아가는 인간에서 할 수 있는 하나의 작은 배려이리라. 다 까발리고 나면 이제 사실도 사라지고 진실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아예 없어지기에. 사실을 소거하지 않고 진실을 계속 알 수 있는 힌트로 남겨두는 것.
비밀을 비밀로 지켜주는 친구. 안심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함께 걷고 있어도 하나도 부담이 되지 않는 친구. 무엇을 말해도 묵묵히 귀에 담아서 어떤 대답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인정해주는 친구. 내가 울고 있으면 함께 울어줄 친구. 오해와 불신의 싹이 트는 순간에도 속을 것을 알면서도 믿어주는 친구.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던 순간에도 친구로 그 자리에 있었던 친구. 친구들과 함께 걸어온 이길. 친구의 실수와 미숙함과 뒷걸음질도 모른척 하고 꾸준히 그 자리에서 함께 걸어갈 준비를 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 모른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