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릴 때는 내가 없어져요

나의 아저씨 #4 달리기가 스펙인 사람

by 낭만민네이션



달릴때는 내가 없어져요
그런데 그게 진짜 나 같아요



스펙하나 없는 지안을 파견업체에서 뽑은 동훈. 다양한 스펙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사회에서 지안은 어쩌면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겠지. 그런데 특기에 아무런 것도 쓸 수 없는 동훈과 달리 '달리기'를 쓸 수 있는 지안. "달릴 때는 내가 없어져요. 그런데 그게 진짜 나 같아요" 달리는 순간 자신이 사라지고 세상이 빠르게 나에게 들어오면서, 나는 땅을 밟고 밀어내면서 서로 만나는 그 순간순간, 심장은 요동을 치고 호흡을 가빨라지면서 매번 다른 세상을 선물하기 때문인 걸까?


없는 것을 포장하기 위해서는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젠체, 아는체, 멋있는 체, 여유로운 체. 그런데 그런 '체'는 어느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진짜로 그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며. 가짜가 사라지고 진짜가 나타나는 순간, 가짜들이 그 동안 유지했던 허세는 삼풍백화점 무너져 내리듯이 무너져 버린다. 동훈이 일하는 회사의 대표가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것들을 동원했듯이. 모든 것을 다 빼고, 관계, 소유물, 업적, 성과를 제외하고서 나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것들이 진짜 나일까? 세상에는 원래 벌거벗고 태어난다. 입고 있는 옷도 어느순간은 나를 벗어날 것이기에.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은 잠시 나를 유지해주는 것들이다. 젊음도 지나갈 것이고, 내가 살던 집도, 지금쓰고 있는 것들도 다 지나갈 것이고, 결국에는 나도 지나갈 것이다. 그럼 남는 것은 무엇이지? 진짜로 남아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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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건물과 같아.
내력이 있으면 이기는 거고 외력을 버티는 거지


"그래서 그 많은 스펙보다 '달리기'라고 쓴 너가 내력 있어 보였던 거지" 동훈은 자신의 속내를 비춘다. 외력과 내력의 싸움에서 살아 남는 것. 살아 남을려고 애쓰는 것. 그것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어쩌면 계속해서 외렵으로 넘어 오는 바람과 추위 때문에 그 많은 치장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어느순간 진짜의 싸움이 시작되면 결국은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구조'의 싸움이 시작되는 거겠지. 지금까지 내가 소중하게 여겨 온 것들. 이것이 진정으로 나를 유지해주었던 것들, 그것 때문에 내가 견고하게 설 수 있었던 것들. 내력이 있으면 이기는 거고, 매 순간 외력에 넘어가지 않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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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훈과 지안은 처음으로 서로를 보면서 웃는다. 쓸쓸한 인간과 불쌍한 인간이 만나서 절망을 맛 본 후에, 드디어 희망의 단어를 꺼낸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그래 이제 그만 쓸쓸해 하고, 그만 불쌍하자. 행복하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게 아니라, 행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을 지금까지는 까부수어야했으니깐 행복이 어려웠던 거겠지.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욕심도 내고, 때론 거짓말도 하고, 어쩔때는 가장 친한 사람에게도 안면몰수 해야되니깐 힘든거겠지.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행복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잠시 웃는 순간.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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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돌아가는 동훈의 뒷모습에 지안은 머뭇거리다가 외친다. 파이팅! 모든 언어는 먼저 내가 듣는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려면 내가 먼저 소리를 내면서 듣게 된다. 그리고 말을 꺼낼려면 내 안에서 먼저 그 단어를 음미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잔소리 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거고, 누군가에게 희망의 단어를 외치면서 내가 희망에 부풀어 오르는 거고, 누군가를 험담할 때는 내가 먼저 당하는 거다. 그러니 지안의 파이팅은 사실 동훈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제야 조금은 희망을 머금은 내일이 얼굴을 비추기 때문일까? 돌아가는 동훈에게는 어떤 식으로 들렸을까? 어쨌든 우리의 삶도 파이팅.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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