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서성여야 한다
누가복음 11장_메시지 성경
그의 집에 들어가
식탁 앞에 앉으셨다
바리새인은 예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보고 기분이 언짢았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바리새인들이 햇빛에 반짝일 정도로
컵과 접시 겉을 광을 내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 속에 탐욕과 은밀한 악이
득실거리는 것도 알고 있다
미련한 바리새인들아!
겉을 지으신 분께서 속도 지으시지 않았느냐?
너희 주머니와 너희 마음 둘 다를 뒤집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후히 베플어라
그러면 너희의 그릇과 손 뿐 아니라
너희의 삶도 깨끗해질 것이다
누가복음 11장_메시지 성경
가난한 사람이 왜 가난한 사람이 되는가?
부자인 사람은 어떻게 부자가 되는가?
개인의 문제로 밀어 넣기엔 좋지만
일어나는 현실에서는 그것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서 자신만 잘 사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다른 사람보다 잘 사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세상이 왔다
다른 사람이 깨끗하지 않아야
자신이 깨끗하듯이
구별짓기를 통한
다른 사람들과의 정체성 경쟁은
그 자체로 허상이고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는 사치와 낭비가
마치 자랑인듯한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몸을 깨끗이 닦는다고 나의 마음도 닦아질까?
나의 머리를 단정하게 빗는다고 나의 생각도 단정해질까?
둘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음과 얼굴이
생각과 표정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 말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하워드 요더의 '예수의 정치학'에서는
바리새인들과 산헤드린공회의 결탁에 대해서 비판한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49년이 지나기 전,
그러니깐 희년이 선포되기 전에
자신들의 재물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는데 그것이 바로 공회의 보증이었다
다시 말하면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
개인간의 거래가 아니라
공회를 통한 거래였기 때문에
희년이 선포되어서 모든 빚이 사라져도
공회는 사람이 아니라 법인격이기 때문에
희년에 저촉을 받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50년이 지나도 가난한 이들의 빚은
없어지지 않았고 더 쌓여갔다
이런식으로 저당잡힌 삶의 연속은
바리새인들을 더욱 부하게 만들어 주었고
공회와 바리새인들의 결탁의 결과
수 많은 파생상품들이 생겨났는데
그 중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성전 앞에서 파는 예배를 위한 재물들이었다
결국, 예수님은 다 뒤집어 엎으셨고
심지어 성전을 헐고 3일 만에 짓겠다고 하셨다
그러니 바리새인들이 '신성모독'이라는 이름 앞에
'우리재산 보존'이라는 저의를 깔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으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얼마가 있으면 행복하고
어느정도 소유하면 즐거울까?
나는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결정한 것들에 대한 정당성과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객관성 사이에서
계속 서성여야 한다
그래야 딴 마음 먹지 않을 것이다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내 마음에 몰려와 자리잡은
탐욕과 이기심부터 벗어나야 한다
안전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내려와서
불안전하고 불명확한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에
높아진 마음, 반쯤 꺽여 올린
고개를 다시 숙이고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으로
더 깊이 침잠해서 들어가야 겠다
마음 속에 하나둘씩 등불이 겨지고
사람들이 걸어다니기 시작한다
깨끗한 마음이라야만 사람들이
마음 속에서 활보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