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 일어난 일
오늘은 바람을 맞았다.
저녁 7시가 약간 못 되어서 지역아동센터에 도착했는데 인이는 바로 '쌤 방금 문자 보냈는데 오늘 도장에 일찍 가야 한데요!'라는 것이다. 살펴보니 1분전에 카톡이 와 있다. 헐. 오늘따라 비도 오고 왠지 오고 싶지 않더라니. 그러나 빈이는 또 8시 10분에 온다고 한다. 지역아동센터에 앉을 만한 자리조차 변변하게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센터 근처에 카페에 숨어들듯이 스며들어 왔다. 친척동생들을 만났던 10년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1시간 반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안되어서 홍대에서 서성이던 때가 엊그제 갔다. 결국 친척동생들은 2시간이 지나서야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어디 그 뿐인가 그 동안 보육원이며 1:1 멘토링이며 다양한 사건사고?가 있었다. 이런한 사건들이 내 안에 쌓이면서 순간 분노?가 일어나는 것 같지만, 또 다시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의 다 그런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멋있게 바람맞고, 우둑커니 앉아서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지역아동센터가 있는 동네는 지하철이 조금 멀리에 있어서 그런지 역세권 느낌이 안든다. 그 흔한 탐스나 스타벅스도 없어서 조금 걸어가야 이디야가 있을 정도이다. 도로가 정리되지 않아서 차량과 사람들이 빈번하게 겹친다. 어릴 적에 살던 동네이긴 한데 30년이 지났어도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은 이 느낌은 '상전벽해'라는 사자성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 같다. 30년이 지나서 다시 이 동네로 왔다. 물론 친한 후배의 부탁?으로 지역아동센터를 찾아오기는 했지만, 올 때마다 무엇인가 어릴적의 트라우마 같은 것들 때문에 오기 싫어지는 곳이다. 오늘은 더군다나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데, 후덥지근함까지 더해서 그런지 너무나 오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일찍 도착해서 지하철 역에서 걸어갈까 버스를 타고 갈까 하다가 버스를 탔다. 3정거장 정도 가면 센터가 있는 언덕에 도착한다. 내리니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 오는 날은 집에 있기에는 좋은 날이지만, 굳이 시간을 내서 찾아오기에는 힘든 날이기도 하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식사를 혼자서 하고 기다렸다가 센터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둘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짜기 인이가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면서 '선생님 오늘 못해요'라고 한다. 순간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10분정도 남아서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좀 했다. 원래 공부하던 방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었는데, 탁자를 어디서 쓴다고 가져갔다고 한다. 의자도 변변찮아서 앉아있기도 불편했다. 10분정도 이야기하니 여기가 안 맞아서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너무 많은 것들을 제약한다는 것이다.
사실 거의 10년동안 멘토링이라고 부르는 활동을 했지만, 나는 아직도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너무 귀찮고 버겁고, 내 시간이 빼앗기는 것 같다. 더군다나 오늘같이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나도 내 삶을 챙기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겨우 1주일에 몇번 시간 내는 게 머가 어렵다고? 그게 무슨 대수라고?라는 생각이 바로 직관적으로 치고 들어 온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나의 중심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기중심성'과의 싸움이다.
내 인생은 내꺼니깐 내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올 수 있고,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래 그럴 수 있지 머'라고
가볍게 웃으면서 넘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런 연습?을 경험하면서 조금씩 나를 벗어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워서 남주자', '세상을 바꾸자'라고 하는 구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럴수도 있지'라고 편한게 맘 먹을 수 있는 일상이겠다. 그래서 잠시나마 이렇게 '삶의 여유'가 생긴 것에 감사하며 커피 한잔에 글을 쓰면서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한데,
그 불공평함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자라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와 친구들 사이에서의 비교와 왕따 이전에 가정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것들을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 친구들, 그래서 자라면서 계속 그 차이가 벌어지는 것을 자기 탓으로 생각해야 하는 환경. 9세 이전까지의 경험들이 앞으로 40여전에 걸쳐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수학은 특히 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생겨난 '수의 개념'을 가지고 평생 수포자로 살 것인지 아닌지가 대부분 결정된다고 한다. 내가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수포자였고, 수의 개념이 희박했다. 나 역시 수포자는 아니여도 수의 개념, 돈의 개념이 희박한 이유가 30년전 어린 시절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성장하면서 여러 우여 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내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원하는 대학이나 대학원도 갔고, 직업도 만족스럽고 옮기려면 어디든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자유의 천국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자유 자체가 제한되고, 자신이 설 곳이 점점 들어 들고 있는 아이들'이 눈 앞에 있는 것이 '지옥'을 사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오기 싫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다. 미래를 희망으로 두는 게 아니라, 미래가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것을 눈 앞에서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절망스럽다. 비고 오고 머니까 오기 싫다라는 것은 핑계였다. 절망을 보기 싫어서 피했던 거다.
8시가 조금 지나자 빈이가 왔다. "인이가 7시에 가야 한데서 그냥 쌤은 근처에서 기다렸는데, 빈이도 안오면 어쩌나 했지"라고 말하자 "쌤! 저는 오죠 당연히!"라고 웃으면서 앉는다. 카페에서 시간을 어느정도 보내고 다시 센터로 들어와서 빈이와 찬 방바닥에 앉았다. 의자도 변변찮고, 탁자도 없는 센터란, 다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시나리오를 찾아서 영화 '반도'와 '명량'을 오고 가면서 조선왕조 27대를 외우고 '조'와 '종'의 차이를 알아냈다. 임진왜란이 1592년이라는 것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0년에 일본을 통일하고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 조선을 넘어 명나라로 가기 위한 계략을 짰다는 것과 이순신이 '선조' 임금과 친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다음은 그래서 임진왜란 후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광해'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분석방법'을 공부하다가 영화 시나리오를 분석하기로 한게 벌써 이렇게 영화들이 쌓여 가고 있다. 지난주에는 구름을 벗어난 달이었는데 마침 그 시간과 명량의 시간이 겹쳐서 인이가 입체적으로 역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9시가 조금 지나자 센터 문을 닫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친한 후배는 오늘 휴가 였기 때문에, 보통은 9시 반까지 하는데 오늘은 일찍 나가야 했다. 빈이는 "아 아쉽다~이제 재미있어지는데!"라며 아쉬워 한다. 이제 시작인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만 가야 한다는 선생님들이 빈이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지는 않는다. "아 그럼 제가 빈이 집에 데려다 주고 갈께요~"라고 말하자 "아 그러시겠어요? 감사해요~"라고 하면서 기다리던 동료들과 집에 갈 준비를 한다.
아 아쉽다~이제 재미있어지는데!
빈이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좀비의 생명에 대한 합리성 논쟁이 붙었다. "좀비의 기원은 아프리카의 부두교인데, 아이티에서 그 문화가 미국에 전해지면서 좀비문화가 유행했어"라던지 "좀비는 영혼이 없는데, 영혼이 없는 동물도 있어요?"라던지, "좀비 문화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도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밀려나가는 사람들, 소외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부정적을로 보도록 만들어"라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돌아가는 10분 동안 이야기가 계속된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 '반도'를 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인이와 빈이는 다음주에 기말고사 시험인데, 아무 공부도 안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어 일요일 저녁에 만나서 사회를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쌤~저 공부 안해도 30점은 나와요~지난번에 쌤하고 공부 좀 했잖아요"라는 인이의 말에 "아 그럼 조금 더 하면 80점은 맞겠는데?"라며 일요일 저녁에 약속을 잡았다. 이번주는 조금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들다가, '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려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방송통신대 교육학과에서 배웠던 책을 다시 펴면서 잠이 든다.
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려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