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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Oct 13. 2020

믿음과 현실이 연결될 때 일어나는 일

야고보서 머릴 말_메시지 성경

모세의 리더십과 가르침을 이어 받아 여호수아서가 펼쳐 보이는 이 구원의 이야기 역시 특정 장소들에 뿌리박고 특정 사람들과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수 백개도 넘는 구체적인 지명, 명칭, 이름들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흔히 종교의 중심 주제라고 여기는 것들(관념, 진리, 기도, 약속, 신조)이 특정 인물이나 실제 장소와 분리되어 별개로 제시되는 법이 결코 없다. 성경이 제시하는 종교에는 구체적 인물이나 장소와 동떨어진 '위대한 사상'이니 '숭고한 진리'니 '영감을 주는 생각'이니 하는 것들이 설 자리가 없다.


우리는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목적은 언제나 혼란, 위기와 죄, 파탄, 일상적 노동, 평범한 꿈 가은 것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이상적이니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사용해 일하신다. 그 분은 여호수아에게(그리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겁내지 마라. 낙심하지 마라. 하나님 네 하나님이 네가 걷는 모든 걸음마다 함께할 것이다_민수기 1장 9절


하나님을 현실 곧 어려운 세상살이에서 벗어날 도피로 삼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런 방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런식으로 전개되는 하나님의 구원이야기, 곧 불같은 의지와 믿음을로 여호수아가 자기 백성을 위해 땅을 정복해 나가는 이야기, 비상하리만치 신중하게 모든 지파와 집안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가며 그들에게 제몫을 할당해 주는 이야기는, 실로 좋은 소이다. 여호수아서는 현실에 리 박은 삶을 위한 확고한 토대가 되어주는 책이다.


_여호수아서 머릿말 / 메시지 성경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감정을 절제하고 사람들을 생각하기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나의 이익을 세어보면서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몇번만 머리굴려 보면 되는 쉬운 일이다. 그런데 만약 생각과 마음의 중심이 다른 사람이 혹여나 다치지 않을까, 마음 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몇백개는 넘도록 늘어나는 것을 본다.


힐링과 감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삶은 우리의 '감정'을 보호해주고 회복시켜 줄 수는 있지만, 실제적으로 우리가 결정하는 삶의 까다로운 문제들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상한 감정은 매번 회복되어야 한다. 오히려 회복된 감정 이후에는 우리가 자유롭게 의지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힘'과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한 깨달음'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이것도 한시적이다. 누군가를 계속 찾아다녀야 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계속해서 철학을 해야 한다.


인생의 한 뿌리 한가닥씩 현실과 결부된 믿음을 재어 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냥저냥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계속 불러 보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이것은 우리 삶에게 가장 어려운 '믿음'의 밑천을 까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고 있으면, 어딘가에 속해 있으면 마치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실상 자신이 선택할 자리에서 발생하는 일상에서의 믿음이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울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현실과 믿음'의 연결고리를 만들지 못하고 현실에 치우치거나, 믿음에 매몰되어 버리는 모습을 봐 오며 자랐다. 갑짜기 현타가 온다는 것과 이것은 믿음의 영역이다라고 하면서 생각을 정지하는 모습에서 나는 어떤 불안감과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자연스럽게 전제하고 있는 것들, 자연스럽게 내것처럼 되어 버린 것들을 들어낼 때가 되었다. 나는 누구에게 그렇게 잘 보이고 싶었고, 나의 정체성이나 개성 혹은 민감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왜 이렇게 힘을 쏟았는가?라는 허탈한 생각도 든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오다. 의지할 것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한장의 믿음도 소중히 여기셨던 하나님의 성품을 본다. 말씀을 보고 생각을 한다. 굳이 생각을 끌어내지 않고 말씀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말씀과 현실이 결부되는 지점에서 나는 '자유의지의 대지'를 본다. 걸어간다. 드넓게 열려진 선택의 순간에서 말씀이 만들어낸 선악과에서 나는 이것을 먹을 것인지 지나칠 것인지를 결정한다.


유혹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뱀같이 지혜롭게 해달라는 화살기도를 하고서 한 마디를 가슴 속에서 예쁘게 꺼내어 본다. 물론 받아 들이는 사람은 담쟁이가 몇백미터는 타고 올라가야할 거대한 성벽을 마음 속에 쌓아둔 사람이지만, 부딪히지 않고 부드럽게 타고 올라 간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다. 지속성이라는 것은 얼마나 믿고 있는가의 문제이면서, 이 현실을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나 역시 이 현실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현실을 보는 것이다.


야고보서에는 그런 보화가 담겨 있다. 낙타 무릎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현실의 믿음은 두마음을 품지 않는 것과 지혜가 부족하면 넉넉하게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과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실제로 그렇게 믿음과 현실이 결부되어 있는 행동을 선택하고 일을 해 나갈 때 오히려 삶은 다른 방의 열쇠를 준다. 마치 비밀의 화원처럼, 누구도 침범할 수 없고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큰 흐름 속에서 꾸준히 확장되어 왔던. 하나님나라.


현실에서 기도하기 위해서, 깨어 있기 위해서 다시 말씀을 집어 들고서 곰곰히 생각하고 현실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한다. 하나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 상황을 보고 계신지를 곰곰히 기다린다. 그러는 사이에 태풍이 올 것 같은 마음 속에 몇 미터의 해일이 금새 잠잠해 져서 고한 바다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평안함을 준다. 이제 되었다. 이제 걸어가도 된다. 이것을 생각하는 시간은 채 1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이었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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