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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Feb 12. 2021

비폭력 대화_연민을 방해하는 대화

마셜 로젠버그_비폭력대화 NVC 2장

0. 들어가기


지난주부터 매주 협동조합 사람들과 비폭력대화를 공부하면서 새로운 대화의 방식을 준비하고 있다. 비폭력대화는 구체적인 행동을 관찰하고, 그 관찰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며, 그 느낌이 일으키는 욕구, 가치관, 원하는 것을 찾아내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부탁한다는 것이다. 오늘부터는 비폭력대화 책을 1장부터 시작해서 진행하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비폭력 대화를 알아가고 연습하면서 화를 줄이고 나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존엄의 인간을 되면 좋겠다.


https://brunch.co.kr/@minnation/2319


오늘은 1장과 2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알아볼 것이다. 다음 장부터는 3장 관찰하기이다. 오늘은 책의 내용과 서로 나눈 내용들, 그리고 모임을 하면서 깨달은 것들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1. 느낌과 욕구 표현하기


비폭력 대화를 시작할 때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비폭력 대화의 방식으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해 보면 자연스럽게 비폭력 대화를 진행해 볼 수 있다.


느낌말 목록에서 자신의 '현재'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한다.

느낌과 연결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나눈다.

다음으로는 현재 자신이 느끼는 '욕구'를 표현한다.

욕구를 듣는 사람은 그 욕구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말하는 사람의 욕구를 배려하기 위한 마음을 먹을 수 있다.






2. 마음으로 주기


NVC는 우리의 본성인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를 맺고,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NVC를 통해 우리의 의식을 네가지 요소[우리가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바라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부탁하는가]에 집중하면서 자신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NVC는 깊이 듣고, 존중하고, 공감하는 자세를 길러 주고 진정으로 서로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더욱 연민으로 대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더욱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나누기 위해 사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더욱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나누기 위해 사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업무나 정치 분야에서도 NVC를 이용한다. NVC는 전 세계의 온갖 분쟁 상황에서 중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3. 연민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정말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연민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가? 그 예로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에티힐레줌이라고 로젠버그는 말한다. 그녀는 나치 포로 수용소의 극한 환경에서도 연민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으로,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여간해서는 겁을 먹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상대 역시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든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의 실제적인 요점이다. 불만에 가득찬 젊은 게슈타포 장교가 내게 소리를 질렀을 때, 나는 분노를 느끼기 보다 오히려 그에게 진정으로 연민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행했나요? 여자 친구가 당신을 실망시켰나요?' 분명 히 그는 지쳐 보였고, 우울하고 허약해 보였다. 그 때 나는 그 젊은 장교를 그 자리에서 치유해 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런 가없은젊은이들을 인간 사회에 풀어 놓았을 때,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었는지를 나는 알기 때문이다._에티 헬리줌, '회고록'


인간은 누구나 연민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연민은 pity가 아니라 compassion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고, 삶의 감정들을 자신의 삶 속에서 누리거나 감추거나 아쉬워하거나, 그리워 하는 원인으로 삼는다. 그러나 누구나 인간은 감정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민은 아무 때나 아무나한테서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철학자 마르틴부버는 만남의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참된 만남을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고 있고, 참된 만남의 핵심은 함께 존재함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민이란 어쩌면 이렇게 함께 발견됨일 것이다.


온갖 참된 삶은 만남이다. 인간은 언제나 만남에 애끓는 향수를 가지고 있기에 이 만남에 참여하고 난 뒤에는 "아, 나는 이것을 위하여 살았다 이제는 나의 목숨이 거두어져 좋다."하고 느끼기에 이른다. 이 만남의 의의와 가치는 "사람이 너를 통하여 하나의 나가 되는 데 있다."_마르틴 부버 '나와 너'


연민의 대화, 만남을 방해하는 것은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자신을 삶의 중심에서 소외시키는 대화와 사건, 관계들이 진행된다. 원인을 알아차리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폭력대화는 매우 중요한 방법이 된다.



4. 도덕주의적 판단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의 한 유형은 도덕주의적인 판단이다. 이것은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판단은 "너는 너무 이기적이여서 문제야, 너무 게을러, 편파적이고 버릇이 없어!" 와 같은 것들이다.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옳고 그름을 다지는 생각으로 가득 찬 판단에 우리를 가둔다. 모욕하고 비하하고, 비교하고, 분석하는 말을 쓸 때는 우리는 누가 옳고 그른지, 정상이고, 책임감이 있고 없는지, 똑똑하고 무지한지를 따지면서 다른 사람과 그들의 행동을 판단하는데 몰두하게 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문제는 그 자신이 저녁에는 여기서 누워서 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도덕주의란 자신의 판단의 기준을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존재에 빗대어서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할 수 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누가 누워도 죽게 되는 침대이다. 짧으면 짧은대로, 길면 긴대로 침대를 늘리거나 줄여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죽였던 것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거나 분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가치관과 욕구의 '비극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비극적인 이유는 자신의 가치관과 욕구를 표현하면, 우리가 걱정하는 행동을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거부감을 가져 방어와 저항을 하게 된다. 혹여나, 그들이 스스로 인정하고 우리의 가치관에 따라서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두려움과 죄책감, 수치심에서 행동하게 된다.


자율에서 자발이 나온다. 자율은 스스로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타율에 의해 제시된 기준은 자발적이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부작용이 될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서가 아니라 두려움, 죄책감, 수치심 때문에 우리의 가치관이나 욕구에 따른다면 언젠가는 모두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내면이나 외부의 강요에 의해 우리의 가치관을 따른 사람들은 우리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그 사람들 자신도 정서적 대가를 치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누군가 우리에게 연민의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 갈 수록, 자신도 다른 사람과 그런 대화를 해 나갈 수 없게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7sqa686HBc

빈첸의 '탓'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자기 탓이라는 아이러니 속에서 현대인들의 죄책감과 우울감이 잘 드러나 있다.


주의할 점이 있다. 도덕주의와 '가치관'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각자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대하여 가치 판단을 한다. 우리는 정직, 자유, 평화 같은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가치 판단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이 우리의 욕구를 충족하는데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믿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가치 판단과 맞지 않는 행동과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는 '도덕주의적 판단'을 내린다.



5. 폭력의 외부성


폭력은 그것이 언어적이든 심리적이든 신체적이든, 또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종족이나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든, 그 뿌리에 갈등의 원인을 상대방의 타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내면의 진실, 곧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두려워하고 동경하며 원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폭력은 스스로 내면에서 해결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화나, 서러움이나, 분노를 외부로 표출함으로써 자신을 지켜내려고 하는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에서 폭력적인 반응은 너무나 당연하다. 매번 다가오는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 삶의 무게와 감당해야할 선택의 결과들을 감당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반응할 수 있는 책임전가의 방법이 바로 폭력인 것이다.


폭력의 뿌리에는 갈등의 원인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는 생각이 있다.


그렇다면, 외부에 원인을 두지 않고 내부에 원인을 둔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기폭력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폭력은 우울증이나 자기분열, 자기부정을 통한 회피와 같은 방어기제들이 나타기도 한다.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폭력을 외부든 내부든 해소의 방식으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내 안의 폭력을 풀어내는 방식'이 바로 비폭력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폭력에 대해 성찰할 때 슬라보예 지젝의 책이 요긴하다



6. 비교하기와 비폭력 대화


비교는 판단의 한 형태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조충평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조충평판은 '조언, 충고, 평가, 판단'의 준말이다. 어찌되었든 이것들을 하려면 자신과 사람들을 비교하던가 다른 대상과 비교해야 한다. 나와 너가 아니라 '나와 너희' 혹은 '나와 그것'의 비교가 있어야 한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고 싶다면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비교해보라고 말한다.


비교는 판단의 한 형태이다.


비교는 결국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 없게 만든다. 누군가는 위가 되고, 누군가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누군가는 더 잘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루소는 이미 17세기부터 인건 불평등의 문제는 '허영'으로 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허영은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고 대화를 하고 연설을 하면서 시작된다. 누군가는 잘하고, 못하고가 나누어지고 그 속에서 내가 잘하면 우월감이, 못하면 열등감이 생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교하기의 결과는 어찌되었든 '욕망'의 증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비교하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비폭력대화는 불가능하다. 비교하기를 계속하다 보면 자기자신에 대한 폭력이나 타자에 대한 폭력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어머니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을 넘어서 폭력적인 말투를 쓰는 것은 사실 옆집이나 친구네 집이 더 잘살고 더 잘하기 때문이다. 엄친아를 외 싫어하겠는가? 그건 엄마친구아들이 엄마 친구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인데 말이다.


이재철목사님이 우리교회 목사님이였으면 좋겠다하다가 이젠 그 아들 이승윤처럼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둥. 비교는 모든 폭력의 시작이다.


7. 책임부정과 책임전가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 방법의 또다른 형태는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 방법은 스스로가 느끼는 생각, 느낌,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일들은 내가 좋든 싫든 해야 해! 너는 내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라는 대화의 속살은 어떻게 보면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행동과 말의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양함으로써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나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는 이러한 책임 부정을 아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600만명을 죽인 아이히만과 나치의 장교들은 '암트스라헤'Amtssprach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특별조치 1호'와 같은 의미의 사무용어처럼 느껴지는 이 단어는 '가스살포'라던지 '즉결처험'과 같은 의미를 책임부정을 잘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런 표현들 덕분에 나치 장교들은 자신들이 했던 만행들에 대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 상관의 명령이었고 부대의 방침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반응이 비슷하다면 우리는 책임부정을 통해서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 막역하고 일반적인 이유 : 다들 가니깐 나도 대학에 들어간다
 
- 상황, 진단, 개익적 또는 심리적 내력 : 나는 알코올 중독자라서 술을 마신다

- 다른 사람의 행동 : 아이가 찻길로 뛰어들어서 아이를 때렸다

- 권위자의 지시 : 상사가 시켜서 고객에게 거짓말을 했다

- 집단의 압력 : 친구들이 모두 담배를 피워서 나도 피우기 시작했다

- 내규, 규칙, 규정 : 학교 교칙에 따라서 나는 너에게 정학 처분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 성별, 사회적 지위, 연령에 따른 역할 : 일하러 가기 싫다, 히자만 나는 처자식이 있는 가장이야

- 억제할 수 없는 충동 : 초콜릿을 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때문에 우리는 쉽게 우리가 책임져야하고 자유의지를 통해서 결정해야 하는 일들을 쉽게 다른 사람에게 떠밀어 버렸다. 앞에서 말한대로 그렇게 되면 외부에 원인을 두기 때문에 쉽게 폭력적이되고 폭력적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 정당성을 가지게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비폭력대화'에서 로젠버그는 "나는~을 원했기 때문에 이 일을 했다"라고 바꾸어 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서 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술을 마시고 싶어서 술을 마셨다. 나는 아이를 때리고 싶어서 아이를 때렸다. 나는 고객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담배를 피웠다" 등등과 같다. 그렇다면 자신이 실제로 한 행동과 그 원인이 일치가 되면서 다음에는 대부분 그런 행동을 안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순응적인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매우 착하다고 하거나 나는 이것밖에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의지를 축소시켜 버린다. 모두가 소시민적인 유유자적과 '남들만큼만~'의 정도로 자신을 정의해버린다. 그러고 나면 누군가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대게 이런 사람들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 사람들을 쉽게 움질여 버린다. 독일 나치에 일조한 독일인들이 그랬고, 일제침략기에 친일파들이 그랬고, 개발독재시대의 대부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그랬고, 2014년 4월 16일 이후에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랬다.


어쩔 수 없었다, 상관의 지시였다'라고 이야기 했던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


만약 인류의 파괴기술이 점점 더 발달해서
언젠가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그 멸종의 원인은 인간의 잔인성이 아니다. 그 잔혹함이 일으킨 분노, 그리고 그 분노가 가져올 보복 때문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일반 대중의 온순함과 책임감의 결여,
그리고 모든 부당한 명령에 대한 비굴한 순종 때문이다.
비극적인 것은 온순하고 순저적인 사람의 수가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_마셜 로젠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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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대화는 먼저 폭력적인 대화를 멀리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려면 우리 내면에 폭력이 어떻게 자리잡고 순간순간 드러나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우리의 삶에서 소되시키는 대화와 삶의 방식들은 '폭력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만들고 그것을 정당화시킨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적인 대화를 하고선 '너는 그렇게 당해도 싸~'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도 소외시키고 다른 사라도 소외시키는 세상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 안의 폭력을 몰아내고 우리 안에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변화들을 시작해야 한다. 먼저는 주체성의 회복이고,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것으로 부터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서기'를 실행해야 한다.


방법론은 그 다음이다. 우리의 생각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이 삶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다. 내가 선택하는 것들이 세상을 바꾸어 간다. 작은 세상이든 큰 세상이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을 벗어나서 그 것을 내가 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오늘은 비폭력대화를 위한 생각의 변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번 장에서 배운 것이 너무나 많다. 배웠다기 보다는 깨달은 것이 너무나 많다. 다음 장에서부터는 비폭력대화의 4가지 단계를 하나하나 알아볼 것이다. 어떻게 있는 그대로를 관찰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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