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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추억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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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05. 2020

어머니의 편지_임태주

깐쇼새우와 과실나무_민네이션

집앞에 홍짜장이 있다

맛도 좋고 아주머니도 친절하시고

색다른 맛으로 별미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일하는 건물이

...

저 고추나무 내가 심었다

온갖화단에 피어난 꽃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솜씨를 엿본다


어릴적 해남 땅끝에서

동생들 등에엎고 논농사며

밭농사며 처녀의 손아귀는

매일 흙탕물에

빨래물 속을 넘나들며

삶을 살았겠다.


그 시간이 나에게

오롯이 저 화단에 심겨진 나무들의

가비런함 속에 투영되었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오세요!

아 아드님하고 같이 오셨구나!


어머니는 아들하고 같이 다니시는것을

요즘들어 부쩍 좋아하신다


아들에게 하는 칭찬이 곧

자신에게 하는 거라고

여기시는 것 같았다


화단에 심겨진 나무처럼

자신의 인생에 심겨진

자신나무가 주렁 주렁 열리는게

기쁘신가보다


나는 항상 부족하고 게으른 아들인데

그런 아들에게 한끼라도 따뜻한 밤

지어주시려 일주일에 한번 그래도

집에서 먹는 날이 오면

진수성찬.

나랏님이 안 부럽다.


깐쇼 새우 주세요!

홍짬뽕도 하나요!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를 오면 늦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토요일 또 혼자

집에서 물에 밥 말아서 드실 어머니를 생각하니

막상 발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시간은 잠시 멈춰두고

어머니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

어느순간부터 였을

물질적인 만족감으로는 도저히

이 세상에서 효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언어

함께 있음.

으로 부모님의 인생에 찾아가기

시작한 때.


우리가족은 다시 탄생하고 있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모든 가치들

그 가운데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족이라는 가치.


나는 부모님께 배울것이 많았다

아직도 삶으로 보여주고 계신

그 인생의 여정들

...


나무가 자라기 위한 텃밭의 흙들처럼

...

무럭무럭 나에게 공급해 주시는

인생의 의미.


아 이거 맛있네!


어머니도 나도 깐쇼새우는

처음 먹어본다


독특한 별미.

14000원에 행복을 느꼈지만.

14000원보다 더 깊은 함께 있는 시간의 행복이란.


나는 참새방앗간처럼

그간의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풀어 놓았다


어머는 과일나무에 풍성히 열린 열매들을 만끽하시듯

자식의 인생에 풍성히

열린 삶의 열매들을 흐믓해 하셨다


깐쇼새우

과일나무


인생은 사실 한가닥인지도 모르겠다


몸의현상학자인 퐁티의 말처럼

우리의 몸은 모든 시간을 관통하고

모든 정신과 생각을 담아낸다


그 몸을 주시고

그 몸을 가꾸어주신 부모님의 땀흘림.


머지 않아 나의 인생 안에서 열리게 될

그들의 삶을 기대하며


푸른 의의나무 가득한

그런 나라

그런 가정

그런 사회

를 꿈꾸어 본다


깐쇼새우는 정말 맛있었다

인생의 깊이 만큼

진하게

여운이 감돌았다



깐쇼새우와 과실나무_민네이션




<임태주 시인 어머니의 편지>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게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 돌밭을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인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나는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 마당에서 일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제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했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네가 그 일을 서러워하며 물을 때마다 나도 가만히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었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애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 그지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이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 날씨 같아서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 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애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멀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이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이 들어서 좋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부질없이 길게 말했다.

살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여기에 남긴다.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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