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상황을 듣고 달려간 동훈, 지안이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가끔씩 눈에 멍이 들고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는지를 알아버린 쓸쓸한 인간 동훈. 그는 광일이를 찾아간다. 모든 사실을 알고 이 모든 것들을 끝내기 위해서 무작정 광일이와 맞짱을 뜬다. 그 감정이 무엇이었을까? 동정이었을까? 연민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었을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혹은 혹사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서는 '수퍼맨컴플렉스'나 '메시아컴플렉스'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컴플렉스에서 빠져 있는지 아닌지는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그 행동이 끝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다. "이게 내가 다 너네한테 해준 것다. 그러니깐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거나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거나 나를 존경해주거나." 그런것들을 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병이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나서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고선 나중에 내가 해줬으니 돈을 내놓아라고 하는 허세는 병이다. 그럼 동훈은 어떤가? 쓸쓸한 인간이 불쌍한 인간을 위해서 했던 행위는 어떤가?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면 알겠지.
동훈과 광일의 싸움을 듣고 있는 지안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눈물을 흘린다
"저 년이 내 아버지 죽였어!"라는 광일의 외침에 주먹을 날리는 동훈은 "나 같아도 죽여! 내 식구들 패는 새끼들은 다 죽여!"라며 달려든다. 모든 것을 듣고있는 지안은 그 동안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모든 짐들을 다 내려놓고 하늘이 열린 것처럼 펑펑 자신의 서러움을 쏟아낸다. 인간이라서 참을 수 없는 것과, 인간이기 때문에 참을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서성인다. 인간이기 때문에 서러움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참을 수 있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누가 당하는 꼴이나 우리 가족이 맞는 것은 참을 수 없듯이.
광일이가 참을 수 없었던 것과 동훈이가 참을 수 없었던 것 사이에서 지안이 참고 있었던 것이 있다. 운명이라는 저주가 인간을 휘어 감끼 시작하면 자신도 왜 그 길로 가고 있는지 모를 만큼 인간은 타의에 의해서 끌려가게 되어 있다. 누군가 사회가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슬쩍 컨닝하고 나면, 사람들을 어떻게 운명에 묶어두고 자신이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안한다는 듯이 죄책감을 감추어 버릴 수 있다.
그럼 그런 사람들은 재빨리 사람들의 운명의 끈을 쥐어서, 재빠르게 뒷짐지고 사람들이 처다보면 모른척하고서, 슬슬 그 사람을 조종하기 시작한다. 운명에서 벗어나는 길이 영원히 감추어 버리면, 다른 사람에게 종이 되어서 사는 삶이 계속해서 쌓인다. 너무 많이 쌓이다 보면 사회는 어느새 그것을 용인하고 더 이상은 운명에 끌려가는 사람들의 딱한 처지를 봐주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살 궁리를 하게 된다. 지안의 살 궁리는 정당방위였고 결국은 사람을 죽이고, 자신은 여러겹의 운명의 끈에 휘갈겨져서 끌려가는 중이었다.
동훈은 다른 운명의 끈에 휩싸여서 끌려다가가, 지안에게 걸려 있는 줄에 걸려서 넘어진 것. 그러니 두 사람은 방향은 다르지만 같은 지점에서 만나게 된 것이겠지. 마치 천국의 우화처럼 내게 걸려 있는 운명의 끈을 자를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걸려 있는 끈은 자를 수 있는 게임의 룰과 같이. 동훈은 자신에게 걸려 있는 끈을 자르지 못하지만 지안에게 감겨있는 여러겹의 끈들을 하나하나 잘라내고자 몸소 피투성이가 된다.
쓸쓸한 인간이 불쌍한 인간의 운명을 수렁에서 끌어내려고 하는 순간, 두 사람은 모두 괜찮은 인간이 된다. 운명이 그렇고, 인생이 그렇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서 선행을 베풀려고 하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된다. 쓸쓸한 인간도 괜찮은 인간이 되고, 불쌍한 인간도 괜찮은 인간이 된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때 괜찮은 인간이 되는 거다.
"공 차다가 많이들 다쳐" 동훈이 집에 가서 맞은 걸 감추려고 둘러서 하는 말, 동훈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feat.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극중에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진짜처럼 생각하고 연기하다가 집에 가면 그 쓸쓸함들을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된다. 충분히 몰입한 만큼 빠져나오기가 더 힘들다는 말 말이다. 그래서 생각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