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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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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Nov 30. 2020

이제는 나사로와 같이 걸어다닐 때가 되었다

요한복음 11장_메시지 성경

마르다가 말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이 구하시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들어주실 것을 제가 압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오라버지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다가 대답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제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을 제가 압니다."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순간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11장_메시지 성경




톨스토이가 쓴 '부활'의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살인과 절도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카추샤와 만나면서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음을 반성하고

카츄사의 구명활동을 펼치는데 집중한다


네흘류도프는 이 과정에서 사법제도의

잔혹성으로 인해서 무고하게 갇힌 사람들과


범죄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은 갱신이 아닌

사회의 문제를 십자가 지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인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아 부당한 불로소득에 대해서 회개한다


결국 자신의 토지를 농노들에게 나누어주고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도전한다


네흘류도프는 농노들에게 토지를 무상분배하면서

헨리조지가 말한 


"토지는 개인이 소유할 수 없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 진보와 빈곤을 인용하면서

사회적 죽음 앞에서 부활을 외친다




예수님과 톨스토이가 말하는

부활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마르다와 같이 누군가 말하는 부활은

언제나 역사의 끝, 개인의 인생의 끝에서


이루어지는 심판과 처벌 이후에

주어지는 보상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부활은 원하든 원치 않았든

불가지론이나 영지주의적인 차원으로 이해된다


부활을 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요한계시록과 함께 묻어두고서


오늘 구원을 위해서 혹은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

열심히 살자라는 구호로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바로 이 순간에서의 부활을

선포하시면서 나사로를 살리셨고


네흘류도프는 여기에서의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이전의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오히려 부활은 

다른 지향성을 가진다


죽음이라는 지향성은 

'어차피 죽으니깐'이란


표현 아래에 그러니깐 인생이 모두 무의미하고

지금 잡으려고 하는 것이 다 소용없어


부동산, 주식투자, 여행, 아름다움

이 모든 것이 쓸데가 없다고 말야.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오히려 부활은 

'오늘 다시 살아났다' 어제 죽었던 내가


오늘 다시 살아나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토록 살고 싶었지만 못살았던


인생을 오늘 살아가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되냐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부활이

이 사회의 부활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이전에 살던 방식은 사회에서도

자신의 삶에서도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방식으로는 계속해서 죽음만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삶은 

이전의 삶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삶, 새하늘과 새땅을 구하면서

만들어가는 삶이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이 세상이 버려지는 폐기물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완전한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럼 남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네흘류도프에게 주어진 질문이

지금 나에게 돌아온다


사회와 제도의 문제와

국가와 정치의 구조들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냥 베니스의 상인처럼


자본주의를 옹호하면서 그 안에서 

자본주의 합리성이 역사의 진보를 만들어가고


크리스천들은 그 안에서 체제를 옹호하면서

나누어진 계급의 세계를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다 죽어'

라면서 변명하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죽은 것이다, 죽어가는 것이다

부활의 삶이 아니지 않을까?


마치 마르다의 표현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야~너가 말하는 건 마지막에 이루어져

그러니깐 설치지 말고 그냥 하루를 열심히 살아!'


그런말을 들으면서 40년 살았는데

그들은 모두 죽음으로 걸아간듯하다


빛나던 믿음은 온데 간데 없고

자신들의 외양은 더욱 빛났지만


가슴속에 두근거림은 다 사라져버린

부활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거대한 구조와 문제들 앞에서


부활로 살아가는 것의 현재성을

탐구하고 밝히고 깨닫고 걸어가고 바꾸고.


그래도 모자를 판에 아직도 막스베버 운운하면서

크리스천들이 돈도 잘 모으고 주식투자도 잘하고


부동산 갭투자도 잘하면서 헌금잘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면 되지~라는 말에 진절머리가 난다






부활을 살라

오늘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


나는 일어나야 한다

죽음의 동굴에서 걸어나와야 한다


아직 감싸던 천들이 벗겨지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면서


이 사회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부활을 사는 인생은 날마다 사회에 도전장을 내민다


목적이 바뀌었고

방향이 바뀌었으니


가는 방법도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일어나는 일의 결과도 달라지겠지


인도에서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내가 부활했다'라고 한다


나는 오늘도 부활했다

이제는 나사로와 같이 걸어다닐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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