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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Dec 26. 2020

39-3

2020년 마지막 일기

아무래도 2020년 39세에 쓰는 마지막 일기기 될 것 같다. 나이에 맞게 인생의 속도도 빨라진다더니 정말 작년보다 올해는 더 빨리 지나간 것 같다. 공부도 많이 한 것 같고, 일도 많이 한 것 같고, 고민도 많이 한 것 같은데 그 만큼 시간도 매우 빨리 지나가버린 것 같다. 막상 39라는 숫자가 내 옆에 붙으니깐 '아 나도 이제 아저씨다~'라고 했던 30살 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 아직 결혼도, 아이들도, 세상에 '이름?'을 날린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았던 39세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해를 돌아보며, 재즈를 듣고 음악에 취해서 1년을 돌아 본다.



1. 대학원


아마도 1년동안 내가 가장 많이 쓴 글은 대학원 공부를 글로 적은 것일 게다. 혹자는 언제 그렇게 다 정리를 하냐고 하지만, 사실 수업들을 때 빼곤 정리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항상 수업을 들을 때는 전쟁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컴퓨터로 치면 CPU 4개 정도 돌리면서 정리하고, 강의듣고, 인터넷으로 자료 찾아보고, 디자인하고, 인사이트도 적고 했떤 것 같다. 행정대학원에서 공공정책을 전공한지 벌써 3학기가 끝났다. 작년에만 해도 행정학 혹은 공공정책이 매우 힘들어서 겨우 따라 갔는데 그래도 조금 공부했다고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 이상주의자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어서, 나는 정말 그렇구나!라고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는데 행정대학원에서 마치 노량진 공무원학원에서 들을 법한 수업들을 제법 듣다 보니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들은 과목은 거시경제와 공공정책, 중소기업법, 사회과학의 이해, 정책형성론, 정책관리론, 커뮤니티복지제도론, 산업정책론, 정부예산론 등등이다. 나에게는 절대 쉽지 않았고 어려웠던 과목들 투성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 버렸다. 지금은 나름 좋은 성적도 유지하고 있고 말이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어떤 본질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행정학을 정책적인 측면에서 보니 조금 본질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면,


모든 정책은 '기본법-기본계획-종합운용계획'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깐 정책을 찾으려면 일단 기본법부터 그 법적근거를 따져야 한다. 그다음에 흐름을 보고 싶으면 국정과제를 찾아라!

정책은 크게 6단계로 구성된다. '정책의제설정-정책형성-정책결정-정책집행-정책평가-정책환류' 등이다. 각 정책별로 어느단계에서 설계가 잘 되고 잘못되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다.

정부 예산은 기재부에서 top-down으로 내리는 기본계획이 5년단위로 있고, 각 부처에서 매년 중장기 시계에 따라서 세부 계획을 세운다. 우리나라는 성과관리제도, 하향식예산제도가 같이 간다.

거시경제는 딱 3가지만 보면 된다. '생산-기대-금리' 모든 것은 이 세가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의 일종이다. 거시경제에 있어서 공공정책은 이 3가지 중에서 무엇에 비중을 둘 것인가로 결정된다.

정책관리는 정책이 '공공성'을 유지하면서 정책효과를 낼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정책관리에 따라서 정책은 성공할수도 있고 실패할수도 있다.

정책형성은 '정책의 대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정책대안을 찾기 위해서 정책을 구조적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비용대비 편익을 분석하기도 한다.

산업정책은 국가가 중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국민을 먹여살릴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 국가의 개입주의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산업정책은 거의 대부분의 산업에서 진행되고 있다.  


아! 원래 이런 느낌을 쓸려고 한건 아닌데, 쓰다 보니깐 또 수업듣는 것처럼 정리하고 있다. 원래는 감성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 아마도 사용하는 뇌가 다른 것 같다. 논리적인 좌뇌와 감각적인 우뇌의 작용이 행정학이나 공공정책에는 한쪽에 쏠려 있는 것도 같다. 아무튼. 좋은 친구들과 선후배를 만났고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동문들을 만나다 보니, 더욱 열심히 한 것 같다. 대학원 공부에 있어서는 만족스러운 과정과 결과를 가지게 되었다.




2. 코로나 시대에 일하는 방식이란


원래 코로나가 없었다면 나는 네팔, 잠비아, 에콰도르, 키르기즈스탄에 있었을 것이다. 해외교육훈련팀이다보니 해외에서 봉사단과 스텝들을 교육해야 하는데 코로나로 나가지 못했다. 계속해서 연기되는 일정을 매우기 위해서 교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게 무슨 책을 쓰는 것 같은 고난의 시간들이 있었다. 지역개발방법론, 세계관, 피스메이커, 퍼실리테이터, 국제개발협력, 리더십 등등 코로나와 등을 맞대고 교육을 하기 위한 자료들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인재개발실에서 이 자료들을 가지고 전직원들을 교육하는 일을 맞게 되었다. 잘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쉬운건 해외훈련을 앞으로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11월에는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8일동안 수업을 진행했다. 하루 4시간 약 20명의 봉사단들과 새로운 지역개발방식에 대해서 매뉴얼과 툴킷을 익히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걸 위해서 미디어실도 만들고, 카메라를 포함해서 방송장비들을 구매했다. 크로마키와 백월도 설치하고 50인치 tv도 설치하면서 어느정도 온라인 교육이 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번년도 초에 로지텍 스트리밍캠을 샀을 때만 해도 영상이나 온라인 교육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는데, 어느덧 계속 하다보니 여러곳을 알게 되고 운영하는 방법에도 조금씩 노하우가 생겨간다.


벌써 여기서 일한지 10년이 되었다. 2010년에 처음 인턴으로 들어와서 지금까지 10년이나 되었다. 물론 만년 대리이지만. 내가 들어올 당시 공채 제도가 매년 30명 정도씩을 뽑게 되니 지금도 대리가 되었다. ngo단체의 특성상 월급이나 인사제도가 회사같이 않고 다같이 조금씩 올라간다. 그래서 좋았던 점은 10년동안 실무를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지출결의에서부터 보고서, 발표자료와 자질구레한 창고정리까지. 덕분에 마음이 아주 겸손?해지고 손이 빨라졌다. 빨리 승진해봐야 소용없다. 실무와 전략, 기획과 소통을 모두 잘하는 '폴리매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회사에서도 매주 5개 이상의 스터디를 진행했는데 그게 많이 남는다. 새로운 책들을 매번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었고 최소 5개 모임에서 만나는 동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로 진행이 어려워졌지만 국제개발, 경영학, 신학, 법학, 정치학 등등 다양한 스터디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 분야에 있을지. 그러나 이제 조금씩 클라이막스로 가는 느낌도 든다. 일단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대로 가는 것이지만, 은근히 인도하실 때는 준비를 하게 하시긴 하는데, 무엇인가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준비할 것들이 보인다는 것은?




3. 어머니가 아프시다


벌써 1년이 지났다. 12월 26일 어머니가 유방암 수술을 하셨다. 그 때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이 힘들고 슬펐는데, 벌써 1년이 지나고 다행이 건강함을 다시 찾으실 수 있었다. 병원에 정말 많이 다녀온 것 같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아프다는 것과 치료하기 힘든 이들이 마지막이 정말 빠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많이 고민하던 시기였다. 어머니는 이 세상의 짐을 모두 짊어지고 가는 그리스도처럼 혼자 그 짐을 짊어지고 생을 정리하고 계셨지만 다행히 암의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치료가 잘 되었다. 항암치료도 방사선 치료도 잘 마치고 건강하게 회복되신 어머니를 뵈면서 어제 저녁에는 샴페인을 터트리며 축하를 했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 것을 생각할 때가 가장 슬프다. 어머니는 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자신이 나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신다. 다행히 어머니는 다시 돌아오셨고 이제 같이 축하하면서 웃을 수 있었다.


아직도 아픔 속에서 내일이 절망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치 마음의 짐처럼 떠나지가 않는다. 아픈이들의 아픔이 조금 덜어지는 날이 오면 좋겠다. 어머니는 비록 이제 덜 아프시지만. 1년동안 어떤 죄책감, 체념, 비탄에 잠긴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부모님이 아프시면 마음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는 게 공감이 간다. 생과사를 놓고 생의 끈을 잡고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1년동안 죽음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죽음은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며, 그 죽음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어떻게 바뀌어갔는가? 이런 질문들로 39세의 마지막은 머리가 다 새하얗게 타버린 것 같다.(이전부터 새치인지 아닌지 흰머리가 늘었다.)





더 쓸 내용이 많지만 조금은 아껴두고 싶다. 벌써 39세이고 다음년도는 드디어 40이다. 내년 이맘때까 되었을 때는 조금 덜 후회하고 조금 더 깨달음이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40에는 '나의 아저씨'를 보는 시간이니 이제 보러 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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