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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술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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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Oct 28. 2020

자화상_윤동주

가을에는 시와 함께

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우물을 홀로

찾어가선 가만히 드려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사나이가 가엽서 집니다 

도로가 드려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사나이가 미워저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펄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追憶(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_윤동주







시간이 저 만치 거리를 두고

사람들의 얼굴표면에 기웃거리다가


이따금 밤과 새벽 경계사이에서

자기의 얼굴을 드러 낸다


시계초침보다 더 빠른 생각들 때문에

이리저리 인생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새벽녘쯤 어슴프레 잠이 깨어

햇살이 밝아 오는 것을 짐작할 때


스스로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물을 퍼 올린다


쇠락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고

추락하는 것들에는 날개가 있듯이


인생을 고민하는 인간에게

인생은 소중했으리라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영원을 그리어 볼 수 있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람은 죽는다는 것과

우리의 젊음도 해가 지듯이 달아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남아

동이 터 오르는 아침 즈음에야


그 흔적으로 아파하거나

혹은 아주 가끔 행복해 하는 것이다


미움과 행복함의 양갈래로 찢어진 마음 속에

난 길로 부지런지 왔다 갔다 하다보면


한숨은 날숨이 되고

뒷모습은 어느덧 거인이 되어 있다


추억이 되어 버린 어떤 인생의 한 장면을

부여잡고 온갖 시간을 쏟아 넣고 나면


그 한 장면 때문에 나의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한다


꿈을 꾸고 미래를 그리던 시절

오늘이 도래할 꺼란 생각보다는


한없이 달아나는 미래의 그림자를

쫓느라 미처 시간이 내 몸에 자라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영혼의 무게는 늘어가고

체중계에 아무리 올라도 몸은 무거운데


몸무게는 그대로인 허탈감에 살았다

스스로 돌아보는 사이에 어느덧 영혼의 눈이 생기고


이제야 어슴프레 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의 그림자와 시간의 무게들


자화상이다 내가 나를 보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다


익어가는 시절 영혼도 몇번 접어서

철푸덕철푸덕 방망이질을 한다


찌든 때는 좀 빼고 하이얀 천이 휘날리는

나른한 오후의 청소시간처럼


인생의 무지개에 담갔다가

빼었다가 물들이기 시작한다


돌아가는 뒷모습의 젊은이가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안다


자화상_민네이션


고흐_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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