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 속에 항상 살아 숨쉬는.
까뮈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이고 철학을 전공한 만큼 그의 작품세계는 매우 깊고 어둡다. 까뮈는 기자생활도 했기 때문에 현상 속에서 문제들을 찾아내는데 매우 밝았다. 까뮈는 동시대의 철학자 중에 샤르트르와 특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샤르트르는 "진보를 위한 폭력은 공산주의일 수 밖에 없다"라고 했으며 이에 대해서 까뮈는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 한다"라고 하면서 공산주의와 폭력을 거부했다.
까뮈의 페스트는 최근들어서 아주 유명해졌다. '감기', '눈먼자들의 도시', '퍼펙트센스' 등과 같은 주제의 글들이 있었는데, 사실 까뮈의 글과 책은 지루하고 단조로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첫장을 펴고 조금 있다가 책을 덮기가 일쑤였다. 까뮈의 담담한 글쓰기는 서사를 진행하는 과정을 '대화'에 두고 '철학적인 대화'로 이어간다. 대화의 주된 내용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이면서도 사실적이면서 희망적이다. 또한 영웅주의를 거부하고 시민들의 연대와 공동체를 강조한다.
오랑시에는 리외라는 의사와 보건대에 지원한 타루, 그랑, 랑베르가 등장한다. 그 외의 다른 주인공들도 등장하지만 주로 4명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보건대에 지원한 사람들은 대부분 낙후된 질병관리방식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리외와 보건대에 지원한 4명의 인물들은 그 사이에서도 인간성의 긍정성을 보여준다.
위험이 도사리는 폐쇄된 도시,
극한의 절망과 마주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
페스트라는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현실을 직시하며 의연히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 걸작. 카뮈는 이 작품에서 공포와 죽음, 이별의 아픔 등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극한의 고통과 절망을 그려낸다. 그는 이처럼 빠져나갈 길 없는 재앙을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하는 비극적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 속에 결코 꺾이지 않는 희망의 의지를 담아내,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정서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큰 공감을 얻어냈다.
평범하고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 언젠가부터 거리로 나와 비틀거리다 죽어 가는 쥐 떼가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하고, 정부 당국은 곧 페스트를 선포한다. 봉쇄된 도시, 무방비 상태의 공간에서 질병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무서운 속도로 다가와있는 죽음과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작가는 고립된 도시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재앙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특히 그는 운명에 잠식당하기를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질병과 죽음에 맞서 싸우는 인물들을 통해 어떤 극한의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투쟁하고 진리의 길을 걸어가려는 작가 자신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TOvBz1si1ok&feature=youtu.be
다음은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등장인물들의 설명이다.
리외: 베르나르 리외 의사는 35세, 적당한 키, 어두운 피부색, 아주 짧게 깎은 검정색 머리를 가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소설의 초반에서는, 1년 동안 질병을 가지고 있는 리외의 아내가 요양원으로 떠난다. 페스트의 첫 번째 희생자를 치료한 리외는 처음으로 그 질병이 페스트라고 표현한다. 그는 당국에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 또한 오랑시가 직면한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는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잠깐 동안에, 그는 위태로운 것을 파악하고 한 두달 안에 2십만 정도의 마을 주민 절반을 대대적으로 죽일 수 있는 전염병에 대한 대책들을 즉각 마련하지 않는 당국에 강력히 경고한다.
전염병이 유행하는 동안에, 리외는 보조 병원에 가고 오랜 시간 동안 피해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일한다. 그는 혈청을 주사하고 종기를 절제한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의 직무의 무게는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늦게 까지 집에 가지 않았고, 피해자들에게 느끼는 동정으로 부터 자신을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 곳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피해자들 집에 방문했을 때, 그는 특히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즉시 구급차를 불러야 하고 사람들이 집으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리외는 단순히 페스트를 방지하기 위해서 일을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의사이고 그의 직업은 사람들의 고통을 완화해 주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어떠한 부를 위해서 하지 않는다, 종교의 목적, 파늘루 신부처럼 (리외는 신을 믿지 않는다), 또는 고결한 도덕 규범의 일부, 타루 처럼. 그는 현실적인 남자이고 어느 소란 없이 *****, 그는 죽음에 맞서는 투쟁은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랑베르: 레이몬드 랑베르는 아랍 구역의 위생상태에 대해 취재하러 오랑시에 방문한 기자다. 페스트가 닥쳤을 때, 랑베르는 자신과 아무 관련성없는 도시에 갇힌 것을 깨닫는다. 랑베르는 파리에 있는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며 그의 모든 재주와 지략을 사용해 도시 관료에게 떠나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하자 밀수업자에게 연락한다. 그리고 밀수업자들은 1000만 프랑을 받고 랑베르의 탈출을 돕기로 한다. 그러나 준비에 차질이 생기고 다른 탈출 계획을 세울 때쯤에는 랑베르가 마음을 바꾼다. 만약 자신이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만 추구한다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라며 도시에 머물면서 페스트와 싸움을 돕기로 결심한다. 랑베르는 이제 자신이 오랑에 속해있고 페스트는 그를 포함한 모두의 일임을 느낀다.
타루: 장 타루는 페스트가 창궐하기 몇 주 전에 그렇다할 이유없이 오랑에 도착한 인물이다. 일이 목적이 아닌 그의 사적인 이유 때문에 그곳에 나타났다. 타루는 웃음이 많은 착한 사람이며 페스트가 발생하기 전에는 도시의 스페인 무용수들과 음악가들과 어울리기를 즐겼다. 그는 또한 오랑에서의 삶에 대한 그의 관찰로 가득 찬 일기를 쓰는데, 후에 이 일기를 해설자가 서술에 포함시킨다. 장 타루는 페스트와 싸우기 위해 자원 봉사자들을 조직하는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해 낸 사람이다. 그는 당국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전에 그렇게 하기를 원했으며 죄수들이 그 일을 하도록 하는 공식적인 계획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도덕 규범에 의해 행동을 한다. 그는 전염병이 모든 사람의 책임이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것은, 타루가 리외에게 신을 믿지 않더라도 어떻게 성자가 되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타루는 그의 친구가 된 리외에게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친절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형을 선고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사형을 재판하는 공격적인 검사였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 타루는 한 남자가 그의 목숨을 걸고 재판을 받는 형사 소송의 어느 날 참석했다. 그러나 사형에 대한 생각은 그를 역겹게 했다. 18세가 되기 전에 집을 떠난 후, 그의 삶에 대한 주된 관심사는 그가 국가가 지원하는 살인사건으로 간주했던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였다. 그러나 수년간의 활동과 스페인 내전의 공화당을 위해 싸운 것은 그에게 환멸을 안겨주었다. 페스트 전염병이 끝났을 때, 타루는 사실상 마지막 희생자 중 한 명이 되었지만 죽기 전에 영웅적인 투쟁을 전개한다.
그랑: 그랑은 50세의 시 정부를 위해 일하는 임시 공무원이다. 그는 키가 크고 말랐으며, 봉급이 낮은 그는 근엄한 삶을 살지만 깊은 애정을 가지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여가시간에 라틴어를 공부하고, 책도 쓰지만 너무 완벽주의적이라 계속해서 첫 문장을 다시 쓰면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한다. 그의 인생에서의 문제 중 하나는 그가 의미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한 정확한 단어를 거의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랑은 리외에게 10대에 결혼했지만 과로와 가난이 그들의 길을 망쳤다고 말한다(그랑은 그가 약속받은 승진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쟌느는 그를 떠났다. 그는 그녀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지만 쓰지 못했고, 여전히 그의 상실을 슬퍼하고 있다. 그랑은 코타르의 이웃인데, 코타르가 자살을 기도할 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리외를 부르는 사람이다. 페스트가 마을을 장악할 때, 그랑은 모든 통계를 기록하는 총서기 역할을 하면서 자원 봉사 팀에 합류한다. 리외는 그를 "위생집단에 영감을 준 조용한 용기의 진정한 구현"으로 여긴다. 그랑은 페스트에 걸려 리외에게 원고를 태워달라고 부탁하지만, 그 후 예상치 못하게 회복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그랑은 그가 훨씬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쟌느에게 편지를 썼고 그의 책에 새로운 출발을 했다.
파늘루: 파늘루 신부는 학식 있고 존경받는 예수회 신부다. 그는 순수한 형태의 기독교 교리를 옹호하고 그들의 소홀함에 대해 청중들을 꾸짖는 일련의 강의를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페스트 발생의 첫 단계에서, 파늘루는 성당에서 설교를 한다. 그는 신도들에게 페스트는 하나님이 자기에 반대하여 마음을 굳힌 자에게 보낸 재앙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파늘루는 또한, 신이 도움과 희망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도 주장한다. 나중에 파늘루는 오탕의 고통받는 아들의 머리 맡에서 소년이 살아나길 기도한다. 소년이 죽은 후, 파늘루는 리외에게 사랑의 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죄 없는 아이의 죽음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파늘루는 보건대에 합류해 무고한 아이의 죽음이 신앙의 시험이라는 또 다른 설교를 한다. 신께서 그 아이의 죽음을 기뻐 하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도 기뻐할 것이다. 이 설교를 하고 며칠 후, 파늘루는 병에 걸린다. 그는 혼자 하나님을 믿으며 의사를 부르기를 거부하고 죽는다. 그의 증상은 페스트의 증상같지 않았기 때문에, 리외는 그의 죽음을 '의심스러운 경우'로 기록한다.
코타르: 코타르는 그랑과 같은 건물에 산다. 그는 자신을 "와인과 양주를 파는 여행가"라고 표현하지만, 직업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고 사적인 목적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코타르는 말이 없고 비밀스러운 기이한 인물로, 자기 방에서 목을 매려고 시도한다. 자살시도 이후에는 범행(자살시도)으로 경찰과 연루되어 체포될 것을 두려워한다. 코타르의 성격은 페스트 전염병이 발생되고 나서 변화한다. 이전에는 냉담하고 불신했던 반면에, 그는 이제 상냥해지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는 페스트가 오는 것을 즐기는 듯 보이고 이에 대해 장 타루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지금 자신의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타르는 위기를 틈타 밀수 담배와 저급한 술을 팔아 돈을 벌고 있다. 전염병이 약해지면서 코타르의 기분은 요동친다. 때로는 사교성이 강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몸을 가누기도 한다. 결국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총을 쏴 일부에게 부상을 입히고 개는 죽인다. 경찰은 그를 체포한다.
리외는 '페스트와 싸우는 방법은 유일하게 성실성'이라고 한다. 페스트에 대한 해답은 없지만 꾸준히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 타루는 '시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을 통해서 페스트에 대한 시민들의 노력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서 파놀루 신부는 '페스트의 징벌적 성격은 하나님의 구원과 기독교의 희망'을 강조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느 소년의 갑짝스런 죽음으로 '어둠 속에서 더듬 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신념을 어느정도 수정한다. 그러나 결국 파놀루 신부는 페스트에 걸려서 자신의 신념대로 치료를 받지 않고 죽게 된다.
까뮈의 3부작 중에 하나이다. 까뮈는 평생 3가지의 주제를 중심으로 사유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답게 우리 인생에서 고민해야 하는 '부정, 긍정, 사랑'이 그 핵심이다. 부정을 다룬 책은 '이방인'이고, 긍정을 다루는 책은 '페스트', 사랑을 다룬 책은 '최초의 인간'의 인간이라고 한다. 최초의 인간을 쓰다가 까뮈는 생을 마감한다.
까뮈가 그리는 실존주의는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현상'을 분석한다. 대화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훌륭한 의사소통 도구이다. 대화를 하려면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생각해야 하고 그것에 맞는 단어를 찾아야 한다. 그러니깐 모습 그대로 남들이 가져다가 붙이는 '현상학'보다는 오히려 실존주에서의 '대화'라는 것은 본질에 앞에서 실존을 만들어내는 도구이다.
그래서 까뮈는 대화를 사용한다.
이방인부터, 페스트와 최초의 인간까지. 대화를 통해서 인간은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위치 지우고, 그 위치를 유지하려고 또 다른 단어들을 조합해서 문장을 만든다. 까뮈는 그 사이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한다. 주로 타루의 대화를 통해서.
타루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도 페스트의 환자였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자신이 반응하지 않은 것이 다른 살마의 죽음에 동의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타루는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죽음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행위나 원칙을 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형제도 만이 아니라 동물실험, 원전, 독재, 전쟁, 환경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왜냐하면 이 세상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타루는 말한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을 끊임없이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페스트는 상징이다. 인간 내면의 악일 수도 있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심성일 수도 있다. 까뮈는 항상 부조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부조리는 세상에서 사실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안에 그 부조리를 키우면서 산다. 그럼 부조리를 어떻게 해결할까? 까뮈는 주구장창 이 주제를 놓치지 않다. 부조리는 페스트, 페스트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키고 바꾸어 버린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을 옹호할 수 있는 백신이 없는 이상 나도 똑같이 싫어하게 된다. 언론에서 누군가를 고소했다고 하면 내 안에 그것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백신이 없는 이상 나는 그것을 듣고 아 저사람 잘못했네라고 말한다.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나기도 전에.
그럼 페스트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파놀루 신부처럼 하나님이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럼 해결하지 않는 것은 신의 뜻인가? 그런 이야기가 있다. 호모사케르를 쓴 조지오 아감벰은 그의 책에서 '저주받은 인간은 신의 뜻의 바깥에 있다는 의미에서 또한 성스럽다'라고. 배제된 존재들은 의도나 과정이 어찌되었든지 구별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배제된 사람에게 순교자라고 하는 성스러운 옷을 입혀주고, 어떤 사람은 이단과 역적, 마녀라는 옷을 입히고 태워서 죽인다. 규정하는 권력의 상황이 그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의 옷을 손수 지어 준다.
다시. 페스트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사람들의 아픔을 돌아보면서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희망을 가진 파루는 어쩌면 그에게 하나님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실존이라는 것은 항상 그렇다. 그곳에, 그 시간에 가보아야 안다. 어떤 절망도, 어떤 희망도, 어떠한 사랑도 결국은 그 곳에서 그 사람과 만나봐야 안다. 오히려 신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페스트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보이는 형태로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형태로 계속 우리 안에 살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백신이 우리 안에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치료제를 받았거나이다. 혐오와 배제와 미움과 악이 받힌 생각 속에서 그것을 치료해줄 한 낱의 희망. 까뮈의 페스트에서 그 한 줄기 빛을 본다. 아주 지루하고 지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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